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정상길 l KFMI 대표 '고객 맥락에 집중 잠재 니즈 발굴을'

패션비즈 취재팀 (fashionbiz_report@fashionbiz.co.kr)|24.09.20 ∙ 조회수 1,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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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정상길 l KFMI 대표 '고객 맥락에 집중 잠재 니즈 발굴을' 27-Image


필자가 패션업계 임직원을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거나 강의하면서 참석한 실무자에게 항상 묻는 말이 있다. '지난 한 달 동안 매장에서 고객의 구매 행태를 관찰해 본 적이 있는지'와 '고객과 1:1로 인터뷰해 본 적이 있는지'다.


이런 질문에 손을 드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경험적으로 볼 때, 패션업계의 특성은 '소비자 근시안'에 빠지는 것이다. 왜 그럴까. 이는 지금까지 시즌 패션 트렌드에 맞춰 상품을 만들고 각종 매체에 홍보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 우수한 마케팅이라는 굳은 믿음과 소비자에게 물어보지 않아도 평소 소비자를 잘 알고 있다는 편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시각은 소비자 관점의 머천다이징을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이 같은 트렌드 중심의 머천다이징 방식은 향후 시장에서도 여전히 유효한가.


주목할 점은 패션 트렌드가 시장을 움직이는 방향이라면 고객은 시장을 구성하는 동력이라는 사실이다. 앞으로 중점적으로 관심을 둬야 할 곳은 ‘고객’이다. 고객 관점의 마케팅이라는 것은 뻔한 질문으로 결과가 예측되는 조사를 통해 고객의 과거를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조사목적에 맞춰 적절하고 다양한 방법의 조사를 수행해 결과를 전략으로 연결하고 이를 실무에 적용하는 것이다. 즉 조사를 통해 유의미한 통찰력을 갖고 새로운 니즈를 발굴해 시장을 창출하는 것을 말한다. 소비자를 이해하고 연구하는 기업은 소비자의 맥락에 대한 조사와 통찰력이 뒷받침돼야만 시장에서 차별화된 상품을 내놓고 향후 변화하는 시장에 전략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러므로 향후 패션시장은 경쟁사와의 차별화뿐만 아니라 고객 니즈와의 적합성도 매우 중요하다.


고객의 콘텍스트(context, 맥락)를 기반으로 성공한 브랜드, 보노보스의 사례를 살펴보겠다. 2007년 보노보스는 스탠퍼드대 MBA 동료인 앤디 던과 브라이언 스펠 리가 학생 시절 남성 전용 온라인 쇼핑몰을 설립했다. 창업 당시 전문성을 담은 전략적인 카테고리로 바지를 선정했다. 일반적으로 남성들에게 가장 기본적이지만 착용하기 까다로운 품목이 바지다. 이는 자신의 몸에 딱 맞는 핏의 바지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스타일 핏도 중요하다. 이 때문에 두 가지 핏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


이 같은 소비자 맥락을 기반에 두고, 보노보스가 주목한 타깃은 일반적인 표준체형에서 벗어난 운동형 몸매의 남성들이다. 이들은 허리는 가늘고 허벅지가 굵어 기존 바지로는 멋지면서도 편안하게 착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사실 고객의 익숙해진 불편함을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보노보스는 소비자의 깊은 이해를 통한 통찰로 고객 니즈를 명확하게 정의해 핵심 동기를 발견했다. 즉 바지를 허리에 맞추면 허벅지가 작고, 허벅지에 맞추면 허리가 커 불편한 점을 간파했다.


이 같은 관점에 기초해 타깃의 몸에 딱 맞는 착용감 있는 바지를 위해 허리 부분에 밴드를 넣어, 사이즈의 탄력성으로 착용의 편안함을 주는 ‘허벅지 맞춤 바지’를 개발했다. 기존의 허리 사이즈 기준에서 탈피해 허벅지와 길이 등을 함께 고려해 고객에게 바지의 새로운 가치를 제공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타깃 고객들은 보노보스 바지에 열광했고, 온라인의 바이럴 효과까지 일으켜 폭발적인 반응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이처럼 몸에 잘 맞고 고객 취향에 맞는 스타일의 바지를 개발했다고 하더라도 남성 소비자들이 바지 구매와 관련한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또 다른 불편은 남성들의 패션과 쇼핑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였다. 많은 여성들은 시즌마다 유행과 스타일의 변화에 맞춰 새로움을 추구해 신제품을 구매하지만 남자들은 쇼핑행위 자체를 고통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패션과 쇼핑에 대해 관심도가 낮다. 이에 따라 부인이나 여자 친구 따라 매장을 방문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 이는 여성이 쇼핑하는 동안 지루한 기다림, 직원의 강매 등 쇼핑 자체가 불편하다. 더욱이 남성의 옷을 구매하러 가더라도 결국은 여성의 취향으로 본인의 옷이 선택되는 경험이 많기 때문이다. 이처럼 남성들은 쇼핑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다만 남성들은 옷을 구매할 때 자신이 마음에 드는 것과 사회적으로 어떻게 보일까에 대해서는 민감하게 고민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노보스는 창업 당시 본사 내 매장 형태의 쇼룸을 마련했다. 일부 온라인 고객들이 실제 제품을 눈으로 보고 촉감을 느끼고 착용했을 때의 핏감을 느끼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쇼룸은 고객에게 브랜드의 감성적인 연결고리인 것이다.


특히 온라인에서의 비즈니스는 시장의 변화와 고객의 니즈 변화에 둔감하게 된다.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직접 눈앞의 고객의 쇼핑 행태를 관찰하며 이해하면 직원들로 하여금 깊고 넓은 시야의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다. 이런 이유로 보노보스는 쇼룸을 단지 고객의 체험공간뿐만 아니라 회사의 디자이너나 상품기획팀의 직원들이 고객과 직접 접촉해 고객과의 상호작용과 샘플링 등에 관한 정보를 수집 · 분석해 머천다이징이나 마케팅의 기초자료로 활용했다.


이 같은 쇼룸을 통한 고객과의 상호작용 시스템을 구축한 이후, 축적된 쇼룸 경험은 2010년 오프라인 매장인 ‘가이드숍’을 개설하는 데 단초가 됐다. 가이드숍은 고객에게 쇼핑의 고통을 줄이고, 취향에 맞춰 딱 맞는 핏을 찾게 해주는 높은 수준의 서비스와 풍부한 경험을 제공해 주는 무재고의 오프라인 매장이다.


사실 온라인에서 완벽한 핏을 찾기는 쉽지 않다. 고객이 직접 시착해 봐야 자신의 체형을 고려한 완벽한 핏을 발견할 수 있다. 온라인으로 가이드숍 방문을 예약하면 약 45분간 1 대 1로 접객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를테면 '닌자'라고 일컫는 패션 코디네이터는 온라인의 고객 정보에 맞춰 스타일과 사이즈 등을 참조하고, 고객의 패션 취향을 묻고 고객에게 어울리는 제품을 추천해 주거나 사회적인 패션 가드라인에 대해 조언해 준다.


매장 내 제품은 판매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고객이 보고 시착하기 위한 용도의 샘플로 구성된다. 이렇게 고객이 한 번 가이드숍을 방문하게 되면 이후부터는 매장을 방문하지 않고도 같은 사이즈를 온라인에서 주문하면 된다.


또한 매장에서는 고객이 어떤 맥락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이용하는지, 그 안에 어떤 잠재 니즈를 갖고 있는지를 고객의 구매경험 과정을 조사해 불편을 해결한다. 이와 관련해 고객이 매장에서 시착한 후 구매의향이 있을 경우 숍의 온라인에서 구매한다. 예컨대 고객이 캐주얼 팬츠를 주문할 경우 제일 먼저 컬러를 선택하고 다음은 테일러드, 슬림, 스트레이트 등 5가지의 스타일 핏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한다.


다음은 허리 사이즈를 고르고 바지의 길이를 정하고 마지막으로 포켓 라이너를 선택한다. 이렇게 커스텀 핏(custom fit)을 주문한 옷은 바로 물류창고에서 배송해 집으로 보내진다. 고객이 직접 쇼핑백을 들고 가지 않아도 된다. 이는 남성들이 쇼핑백을 들고 가는 것을 귀찮고 불편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이처럼 보노보스는 쇼핑을 어색해하고 불편해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등 남성들이 표현하지 못한 잠재욕구를 발견해 충족시켰다.


정리해 보면 보노보스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반적인 바지를 만든 것이 아니다. 운동형 몸매의 남성 고객들이 갖고 싶게 바지의 속성을 고객 관점으로 전환해 새로운 시장을 창조했다. 즉 타깃 고객의 콘텍스트를 통해 발견한 인사이트, 익숙해진 불편한 바지에 새로운 관점을 제공했다. 이러한 시각이 고객 관점의 머천다이징이다. 그 밑바탕에는 소비자는 자신의 ‘불편’을 해결해 주고 동시에 ‘공감’할 수 있는 상품을 원한다는 사실이 깔려 있다. 이는 국내 패션기업에서 명심해야 할 시사점이다.


profile


· 중앙대 대학원 경영학과 졸업(마케팅전공)

· 한국마케팅학술연구소 선임연구원(마케팅조사기관)

· ㈜상아제약 마케팅부 「제놀」 Brand Manager

· ㈜태창 인아우트사업부 팀장,

· 캘빈클라인, 미치코런던, 베네통 MD 팀장

· ㈜애드케이 마케팅팀 팀장(금강제화 계열 광고사)

· ㈜태창 신유통사업부 본부장

· 충남대학교 생활과학대학 의류학과 겸임교수

· 현) KFMI 대표(패션마케팅 컨설팅)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4년 9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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