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화 ‘온러닝’ 불가능 뒤집고 성공
50개국 6500개 매장에서 판매
백주용 객원기자 (bgnoyuj@gmail.com)|22.05.06 ∙ 조회수 16,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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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 시장 파고든 스위스 다크호스 ‘온러닝’은 리테일러부터 럭셔리 하우스는 물론 소비자까지 사로잡은 기술력과 미래지향 디자인으로 스포츠 마켓을 강타했다.
2021년 9월 러닝 브랜드 ‘온러닝(ON RUNNING)’이 스위스 주식 시장에 상장됐다. 2000년 스위스에서 출발한 회사의 기업 가치는 약 8조9000억원으로 추산된다. 러닝 업계는 나이키, 뉴발란스, 써코니, 브룩스, 아식스 등 자본과 기술력을 갖춘 대기업들이 수십 년간 선점한 분야다. 온러닝은 보이지 않는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불가능해 보이는 성공을 이뤘다. 현재 50개 이상 국가에서 6500여개의 스포츠 전문 매장에 입점했다. 브랜드 본사는 스위스를 넘어 미국 호주 브라질 일본 등지에 자리하고 있다.
프로 선수들이 온러닝의 제품을 착용하고 메달을 여럿 획득하며 기능성에 대한 검증은 진작에 끝냈다. 스위스 테니스 영웅 로저 페더러도 온러닝에 합류해 자본을 투자하고 그의 이름을 건 모델을 출시했다. 브랜드는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운동장 · 경기장 · 헬스장 · 테니스장 등에서 흔하게 목격되기 시작했다.
더욱 재미있는 건 패션 매거진, 브랜드 룩북, 에디토리얼까지 침투하며 도버 스트리트 마켓과 같은 톱 티어 패션 리테일러 여러 곳에도 입점한 것이다. 프라다와 구찌부터 스투시까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럭셔리 패션 하우스 로에베와 협업 컬렉션을 출시했다. 뉴욕에 최대 규모 플래그십 매장을 열었고 거리에서 하루 최소 10족은 마주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믿고 쓰는 스위스 기술력에 미래 지향적인 디자인으로 업계를 사로잡은 온러닝에 대해 알아봤다.
선수 시절, 운동화 아쉬움으로 브랜드 시작
스위스 출생의 올리비에 베른하드(Olivier Bernhard)는 아이언맨 6회, 철인 3종 경기 세계 챔피언 2회의 타이틀을 지닌 인물이다. 그는 오랜 선수 생활 내내 운동화에 대한 아쉬움을 가졌다. 시중에도 좋은 신발이 많지만 자신의 발에 꼭 맞는 ‘정말 좋은’ 신발이 필요하다고 항상 생각했다. 아쉬움을 떨쳐내지 못하고 선수 생활 은퇴 후 직접 회사를 차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친구 캐스퍼 코페티(Caspar Coppetti)와 데이비드 앨레맨(David Alemann)에게 동업을 제안했지만 그들은 탐탁해하지 않았다.
처음으로 신발을 만들게 된 올리비에 베른하드는 고무 호스를 잘라 밑창에 붙이는 등 여러 엉뚱한 시도를 한다. 대화가 잘 통하는 기술자를 만나고 프로토 타입 모델을 수십 족 생산한다. 여러 번의 테스트를 거쳐 탄생한 결과물에서 가능성을 본 캐스퍼 코페티와 데이비드 앨레맨도 결국 합류를 결정한다. 그렇게 2010년 1월 스위스 취리히에서 온러닝이 탄생했다.
양말처럼 가벼운 혁신적인 쿠셔닝이 경쟁력
‘클라우드’로 불리는 온러닝의 독자적인 쿠셔닝은 이름에서 단번에 알 수 있듯이 구름 위를 걷는 착용감으로 알려졌다. 올리비에 베른하드는 제품 개발 당시 소재를 통한 뻔한 업그레이드보다는 ‘이전에는 아무도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감각’을 구현하기 원했다. 러닝화의 기본 조건인 충격 완화, 힘을 실어주는 반발력은 물론이며 두 발이 신발을 벗고 싶지 않을 만큼 상쾌하고 포근하며 즐거운 편안함이라고 설명한다. 온러닝이 생긴 다음 해 2011년 취리히 연방 공과 대학(ETH)은 “온러닝의 신발은 실제 달리는 동안 심장 박동수와 혈중 젖산 농도를 낮춰준다”라는 실험을 결과를 발표해 공신력을 더했다.
2012년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온러닝은 업계의 혁명”이라고 소개했다. 온러닝의 성공은 철저히 좋은 제품에 기반해 고객의 입소문으로 이뤄졌다. 2019년에는 새로운 테크놀로지 헬리온(Helion™)을 장착한 ‘클라우드 스위프트’ 모델을 출시했다.
계절에 관계없이 신을 수 있고 양말처럼 가벼운 최적의 로드화라고 자신 있게 소개한다. 현재 온러닝은 로드, 트랙, 장거리, 단거리, 트레일, 하이킹 등 때와 목적에 알맞게 신을 수 있는 다양한 라인업의 모델을 보유했다. 더 나아가 러너를 위한 의류와 액세서리 등으로 제품군을 확장했다. 운동화 가격대는 15만∼30만원, 의류는 5만∼35만원 선이다.
스포츠 선수가 설립한 온러닝, 스포츠에 뿌리
온러닝은 스포츠 선수가 설립한 만큼 스포츠에 뿌리를 두고 이에 진지하게 대한다. 현재 다국적 스포츠인 60여명이 후원을 받고 있다. 2013년 스위스 출신의 철인 3종 경기 챔피언 니콜라 스프링(Nicola Spring)이 온러닝과 계약하고 리우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2014년 벨기에 선수 프레더릭 반 리에드(Frederik Van Lierde)가 합류한다. 그는 ‘클라우드 레이서’ 모델을 신고 하와이에서 열린 아이언맨 챔피언십 리그에서 우승했다. 가장 최근에는 5000m 계주 세계 챔피언이자 2021년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헬렌 오비리(Hellen Obiri)가 합류했다.
온러닝은 ‘온 잽 엔듀어런스(on zap endurance)’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준프로 / 프로 실력의 선수들을 지도한다. 선수들이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해 훈련하는 과정을 다큐 형식으로 제작한 영상도 공개했다. 이 밖에도 미국 오리건주 출신의 올림픽 선수 앤드루 위팅을 앰배서더로 선정해 오리건주에서 열리는 포틀랜드(Portland) 마라톤을 후원한다. LA에서는 ‘아트 런(Art Run)’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러닝과 예술 커뮤니티 발전에 기여한다. 여러 러너가 그룹 지어 길거리 예술을 감상하며 걷고 달린다.
세계적 테니스 스타 페더러와의 운명적 만남
같은 스위스 출신의 테니스 스타 로저 페더러와 온러닝의 만남은 자연스럽고 필연적이었다. 로저 페더러는 스위스 거리를 조금씩 점령하는 온러닝을 감지했다. 친구들과 와이프도 온러닝을 신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본인도 결국 온러닝 신발을 신어보게 됐고 곧바로 온러닝의 성공과 발전 가능성을 직감한다. 페더러와 온러닝의 설립자들은 가볍게 만남을 가졌다. 가벼운 자리였지만 서로의 열정과 진심에 감동했고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20회의 그랜드 슬램 챔피언 로저 페더러는 나이키와의 계약이 종료된 후 온러닝에 새 둥지를 틀었다. 2019년 11월 일반적인 스폰서십이 아닌 페더러가 직접 자본을 투자하며 간판 모델이자 사업 파트너가 됐다. 로저 페더러의 이름을 건 스타일리시한 시그니처 테니스화는 현재 버전 2까지 출시됐다. 로저 페더러는 “온러닝의 기술과 관련 인물들에 대해 강한 신뢰가 있으며 우리는 서로에게 큰 시너지가 될 것이다”라고 말하며 시그니처 모델 외에도 다양한 제품 개발 부문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최대 규모 플래그십 뉴욕 미드타운에 오픈
온러닝은 런던과 LA에서 팝업을 거쳐 2020년 12월 브랜드 최대 규모 플래그십 매장을 뉴욕 중심부 미드타운에 오픈했다. 의류 · 신발 · 액세서리 등을 포함한 온러닝의 모든 제품을 만나볼 수 있으며, 매장 구석구석 최신 기술이 스며들어 있어 방문객에게 최고의 브랜드 경험과 편리함을 선사한다.
플래그십 매장의 가장 특별한 점은 매장 한 면을 가득 채운 ‘매직 월(Magic Wall)’이다. 매직 월에 숨겨져 있는 센서가 고객의 가장 자연스러운 보행을 감지한다. 발목이 안쪽으로 굽혀지는지, 바깥쪽으로 굽혀지는지에 따라 신발 타입이 바뀌기 때문에 걷고 뛰는 ‘자세’는 아주 중요하다. 센서는 고객의 발 사이즈까지 오차범위 1.25㎜ 내로 분석해 낸다. 온러닝이 갖는 테크놀로지와 수만 가지의 러닝 아카이브 자료는 고객의 발에 최적화된 모델을 찾아낸다.
온러닝은 “제품을 찾으러 창고로 사라진 점원을 오랫동안 기다릴 필요가 없다. 박스를 쌓아두고 다시 맞는 사이즈를 찾기 위해 점원을 또 기다릴 필요도 없다. 우리의 기술력은 러닝업계를 바꿨고, 가장 개인화한 서비스로 리테일의 판도를 바꿀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뉴욕시 거주자에 한해 2∼4시간 안에 배달 서비스도 제공한다. 바쁜 현대인을 위한 최적의 옵션으로 집에서 아주 편안하게 신어보는 것도 가능하다. 온러닝 매장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여러 러닝 크루의 허브 역할도 한다. 이들은 매장에 모여서 이벤트를 열고 서로 교류한다.
패션 가능성 발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패션이란 개념을 초월한 ‘진성 힙스터들’은 때로는 촌스러워 보인다. 유행보다는 브랜드의 진정성과 제품 기능성에 관심을 기울이며 마치 중장년처럼 뉴발란스, 아크테릭스, 살로몬, 호카 같은 브랜드를 주로 애용한다. 나중에서야 ‘어글리 슈즈’ ‘대드 패션’이라고 외쳐대는 매거진이나 인플루언서보다 훨씬 빠른 셈이다. 온러닝도 같은 맥락으로 앞서가는 이들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다.
또 다른 예로 항상 수수한 차림의 디자이너 조너선 앤더슨(Jonathan Anderson)도 이미 전부터 온러닝 운동화를 착용했다. 결국 이 둘은 조너선 앤더슨이 이끄는 럭셔리 하우스 로에베(Loewe)와 협업 컬렉션을 출시하기에 이른다. 2019년 온러닝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패션시장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다. 패션과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서 도약하기 위해 더욱 힘을 실을 것이다”라는 포부를 밝혔다.
이전까지는 힘차게 발돋움하는 운동선수의 모습만을 룩북에 담았다면 이제는 유명 스타일리스트를 대동해 머리부터 발끝까지 패셔너블하게 차려입은 모델이 등장한다. 현재 온러닝은 도버 스트리트 마켓, 에센스, 미스터 포터, 매치스패션 등 전 세계 주요 패션 리테일러 수십 곳에 입점해 있다.
온러닝의 스위스 시장 점유율은 약 40%로 아주 높다. 매출이 매년 2배 이상 뛰며 무섭게 성장하고 있으며 온러닝은 “이런 성장에 알맞은 준비를 하지 못했다. 수요를 따라가기 힘들 정도다”라고 말했다. 스위스에서 출발한 온러닝은 미국을 다음 주요 마켓으로 지목하며 서부 오리건주 포틀랜드 지역에 본사를 세웠다.
스포츠웨어 업계의 실리콘 밸리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나이키, 아디다스, 콜럼비아, 언더아머 등 유명 브랜드와 업계 전문가들이 모여 있다. 캘리포니아 기반의 미국 최대 규모 스포츠 리테일러 플리피트(Fleet Feet) 역시 온러닝의 제품을 판매한다. 최고 마케팅 책임자 브렌트 할로웰(Brent Hollowell)은 온러닝의 성공 요인으로 혁신적인 쿠셔닝을 뽑았다. “다른 생김새와 다른 쿠션의 온러닝 디자인은 특별하다. 러닝에 뿌리를 두고 러닝에만 미친 듯이 집중했고 러닝 업계에서 성공을 이뤄냈다”라고 말했다.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2년 5월호에 게재된 내용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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