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재경 l 변호사 · 건국대 교수 '배신의 정치, 신뢰의 패션'

패션비즈 취재팀 (fashionbiz_report@fashionbiz.co.kr)|24.08.20 ∙ 조회수 2,812
Copy Link

[칼럼] 이재경 l 변호사 · 건국대 교수 '배신의 정치, 신뢰의 패션' 27-Image


브루투스 너마저도… 배신자…. 로마 역사에나 나오는 줄 알았다. 하지만 우리 정치판에서는 배신자 프레임이 한창이다. 패션계에서도 배신과 신뢰는 끊이지 않는다. 오늘의 친구는 내일의 원수.


1949년부터 시작한 일본의 브랜드 ‘오니츠카 타이거’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오니츠카 기하치로라는 군 장교가 패전으로 실의에 빠진 일본 청소년들을 위해 농구화를 만들려는 소박한 마음에서 탄생했다. 오니츠카는 로마 올림픽과 도쿄 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에티오피아의 맨발의 마라토너 아베베를 비롯해 여러 종목의 선수들을 후원하며 성장한다. 1969년 훗날 나이키 창립자 필 나이트가 오니츠카 타이거의 미국 독점 판매를 맡으면서 일본과 미국의 파트너는 친구처럼 미국 등 세계 시장 개척에 나섰다.


그러던 중에 필 나이트는 유통의 한계를 느껴 1971년 나이키라는 독자 브랜드를 론칭했는데, 그동안 협력관계에 있던 오니츠카의 제품 ‘코르테즈’가 나이키의 필살기 제품과 중복 판매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협업에 대한 개념이나 계약 등의 법률적 장치가 소홀했던 시절이어서 두 친구는 하루아침에 적이 돼 버렸다. 결국 오니츠카는 패소했고, 기존의 코르테즈를 ‘코르세어(Corsair)’로 바꿔야 했다. 와신상담의 일념으로 1971년 기존 업체를 인수․합병하면서 오니츠카 타이거는 ‘아식스’라는 브랜드로 새롭게 등장했지만, 기술과 마케팅에서 한 수 위에 있던 기존 협력자 나이키는 물론 아디다스에도 밀렸다.


인고의 긴 세월을 거쳐 2000년대 초반 오니츠카 타이거 브랜드를 다시 살리고, 영화 ‘킬빌’의 우마 서먼이 신은 아식스가 젊은 세대의 눈길을 끌면서 아식스와 오니츠카는 부활했다. 미국 수출액이 그 옛날 호시절처럼 성장하면서 아식스는 파트너들과 신뢰의 관계를 다시 쌓기 시작한다. 런던 디자이너 키코 코스타디노브와의 컬래버에 성공한 이후 휴고보스, 마크제이콥스, 엔더슨벨, 겐조 등 패션계 톱 브랜드들과 믿음 속에 협업계약을 체결하면서 과거 나이키와의 흑역사를 슬슬 잊어버리는 중이다. 배신감 대신에 자신감으로 무장한 채.


2000년대 가장 영향력 있는 미국 래퍼 ‘카니예 웨스트’는 패션계에서 신뢰와 배신이 교차되는 인물이다. 비주류 거리문화였던 힙합을 메인스트림에 올려놓은 장본인답게 그는 스트리트 패션계에서 신뢰의 아이콘으로 등장한다. 2013년 밀라노에서 버질 아블로가 선보인 브랜드 ‘오프화이트’는 음악 외 다른 콘텐츠로 진출을 꾀하던 카니예와 우연히 프린트 업체에서 만나게 됐고, 서로의 방향을 공유한 카니예가 버질에게 그의 앨범 디자인과 스타일링을 맡기면서 신뢰를 쌓아갔다. 심지어 2009년 펜디와 루이비통에서 인턴 생활을 함께하면서 더 큼직한 스타가 된 카니예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버질은 세계 젊은이들이 떠받드는 패션 디자이너로 등극했다. 카니예는 2013년 자신의 스타일리스트 제리 로렌조가 LA에서 설립한 브랜드 ‘피어오브갓’에도 아낌없이 지원했다. 그러나 최근 그와 아디다스의 컬래버 중 카니예가 한 유태인 비하 발언으로 아디다스는 그와 손절했다. 하루아침에 배신의 심벌로 전락한 카니예는 협업계약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을 지고 있다.


계약은 신뢰와 한 가족이지만 배신과도 친하다. 같은 배에 타도 믿음이 없다면 다 가라앉는다. 정글 같은 정치와 달리 패션이라는 망망대해에서 신뢰와 협업은 유일한 구명보트일 것이다.


profile


· 건국대 교수 / 변호사(사법연수원 25기)

· 패션디자이너연합회 운영위원 / 패션산업협회법률자문

· 무신사 지식재산권보호위원회위원

·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위원 / 케이옥션 감사

· 국립극단 이사 / TBS 시청자위원회위원장

· 한국프로스포츠협회이사 /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자문위원

·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위원

·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회장

· 런던 시티대학교 문화정책과정 석사

· 미국 Columbia Law School 석사

· 서울대법대학사 · 석사 ·박사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4년 8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패션비즈는 매월 패션비즈니스 현장의 다양한 리서치 정보를 제공합니다.

Comment
  • 기사 댓글 (0)
  • 커뮤니티 (0)
댓글 0
로그인 시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Related News
Ban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