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갤러리아가 놓친 것들'
지난 호에 이어 고(故) 서영민 여사가 생전 고문을 지냈던 ‘한화 갤러리아’ 이야기를 해 보려고 한다. 이번 호는 갤러리아가 수입 브랜드의 외면을 받은 과정과 갤러리아의 시스템, HR(Human Resources, 인사), 편집숍 브랜딩 등 실패 사례를 담은 안타까운 내용의 글이다. 서 여사의 손길이 사라진 지금, 생기가 넘치던 그때의 갤러리아를 다시 보고 싶은 그리운 마음도 함께 담았다.
예전에는 모든 수입 브랜드가 갤러리아에 1호 매장을 열고 싶어 했다. 모든 브랜드가 갤러리아에서 가장 먼저 뜨고, 또 갤러리아에서 가장 먼저 졌다. 즉 갤러리아에서 브랜드가 지면 다른 유통사의 주요 점포에서도 같은 브랜드가 차츰 빠지고 지방으로 그 열기가 옮겨가는 식이었다. 누구나 한 켤레는 갖고 있어야 한다는 직사각형 로고의 ‘로저비비에(Roger Vivier)’, 3색 스트라이프 로고의 ‘톰브라운(THOM BROWNE)’ ‘까르뱅(CARVEN)’ ‘MM6’ ‘DVF’ 등 웬만한 내로라하는 브랜드는 갤러리아에 1호점을 내며 국내 론칭을 알렸다.
지금은 1호점을 갤러리아에서 론칭하는 경우가 드물다. 컨템의 귀여운 브랜드 ‘가니(GANNI)’와 ‘꾸레쥬(COURREGES)’도 예전이라면 갤러리아의 문을 두드렸겠지만,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1호점을 오픈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의 ‘스튜디오 니콜슨(STUDIO NICHOLSON)’과 한섬의 ‘토템(TOTEME)’도 현대백화점 본점에 1호점을 오픈했다. LF의 ‘빠뚜(Patou)’도 더현대서울에 1호점을 오픈했다.
과거에는 갤러리아에 1호점을 내는 것이 브랜드 본국의 요구사항일 때도 있었기에 더욱 충격이었다. 갤러리아의 위상은 국내를 넘어 국제적으로도 컸었다. 이제는 수입 브랜드가 갤러리아보다는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현대백화점 본점 · 코엑스점 · 판교점 · 더현대서울 등의 문을 먼저 두드린다. 현재 갤러리아에 입점한 컨템퍼러리 브랜드를 보면, 다른 유통사에서 이미 철수한 브랜드가 여럿 남아 있다. 예전에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일이다.
이번에는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다. 윗사람이 바뀌더라도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브랜드나 MD 등에 큰 영향이 별로 없는 다른 유통사에 비해 갤러리아는 윗선을 포함한 담당자들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여기에는 일장일단(一長一短)이 있다. 만약 브랜드를 많이 알고, 갤러리아의 장단점을 잘 알고, 사심 없이 갤러리아를 위하는 사람이 결정권자라면 다시 좋아질 수 있지만 그 반대라면 더 빠르게 악화될 수 있다. 갤러리아는 현재 갖고 있는 여러 명품 브랜드를 잃고, 명품 백화점이라는 아이덴티티마저 잃게 될 소지가 있다.
예전에 브랜드를 많이 알고 갤러리아의 속성을 A부터 Z까지 잘 아는 뼛속까지 갤러리아인인 바이어가 몇 있었다. 그들에 의해 MD가 진행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런데 바이어 여러 명이 갤러리아를 나갔다. 그중 업계에서 몇 안 될 정도로 정말 능력 있는 한 바이어는 대형 유통사로 스카우트되고, 그 유통사의 명품 MD가 업그레이드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한마디로 갤러리아의 실(loss)이 다른 유통사에는 득(gain)이 된 것이다. 갤러리아의 브랜드 MD의 질이 내려가는 동안 다른 유통사의 MD의 질이 올라가고 있었다. 10점짜리 좋은 바이어 한 명이 갤러리아를 떠나 다른 경쟁사로 가면 갤러리아의 손해는 -10점으로 끝나지 않는다. 내가 한 발짝 뒤로 물러설 때 경쟁자는 한 발짝 앞으로 가 그만큼 차이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다음은 HR, 즉 인사에 대한 내용이다. 한 번도 대기업에서 일해 본 적이 없어 대기업 시스템을 잘 모르던 필자가 대형 유통사들과 일하며 확실히 다르다고 감탄했던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인사 시스템이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누가 일을 잘 하고 못 하는지 판단하고, 누가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는지 그렇게 잘 알까 싶었다. 보통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는 잘 보이려 노력하기 때문에 위에서 내려다보면 좋은 것만 보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예상보다 인사 시스템은 정확히 작동한다. 물론 가끔은 예상을 빗나갈 때도 있지만, 정말 일 잘하고 인성 좋고 공정한 사람들은 한 계단 한 계단 승진해서 대체로 임원까지 간다.
그런데 갤러리아의 인사는 이상하다고 느껴졌다. 인성 좋고 공정하고 열심히 일하지만 목소리가 크지 않은 조용한 바이어들은 갤러리아를 떠나거나 승진 대열에서 밀렸다. 실제로 일을 별로 열심히 하지 않으며, 목소리만 큰 바이어들은 임원이 되는 경우가 흔했다.
물론 필자의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만약 제대로 된 인사가 이뤄졌더라면 갤러리아에 대한 사랑과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고, 패션 지식이 그토록 많고, 의지력과 실행력도 많았던 그 바이어들이 다른 유통사로 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인사가 만사라고 하지 않던가. 이참에 갤러리아의 대표는 갤러리아의 HR 시스템도 한번 되돌아보고 쇄신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마지막으로 갤러리아의 편집숍에 대한 분석이다. 예전에는 편집숍도 갤러리아의 자랑거리였다. 최신 트렌드를 즉각 반영해 패션 리더들의 필수 쇼핑 코스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른 회사 브랜드 바이어들과 상품본부 및 영업점의 바이어들이 가장 관심 있게 봤던 곳도 갤러리아의 편집숍이었다.
갤러리아는 ‘무이(MUE)’ ‘톰그레이하운드(TOM GREYHOUND)’ ‘분더샵(BOONTHESHOP)’ 등과 함께 편집숍의 효시로 알려진 ‘G494’ ‘G494H(G.STREET 494 HOMME)’를 비롯해 ‘G.D.S(Galleria Designers Shop)’ ‘MANgds’ ‘스티븐알란(Steven Alan)’ 등 다양한 콘셉트의 편집숍을 운영했다.
필자의 지인 중에도 이 편집숍들을 좋아해서 갤러리아에 간다는 이가 많았고, 필자도 갤러리아에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들렀던 곳들이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가장 좋아했던 곳은 웨스트 2층 에스컬레이터 바로 옆 매장 4개를 차지하고 있던 ‘G494’였다. 여기서는 유럽․미국 · 일본 등의 패션 트렌드를 거의 실시간으로 소개하고 있었고, 바잉도 훌륭했으며, 가격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훌륭한 가격’이 문제였다. 한마디로 마크업(markup)이 낮았던 것이다. 백화점이 직접 운영하니까 수수료를 주지 않아도 된다는 이유로 수수료만큼 뺀 것을 마크업으로 책정했는데, 타 편집숍보다 가격 경쟁력이 있어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좋았다. 하지만 이런 리테일가로 인해 훌륭한 바잉에도 불구하고 다른 백화점으로 진출할 수는 없었다. 아마 그런 계획이나 생각조차 없었으리라.
그리고 영업이익도 그만큼 낮았을 것이다. 만약 제대로 된 마크업을 했다면, 편집숍 자체가 하나의 브랜드가 돼서 타 백화점에도 들어갔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바잉 물량도 많아져 브랜드의 독점권을 논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갤러리아 윗선에서 이윤보다는 판매율을 가장 중요시했던 것도 문제가 됐다. 윗선의 입김에 의해, 직원 세일 등을 통해 할인율을 무리해서 높이더라도 판매율을 높이는 정책을 취했다. 이렇게 계속 적자가 나니 이윤이 맞지 않는 사업이라고 결론이 났고, 결국 갤러리아 웨스트의 상징이었던 G494는 문을 닫게 됐다.
유통사가 편집숍을 운영하는 데는 분명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만약 그 목적이 이윤이라면, 비이커나 톰그레이하운드처럼 제대로 된 마크업을 해서 다른 백화점에도 입점시키는 등 편집숍 자체를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 볼륨 있는 사업구조로 가져갔어야 했다. 아니면 분더샵이나 마이분처럼 브랜드 인큐베이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냈어야 한다.
하지만 갤러리아는 타 유통사에 비해 브랜드의 마켓 테스트와 브랜딩을 위한 고객, 상품, 장소라는 ‘완벽한’ 3박자 조건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실패했다. 편집숍을 브랜딩하지 못했고, 브랜드를 제대로 인큐베이팅하지도 못했다. 애초에 브랜딩하려는 마인드 자체가 없었기에 황금기를 놓친 것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갤러리아는 브랜딩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profile
학력
·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졸업
·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석사
· 일리노이대학교 슬라브 문학 석사
· 일리노이대학교 슬라브 문학 박사
역서
· 죄와벌, 백치 외 20여권
· 국내외 문학잡지에 여러 논문 발표
저서
· 모칠라 스토리(RHK)
· 패션MD : Intro(RHK)
· 패션MD1 : 바잉편(21세기 북스)
· 패션MD2 : 브랜드편(21세기 북스)
· 패션MD3 : 쇼룸편(21세기 북스)
· 콜롬비아, 라틴아메리카의 보석(다크호스)
경력
· 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칼럼제목 : 도스토옙스키 문학으로 본 21세기)
· 스페이스눌 대표이사 겸 바잉 디렉터
· 프랑스 브랜드 데바스테(DEVASTEE) 글로벌 판권 보유
· 서울대에서 문학 강의
· 패션기업 및 대학에서 패션 비즈니스와 패션MD 강의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4년 9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패션비즈는 매월 패션비즈니스 현장의 다양한 리서치 정보를 제공합니다.
Comment
- 기사 댓글
- 커뮤니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