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갤러리아 정체성? 이스트와 웨스트 간, 명확한 경계를' ... 고(故) 서영민 여사 서거 2주기에 부쳐(1)

패션비즈 취재팀 (fashionbiz_report@fashionbiz.co.kr)|24.08.13 ∙ 조회수 6,902
Copy Link

[칼럼] 김정아 l 스페이스눌 대표 '갤러리아 정체성? 이스트와 웨스트 간, 명확한 경계를' ... 고(故) 서영민 여사 서거 2주기에 부쳐(1) 27-Image


올해 8월 7일은 ‘한화 갤러리아’ 고문을 지냈던 고(故) 서영민 여사가 61세의 나이로 별세한 지 2주기가 되는 날이다. 서 여사는 생전에 특별한 대외 활동은 하지 않았으나, 한화 갤러리아의 고문을 맡으면서 유통업, 정확히는 갤러리아 백화점에 큰 관심을 갖고 새로운 브랜드에 대한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사람들은 갤러리아 명품관은 서 여사의 ‘놀이터’라고 가볍게 말했다. 이는 한화 갤러리아, 그중에서도 서 여사의 빈자리가 가장 크게 느껴지는 갤러리아 명품관 웨스트, 이스트와 큰 관련이 있는 표현이다.


브랜드를 잘 알고 소비자의 눈과 취향을 지닌 오너는 바이어들에게 긴장감과 동시에 동기부여를 준다. 상품본부는 오너-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브랜드 입점을 진행하고, 영업점 바이어들은 그 ‘놀이터’를 최상의 상태로 유지한다. 서 여사 생전의 갤러리아는 팝업이 활성화됐던 공간으로 끊임없이 새로운 브랜드를 시도했다. 지루하지 않고 언제나 새로운 백화점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때의 갤러리아는 실제로 그랬다. 매출이 검증되지 않은 브랜드의 팝업을 시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매출이 좀 나오지 않더라도 새로운 것을 보여주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고, 바이어들은 전문성과 프라이드로 충만했었다. 작지만 단단한 보석같이 빛이 나는 백화점이었다. 또 당시 갤러리아 고객층도 전문가만큼이나 패션에 대한 지식이 높아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브랜드보다는 스타일에 자신감이 충만한 얼리어답터들이었다.


당시에는 많은 해외 브랜드가 국내 성공 가능성을 테스트하기 위한 론칭 전 팝업이나 최초의 국내 매장을 갤러리아에서 시도했다. 컨템퍼러리 브랜드는 갤러리아 웨스트 2층, 명품은 갤러리아 이스트에 팝업이나 1호점을 열고자 앞다투어 줄을 섰었다. 필자가 경영하는 스페이스눌만 해도, 10여 년에 걸쳐 RTW(Ready-To-Wear) 브랜드인 2024 영국 왕실이 주는 상을 받은 ‘보라 악수(Bora Aksu)’, 프랑스 브랜드 ‘코텔락(Cotelac)’, 콜롬비아 수영복 브랜드 ‘PyliQ’, 크리스털 주얼리 브랜드 ‘라리끄(LALIQUE)’ 등 10여 개의 해외 브랜드로 20여 차례 팝업을 진행했었다.


당시 갤러리아는 가히 ‘국내 패션의 상징’이라는 포지션에 걸맞은 정규 브랜드 MD와 신규 브랜드의 팝업 릴레이를 잘 해내며, 까칠하기로 유명한 우리나라 얼리어답터 패셔니스타들의 니즈를 충족했다. 다른 유통채널에 소속된 해외 유명 브랜드가 개발한 ‘갤러리아 온리’ 브랜드를 독점 판매하고 F/W 신상품을 다른 유통채널보다 한두 달 미리 선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콧대 높은 ‘디올(DIOR)’과 ‘펜디(FENDI)’도 갤러리아의 요구에 귀를 기울였다. 현재 고가 주얼리 브랜드 중 가장 핫한 ‘반 클리프 앤 아펠(Van Cleef & Arpels)’에서 내놓은, 없어서 못 판다는 ‘매직 알함브라 파베 라인’ 신상품도 갤러리아에서 가장 먼저 론칭했다.


이처럼 점포, 컨템, 명품을 포함한 수입 패션업계에서 리더였던 갤러리아는 언제부터인가 감을 잃어 그 위상이 흔들리게 됐다. 2020년 겨울, 갤러리아에 들렀던 필자는 깜짝 놀랐다. 그 작은 갤러리아 웨스트에, 국내 한 퍼 브랜드가 동시에 세 곳에서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었다. 작은 점포에 한 브랜드가 세 개의 로케이션에서 진행되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2020년 당시 친환경(Eco-friendly), 동물권(Animal rights), 지속가능성(Substantiality) 등이 패션계 핫이슈로 떠오르며, 다른 어느 곳도 대놓고 에스컬레이터 전면 등 트래픽이 많은 곳에서는 퍼 브랜드의 행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겨울에 퍼 매출이 크긴 하지만, 트렌드와 시대적 요구를 거스를 수 없기 때문에 행사를 하더라도 층의 구석진 곳에서 간간이 진행했다. 그런데 트렌드 세터인 갤러리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니, 뼛속까지 인문학자인 필자는 이 사건에서 갤러리아의 위기를 봤다. 불행히도 갤러리아의 현재 모습은 필자의 예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2021년, 서 여사와 가까웠던 공동 지인을 통해 서 여사를 소개받으려고 했었다. 갤러리아의 문제를 파악하고, 패션 컨설턴트이자 유통을 강의하는 강사로서의 지식을 조금이라도 활용해 갤러리아의 앞길을 다시 오르막으로 바꾸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였다. 서 여사가 몸이 안 좋다고 해서 아쉽게도 만남이 성사되지는 못했다. 2022년 8월 7일 이른 아침, 신문을 읽다가 서 여사의 부고를 보게 됐다.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다.


지금이라도 서 여사가 원했던 아름다운 꽃밭과도 같은 ‘놀이터’를 부활시키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 갤러리아는 우리 유통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며 소중한 역할을 했다. 작지만 독특하고, 변화무쌍하고, 또 생생한 갤러리아의 위엄을 꼭 다시 보고 싶다.


갤러리아의 뚜렷한 정체성은 이스트와 웨스트의 명확한 경계에서 비롯됐다. 즉 이스트는 명품 RTW와 명품 주얼리 및 핸드백 액세서리 브랜드, 웨스트는 수입 컨템퍼러리 및 식음료라는 식으로 이스트와 웨스트가 갖는 각 정체성이 뚜렷했다. 또한 콘셉트도 확실했다. 갤러리아 웨스트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여성 컨템퍼러리는 2층, 그보다 저렴한 컨템 라인과 한국의 신진 디자이너를 모아놓은 ‘G.D.S(Galleria Designer Street)’ 공간은 3층, 남성복은 4층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이스트 브랜드였던 명품 브랜드가 웨스트 3층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고, 3층에는 컨템의 고가 브랜드뿐 아니라 국내 브랜드와 컨템 브랜드가 섞여 있다. 남성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이유로 여성 조닝을 대폭 축소하고 남성 조닝을 늘리겠다고 해서 나타난 현상이자 결과다.


이제 명품 브랜드가 3층 절반을 채우고 있으니, 갤러리아가 층 콘셉트를 옛날처럼 돌리고 싶다고 해도 브랜드를 설득하기조차 만만치 않아졌다. 백화점의 힘이 줄어들어 브랜드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건이 올해 5월 발생했다. 구찌의 팝업매장이 자신들 영업을 방해한다며 샤넬이 일방적으로 문을 닫은 것이다. 백화점은 영업을 하는데 브랜드가 문을 닫고 영업을 하지 않았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앞으로 갤러리아에서는 이런 일을 왕왕 보게 될 수도 있다.


갤러리아는 작은 백화점이어서 층별 콘셉트를 바꾸기가 비교적 용이해서 타 유통사에 비해 다양한 시도가 가능했던 곳인데 정말 안타깝다. 현재 3층은 디올 슈즈, 샤넬 슈즈, 발렌티노 슈즈, 루이비통 슈즈, 프라다 슈즈 등 명품 슈즈 브랜드와 하이 컨템에 속하는 여성 컨템 브랜드로 구성돼 있다. 4층은 발렌티노 남성, 돌체앤 가바나 남성, 디올 남성 등으로 그득하다. 대부분 갤러리아가 컨트롤할 수 없는 브랜드들이다. 그 작은 백화점에 한 브랜드의 매장이 여성․남성․슈즈, 이렇게 세 개씩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이는 뚜렷한 비전 없이 근시안적인 현상에 일희일비하다 생긴 일이다.


특히 명품 브랜드를 확장하는 것은 열 번 생각해야 한다. 왜냐하면 유치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빼려면 그 브랜드가 원하지 않고서야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실 신발은 샤넬과 디올 등 각 매장에서 해결해도 충분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성도 마찬가지다.


2층은 더 심각하다. 옛날에 그토록 재밌고 톡톡 튀는 브랜드의 팝업이 지속적으로 돌아가고, 블링블링하고 신선한 여성 RTW 브랜드로 가득하던 곳이 남성 컨템, 여성 컨템, 골프, 퍼, 란제리가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다. 아이덴티티도 없고, 톡톡 튀던 매력도 생명력도 다 사라졌다.


백화점은 RTW가 중요하다. 그중 여성 RTW는 백화점의 꽃이다. 명품 시계나 주얼리에 비해 매출 규모는 작을지 몰라도 여성 RTW가 죽으면 결국에는 백화점 전체가 죽는다. 여성들은 RTW가 재미없다고 느껴지면 바로 다른 백화점으로 간다. 거기에서는 옷만 사는 게 아니다. 장도 보고, 밥도 먹고, 화장품도 사고, 시계나 주얼리도 산다. 남편이나 아이들 옷도 당연히 그 백화점에서 산다. 세상이 많이 변했다지만, 쇼핑의 주체는 여전히 여성이 대다수다.


그러니 얼리어답터이던 고객들도, 한 번 오면 수백만 원씩 사가던 갤러리아 팬들도 다른 백화점으로 다 빠져나간 건 당연하다. 갤러리아의 에이스 매니저들도 결국 다른 백화점으로 자리를 옮겨갔다. 한때 갤러리아 매장에서 매니저로 일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꿈이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 시절이 그리운 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profile


학력

·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졸업

·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석사

· 일리노이대학교 슬라브 문학 석사

· 일리노이대학교 슬라브 문학 박사


역서

· 죄와벌, 백치 외 20여권 

· 국내외 문학잡지에 여러 논문 발표


저서

· 모칠라 스토리(RHK)

· 패션MD : Intro(RHK)

· 패션MD1 : 바잉편(21세기 북스)

· 패션MD2 : 브랜드편(21세기 북스)

· 패션MD3 : 쇼룸편(21세기 북스)


경력

· 현) 중앙일보 칼럼니스트(칼럼제목 : 도스토옙스키 문학으로 본 21세기)

· 스페이스눌 대표이사 겸 바잉 디렉터 

· 프랑스 브랜드 데바스테(DEVASTEE) 글로벌 판권 보유

· 서울대에서 문학 강의 

· 패션기업 및 대학에서 패션 비즈니스와 패션MD 강의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4년 8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패션비즈는 매월 패션비즈니스 현장의 다양한 리서치 정보를 제공합니다.

Comment
  • 기사 댓글 (0)
  • 커뮤니티 (0)
댓글 0
로그인 시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더 자세한 기사 내용이 궁금하신가요?

유료회원 되서 다양한 기사를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Related News
Ban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