[월요기획] "정판율 40% 밑돌아" 패션 골칫거리 ‘재고’ 올해 최악(?)
패션기업의 만성 골칫거리인 재고가 올해는 더 심각해질 것으로 보인다. 경기불황과 이상기온 날씨 영향으로 의류 소비 자체가 줄다 보니 브랜드마다 재고가 쌓여 가고 있다. 국내 의류 업체의 생산액 대비 의류 재고 비율은 30%가량으로 추정된다. 화장품 등 다른 제조업의 재고율이 10% 안팎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편이다. 환경 문제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의류 재고, 해결 방법은 없을까.
패션기업들이 4분기(겨울 시즌) 매출을 잡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지만, 2~3분기 부진했던 실적을 만회하기엔 역부족이다. “폭염에 이어 늦더위가 길어지면서 가을 장사가 작년과 비교해 30% 남짓 떨어지며 하반기 매출에 비상이 걸렸다”라는 업계 관계자는 “정해진 연간 계획에 맞춰 생산 일정과 물량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제는 통상적인 기획 방식을 바꿔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또 다른 관계자는 “봄과 가을이 점차 짧아지고 있어 수량이나 상품 수를 조절하고 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위가 더 오래가는 등 예측불가능한 올해 날씨 탓에 선기획 적중률이 떨어지고 있다”라면서 “올겨울은 역대급 한파가 온다는 보도가 있지만, 100% 확신할 수 없는 데다 소비위축이 심해 매출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지 미지수”라고 전했다. 게다가 환율 변화나, 글로벌 전쟁 이슈 등이 계속 터지며 해외 생산공장들과 조율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어 물량을 관리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올해는 특히 당해연도 상품인 정상 상품 판매율이 급격히 떨어지며, 재고에 대한 부담은 더 커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물량계획을 세울 때 정상 판매에서 55%, 1년 차에서 70%, 2년 차에서 90%, 3년 차에서 93~95%까지 소진한다는 가정하에 정해지는데, 사실상 백화점에 입점해 있는 주요 브랜드들의 정상 판매율은 40% 언저리에 있다.
소비 위축·날씨 영향, 패션기업들 수익 악화
대리점의 경우는 더 낮아 정상 판매율이 평균 30%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상 판매율을 높이기 위해 할인 기간을 앞당기거나 할인 폭을 넓힐 수밖에 없다. “소비침체로 인해 대부분 브랜드들이 할인 행사를 평년보다 많이 진행한다”라는 업계 관계자는 “반복적이고 잦은 세일에 효과는 떨어지고, 재고는 이전보다 더 늘어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재고가 늘어나면 이를 보관하는 데 비용과 공간의 문제가 생길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재고자산이 늘어나면 현금 유동성이 감소해 사업 운영자금에도 비상등이 켜진다. 현재 국내 주요 기업들의 재고자산회전율은 2회를 넘지 못하고 있다. 재고자산회전율은 매출원가를 평균 재고자산으로 나눈 값으로 재고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소진되는지를 나타내는 지표다. 지표가 높을수록 재고관리가 효율적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재고자산회전율이 낮을수록 기업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회전율이 낮더라도 많은 물량을 생산해 외형 매출과 영업이익을 높일 수는 있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재고평가감률에 따른 손실 발행으로 원가율이 높아지게 된다.
잦은 세일 비해 재고 더 늘어나는 ‘악순환’
패션상장사 가운데서는 신성통상(2.3회), F&F와 LF(1.9회), 휠라홀딩스와 신세계인터내셔날(1.6회) 등이 비교적 양호한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재고관리를 잘하는 업체로는 여성복 전문기업인 인동에프엔(대표 장기권)이 손꼽힌다. 백화점에서는 정해진 세일 외에는 프로모션을 진행하지 않고, 2년 차는 아울렛에서 판매하고 시즌이 종료되면 전량 해외로 넘겨 재고가 축적되지 않게 한다.
행텐을 운영하는 브랜디드라이프스타일코리아(대표 쉬브쿠마라마나탄)는 2년 차가 지난 모든 제품은 장고상 원가 1달러로 책정해 1달러만 쳐 주면 모두 정리하도록 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기업의 재고자산회전율 하락은 나아가 외형 매출까지도 떨어지는 구조로 이어질 수 있다”라며 “그렇다고 소각하는 건 환경적인 측면에서 위배되므로, 재고를 처리하고 관리하는 일을 하위에 두지 말고, 경영자가 관심을 갖고 시스템을 만든다면 건실하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패션의 특성상 시즌을 타고 유행이 바뀌기 때문에 쌓여 있는 재고는 금새 ‘악성재고’로 남아 떨이로 판매되거나 소각할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서 브랜드 가치가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이랜드월드(대표 조동주)는 기존에 선기획을 통해 대물량을 생산해놓고 판매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효율적인 재고관리에 초점을 맞춘 차세대 의류 생산 시스템을 도입했다. 바로 지난해 2월 서울 성동구 답십리에 국내 생산 오피스인 ‘이랜드 스피드 오피스’를 오픈해, ‘2일 5일 생산기법’을 가동 중이다. 이는 ‘스파오’ ‘후아유’ ‘미쏘’ 등 SPA 브랜드에 상용화한 의류생산 과정으로 이랜드 오피스에서 2일 만에 생산한 제품은 스파오의 거점 매장에서 주말 동안 판매한다.
이랜드 ~ 인동, 재고 최소화로 영업이익률 높여
테스트를 거친 후 반응이 있는 제품에 대해 이랜드가 보유한 생산기지로 넘겨 생산하도록 했다. 해외 생산 프로세스도 5일이면 기획부터 매장 진열까지 완성되도록 시스템을 갖췄다. 정확한 수요 예측이 어려운 만큼 팔릴 만큼만 생산해 재고를 줄인다는 취지로 시작된 ‘2일 5일 생산기법’은 현재까지 정상판매율을 높이는 결과로 이어져 고무적으로 보고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다.
유럽연합은 2026년부터 의류 재고 폐기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과잉 생산을 막는 게 근본적인 목표다. 판매되지 않은 직물 및 신발의 폐기를 금지하고, 기업의 재고량을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한다. 미판매 상품 수량과 이에 대한 처리 내용(기부, 재제조, 재활용 등)을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했다.
국내에도 ‘재고 폐기 방지법’을 입법화하기 위한 활동들이 이어지고 있다. 패션기업들이 재고관리 시스템의 개선과 자원 선순환 활동에 기부하는 등의 노력을 다같이 기울여야 할 때다. 재고 폐기 방지법은 의류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기업이 환경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여겨지고 있다.
무작정 만든다고 팔리지 않는 시대며, 안 팔리면 할인해서라도 팔면 된다는 생각에 물류창고에 계속 재고가 누적되는 것을 보고 있지는 않은지 짚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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