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패잡] 이재경 l 변호사 · 건국대 교수 '수리수리 마수리, 패션 수리할 권리'

패션비즈 취재팀 (fashionbiz_report@fashionbiz.co.kr)|23.12.05 ∙ 조회수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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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할 권리? 수리권(修理權, Right to repair)? 이것은 헌법상 기본권이 아니다. 아직은 무척 생소한 개념이다. 하지만 수리권 개념이 자동차와 전자기기에서 비롯돼 의료기기와 농기구 등 우리들의 일상과 생업 전반에 걸친 권리로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다. 21세기 지식정보사회에서 IT제품의 과다소비와 함께 등장한 수리권은 이제 패션산업에도 고개를 내밀고 있다.

당초 수리권은 자동차에서 시작됐지만, 입법이 본격화된 것은 IT 디지털시대에 개인의 전자기기 소비가 급증한 때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전자기기로 인한 환경 오염을 줄이고 시장에서 소비자의 권익을 지키려는 의도에서 미국에서 수리권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소비자의 천국’ 답게 미국은 오래전부터 소비자의 마음을 읽은 것이다. 2012년 매사추세츠주가 전격적으로 자동차에 수리권을 처음 인정한 후, 다른 주들도 다투어 채택하기 시작했다. 뉴욕주에 이어, 캘리포니아주와 인디애나주는 다소 제한적인 형태로 전자기기에 대한 수리권을 도입했다.

2023년 초 콜로라도에서 소비자의 농기구 수리권에 대해 제조업체가 방해할 수 없도록 강제하는 법안을 제정함에 따라 미국 45개주에서 수리권이 소비자에게 인정됐다. 내용을 살펴보면, 제조업체가 공인 수리업체에 제공하는 것과 동일한 수리 관련 정보를 사설 수리업체 또는 제품 소유자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기술적 보호조치를 무력화하는 경우에 대해 지식재산권 침해의 범위에서 제외시키는 면책 규정을 영구화하는 저작권법 개정까지 눈앞에 두고 있다. 미국 연방 입법 차원에서도 수리권이 등장한다. 2021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제조업체가 자가 또는 제3자 수리에 부과하는 불공정한 제한을 방지하기 위한 규칙을 수립하고 권한을 행사하도록 미국 연방거래위원회에 명령했고, 연방거래위원회는 소비자의 수리 선택을 제한하는 관행 제제를 더 강화하는 정책성명(policy statement)을 채택했다.

이제 수리권은 선진국 입법에서 결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떠오른 것이다. 소비자는 왕인가보다. 그동안 많은 기업들은 수리에 대한 독점권을 강화하고 수리 관련 분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수리 매뉴얼, 도구, 부품, 소프트웨어 등을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잘 나가는 공룡기업도 소비자 권리가 확대되는 순풍을 막을 수는 없었다. 2021년부터 애플과 삼성전자는 미국에서 직접 수리 제도를 도입했다. 미국에서는 소비자 스스로 수리할 수 있으며, 제조사는 공인 수리점에서 수리하지 않은 경우라도 차별할 수 없게 됐다. 그동안 공인 수리점에서 수리한 것만 정품으로 인정했으나, 이제 시대가 바뀐 것이다.

패션인들에게 수리권은 아직 먼 나라 얘기로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수리권은 환경과 경제성의 측면에서 혁신적으로 등장한 개념이다. 수리해 쓰면서 비용을 절약하고, 환경을 보호하는 흐름을 어찌 패션 산업이 거부할 것인가? 과다한 의류 소비와 의류 폐기물은 21세기 패션시장의 중대 과제다. 우리나라 환경부가 수리권 개념 및 제품 사용주기를 연장하는 수리 가능성 등급제도 도입을 얘기하고 있지만,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하고 있다. 제21대 국회에 수리권 법안이 상정됐지만, ‘소비자의 지옥’답게 아직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수리수리 마수리... 마법의 주문은 소비자에게 수리권의 요술 지팡이를 선물하고 있다. 패션 소비자에게도 수리권은 경제성과 환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기에 꼭 수용돼야 하지 않을까?

■ 이재경 l 변호사 · 건국대 교수 profile
- 건국대 교수 / 변호사(사법연수원 25기)
- 패션디자이너연합회 운영위원 / 패션산업협회 법률자문
- 무신사 지식재산권보호위원회 위원
-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위원 / 케이옥션 감사
- 국립극단 이사 / TBS 시청자위원회 위원장
- 한국프로스포츠협회 이사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자문위원
-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 위원
-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 수석부회장
- 런던 시티대학교 문화정책과정 석사
- 미국 Columbia Law School 석사
- 서울대 법대 학사 석사 박사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3년 12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패션비즈는 매월 패션비즈니스 현장의 다양한 리서치 정보를 제공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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