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지 l 변리사 · 마크비전 법무팀장
캐릭터 ‘오롤리데이’의 피, 땀, 눈물
패션비즈 취재팀 (fashionbiz_report@fashionbiz.co.kr)|21.10.06 ∙ 조회수 8,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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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필자는 수상한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기업 브랜드를 무단 상표 등록한 뒤 상표를 넘겨주는 대가로 거액을 요구하는 자를 ‘상표 브로커’라고 하는데, 당시 중국에서 활동하는 상표 브로커 중 가장 악명 높은 A씨에게서 온 메일이었다.
메일 내용은 뻔뻔하다 못해 기가 찰 지경이었다. 자신이 우리나라 기업 브랜드 수천 건을 중국에 상표 등록해 뒀으니 필자에게 해당 기업에 상표 구매를 유도해 달라는 일종의 협업 제안이었다. 당시 필자가 로펌에서 중국에서 상표 선점 피해를 본 국내 기업의 상담 업무를 담당하고 있던 점을 생각하면 참으로 대담한 제안이 아닐 수 없다. A씨는 다른 상표브로커로 인한 우리나라 기업의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해 자신이 미리 선점해 둔 것이라는 아주 당당한 설명까지 덧붙였다.
수년이 흐른 지금 A씨는 자취를 감췄다. 매년 수백 건의 상표를 출원하던 A씨는 작년 단 한 건의 상표도 출원하지 못했다. 이는 중국 당국이 2019년 상표법 4차 개정을 통해 ‘사용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악의적 상표출원’의 거절 근거 조항을 마련하고 중국 특허청 내부적으로 ‘블랙리스트’를 운영하는 등 악의적 상표 선점 행위에 대해 칼을 빼든 것과 연관이 깊다. 그럼 이제 중국 내 브랜드 선점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된 것일까?
최근 귀여운 못난이 캐릭터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국내 디자인 브랜드 ‘오롤리데이’의 제품과 디자인을 그대로 베껴 만든 짝퉁 매장이 중국 칭다오에 오픈한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가 됐다. 오롤리데이는 상표권까지 수십 건이나 중국에서 무단 선점당했으며, 지난 5월 권리 회복을 위해 억대 소송비용 중 약 5500만원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모집한 바 있다.
오롤리데이 사례는 상표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악의적 상표 선점 문제가 여전히 심각한 중국의 현실을 잘 보여준다. 우선 A씨와 같은 악질 상표 브로커는 더 이상 자신의 이름으로 활동하기 어렵겠지만, 차명이나 페이퍼컴퍼니 설립 등을 통해 얼마든지 배후에서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
또한 ‘사용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악의적 상표출원을 금지한다는 중국 개정 상표법 조문상 상표 선점자가 실제로 중국에서 해당 상표를 사용하고 있다면 개정 조항에 따른 보호를 받는 데 어려움이 있다. 오롤리데이의 못난이 캐릭터처럼 선행 저작권이 인정될 수 있는 경우라면 그래도 양호하다. 중국 상표법상 ‘선권리를 침해하는 상표출원’ 금지 규정의 도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오로지 문자로만 이뤄진 상표는 중국 내 주지저명성(어떤 상표의 이름이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는 성질)이 입증되지 않는 한 보호가 어렵다.
박신후 오롤리데이 대표의 크라우드 펀딩 호소문을 읽다가 “캐릭터 · 디자인 등의 지식재산권은 한 브랜드의 피 · 땀 · 눈물이 밴 자산입니다”라는 문장에 가슴이 무거워졌다. 오롤리데이의 소중한 자산이 무사히 주인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길, 그리고 부디 오롤리데이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 많은 한국 토종 브랜드에 희망을 주는 선례를 남길 수 있길 진심으로 응원한다. [중국에서 내 브랜드 지키기 ②에서 이어집니다]
■ PROFILE
• (현) 마크비전 법무팀장
• (전)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리사•(전) 특허법인 화우 변리사
• 특허청 특허상담센터 공익변리사
• 대한변리사회, 국제상표협회
•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 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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