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VMH · 케어링 · OTB · 프라다 등 럭셔리 기업, 서플라이체인 M&A 경쟁
메종마르지엘라와 질샌더의 모기업 OTB, 케어링, 샤넬, 에르메스, LVMH 등 많은 럭셔리 기업들이 제품 생산과 관련된 제조사를 인수하고 있다. 원부자재와 가먼트 공장을 넘어 면화, 울, 가죽 등을 생산하기 위한 농장까지 다양한 서플라이어를 전략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것. 주요 럭셔리 기업들의 서플라이체인 투자 상황과 인수 합병의 주요 내용을 살펴봤다.
지난 3월 메종마르지엘라와 질샌더의 모기업인 OTB(Only The Brave SpA)는 20여 년간 거래해 온 신발 서플라이어(Calzaturifisio Stephen)의 주요 지분을 인수했다. 이는 지난해 플로렌스 베이스의 레더 상품 제조사(Frassineti)를 인수한 데 이은 두 번째 M&A로 그룹의 전략적인 행보로 알려졌다. 상장 기회를 보고 있는 OTB는 이러한 서플라이체인 인수를 통해 내부적으로는 전략적 상품 카테고리를 강화하는 한편 투자자에게는 높은 수준의 노하우와 기술, 생산용량을 확보하면서 이탈리아 생산을 지지하는 럭셔리 그룹이라는 비전을 강조하고 있다.
서플라이체인을 인수하거나 투자하는 것은 럭셔리 부문의 산업 트렌드로 실제로 지난 12개월간 럭셔리 기업들은 10여 개의 서플라이어를 M&A했다. LVMH는 주얼리 제조사(Platinum Invest), 레더 상품 제조사(Nuti Ivo SpA Group), 악어가죽 태너리(Grupo Verdeveleno) 등을 인수했으며 케어링은 안경 제조사(UNT, Usinage & Nouvelles Technologies), 버버리는 아우터웨어 제조사(Pattern SpA)를 인수했다. 또한 프라다와 제냐는 공동으로 이탈리아의 니트웨어회사(Luigi Fedeli e Figlio)를, 샤넬과 브루넬로쿠치넬리는 함께 캐시미어 서플라이어(Cariaggi Lanificio SpA)의 주요 지분을 인수하는 등 그룹 내에 새로운 서플라이어를 편입했다.
럭셔리 기업들은 원부자재와 가먼트 공장을 넘어서 면화, 울, 가죽 등을 생산하기 위한 농장까지 인수 대상을 넓히고 있으며 이렇게 업스트림(소재생산, 원사 및 원단 프로세싱, 습식프로세스, 봉제)의 서플라이체인을 소유하고 관리하면서 시너지를 내는 수직통합 (vertical integration)의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는 럭셔리 패션부문에서 새로운 진화의 방향이 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점 공급망 관리 터닝 포인트
서플라이체인을 인수하는 것이 완전히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지난 2000년대 초반부터 샤넬은 프랑스의 소형 아틀리에를 인수하기 시작했고 2010년대를 지나면서 대형 럭셔리 브랜드들은 시계, 태너리, 와인 등의 서플라이어를 인수해 왔다. 몇십 년씩 거래하던 공장이 문을 닫거나 기술자가 사라질 것에 대비해서 이를 확보하는 방편으로 또는 새로운 사업으로 진출하기 위해서 또는 라이벌과 같은 서플라이어를 공유하고 싶지 않아서 등의 다양한 이유로 럭셔리 기업들은 가족경영의 생산공장이나 소규모의 작업실을 종종 인수했었다.
이러한 서플라이체인의 인수가 급격히 가속화되고 경쟁적으로 확대된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면서부터다. 많은 것을 바꾼 코로나19 팬데믹은 럭셔리의 서플라이체인 전략에도 큰 변화를 가져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패션산업은 글로벌 서플라이체인 혼란을 겪었고, 이를 계기로 럭셔리 기업들은 서플라이체인 운영전략을 근본적으로 재정비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수직통합이다.
수직통합 = 비즈니스 항상성 제공 장점
럭셔리 브랜드들이 서플라이어를 인수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지속적인 생산을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예측하지 못한 생산 및 물류 부문의 위기가 닥쳐도 생산을 지속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고급 원사와 원단, 최고의 기술로 생산된 가죽 등의 원자재, 오래되고 희귀한 장인기술, 생산량 등을 인하우스 안에 확보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럭셔리의 트레이드마크인 하이퀄리티의 유니크한 상품을 언제든지 충분히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브루넬로쿠치넬리가 캐시미어 원사제조사(Cariaggi Lanificio)의 지분(24.5%)을 소유하는 것, 프라다가 송아지가죽 태너리(Superior Tannery)의 지분(43.65%)을 인수한 것, 로로피아나가 캐시미어보다도 더 부드럽고 따뜻한 비큐니아(Vicuna) 원사를 얻기 위해서 페루 정부와 계약해 비큐니아 야생 농장을 운영하는 것 등 원자재 확보는 서플라이체인 M&A의 키가 되고 있다.
사업의 효율성 제고 및 마진 확대 기여
무엇보다도 수직통합은 전체 생산 과정을 컨트롤하기 쉽도록 하며 사업의 효율성을 높여준다. 이러한 과정에서 비용은 줄어들어 궁극적으로 마진이 개선된다. 물론 이러한 측면이 서플라이체인 M&A의 주요 이유가 아니어도 마진이 줄어드는 것은 매력적인 결과물이다. 전문가들은 서플라이체인 인수가 초기 비용은 높지만 장기적으로는 재정에 이롭다고 말했다.
지난해 케어링은 프랑스 안경제조사(UNT, Usinage & Nouvelles Technologies)의 지분 100%를 인수했는데, 이는 신사업을 강화하는 한편 전체 서플라이체인을 인하우스에서 운영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보인다. 2014년 케어링 아이웨어를 론칭한 이후 케어링은 다른 럭셔리 기업들과는 달리 안경 부문을 인하우스에서 운영해 왔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최고 수준의 시설과 기술, 생산량을 갖춘 곳을 인수함으로써 통합된 럭셔리 안경 플랫폼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케어링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구찌의 매출 부진으로 그룹의 이익(2023년)이 17%나 하락하는 등 위기를 맞고 있는 시점에서 사업실적을 개선하는 데 공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추적성과 투명성 강화, 지속가능 구현
서플라이어를 편입해서 운영하는 것은 지속가능성의 당면 과제를 해결하는 아이디어가 될 수 있다. 업스트림은 패션산업의 탄소 발생 중 70% 이상을 차지하는 만큼(McKinsey & Company/GFA) 이를 브랜드가 직접 운영하면서 탄소 발생을 줄일 수 있는 것은 물론 사업의 투명성과 추적성을 강화할 수 있다.
LVMH는 2011년 싱가포르 베이스의 악어가죽 서플라이어(Heng Long)를 인수한 이래 세계적으로 약 20개 농장에서 책임감 있게 악어가죽 소싱을 운영하고 있다. 또한 지난 2년간 악어가죽 전문 태너리(Heng Long Italy, Grupo Verdeveleno)도 인수했다. 이처럼 소싱부터 태너리와 가공까지 망라하면서 논란이 많은 악어가죽 부문에서 동물보호와 투명성 있는 공급망 수립을 시도하고 있다.
지난 2021년 프라다는 제냐와 함께 캐시미어원사 제조사(Filati Biagioli Modesto)를 인수하면서 이는 상품을 위한 모든 단계에서 서플라이체인을 컨트롤하려는 프라다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라고 밝혔다. 서플라이체인을 소유하는 것은 원자재의 추적성은 물론 투명성을 강화하고 운영에서 지속가능성을 실현하는 데도 유리하기 때문이다.
서플라이어 M&A 최대 관심사 ‘레더’
럭셔리 기업들은 여러 부문에서 다양한 성격의 서플라이어를 인수하고 있지만 최근 가장 중점을 두는 대상은 가죽이다. 최고 품질의 레더 잡화 컬렉션의 전체 라이프사이클을 컨트롤 하고자 하는 럭셔리 브랜드들은 동물을 키우는 것부터 태너리, 가공, 상품생산까지 전 과정을 직접 관리하기 시작했다. LVMH는 총 10개의 레더 관련 공급망을 인수했으며 프라다, 샤넬, 에르메스, 케어링 등은 모두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서 태너리를 운영 중이다. 케어링, LVMH, 에르메스는 악어와 비단구렁이 등의 양식농장을 소유하고 있다.
특히 럭셔리 기업들의 관심은 축산업과 농장 등 레더의 1차 제조사(원료 생산)로 확대되고 있는데 이는 세계적으로 가죽의 공급이 줄고 있는 상황에 하이퀄리티의 소가죽, 양가죽, 염소가죽 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지난 수십 년간 육류 소비의 감소로 그 부산물인 가죽의 양이 줄어들고 가격변동이 심해지면서 럭셔리 브랜드들은 대안으로 축산업 농장을 통해서 양질의 가죽을 확보하는 동시에 동물보호 차원으로 사육하는 등 지속가능성도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또한 악어가죽과 뱀가죽 같은 이국적인 가죽은 가격대가 높기(에르메스의 악어가죽 버킨백의 가격은 2억7000만원 이상)때문에 럭셔리 브랜드들이 특히 중점을 두고 있는 부문이다.
럭셔리 기업, 이탈리아 제조사에 러브콜
럭셔리 브랜드들이 인수하는 서플라이어의 대다수는 이탈리아 기업으로 지난 3년간 럭셔리 서플라이체인 M&A의 80%는 이탈리아가 베이스다. 이는 이탈리아가 럭셔리 생산의 중심이며 기술과 노하우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는 럭셔리 생산을 위해 수천 개의 소형 공장과 수천 명의 제조업자가 있으며, 이들은 글로벌 럭셔리 의류와 레더 상품 생산의 절반(50~55%)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유럽 내 기타 지역 생산 비중(20~25%)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Bain & Co). 이탈리아는 프랑스에 비해서 럭셔리 산업의 장인기술과 생산의 인프라가 잘 보전돼 있다.
이탈리아만큼 소프트럭셔리 상품(의류, 신발, 레더 잡화 등)을 제조하는 것에 대한 노하우가 많은 곳은 없다고 할 만큼 이탈리아의 럭셔리 제조업의 경쟁력은 강하다. 이탈리아산(Made in Italy)은 럭셔리의 상징이 되는 동시에 국제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 이탈리아는 럭셔리 기업들이 인수 대상을 찾는 절호의 장소로서 고급 원사 및 원단 제조, 레더 상품의 소싱과 태닝기술, 니트웨어와 가먼트 제조 등은 모두 주요 인수 타깃이 되고 있다.
사모펀드도 서플라이체인 M&A에 가세
서플라이체인 M&A 시장에는 럭셔리 그룹뿐 아니라 사모펀드도 합류했다. 지난 10년간 사모펀드는 럭셔리 M&A의 40%를 차지하면서 몽클레르, 베르사체, 로베르토 카발리, 제냐 등의 브랜드에 투자했다. 사모펀드의 새로운 종목으로 럭셔리 서플라이체인이 떠오르고 있다. 이는 인수할 만한 럭셔리 브랜드가 남아 있지 않은 데다 럭셔리에서 서플라이체인이 주목받는 경향을 반영한다. 미네르바헙(MinervaHub), 그루포플로렌스(Gruppo Florence), H모다(H Moda) 등의 사모펀드들은 서플라이이체인을 인수해서 발전시키는 전략을 개발하고 있다. 현재 세 개의 사모펀드는 총 65개의 중소 규모 이탈리아 럭셔리 생산기업을 소유하고 있다.
이 중 그루포플로렌스는 전 LVMH 임원(Francesco Trapani)이 투자컨소시움(VAM Investments, Fondo Italiano d’Investimento, Italmobiliare 등)과 함께 2020년 창립한 이탈리아 럭셔리 패션 제조사(Made in Italy)들의 플랫폼이다. 현재 기성복, 신발, 레더상품, 중간 프로세싱 등의 4개 부문에 28개사를 소유했다. 이들은 그룹 내에서 자원과 매니지먼트 등을 공유하며 법률적 재정적 지원도 받을 수 있다. 그루포플로렌스는 지난해 10월 사모펀드인 퍼미라(Permira)에 매각됐다.
수직통합은 경쟁력과 미래를 위한 전략
서플라이어를 인수해서 운영하는 것이 만만한 것은 아니다. 서플라이어들은 대체로 가족경영의 소형사업으로서 기업문화가 다른 대형 글로벌 브랜드와 결합하는 것이 어려울 수도 있다. 서플라이어 입장에서는 고객에서 자회사로 바뀌는 것은 큰 전환이기 때문이다. 럭셔리 기업 측에서는 사업의 덩치가 커진다는 부담과 새로운 조직을 운영하기 위한 매니지먼트 기술이 필요하다.
이러한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서플라이어들이 럭셔리 기업 소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변화하는 환경에서 테크놀로지와 혁신, 지속가능성을 개발하기 위한 자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더 이상 작은 규모를 고집할 수 없어진 것이다. 럭셔리 기업들은 더욱 안전하고 확실한 공급망을 구축하기를 원하고 있다.
수직통합은 럭셔리 패션 부문에서 미래를 위한 필수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 테크놀로지를 통해 생산 과정과 운영을 중앙화하면서 더 많은 상품과 더 높은 마진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지속가능성과 ESG를 향한 시스템을 구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럭셔리 기업들은 단단한 재정을 바탕으로 당분간 M&A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주요 럭셔리기업들의 서플라이체인 M&A 내용
샤넬, 서플라이체인 인수의 파이어니어
1984년 단추 및 코스튬주얼리 제조사(Desrues)를 인수한 이래 약 40개 서플라이어를 인수한 것으로 알려진다. 초기에는 자수, 장갑, 모자, 레이스 제조 등의 장인기술을 보전하기 위한 소형 아틀리에를 중심으로 인수하다가 최근에는 스위스의 시계 메이커, 스코틀랜드의 캐시미어 제조사, 프랑스의 태너리, 이탈리아의 신발 및 가먼트 제조사 등으로 대상을 확장하고 있다. 럭셔리 기업 중 가장 다양하고 가장 많은 수의 서플라이어를 편입했다.
에르메스, 레더에 집중
대표적인 수직통합의 럭셔리 브랜드로 실크는 물론 가죽상품도 인하우스에서 프랑스산 (Made in France)으로 생산한다. 특히 고가의 레더 핸드백 및 잡화 생산을 늘리기 위해 생산공장을 추가하는 한편 인수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2009년 호주에서 악어 양식을 시작한 이래 2010년대에는 프랑스의 태너리(Les Tanneries du Puy, Tannerie d’Annonay)를 2020년에는 핸드백과 지갑 등을 생산하는 금속부속 제조사(J3L)를 인수해서 원자재 공급과 생산용량을 확대했다.
LVMH, 레더 서플라이어 10여 개 소유
뛰어난 소재와 생산자를 보전하고 미래와 연계하기 위해 2015년 창립한 디비전, 메티에다트(Metiers d’Art)를 통해서 활발하게 서플라이체인을 인수하고 있다. LVMH도 레더부문의 수직통합에 공을 들이고 있다. 아프리카, 호주, 미국 등지의 축산업 네트워크를 통해서 가죽을 확보하고 있으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지에 가죽 태너리와 가공공장 등을 인수하고 있다. 특히 악어가죽 소재 확보와 과정은 모두 인하우스(Heng Long Tannery, Grupo Verdeveleno, Les Tanneries Roux)에서 운영 중이다.
케어링, 인하우스 생산 박차
주로 브랜드를 M&A하는 편이지만 지난 2013년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자기 제조사(Ginori1735)를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스위스의 시계 제조사(Ulysse Nardin), 태국의 비단구렁이 양식농장을 인수하는 등 다양한 단계의 서플라이체인을 인수했다. 특히 구찌 생산의 절반 이상을 인하우스로 들여오고 최근 안경제조사 (UNT, Usinage & Nouvelles Technologies)를 인수하는 등 인하우스에서 생산하는 것을 적극 확장하고 있다. 지난해 뷰티 상품을 인하우스에서 운영할 것을 밝힘으로써 추후 화장품 관련 서플라이체인의 M&A를 시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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