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경 l 변호사 · 건국대 교수
중고마켓에게 패션의 길을 묻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인터넷을 통한 중고 직거래가 활발해졌다. 젊은이들이 애용하는 만큼 패션 아이템은 중고 시장에서 인기 상품이다. 게다가 패션산업에서는 패션제품 양산에 따른 쓰레기 문제 해결이 당면과제인데 중고 거래의 활성화는 무척 중요한 역할을 한다. ESG 경영이 화두로 등장한 이래, 패션산업에서도 폐기물을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고 시장은 패션산업의 빛을 비추는 도구이자 내일의 희망인 것이다. 하지만 빛 뒤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항상 도사리기 마련. 미꾸라지 여러 마리가 중고시장의 물을 흐리고 있다. 중고 거래의 건전한 안착을 가로막는 사기범들이 들끓는 것이다. 그들의 범죄 수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판매를 제안한 자가 사전에 고지한 상품과 다른 상품을 배송하거나 일방적으로 거래를 취소한 뒤 환불을 거부하고 잠적하는 것이다. 온라인 이전부터 수십 년간 해오던 수법이지만, 온라인까지 동원하니까 뻔히 알면서도 눈 뜨고 코 베이기 일쑤다. 중고 거래 흙탕물은 더더욱 더러워지고 있다.
조은희 국회의원이 최근 경찰청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5년간(2017~2021년) 전국 온라인 직거래 사기 발생 및 검거 현황’에서 총 43만8705건의 중고 거래 사기 피해 신고가 접수됐고, 이 중 35만3485건이 검거(검거율이 80.57%)된 것으로 나타났다. 발생 건수는 경기와 서울에 집중됐지만, 검거율은 오히려 서울 지역이 제일 낮았다.
그만큼 중고 거래가 많아지는 가운데 사기 수법은 다양해지고 도망갈 구석도 다양하다는 의미다. 온라인 중고 직거래 사기 사범 현황을 살펴보면, 사기 범죄자 7만여 명에 피해 금액만 무려 4800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2021년 사기 피해 금액은 2020년과 비교해 3배 증가한 수치다. 이제 온라인 중고 거래 사기는 간단하게 넘길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중고 거래 플랫폼 소비자 문제 실태조사(조사 간 2022.4.6.~4.20.)’에 따르면 중고 거래자의 23.8%가 피해를 경험했다고 한다. 특히 빅4 중고 거래 플랫폼(중고나라 · 당근마켓 · 번개장터 · 헬로마켓)에서의 피해가 막대한 이유는 플랫폼의 공신력을 교묘하게 악용하는 까닭이 아닐까 싶다.
플랫폼은 마켓 플레이스만 제공하고 개개의 거래에 대해 아무런 보장이나 보상을 하지 않는다. 빅4 플랫폼에서 대다수의 거래가 이뤄지는 만큼 이용자들은 근거 없이 자신의 거래에 신용을 부여한다. 누구든 은행계좌만 개설하면, 손쉽게 사기를 저지를 수 있다는 점을 부지불식간에 간과하는 것이다. 심지어 나중에라도 사기행위가 적발되면, 환불해 사기죄를 피해 간다는 안일한 생각에 죄책감도 부족한 듯하다.
현행법상 온라인 직거래는 개인 사이의 계약이므로 플랫폼이나 사법당국, 행정당국에서도 이에 대해 사전 · 사후적인 예방조치를 취하기도 어렵다. 경찰신고나 피해신고센터의 운영은 실질적인 해결책과는 거리가 멀다. 불특정 다수의 피해가 커지면 커질수록 개인에게 맡길 수 없고, 입법적인 해결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2021년 보이스피싱과 같은 계좌지급정지 기준을 확대하는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중고 거래 시장은 패션산업에 또 다른 길을 열어주고 있다. ESG 시대적 요청에 가장 적합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나 사기 등 각종 범죄에 무방비 상태다.
강력한 단속이나 예방조치가 사실상 전무한 셈이다. 개개인의 주의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플랫폼부터 이용자의 안전장치를 강구해서 최소한의 필터링이나 블랙리스트를 마련해야 한다. 입법부와 사법당국도 나서서 패션산업의 숨통을 터줘야 한다. 안전한 중고 거래는 패션의 내일이다.
■ profile
- 건국대 교수 / 변호사
- 패션디자이너연합회 운영위원
- 패션협회 법률자문
- 국립현대미술관 / 아트선재센터 법률자문
- 국립극단 이사
- 한국프로스포츠협회 이사
-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 위원
- 대한상사중재원 중재인
- 한국엔터테인먼트법학회 부회장
- 런던 시티대학교 문화정책과정 석사
- 미국 Columbia Law School 석사
- 서울대 법대 학사 석사 박사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2년 12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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