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자 相生 꿈꾸는 ‘엄마의 잡화점’
50개 공장 “진정성 리얼리티 판다”
민은선 (sophiamin2020@gmail.com)|23.10.11 ∙ 조회수 6,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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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보석 같은 장인들을 널리 알리고 싶었어요. 우리나라에 정말 좋은 생산공장과 제조업자, 기술력이 뛰어난 전문가들이 많은데, 그 기술과 히스토리가 사라져 가는게 너무 아쉬웠어요. 이들을 세상에 소개하는 그런 유통구조를 실현하고 싶어요.”
전국 50여 생산공장들의 소싱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상생을 꿈꾸는 기업, 아이온컴퍼니(대표 변종남)의 생활용품 편집 브랜드 ‘엄마의 잡화점’이 탄생했다. 생활용품을 OEM 생산 공급해 온 아이온컴퍼니가 론칭한 이 브랜드는 코로나19 중 한껏 높아진 국내 소비자들의 리빙용품 욕구에 부응하자는 배경에서 만들어졌다.
현대백화점이 큐레이팅하는 라이프스타일 팝업공간 위마켓에서 자신감을 얻은 ‘엄마의 잡화점’은 지난 3월 1호점 인천 더타운몰(구 이마트) 연수점에 이어 7월 2호점인 일산 더타운몰 킨텍스점을 오픈했다. 2호점(25평)은 오픈 첫달 1억 매출을 기록했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달에도 매출이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오픈발’이 좀 빠진다 해도 평균 6000만원은 무난할 전망.
2호점 더타운몰 킨텍스점 월 매출 1억 거뜬
‘엄마의 잡화점’은 국내 소비자들의 의식주 문화에 맞는 한국인의 생활용품 편집매장이다. 콘셉트도 엄마가 사용했던 추억의 레트로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친숙하면서도 따뜻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다. 환경에 좋은 소재와 상품, 인체에 무해한 용품을 제안하며, 최근 해외생산 비중이 늘어나기는 했으나 1차로 국내 생산 공장들과의 상생을 도모한다.
중소 생활용품 업체들이 대부분 재고 때문에 망한다는데서 출발, ‘각 공장들의 장점을 살려 소량씩 팔아 보고, 잘 팔리면 늘리고 안 팔리면 신상품으로 넘어가고…. 스크랩 & 빌드 전략으로 운영하면 어떨까? 경험과 소싱파워가 장점이고 많은 업체가 있으니, 바꿔 가며 상품을 구성한다면?’ ‘엄마의 잡화점’은 이런 생각 끝에 세상 밖으로 나왔다.
뭐 하나가 유행하면 너나 할 것 없이 동일한 상품을 경쟁하듯이 생산하고, 대형 유통사 역시 이런 판매에 집중한다. 저가 유통사에서 이 상품을 더 싸게 대량으로 풀면 기존 업체는 재고가 늘어나고, 결국 눈물을 머금고 싸게 팔게 된다. 시장은 작은데 소비자는 너무 빠르고 온라인의 가격경쟁은 이를 더욱 부추긴다.
재고부담 No, 스크랩 & 빌드 편집 전략 Yes
이런 악순환에 빠지지 않고 매장을 운영하기 위해 ‘엄마의 잡화점’은 메인 콘셉트를 유지하면서 신상품 생산보다 공장들의 상품을 잘 편집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생산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재고부담을 갖지 않고 꾸려 나가는 것이다.
이런 전략이 가능한 것은 변 대표의 소싱력 때문이다. 생활용품 업체에 근무하며 대형 유통사의 OEM을 진행해 온 30여 년간의 경험 덕분이다. 아이템별 좋은 공장들과의 끈끈한 신뢰관계는 물론 편리성과 실용성에 바탕을 둔 제품개발력은 ‘엄마의 잡화점’이 지닌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대형 유통사들은 공장이 오픈되지 않기를 바라죠. 제가 OEM을 하면서 늘 뒤에 있었듯이요. 저는 우리나라의 좋은 장인들을 드러내고 싶어요. 제조업체와 소비자가 직거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함께 커질 수 있다면 얼마든지 좋아요.”
30년 경험 소싱파워 + OEM 공장 신뢰 자산
변 대표가 창업하자 성실하고 치열하게 일해 온 그에게 공장 사장들의 응원이 큰 ‘종잣돈’이 됐다. 적은 물량이나 외상도 마다하지 않으며 그를 응원해 준 것. 이들이 ‘엄마의 잡화점’을 구성하는 소중한 기업들이다. 대를 이어서 70년간 운영되는 바구니, 양은 제품, 도자기, 패브릭 제품 제조 회사들, 성남의 봉제공장들 등.
이 때문에 ‘엄마의 잡화점’은 굳이 신상품을 디자인하기보다는 이미 있는 상품들을 살짝 변화시키고 시즌과 유행, 트렌드에 따라 매장 구성을 빠르게 바꿔 준다. 점점 잊히고 사라져 가는 제품들에 생기를 불어넣기도 한다. 사장도 일하는 사람도 60~70대인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들은 한 가지 포인트만(심지어 스티커만) 살짝 바꿔도 느낌이 확 달라진다.
디앤디파트먼트 나가오카 겐메이 회장의 영향도 컸다. 그의 책에서 인상적인 문구는 ‘디자인하지 말라’. “디자이너가 꼭 새로운 것만 만들 필요는 없다. 사람들이 잊고 있던 좋은 디자인을 발굴해서 그것이 좋은 것임을 깨닫게해 주는 것 또한 디자이너의 역할이다.”라는 그의 철학에 무릎을 쳤다.
묻혀 있는 보석, 생산자 장인 전문가 발굴
작은 변화로 히트를 경험해 본 공장들은 두말없이 변 대표의 촉을 믿어 준다. 특히 재래시장으로 나가는 제품 중 조금 바꾸면 훌륭해지는 것들이 많다. 녹색 떡볶이 접시로 대표되는 멜라민(*멜라민 : 멜라민수지는 합성수지제의 한 종류로, 멜라민과 포름알데히드를 결합해 만드는 단단한 플라스틱의 한 종류. 가볍고 열에 강하며, 원하는 어떤 색이나 모양도 낼 수 있어 어린이용 식판과 이유식 그릇 등에도 사용.) 식기의 경우 어른들은 ‘싸구려’로 인식하지만 아이들에게는 ‘추억의 아이템’이다.
부산의 멜라민 공장은 분식점과 떡복이집에서 쓰는 이 식기를 뭐하러 만드냐고 의아해했다. 당시 이 소재를 잘 쓰지 않을 때였는데, 재고를 적게 갖고 싶어서 ‘컬러만 바꿔 있는 상품 그대로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이후 레트로 뉴트로 트렌드가 오면서 이 상품은 대박을 쳤다.
1970년대부터 대구 양은공장 지역에서 생산돼 온 양은 상은 ‘나혼자산다’ 프로에 박나래 상으로 나오면서 확 떴다. 얼마 전 휴대용 커버가방과 함께 내놓아 마트에서 히트를 치기도 했다.
잊힌 상품에 생기 넣는다 ‘찐 레트로’ 감성
MZ세대 캠핑용품으로 적중했으며 일본에 수출돼 시부야의 멋진 매장에서 비싸게 팔리기도 한다. 채반과 양은 도시락도 아주 잘 팔았다. 특히 코로나 때 도시락 문화가 확산하면서 인기를 끌었다. 중국 생산 삼선슬리퍼는 마트에서도 자리 잡아 꾸준히 롱런하는 제품.
다리품을 팔아 국내에서 인정받지 못해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공장을 계속 발굴한다. 70년 된 손톱깎이 회사도 수출 물량이 많이 줄어 힘든 업체인데, 요즘 ‘엄마의 잡화점’에서 베스트 셀러가 됐다.
시즌, 트렌드에 따라 다르지만 매출을 주도하는 것은 패브릭류다. 테이블크로스 앞치마 파자마 커튼 등은 물론 모자도 잘 팔리는 제품이다. 수예용품은 성남 봉제공장 몇 군데를 돌려서 만든다. 문닫기 직전의 봉제공장들에게도 ‘엄마의 잡화점’이 희망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추억의 양은 · 멜라민 재래시장 숨은 진주
한 가지가 잘 팔리면 부수적인 아이템으로 연결 확장한다. 슬리퍼가 잘 팔리면 슬리퍼 꽂이도 필요하고, 소창행주를 만들다가 흡수력이 좋은 이 소재가 마음에 들어 파자마를 만들고 이어 로브까지 그루핑하는 식이다. 손님들이 주는 상품 아이디어를 반영하는 것은 덤으로 오는 즐거움이다.
간혹 반가운 공장도 만난다. 최근 만난 카펫 회사는 디자인을 전공한 젊은 2세가 공장을 물려받아 운영한다. 경기도 양주 허허벌판 컨테이너 건물에서 대표의 딸 부부가 젊은 직원들과 함께 세상에 하나뿐인 수제 카펫을 생산하는데 의욕도 에너지도 넘친다. 이런 곳을 발견하면 동지를 만난 기쁨에 화색이 돈다.
가벼운 즐거움 ‘小確行’ 생활 행복감 준다
‘엄마의 잡화점’을 오픈하면서 변 대표가 가장 고민한 것은 생활 매장의 자유로움이다. 그동안 대형 유통사의 매뉴얼에 따라 모듈에 맞춰 생산하고 짜인 집기에 상품을 끼워 넣는 식으로 매장을 운영했다. 전국 매장이 동일하게 진열돼야 해서 상품도 집기도 모두 규격화되고, 줄 맞춰 정해진 대로 들어간다. 이런 매장은 천편일률적이고 차갑다.
온라인은 개인 취향에 따라 상품이 보여지긴 하지만 대체로 가격비교로 구매하다 보니 결국은 비슷한 제품, ‘저렴한 구매’가 대종을 이루게 된다. 지금 소비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관심이 높고 훈련도 많이 돼 있어 매장에서 보고 만져보고 사고 싶어 하지만 그런 생활매장이 없다.
이런 면에서 ‘엄마의 잡화점’은 따뜻하고 자유스러운 매장을 지향한다. 물건을 사지 않아도 매장에서 손님들이 자유롭게 놀고 즐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고객들의 반응은 기대 이상.
주요 구매 고객 40~50대, 2030 엄마 선물
고객 타깃도 마찬가지. 요즘은 패션도 생활도 젊은 층을 겨냥하지만 ‘엄마의 잡화점’의 구매 고객은 실제 20~60대로 폭넓다. 안정적 구매층은 40~50대, 2030은 엄마를 생각하며 사간다. 어떤 고객에게든 가벼운 즐거움, ‘소확행’을 주는 것이 ‘엄마의 잡화점’의 목표다.
어린 시절 아파트 상가의 잡화점(속옷부터 그릇 화장품 등 온갖 제품을 남대문 도깨비시장에서 떼어다 팔던), 동네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매장의 기억이 모티브다. 매장 인테리어도 상자에 진열된 과일가게나 채소가게처럼 사람들이 가볍게 툭툭 사 갈 수 있는...
예쁜 도자기 밥공기와 접시, 컬러플한 유리컵이나 덧신, 스마일 수세미 등 소소한 물건을 사며 즐거워하는 매장, 살림 경험이 많은 주부는 물론 싱글족이나 신혼부부도 자유롭게 들어오고, 그 물건이 가족들에게도 즐거움을 전파할 수 있는 매장을 그렸다. 작은 일상이 선물 같은 하루가 될 수 있는, 기분 좋고 쓰기에 편한 상품을 만드는, 엄마의잡화점은 그런 매장을 꿈꾼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3년 10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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