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젠·이벤트·텍스닉 등 소재 트렌드 '친환경·고기능·테크'로
이제는 친환경 소재만으로는 부족하다. 생산부터 폐기까지 많은 오염을 유발하는 패션 시장에서 친환경은 당연한 이슈가 됐기 때문이다. 운동이 생활화된 현대 소비자들의 일상에 기능적인 효과를 발휘하면서도 패셔너블해야 하고,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폐기 후까지 환경에 영향을 덜 줘야 한다. 어떤 소재를 쓰는지가 완제품의 가치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소재의 ‘브랜드’도 중요해졌다.
브랜드와 섬유 기업들의 고민은 최근 △옥수수 · 현무암 등 천연에서 온 친환경 기능성 섬유의 대두 △고어텍스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고기능성 소재 브랜드 등장 △고강도 및 비건가죽 등 첨단 섬유 육성이라는 결과물로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 흐름은 테크텍스틸(4월), 프리뷰인서울(8월), 인터텍스타일 상하이(8월) 등 최근 열린 글로벌 섬유 전시회에서도 두드러지게 드러났다.
소비자들도 소재에 대한 정보를 원하고, 전문가 못지않은 지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소재 기업들은 자체 개발한 소재를 B2B 파트너인 브랜드들과 공유하는 것뿐 아니라 협업 상품을 통해 소비자와도 공유하고 있다. 효성티앤씨, 라이크라, 코오롱인더스트리, 휴비스 등 국내 소재 기업들은 브랜드와의 컬래버를 강화하며 B2C로도 개별 소재 브랜드를 알리는 데 주력한다.
효성티앤씨(대표 김치형)는 기능성 섬유 브랜드 ‘크레오라(CREORA)’를 필두로 친환경 섬유 브랜드 ‘리젠(REGEN)’, 초냉감 나일론 섬유 ‘쿨웨이브’, 옥수수로 만든 ‘바이오 스판덱스’, 폐어망을 재활용한 ‘리젠 오션 나일론’ 등 다양한 기능성 소재 브랜드를 선보이며 변화하는 소재 시장에서 리더십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면 질감에 신축성까지 갖춘 새 기능성 폴리에스터 ‘크레오라 코나두’를 새롭게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다.
효성티앤씨, 리젠 · 바이오 등 친환경 리더십 강화
김치형 효성티앤씨 대표는 “화학섬유는 바스락거리고 차가운 질감을 준다는 고객 피드백을 기반으로 부드러운 면 질감에 편안한 신축성과 기본 기능성을 갖추고 있는 크레오라 코나두를 새롭게 선보이게 됐다”라며 “효성은 재활용 플라스틱, 생분해 섬유, 바이오 섬유 등 친환경 섬유 3개 축에 대한 연구·개발을 강화해 글로벌 친환경 섬유 소재 시장을 주도할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효성티앤씨는 최근 열린 국내외 섬유 전시회에 ‘젝시믹스’ 등 파트너사 10여 곳과 협업해 기능성 소재를 적용한 새로운 상품을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효성티앤씨 내부 부스에 ‘에어로쿨(흡습속건)’과 ‘파워핏’ 등 다양한 기능의 크레오라 섬유를 적용한 젝시믹스 애슬레저웨어를 전시해 바이어들의 이해도를 높인 것.
9월 초 ‘자원 순환의 날’에는 리젠의 파트너사인 ‘플리츠마마’와 협업해 페트병을 모아오면 리젠으로 제작한 플리츠마마 상품을 제공하는 캠페인을 열어 임직원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서울패션위크’에서는 처음으로 폐어망 재활용 나일론 ‘리젠 오션’과 페트병 재활용 폴리에스터 ‘리젠’의 제조 과정을 현장에 방문한 소비자와 글로벌 바이어들에게 자세히 공개했다. 패션 스타트업 ‘몽세누’와는 호텔 폐기 침구류를 활용해 만든 티셔츠를 선보이는 등 재활용 소재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마케팅 활동을 펼쳤다.
플리츠마마 · 젝시믹스 등 협업 상품으로 이해도↑
한편 효성티앤씨는 최근 생분해성 리사이클 페트 원사 개발에 이어 폐의류에서 뽑은 섬유를 재생 폴리에스터 섬유로 순환시킬 수 있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이를 위해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폴리에스터 소재 혁신업체 앰버사이클과 MOU를 맺었다. 이번 협력을 통해 버려진 옷과 원단을 재활용해 새 섬유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하고, 탈탄소화 소재 상용화를 이끄는 국내 첫 제조기업으로 주도권을 가져갈 계획이다.
의류용 생분해 섬유 상업화에 주력하던 휴비스(대표 김석현)는 올해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한 원료로 만든 화학 재생 LMF(Low Melting Fiber : 일반 폴리에스터보다 녹는점이 110~120°C로 150°C 이상 낮은 친환경 폴리에스터 섬유)인 ‘에코에버 LM’ 상용화에 나섰다. 원유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 원료 사용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는 소재다.
재활용을 반복할수록 품질이 떨어지는 물리적 재활용이 아니라 PET 고분자를 화학적으로 분해해 저분자 상태로 만든 후 재중합하기 때문에 재활용을 반복해도 품질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자동차의 대시보드, 헤드라이너, 시트, 도어트림 등 내장재의 소재로 각광받고 있다. 주력 시장은 2031년부터 신차 생산 시 재활용 소재 비율 등을 개정 시행하는 유럽이며, 파트너사는 글로벌 자동차 기업 현대기아차 등이다.
휴비스 ‘에코에버 LM’ 반복 재활용에도 품질 저하X
올 3월 새로운 대표로 취임한 김석현 휴비스 대표는 “이번 에코에버 LM의 상업 생산을 시작으로 국내 자원선순환은 물론 화학적 재활용 소재의 국산화에 기여할 수 있게 돼 기쁘다”라며 “자동차 업계뿐 아니라 산업용과 인테리어용 소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화학적 재활용에 대한 관심과 문의가 높은 만큼 앞으로 친환경·차별화 제품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더욱 강화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휴비스는 2021년부터 국내 최초로 생분해 폴리에스터 ‘에코엔’을 상용화하고 상업화하면서 생분해성 소재 등 친환경 스페셜티 소재 대중화에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에코엔은 내구성과 내열성이 높아 산업용부터 의류용까지 폭넓게 적용할 수 있고, 옷으로 만들었을 때 4~10년 동안 사용한 후 매립하면 3년 내 생분해되는 소재다. 리사이클 칩에서 폴리머 가공을 한 ‘에코엔-R’도 있다.
올해는 기능성 소재의 대명사와도 같던 ‘고어텍스’ 대항마를 자처하는 소재 브랜드들이 친환경 이미지를 강조하며 활발하게 활동을 시작해 눈길을 끈다. 대표적인 브랜드로 독일 멤브레인 ‘심파텍스(Sympatex)’, 홍콩에 기반을 둔 ‘이벤트패브릭(eVent Fabrics, 이하 이벤트)’, 국내 고기능성 리사이클 브랜드 ‘텍스닉(TEXNIC)’이 있다.
심파텍스 · 텍스닉 · 이벤트 등 ‘代 고어텍스’ 등장
심파텍스는 2015년 이후 10년 만에 국내 시장 마케팅을 강화하기 시작했다. 심파텍스코리아(대표 김원)는 최근 기능성 등산화 브랜드 ‘지벤’, 스포츠 브랜드 ‘푸마’ 등과 친환경 기능성 상품을 개발해 선보이면서 다시 국내 브랜드와 소비자들에게 이름을 알리고 있다.
심파텍스는 기존 멤브레인 대비 투습 기능이 뛰어나고 우산(2000㎜)보다 5배 높은 방수력(1만㎜ 이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미세한 구멍으로 방수 및 투습 효과를 내는 기존 멤브레인과 달리 구멍 없이 피부와 닿는 멤브레인의 진수성 분자가 습기를 흡수하고, 겉면의 소수성 분자가 습기를 배출한다. 착용자의 체온이 높고 땀이 많을수록 투습 기능이 향상되는 특징이 있다.
미세한 다공성 멤브레인과 달리 막힐 구멍이 없어 잦은 세탁에도 기능을 유지해 오래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무엇보다 자연과 인체에 영향이 적은 친환경 상품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100% 재활용 혹은 자연 분해 가능한 소재로, 자연과 인체에 유해한 과불화화합물 성분도 없어 최근 소비자들의 니즈에도 부합한다. 지난 4월부터 국내에서는 대한항공 유니폼에 쓰이며 재출발을 알렸고, 글로벌에서는 ‘마무트’ ‘캐나다구스’ ‘하그로프스’ ‘푸마’ ‘바우데’ ‘데카트론’ 등이 주요 파트너로 등산·스키·러닝 상품에 사용한다.
이벤트, 피마자씨에서 추출한 바이오 멤브레인?
글로벌 시장에서 기능성 소재로 이름이 높은 이벤트는 9월 말 국내에서 전시회를 열며 공식 론칭을 알렸다. 1999년 창립 이후 20년간 통기성 방수와 방풍 등 포괄적인 기능성 소재로 활약한 브랜드로 홍콩 기반의 퍼포맥스프로가 인수하면서 최근 소재의 혁신과 성장에 중점을 두고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국내 에이전시는 지오앤다나(대표 성미진)로 9월 말 안다즈 서울 강남 지하 2층에서 한국 론칭 겸 첫 소재 전시회를 열어 국내 브랜드 담당자들과 미팅을 가졌다. 주로 2025년 하반기 시장에 맞춘 소재 트렌드와 이벤트 특유의 기능을 알리는 데 주력했는데, 눈길을 끈 소재는 재생 가능한 피마자씨에서 추출한 방수 바이오 멤브레인 ‘이벤트 바이오’ 등의 새로운 라인이었다.
지난해 친환경 아웃도어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제로그램’과의 협업으로 화제를 모은 텍스닉도 고기능성 멤브레인으로 인기다. 라잇루트(대표 신민정)의 텍스닉은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로부터 모은 폐이차전지 분리막을 재활용해 만든 기능성 리사이클 멤브레인 원단이다. 고어텍스 대비 3분의 1 비용으로 합리적이면서 탁월한 기능성, 지속가능 가치까지 만족시키며 국내 브랜드들과의 파트너십을 공고히 하는 중이다.
아티스틱 기능성 소재 ‘텍스닉’ B2B2C 공략
기능성 퍼포먼스 라인과 소재 특유의 질감과 물성을 강조한 누보 라인을 전개 중인데, 각각 아웃도어와 디자이너 브랜드 협업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퍼포먼스 라인은 제로그램·빈폴골프·오지엔 등과 협력하고 있고, 디자이너 브랜드로는 ‘T.B.O.S’ 등과 협업해 작품과도 같은 기능성 소재 의류를 선보였다.
이혜림 라잇루트 이사는 “아티스트와의 컬래버를 통해서 B2B뿐만 아니라 B2C를 공략하려고 한다. 리사이클 소재 ‘텍스닉’을 소비자에게 적절하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크리에이티브한 인물과 협업이 필수적이다. 이들을 통해 소재의 창의적인 사용방식 및 우수성을 보여줄 수 있었고 소비자들이 이를 통해 소재 자체에 매력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벤텍스(대표 고경찬)도 고어텍스의 방수 기능과 쿨맥스의 흡한속건 강점을 결합한 하이브리드형 수분제어 소재 ‘피부 모사형 고투습 · 방수 · 속건 소재(VTK-MS series)’로 최근 장영실상을 받았다. 지난 2022년 벤텍스 나노바이오연구소에서 개발한 이 소재는 신속한 투습 및 일방향 수분 배출, 방수 기능에 더해 항균 소취 기능까지 갖춘 다기능성으로 눈길을 끌었다.
벤텍스, 피부 같은 기능성 소재! 50억 매출 화제
미국과 유럽에서는 사용이 금지된 화학 발암물질 과불화합물(PFAS)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비불소계 수지로 개발했고, 20회 반복 세탁해도 초기 발수 기능성의 90% 이상을 유지해 지속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2022년 개발 첫해 판매액 1억5000만원에서 작년 13억원으로 매출이 증가했고, 올해는 미국 · 유럽 · 일본 의류 제조사와의 거래를 통해 50억원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기능성 외 패션 소재도 친환경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듯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이탈리아 데님 원단 브랜드 ‘칸디아니(Candiani)’가 있다. 데님은 염색과 워싱 과정에서 물을 많이 사용하고, 환경 오염을 하는 것으로 오랫동안 비판받은 소재인데 칸디아니에서 폐기 후 퇴비가 될 수 있는 데님을 개발해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데님 원단의 이름은 ‘코레바(Coreva)’. 신축성을 위한 화학 소재도 쓰지 않고 천연 고무로 코어를 감싼 유기농 코튼으로 만든 스트레치 데님이다. 데님 재활용의 핵심 과제였던 신축성 화학 소재 문제를 해결해 생분해성 청바지를 만들 수 있게 됐다. 코레바로 만든 데님은 매립지에서 분해되는 데 수십 수백년이 걸리던 기존 청바지와 달리 산업용 퇴비화 시설에서 6개월 내로 분해돼 토양으로 영양분을 돌려준다. 실제로 데님 퇴비화 토양에서 토마토를 재배해 테스트도 완료했다.
칸디아니 데님, 폐기 후 6개월 내 생분해 ‘퇴비’화
다만 산업용 퇴비화 시설의 가용성이 지역마다 다르고, 지속가능 재료나 공정에 따라 비용이 높아져 완제품 가격이 높아진다는 한계점이 있다. 2020년부터 환경에 관심을 가진 ‘스텔라맥카트니’ 등이 컬렉션에 코레바 데님을 사용하고 있으나 아직은 대중화되지 않았다. 다만 지속가능을 위한 방향성에 의미를 두고 꾸준히 연구·개발을 진행 중이다.
기후 변화가 급격해지면서 울과 면 등 천연 소재가 재배 지역의 환경과 경제 사정에 따라 수급 불균형과 가격 급등이라는 문제를 겪으면서 좀 더 친환경적이고 기능적이면서 지속가능한 소재에 대한 관심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일부 생산 기업과 브랜드들이 주도하던 이 트렌드는 젊은 소비자들의 가치 변화에 맞물려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국내 화학섬유 시장도 해외에서 저가에 과잉 공급하는 원사에 잠식되고 있다는 문제가 있다. 정부에서는 이에 대응해 국내외 시장 환경과 정책, 사업전환 및 기술 고도화 성공 사례를 공유하면서 섬유 산업에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해야 한다는 어젠다를 강조하고 있다. 디지털, AI, 탄소섬유, 비건가죽, 테크섬유 등 다양한 대안이 나오고 있으며 이를 실용화하고 효율화하기 위해 310억원을 투입하고 26만명을 직접 고용하는 민생사업으로 적극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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