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재경 l 변호사 · 건국대 교수 '흑백 디자이너 패션 계급 전쟁'
흑백? 계급? 전쟁? 요즘 사람들이 열광할 만한 단어들이다. 넷플릭스가 야심 차게 내놓은 예능 시리즈 ‘흑백요리사:요리 계급 전쟁’은 엄청난 인기로 성공했고, 시즌2까지 편성이 확정됐다. 스타 요리사 20명과 무명의 재야 요리사 80명이 심사단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쳐 요리 대결을 펼치는 형식은 치열한 신경전과 함께 불을 뿜었다. 패션 세계의 계급 전쟁은 어떨까?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같은 레벨의 전문성을 지녔다 하더라도 유명인과 무명인은 뒤섞여 있다. 하지만 이름이 알려졌느나 알려지지 않았느냐 차이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현격한 차이가 난다. 무한 경쟁 시대에서 인지도의 차이가 발생하는 것도 실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지만, 어떠한 연유에서든 그 출발점이 다르다면 불공정하다고 느낄 수 있다. 헌법이 보장하는 직업의 자유만으로는 우리 사회가 그토록 갈망하는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흑백요리사’가 인기를 끌게 된 이유도 바로 현대인들이 공감하는 ‘공정’의 키워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백수저’들의 저명성과 스타성에 맞서는 ‘흑수저’들은 그 명성과 텃세에 가려서 자신이 가진 실력과 꿈을 시장에서 선보일 수 있는 최소한의 기회조차 제공받지 못하기도 한다. 자신의 이름만으로 얼마든지 장사할 수 있는 기득권을 가진 이들과 경쟁의 형식을 띠고 있는 이 세상의 모든 시스템은 볼만하지만, 영세한 새내기들은 불만일 것이다. 우리나라 패션 업계에서도 혹시 그러한 억울함과 황당함이 늘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흑백요리사에서는 다양한 미션이 등장한다. 팀을 이뤄 신규 식당을 운영하는 미션은 어느 직업 세계에도 적용될 수 있다. 경쟁에서 밀려 탈락하는 모습은 우리가 여기저기에서 많이 봐 온 현실이다. 요리팀 내에서 멤버를 방출하는 과정에서 학교나 직장 내 집단 따돌림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한식 대가들이 칼질과 재료 손질, 셔틀만 하다가 어느새 치워지는 운명을 맞이한다. 조용히 일하는 요리사는 탈락하고, 조금이라도 전면에 나서는 요리사는 살아남는다. 요리에서 제일 중요한 맛이 뒷전으로 밀리고 외식사업자가 득세한다는 느낌도 들었다.
프로그램이 내세우는 목적이 한국의 음식을 세계에 널리 알린다는 것이었지만 한식 요리사에게 불리한 룰의 경연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패션산업에도 적용될 만한 여러 요소들이 등장했다. 패션위크나 패션코드 등에 참여하거나 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떠올리면서 공정의 키워드를 되돌아봤다.
어쩌면 우리는 백수저들이 갖추고 있는 업적과 평판 자체를 바꿀 수 없는 ‘현실’을 인정해야 할지도 모른다. 흑백요리사에서는 ‘안대 심사’가 현실을 최대한 공정하게 만드는 툴로 나온다. 안대 심사를 통해 백수저 요리사들이 대거 탈락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패션 시장에서도 안대 심사가 적용될 수 있을까? 법적 · 제도적으로는 당장 어렵겠지만, 시장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사업의 지속가능성을 지원하는 시스템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나 여러 문화재단의 지원사업을 비롯해 이미 적잖은 지원 프로그램이 있지만, 흑수저들은 아직도 냉탕에서 떨고 있다. 흑백요리사는 공정경쟁 속에 계층 간 이동 사다리를 보여주려 했다. 어느 순간 제작진이 빌런으로 등장, 규칙을 바꾸는 상황도 현실과 꼭 닮았다. 흑백 패션 디자이너는 어떤가?
profile
· 건국대 교수 / 변호사(사법연수원 25기)
· 패션디자이너연합회 운영위원
· 무신사 지식재산권보호위원회 위원
·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위원 / 케이옥션 감사
· 국립극단 이사 / TBS 시청자위원회 위원장
·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자문위원
·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 위원
·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 회장
· 런던 시티대학교 문화정책과정 석사
· 미국 Columbia Law School 석사
· 서울대 법대 학사 · 석사 · 박사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4년 11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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