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 조지워싱턴대 객원교수 · 글로벌금융혁신연구원장
예술의 거장들은 시퍼렇게 날이 선 상상의 칼로 예술의 장막을 가른다. 휘장을 단칼에 베어 내고 답을 끄집어 낸다. 로스코, 에셔, 세잔, 고흐, 쿠르베, 들라크루아, 무하 같은 화가를 비롯 미켈란젤로, 브랑쿠시, 무어 같은 조각가 그리고 프랑크 게리나 르코르뷔제 같은 건축가가 모두 그렇다.
상상을 초월하고 판을 뒤집어 버리는 새로운 해법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고난과 좌절을 겪고 고뇌하며 쏟아부은 에너지가 새로운 에너지로 응축돼야 가능하다. 바로 예술의 거장들을 성공으로 이끈 투시력, 재정의력, 원형력, 생명력, 중력-반중력이란 다섯 가지 힘이다. 이런 에너지를 가진 예술가는 고난의 시기에 무너지지 않고 실패를 ‘성공적 실패’로 승화시킬 수 있다. 위기에 빠진 기업이 예술에 길을 물어야 하는 이유다. 위기의 경제, ‘그들의 눈’이 필요하다.
첫째, 기업도 예술처럼 닮음과 다름을 꿰뚫어 보는 투시력이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같은 색면화가로 분류되지만 로스코 작품은 뉴먼 작품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색면화가의 본질은 색을 창출해 내는 방식에 있다. 연기와 같이 깊은 곳에서 색이 피어난다는 점에서 로스코는 뉴먼보다 터너를 닮았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아마존은 인터넷 상거래 회사이고 삼성전자는 반도체와 스마트폰 회사로서 달라 보이지만 본질이 닮았다. 속도가 핵심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투자와 생산이 빠른 것, 아마존은 배송이 빠른 것이 경쟁력이다. 이렇게 보면 「자라」는 삼성전자를 닮았다.
둘째, 어려운 때일수록 판을 뒤집고 게임을 바꾸는 재정의력이 필요하다. 재정의력은 기존 틀 속에서 해결 불가능하던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도록 상황을 새롭게 정의하는 능력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그림을 그린 쿠니요시처럼 질레트도 비즈니스 모델을 재정의해 면도기보다 면도날에서 더 큰 수익을 올린다.
셋째, 첨단 시대일수록 ‘오래된 미래’를 보고 만들어 내는 원형력이 필요하다. 속도가 빨라지고 변화가 심하고 첨단이 강조될수록 오히려 원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원형은 곧 ‘00스러움’이다. 레고는 레고스러움을 잃었을 때 실패했고 레고스러움을 되찾았을 때 부활할 수 있었다. 디지털이 패션 산업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요인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패션 산업의 ‘오래된 미래’를 찾는 작업 또한 병행될 필요가 있다.
넷째, 지속적으로 생존하려면 자신을 죽여서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력을 갖추어야 한다. 살아 있음이란 항상 움직이고 변하는 에너지 흐름이다. 급변하는 환경하에서도 GE가 장수하는 비결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죽이고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패션 산업도 죽어야 살 수 있다. 미래의 적을 자신의 몸 속에서 키울 수 있는 기업만이 패러다임을 바꾸는 미래의 적에 대응할 수 있다.
다섯째, 중력과 반중력 간에 균형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예술뿐 아니라 경제에서도 중력과 반중력이 충돌한다. 중력은 무겁고 반중력은 가볍다. 중력은 원형이요, 반중력은 변화다. 패션 산업도 순간적 인상을 포착한 모네와 변하지 않는 묵직한 원형을 탐구한 세잔을 동시에 닮아야 한다.
패션 산업에도 예술가의 눈이 필요하다. 예술가들이 응축하고 발산해 낸 다섯 가지 힘을 배워야 한다. ‘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을 통해 패션 속에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담을 수 있어야 고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profile
·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 경영학 박사
· MIT Post-Doc / 와튼 스쿨 Rodney-White 연구소 선임연구원
· 한국자본시장연구원 원장
·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
· 現 미국 조지워싱턴대 객원교수
· 現 미국 글로벌금융혁신연구원 CEO 겸 원장
저서
· 최근 문학동네를 통해 출간한 「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을 통해 경제 이슈를 예술적 관점에서 새롭게 풀어내 유명세를 탔음.
· 조선일보 매일경제 등 일간지와 경제지에 지속적으로 경제와 예술 등 다방면에 대한 칼럼을 게재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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