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애ㅣ코오롱FnC부문 CSO
지속가능패션 이끄는 코오롱 女傑
올 초 코오롱FnC의 CSO(Chief Sustainability Officer)를 맡은 한경애 전무는 지속가능패션을 더 세련되고 진정성 있게 제안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지난 10년간 ‘래코드’를 글로벌에서도 극찬할 만큼 업사이클링 패션 브랜드의 바이블로 키워 왔듯이 ‘코오롱스포츠’와 ‘에피그램’도 각기 다른 방식이지만 지향점이 같은 환경친화적인 브랜드로 성장시켜 K-패션마켓에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제시하겠다는 각오다. 지속가능패션을 리딩하는 ‘뉴 CD’! 한경애 전무를 만났다.
Q. 올 초 CSO가 됐는데 어떤 일을 하는지.
CSO가 뭐 하는 자리인지 생소할 수 있는데, 쉽게 말해 CEO가 기업의 재무적 성과를 책임지는 자리라면 CSO는 ESG(환경 · 사회 · 지배구조) 등 비재무적 성과를 책임진다고 볼 수 있다. 코오롱FnC가 업계 최초로 이 자리를 만들었는데 이제는 기업의 가치가 사회적 책임과 공헌으로 평가받는 시대이기에 의미가 남다르다고 본다.
CSO로서 각오라면 래코드가 해왔듯이 이상적인 슬로건이나 목표보다 당장 무엇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해법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현재 맡은 ‘코오롱스포츠’ ‘래코드’ ‘에피그램’ 등 3개 브랜드에 지속가능패션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고 있다.
국내 패션마켓의 1세대 디렉터, 디자이너 출신 사업부장, 여성 리더 등의 다양한 수식어로 커리어를 쌓아왔다. 이제는 서스테이너블 패션의 선구자로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고 본다. 30년 이상 업계에 몸담으며 느꼈던 것들을 되돌아보며, 대표적인 환경산업으로 지목된 패션을 이제는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고 기업과 브랜드의 목표지점이 달라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하나씩 행동으로 옮기는 중이다.
진정성과 철학을 갖고 있는 디렉터이자 사업부장, 우먼 파워의 진면모를 다시 한번 입증하고 싶다. 무엇보다 나는 ‘환경에 진심’이다.
Q. 래코드의 론칭 10주년은 어떤 의미인가.
업사이클링 패션의 리더 역할을 톡톡히 하는 래코드는 특별히 애착을 갖고 정성을 들인 브랜드다. 2012년 론칭 당시부터 지금까지, A부터 Z까지 세세하게 손길을 더했다. 오늘(인터뷰 당일)도 그렇지만 평상시에도 래코드 옷을 즐겨 입는다. 래코드로 인해 패션을 대하는 가치관이나 인식도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더 애정을 느끼고 있다.
10월이면 래코드가 론칭 10주년을 맞이한다. 이를 기념해 그동안의 행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다. 사실 래코드가 탄생할 시점에는 국내 패션시장에 지속가능패션이나 업사이클링 패션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확립되기 전이었다.
3년 이상 된 재고를 해체해 새로운 디자인의 옷을 만들어 소각을 막겠다는 취지는 이해를 하지만, 과연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을지에는 물음표를 던진 사람이 많았다.
Q. 래코드는 해외에서 먼저 인정받지 않았나.
래코드는 그간 다수의 해외 페어에 참가하면서 디자인에 대한 독창성과 실험적인 시도에 대해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2013년 세계 3대 아트페어 중 하나인 프리즈 런던 아트페어에 참가한 것은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일부 스태프의 유니폼을 만들고, 별도 공간에서 전시도 했다. 이후에도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 해외에서 러브콜을 많이 받았다.
2019년에는 런던, 파리, 베를린에 동시에 팝업매장을 열며 적극적으로 브랜드를 알렸다. 래코드에서 말하는 업사이클링이라는 개념은 ‘친환경’과 더불어 미적인 ‘디자인’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그 부분을 인정받아 브랜딩됐다고 본다. 단순히 패션 브랜드가 아닌 환경적인 활동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까지 온 게 아닌가 싶다. 지속가능한 패션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더 월드 포럼에서 초청 연설을 했고 안티 패션 포럼에 참석해 전시와 워크숍을 열기도 했다.
Q. 수선 · 리폼 서비스 ‘박스아뜰리에’ 반응은.
재고 상품은 한번도 자신을 돋보이지 못한 채 소각장으로 가야 하는 비극적인 운명인데, 우리가 닥터가 돼서 고객과 다시 만나게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어두운 곳에 가려져 있던 봉제장인들이 전면에 나서서 수작업으로 옷을 다시 만들고, 봉제인에 대한 가치도 제대로 인정해주자는 데 뜻이 있다. 서울 코엑스에 오픈한 ‘박스아뜰리에’는 봉제를 하는 사람을 장인으로서 멋있게 보이도록 하는 공간이다. 박스아뜰리에는 지난 3월 선보인 래코드의 수선 · 리폼 서비스다.
수선 · 리폼을 전문 매장에서 경험하고 현재 갖고 있는 옷을 더 오래 입자는 취지다. 기존에 노들섬에서 운영하던 것을 고객과의 접점을 늘리고자 자리를 옮겨 서울 삼성동 스타필드 코엑스점에 둥지를 틀었다. 이곳에서는 수선 · 리폼 전문가인 리메이커가 상주해 고객과 1:1 상담을 통해 서비스를 진행한다.
일반 수선뿐 아니라 오래되거나 싫증난 옷을 새로운 디자인으로 탈바꿈해주는 맞춤형 업사이클링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실 래코드의 가치를 더 많이 알리는 모멘텀을 갖게 된 건 2020년이었다. 글로벌 브랜드인 ‘나이키’의 재고를 업사이클링하는 협업을 하면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게 된 것이다. 브랜드 내부에서도 자사 재고만이 아니라 외부로 눈을 돌리는 계기였다.
이후 협업이 점차 활발해지면서 브랜드가 좀 더 깊이 있게 성장했다. 패션과 패션의 협업이 아닌 자동차 · 미술 · 엔터테인먼트 등이 래코드와 손잡았다. 올해 역시 아무도 하지 못한 새로운 협업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모델 신현지를 기용해 래코드의 특별한 스타일과 디자인을 제안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그동안 업사이클링 패션 자체에 중심을 두며 지속가능성에 대한 캠페인 활동을 해왔던 것과 차별화했다.
Q. 내년에 50주년을 맞는 코오롱스포츠의 변화는.
코오롱FnC의 간판 브랜드라 할 수 있는 코오롱스포츠는 변화와 혁신을 거듭하며 매출과 이미지 둘 다 잡은 롤모델이 됐다. 나는 2019년 코오롱스포츠를 맡아 브랜드 리뉴얼, 아니 리노베이션에 열정을 쏟아부었다. 아웃도어 파트는 첫 경험이었고, 코오롱스포츠가 당시 침체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부담감이 컸지만 이를 극복해 냈다.
코오롱스포츠는 내년에 론칭 50주년을 맞는다. 50주년이 되는 해에 전체 상품의 50%를 리사이클 원사를 사용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현재는 리사이클 원사를 쓰는 상품 비중이 33%에 달하고 있다. 50주년을 맞는 2023년을 기점으로 코오롱스포츠는 자연과 함께하는 브랜드로서 그 가치를 좀 더 확실하게 심어줄 계획이다. 코오롱스포츠 사업부 내 안타티카 랩(R&D)에서는 ‘제로 웨이스트’를 새로운 방향으로 설정하고, 모노 머티리얼(단일 소재) 프로젝트를 가동한다.
단일 소재는 재활용할 수 있는 반면 다양한 소재를 사용하면 재활용이 어렵다는 점에서 착안했다. 재고 또는 폐의류 상품의 활용 방안 등 고질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페러다임을 구상하고 있다. 내가 진두지휘하고 있는 모노 머티리얼 프로젝트는 패션기업이 친환경을 실천하는 첫 단계를 실현하는 데 있어 물꼬를 터 줄 것으로 기대한다.
불필요한 상품 생산을 차단하고 재고를 줄여서 본질적인 대량 생산에 의한 대량 재고, 그로 인한 쓰레기가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도록 관리하고 책임진다는 인식을 심어줄 계획이다. 리사이클만 잘하면 되는 게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는 좋은 옷을 만들어서 10년이 지나도 수선이 가능할 정도로 오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도 갖고 있다.
Q. 코오롱스포츠의 매출 반등이 기대된다.
코오롱스포츠를 맡고 1~2년간은 인고의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변화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데 기업에서 그 시간을 기다리기란 쉽지 않다. 기업에서 1~2년간 매출이 고전한다는 것은 기다림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나 역시 힘든 기간이었다. 지금은 ‘코오롱스포츠가 달라졌다’거나 ‘코오롱스포츠가 잘한다’라는 평가가 내 귀에 들린다. 매장 매니저도 고객의 반응이 달라졌고 매출도 꾸준히 상승하는 것과 더불어 수선을 의뢰하는 고객도 많아졌다고 한다. 내가 목표로 했던 것들이 이제 막 하나씩 하나씩 이뤄지는 것 같아 감회가 새롭다.
코오롱스포츠가 지향하는 지속가능성의 가치는 ‘솟솟리버스’ 제주점이 구심점이 되고 있다. 올 1월 제주 탑동에 오픈한 솟솟리버스 제주점은 지속가능성이라는 화두를 던진 공간이며 브랜드 경험을 극대화한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웨이스트 레스, 웨어 롱거(WASTE LESS WEAR LONGER)’를 슬로건으로 코오롱스포츠의 모든 친환경 활동을 담고 있다. 솟솟리버스 제주점은 인테리어도 별도의 마감재를 최소화하고 건물 자체의 구조를 그대로 사용했다.
기존 건물의 역사를 이어나가고 버려지는 것에 새로운 시각을 부여한다는 데 의미를 두고 있다. 테이블과 선반, 의자와 같은 집기류는 제주도에서 수거한 해양 폐기물을 활용해 제작했다. 또 리폼 서비스를 제공해 좋은 상품을 더 오래 사용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고쳐입기’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와펜 부착과 같은 가벼운 고쳐입기를 시작으로 고객이 직접 참여하는 워크숍까지 확장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지난 7월 21일부터 9월 21일까지 두 달간은 제주 해녀의 삶을 알리는 전시를 이곳에서 진행했다. 텍스타일 아티스트 정희기 작가가 ‘해녀의 잠수’ 전시를 선보였으며, 같은 기간 서귀포 예래동 새마을 부녀회와 함께 업사이클링 프로젝트 ‘어깨말이’ 전시도 열었다.
Q. 에피그램의 로컬 프로젝트는 어떻게 이뤄지나.
에피그램은 국내 소도시와의 상생을 목적으로 하는 로컬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ESG 가운데 ‘S’ 소셜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런 로컬 프로젝트는 현지와의 끈끈한 협업을 통해 이뤄지고 있으며, 에피그램 아이템도 친환경 요소를 적용해 지속가능성을 강화하고 있다.
2017년부터 에피그램이 진행하는 로컬 프로젝트는 국내 소도시 중 한 곳을 선정해 브랜드 상품과 다양한 콘텐츠를 선보이며 지역을 소개하는 내용을 담는다. 유명 관광지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지역을 매력적으로 소개해 지역 상생을 도모한다는 취지다.
지난 S/S 시즌에는 12번째 지역으로 전라남도 강진과 함께했다. 지역을 대표하는 컬러를 정해 상품과 공간에 풀어내는데, 강진은 고려청자에서 따온 ‘강진청자비색’으로 정했다. 강진 다산명차 발효차와 같은 로컬 푸드와 강진청자 대나무 술잔 등의 지역상품의 패키지를 에피그램의 감성으로 제작했다.
또 이번 강진 프로젝트에서는 국내 최초의 차 브랜드인 ‘백운옥판차’를 계승하는 ‘이한영茶문화원’과 협업해 강진의 뛰어난 차와 강진의 아름다운 자연에서 차와 휴식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이한영茶문화원의 새로운 공간에서 에피그램의 ‘올모스트홈’도 선보였다. 이번 F/W 시즌에는 강원도 영월과 함께하고 있다.
Q. 에피그램 하면 ‘스테디 컬렉션’이 유명한데.
에피그램은 친환경 상품군인 ‘스테디 컬렉션’의 물량을 전년대비 130% 늘렸다. 스테디 컬렉션은 유행을 타지 않고 꾸준히 입을 수 있는 옷이다. 지난해 F/W 시즌에 첫선을 보였으며, 베스트 · 코듀로이 · 다운 등 다양한 아우터를 출시해 평균 판매율이 70%를 보이며 순항했다. 에피그램팀에는 철저하게 유행을 따르지 말라고 한다. 에피그램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고 설정하고, 디테일이 많아지면 그만큼 많은 것이 보태지는데 이런 군더더기를 없앤 브랜드라고 보면 된다. 실제로 에피그램은 스타일 수 자체가 다른 브랜드에 비해 적고 필요한 옷만 만들자고 합의했다.
가령 팔리지 않을 컬러의 옷도 다른 옷을 더 돋보이게 할 부스터 역할로 생산하곤 했는데, 에피그램에는 그런 게 존재하지 않는다. 매장 인테리어도 모두 목재 가구를 사용하고 있다. 백화점에서 매장 위치를 옮기려 하면 인테리어 자재를 폐기하고 또다시 인테리어를 해야 하는 상황인데, 에피그램은 가구를 사용하기 때문에 이사를 하는 개념으로 접근한다.
에피그램은 옷만 파는 브랜드가 아니라 자연친화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브랜드다. 지역 상생에 대한 이슈가 요즘 들어서는 활발해지고 있지만 우리가 시작할 당시는 앞서 진행했던 거라 이것도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직접 지역을 찾아서 돌아보고 협업할 만한 곳을 찾아다니며 제안하고 설득하는 작업도 다 감당해 낸다.
이제는 먼저 연락하는 곳도 많아지고, 에피그램으로 인해 긍정적인 영향력이 더 커진 것 같아 뿌듯하다. 에피그램, 래코드, 코오롱스포츠도 쉬운 길로 가는 게 아니라 어렵지만 진정성 있는 스토리를 써 내려가고 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서스테이너블 패션의 리더로서 본연의 책임을 다할 생각이다.
Q. ‘지속가능 패션 리더’라는 새 도전에 대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반드시 창의적인 것만 인정받는 건 아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진정성 있는 CD가 요구되는 시대라고 본다. 보통의 CD는 브랜드를 하나 맡으면 옷의 디자인을 바꾸는 데 주안점을 두지만 결국 브랜딩은 옷만 바꿔서는 할 수 없다.
래코드로 수익모델을 만드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 브랜드는 코오롱FnC부문의 미래가 될 수는 있다. 기업의 사회적 환원에 대한 부분을 래코드가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코오롱FnC부문의 전 브랜드가 지속가능 패션에 초점을 맞출 수는 없다. 브랜드마다 특성이 있고 수익을 내는 방식도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서스테이너블 부문은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어떻게 변화하면 좋을지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다. 나는 패션마켓에서 오랜 기간 일해 왔고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나름대로 리딩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소비 문화에 대해 얘기하려고 한다. 옷으로 행동할 수 있는 점을 알려주고 패션은 소비만이 아닌 가치를 만들어줄 수 있다는 점을 어필하겠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2년 10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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