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대기업 ‘수입’에 웃고 울다
국내 패션 마켓을 이끌어가는 5대 패션 대기업들이 수입 브랜드에 울고 웃은 2023년 성적표를 받았다. 결과는 ‘1희(喜) 4비(悲)’. 삼성만 웃고, 나머지 4개 기업은 부진한 결과에 울상을 지었다. 매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한 신명품 브랜드 덕에 삼성은 홀로 2조 컴퍼니 대열에 들어섰다.
‘아미’ ‘메종키츠네’ ‘르메르’ 등에 이어 ‘자크뮈스’ ‘스튜디오니콜슨’ ‘가니’ 등 잘나가는 신명품 브랜드는 삼성에서 빠르게 국내에 도입해 MZ세대 소비자를 잡은 것이 적중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신명품을 발굴하지 못한 것이 문제였을까. 신세계인터내셔날, 한섬, LF는 영업이익이 반토막 나면서 부진한 실적으로 마감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6개(셀린느, 끌로에, 메종마르지엘라, 마르니, 질샌더, 디젤) 수입 브랜드가 직진출로 빠져나가면서 실적에 직격탄을 맞았으며, 상대적으로 수입 비즈니스에 약했던 한섬은 뉴 엔진을 수입 사업에서 찾으면서 ‘아스페시’ ‘무스너클’ ‘키스’ 등에 무리하게 투자한 것이 영업이익을 떨어뜨렸다.
신명품 발굴 = 미래 먹거리, 투자 대비 효율
LF와 코오롱FnC도 수입패션부문에 힘을 주면서 글로벌 브랜드를 직수입하거나 라이선스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LF는 럭셔리 영컨템 ‘빠투’를 신명품 브랜드로 키우는 한편 ‘포르테포르테’를 모노 브랜드로 육성한다. 또 화장품 브랜드 ‘르오케스트르’ ‘소라도라’ ‘로브제’ 등을 새롭게 도입했다.
국내 패션 시장의 대표주자들인 이들이 자체 브랜드를 키우기보다는 수입 브랜드로 한 방을 터트리는 데 관심이 더 기울어져 있지 않나 우려가 된다. 업계에서는 “수입 브랜드 확장은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기도 하다”라면서 “유행에 민감한 MZ세대 소비층을 끌어들이는 데 효과적인 데다가 자체 브랜드를 론칭하는 것보다 투자 대비 효율이 높기 때문에 수입 비즈니스에 눈독 들일 수밖에 없다”라고 말한다.
“글로벌 패션 마켓에서 인기 있는 컨템퍼러리, 스포츠, 캐주얼 브랜드들은 SNS 등을 통해 국내에서도 빠르게 전파되고 인기를 끌기 마련이다. 역직구를 통해 구매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진 이상 기업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젊은 세대가 주목하는 브랜드 발굴에 속도를 낼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삼성물산패션, 수입 브랜드로 6000억 번다
삼성물산패션은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인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체질 개선에 들어가 지금의 구조를 만들었다. 이준서 부문장의 실력을 인정하는 이유는 ‘선택과 집중’ ‘구조조정을 통한 수익 창출’ 등 회사 수익 구조를 바꿔 놓았기 때문이다.
삼성물산은 아미 메종키츠네 르메르 등에 이어 자크뮈스 스튜디오니콜슨 가니 등 신명품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다. 지난해 자크뮈스, 스튜디오니콜슨, 가니의 매출은 전년대비 각각 170%, 90%, 50% 성장했다. 삼성물산패션은 편집숍 ‘비이커’와 ‘10꼬르소꼬모’를 중심으로 MZ세대를 겨냥한 신명품 브랜드 발굴에 집중해 온 덕에 2조 컴퍼니에 오를 수 있었다. 이 회사의 수입 브랜드 매출 비중은 30%가량으로 연 6000억원 정도를 수입 브랜드에서 올리는 셈이다.
삼성물산패션의 2조 클럽 진입과 패션 시장이 어려운 가운데서도 매출을 끌어올린 전략은 뛰어났다. 하지만 자체 브랜드를 새롭게 론칭하거나 키우는 데 다소 소극적인 모습이 아쉽다. 자사몰을 중심으로 한 온라인 전용 브랜드는 계속해서 나오지만 대어급은 최근 몇 년간 나오지 않고 있다.
SI, 꾸레쥬 등 11개 해외 브랜드 수혈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해 ‘셀린느’ ‘끌로에’ ‘메종마르지엘라’ ‘마르니’ ‘질샌더’ ‘디젤’ 6개 수입 브랜드가 직진출을 선언하면서 종료하게 됐다. 그 여파로 작년 내내 매출과 영업이익은 계속해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1조3543억원(전년대비 -12.8%), 영업이익은 487억원(전년대비 -57.7%)이었다. 2022년 1조5500억대를 올리며 2조 매출을 향해 달렸던 신세계인터내셔날로서는 원점에서 기존 매출을 탈환할 묘수가 필요한 시점이다.
LVMH그룹의 셀린느와 리치몬드그룹의 끌로에는 국내에서도 손에 꼽히는 럭셔리 톱 매출 브랜드에 속한다. 여기에 이탈리아 패션기업인 OTB가 직진출로 전환하면서 메종마르지엘라, 마르니, 질샌더, 디젤 등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위기를 맞은 것이다. 사업 전략을 다시 짜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서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지난해 11개의 신규 브랜드를 론칭했다.
한섬, 무스너클 · 아스페시 이어 키스 론칭
프랑스 럭셔리 컨템 ‘꾸레쥬’, 미국의 지속가능패션 ‘리포메이션’, 영국의 지속가능패션 ‘판가이아’, 미국 액티브웨어 ‘뷰오리’ 등 패션 브랜드 4개와 코스메틱 브랜드 7개(다비네스, 로라메르시에, 쿨티, 힐리, 돌체앤가바나뷰티, 꾸레쥬퍼퓸, 수잔카프만) 등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올해 브랜드 포트폴리오의 효율화, 잠재력 있는 신규 브랜드 론칭, 수입 화장품 사업 입지 확보, K-패션 전문법인인 신세계톰보이를 활용한 여성복 경쟁력 강화, 골프 비즈니스 매출 확대 등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한섬은 2023년 연결 기준 매출 1조5289억원과 영업이익 1005억원을 냈으며 각각 전년대비 0.9%, 40.3% 줄어들었다. 당기순이익은 810억원으로 32.9% 감소했다. 영업이익이 크게 떨어진 데에는 “신규 브랜드 론칭 등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를 확대하면서 영업이익은 감소했다”라고 한섬 측은 설명했다.
돈 되는 브랜드 아닌 자체 브랜드 양성도
한섬은 지난해 해외 비즈니스 파트를 키우면서 캐나다 럭셔리 아우터 브랜드 ‘무스너클’, 이탈리아 패션 ‘아스페시’ 등과 독점 계약을 맺고 신규 매장을 선보였다. 또 미국 라이프스타일 편집숍이자 스트리트 컬처 기반의 패션 브랜드 ‘키스(kith)’는 올 상반기 중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1호 매장을 선보일 계획이다.
코오롱FnC부문은 여타 대기업에 비해서 수입 사업 매출이 적은 편이지만, 2022년 이탈리아 럭셔리 가죽 브랜드 ‘발렉스트라’의 국내 유통 독점권을 따낸 데 이어 지난해 미국 디자이너 브랜드 ‘케이트’까지 수입 사업을 확대한 점이 주목된다.
패션 대기업들의 자체 브랜드 론칭이 없어도 너무 없다. 자사몰 중심으로 운영하는 온라인 브랜드는 계속해서 선보이고 있지만,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스케일은 아니다. 반면 수입 브랜드 론칭은 그들 간의 경쟁이라도 하는 듯 들여오기 바쁜 게 현실이다.
기획부터 마케팅까지 브랜드 하나를 론칭하려면 족히 100억원은 쏟아부어야 한다. 그러나 비용을 많이 들였다고 해서 성공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만한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이보다는 프랑스, 이탈리아, 미주 등 글로벌 시장에서 어느 정도 검증된 라이징 브랜드를 찾는 데 시간과 돈을 쓰는 게 낫다는 판단이 드는 건 당연한 시장 논리다. 그렇지만 성장의 해법은 아니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4년 3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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