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마 마사히로ㅣ시마세이키 사장

esmin|16.11.10 ∙ 조회수 16,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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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년 역사 품고 디지털로 진화


본 오사카에서 열차로 한 시간, 간사이 공항에서 40분 거리에 인구 약 100만명의 와카야마 현이 있다. 산과 강, 바다와 접해 풍부한 과일과 신선한 해산물을 자랑하는 이곳은 약 400년 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10남 도쿠가와 요리노부가 성주로 부임해 살던 와카야마 성이 자리한 아름답고 조용한 소도시다.

동시에 이곳은 일본 섬유 산업의 성지이자 환편물과 니트 생산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와카야마를 대표하는 기업이 바로 홀가먼트(wholegarment) 기계로 유명한 시마세이키다. 섬유 기계 업체이자 최근에는 디지털화된 컴퓨터 그래픽 시스템, 그리고 니트의 혁신으로 평가받는 홀가먼트 기계를 생산하는 기업이다.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 라코루냐에 가면 도시 자체가 인디텍스이듯이, 와카야마에서 이 회사가 차지하는 비중과 명성은 대단하다.

매출 규모는 5500억원, 2017년 매출 목표는 7700억원이다. 50년 된 연혁과 규모에 비해 매출은 크지 않지만 자본이 1조원 이상에 15~20%의 꾸준한 매출 성장과 약 12%의 높은 영업이익률은 경기를 무색하게 한다.

야마하, 마쓰시타와 함께 와카야마 출신 3대 기업
수출이 대부분인 시마세이키의 주요 섬유 기계는 일반 니트를 제작하는 성형기계와 홀가먼트 기계가 대표적. 성형기계는 특성상 중국 방글라데시 등 생산기지로, 홀가먼트 기계는 일본 내수 외에 이탈리아 한국 등 패션 선진국으로 많이 수출된다. 이 회사의 편물기는 현재 세계에서 60% 이상의 점유율을 자랑한다.

판매 비율은 일반 성형기가 많지만 홀가먼트의 경우 부가가치 면에서나 시마세이키만의 차별화된 기술이라는 점에서 훨씬 중요하다. 홀가먼트는 알고 보면 우주인들에게 입힌 최첨단 옷이기도 하다. 일본의 나사(NASA) 격인 ‘작사(JAXA)’가 무중력 상태의 우주선에서 이 홀가먼트 의류를 착용했을 때 최적화되는 기능과 신축성을 공인했다.

시마 마사히로 사장은 시마세이키의 설립자이며 산증인이자 이 회사의 역사 그 자체다. 그가 개발한 기계의 순서가 곧 시마세이키의 역사인 것. 장갑편직기계에서 시작된 이 회사의 역사는 와카야마 시에 있는 시마세이키 박물관을 방문하면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1953년에 시작된 기계의 역사와 기술의 흔적을 연대별로 기록한 아카이브가 그것을 말해 준다.

연매출 5500억원, 자본은 1조원 이상 탄탄 기업
특히 그는 600개가 넘는 특허를 취득할 정도로 발명왕이라 ‘일본의 에디슨’이라는 닉네임도 갖고있다. 지금 시마세이키에서 제조해 판매하는 대부분의 기계는 그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고 진화해 간다. 어린 시절 뭐든지 분해하고 조립하고 움직임의 원리를 알고자 집요하게 파고든 발명 소년이 바로 시마 사장이다.

그는 80세의 나이가 믿기지 않는 건강함과 활력, 기억력의 소유자다. 대화할 때 웬만한 계산은 종이나 계산기를 쓰지 않고 암산으로 척척 해낼 정도로 놀라운 암산력을 갖고 있다(1급 암산 자격증 보유). 게다가 대화할 때 A4용지에 그림을 그리며 설명하곤 한다. “그림으로 표현하면 말보다 전달이 쉽다”는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과 수학에 탁월했다고 한다.

발명에 몰입해 왔기 때문일까? 자수성가한 경영인의 비장함보다는 웃을 때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미소를 띠는 시마 사장. “없는 것은 스스로 만들어 낸다” “혼을 담아 만든다”는 철학을 철저하게 지키며 55년째 현장을 누비는 80대 청년 시마 마사히로 사장을 와카야마의 시마세이키 본사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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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카야마를 대표하는 기업들이 모두 떠났는데
시마세이키만은 이곳을 지키고 있다.
“와카야마는 일본 섬유 산업의 성지다. 400년 전부터 니트 횡편 · 환편, 장갑, 염색 등 섬유와 관련된 산업의 중심지였다. 이렇게 유서 깊은 와카야마는 일본 상공회의소 중에서 5번째로 오래된 조직을 갖고 있다. 와카야마가 공업의 중심지이다 보니 산업이 발전하고 그와 함께 이 지역 주민들의 생활도 윤택해졌다.

하지만 그와 함께 사람들이 점차 나태해졌고, 60여년 전부터는 활기찬 에너지가 사라졌다. 대도시로 떠나는 사람이 늘어 인구도 줄었다. 시간이 흘러도 인구 100만에서 별 변화가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마쓰시타전기(현 파나소닉)의 마쓰시타 고노스케 창업자와 야마하의 창업자 야마하 도라쿠스 등 세계적인 기업인들의 탄생지도 바로 와카야마다. 연어들은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간토(‘도쿄’를 의미) 쪽으로 간 사람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내가 태어난 이 지역의 윤택하던 생활을 복구하기 위해 산업을 재건하고 싶었다. ‘헝그리 정신’으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사람들을 고용하고 기계와 기술을 진화시키자고 생각했다. 사라진 에너지와 매력을 되찾기 위해 이곳을 지켰다.”

- 오랜 세월 꾸준한 성장을 유지해 온 경영 철학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토는 세 가지로 첫 번째는 愛(사랑)이다. 일을 사랑하면 좀 더 나아지고 고객을 만족시키고 싶은 향상심이 나온다. 이 향상심은 곧 정열을 샘솟게 한다. 정열은 두 번째 창조(創造)로 이어진다. 열정적으로 일하다 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이는 곧 창조의 욕구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시마세이키사 로비에 이 조각상이 있다)에서 보듯이 생각하는 것은 지식을 통해 지혜를 얻는 것이다. 생각하다 보면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고 곧 방법을 찾게 된다. 세 번째는 기(氣)인데 기운이라는 것은 창조에서 이어지는 것으로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것을 구현하고자 하면 손을 많이 써야 한다. 이렇게 이 세 가지는 서로 이어지는 개념이다.

여덟 살 때 기차 놀이를 하면서 축이 앞으로 가면 바퀴도 앞으로 전진하고 반대로 움직이면 기차도 뒤로 움직이는 것을 보며 어떤 원리로 이렇게 되는지 궁금했다. 이후 수많은 사람을 만났지만 여덟 살 때 이것을 궁금해한 사람은 없었다. 초창기에 미싱기를 가지고 봉제를 시작할 때 휠을 돌려 주지 않으면 미싱이 돌아가지 않고 봉제가 되지 않는 것을 보고 왜 그럴까 하고 생각했다.

손으로 하지 않고 발로 하면 되지 않을까, ‘왜’를 생각하며 그 원인을 생각했다. 호기심과 궁금증이 있어야 상상력이 생기고 원인 규명을 할 수 있다. 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야 발명도, 진화도 가능하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사장과 에디슨의 발명도 같은 맥락에서였을 것이다.”

- ‘일본의 에디슨’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린다
“에디슨은 1600개의 발명품이 있다. 나 역시 55년간 기업을 운영하면서 새로운 것에 대한 생각과 창조성을 바탕으로 24개의 기계를 개발했고 그 사이사이에 더 많이 개발해 거의 1년에 하나 꼴로 기계를 개발했다. 내년이 55주년인데 지금도 계속 진화하기 위해 자전거처럼 페달을 밟고 앞으로 나간다. 컴퓨터가 빠른 속도로 발달하고 있지만 단순히 지식을 쌓는 것만이 아니라 그 지식을 통해 지혜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기본’은 모든 것으로 연결된다. 시마의 장갑기계에서 시작해 횡편기계, 컴퓨터 시스템에 이르기까지 연결되는 것도 기본에서 시작해 하나의 고리로 연결된 것이다. 일본에는 횡편기를 만드는 회사가 과거 100개사 이상 있었지만 지금은 시마세이키만이 남았다. 단순한 기계 업체가 아니라 계속 시대에 맞게 진화해 온 것이고, 박물관의 기계들처럼 앞으로도 진화해 갈 것이다.

(A4용지에 연필로 슥슥 문어 그림을 그리며) 이 문어를 뒤집고 이것이 지구라고 생각하고 이 연결을 나무라고 본다면, 이것들이 서로 연결돼 큰 나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큰 나무에 기계나 소프트웨어나 그래픽들을 연결하면 뭔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데서 나온 것이 디자인 시스템(모델명 SDS-1000)이다.

니트 기계를 만드는 회사에서 왜 디자인 시스템까지 만들었을까. 색을 표현하는 기본 컬러는 R(레드) G(그린) B(블루)로 각각의 컬러 표현은 256개씩이다. 이들을 모두 곱하면 표현할 수 있는 컬러는 1677만여개가 된다. 그렇다면 니트의 표현은 어떨까. 니트는 코와 턱과 ‘미스(Miss, 짜지 않는 부분) 3가지로 짠다. 좀 더 단순하게 짜든지 짜지 않든지, 2분법적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를 2의 24승으로 볼 수 있고, 색과 동일한 1677만여가지가 된다.

옷의 색과 형태, 안감을 모두 통합해서 훨씬 많은 표현이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 현재 판매되는 신기종 디자인 시스템 SDS-ONE APEX3이다. 이런 모든 것이 1981년에 나왔는데 그전에는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단어조차 없었을 시기다. 단순하게 니트를 2차원으로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서 이후 이것을 3차원으로 표현하는 홀가먼트나 컴퓨터 그래픽으로 개발, 진화해 왔다.

그 결과 영국의 크랜필드 대학교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인으로서는 혼다 자동차의 창업자 혼다 소이치로에 이어 내가 2번째다. 그리고 3번째는 교세라의 창업자 이나모리 가즈오이다. 이 상은 세상에 없던 것을 새롭게 개발한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것이다. 나는 아날로그로 짜는 니트를 디지털화했고 컴퓨터 그래픽이라는 단어가 없을 시기에 이를 구현하는 기계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받게 됐다.”

- 쉬지 않고 진화해 온 비결은
“과거를 알지 못하면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상할 수 없다. 옛날 것을 이어 생각하고 연결고리를 찾아 폭넓게, 종합적으로 생각해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우리의 진화는 기존에 존재하던 라치(Latch) 바늘에서부터 시작된다. 기존의 라치 니들은 움직임을 많이 주고 스페이스를 많이 차지한다. 하지만 내가 발명한 슬라이드 니들을 통해 시간과 힘을 덜 수 있게 됐다.

36개의 테크닉을 부여하는 기존 기계에 비해 144개의 다양한 기술적 표현이 가능해져 기능이 4배 향상됐고 이후 홀가먼트로 연결돼 훨씬 새로운 기술을 구현할 수 있게 됐다. 니트 기계가 개발되고 400년이 흘렀는데, 400년 동안 안 되던 것을 시마세이키가 최근 몇십년 동안 보여 준 것이다.

어떤 현상이든 복합적, 종합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바늘의 진화로 더 적은 공간을 차지하고도 표현의 양이 많아진다든지 하는 것은 모두 복합적인 사고에서 비롯된다. 이는 동그란 교집합으로 설명된다. 일반적으로 분업이 진화되지 않으면 기획, 기술(프로그래밍)을 거쳐 완성품을 만든다. 중간에 어떤 트러블이 생기면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고,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하지만 이를 세 가지 원의 합체로 보면 분업의 통합 혹은 퓨전이 된다. 기획과 기술, 제품이라는 게 하나로 뭉쳐서 동시에 이뤄진다. 이런 식으로 일하는 회사들은 동시에 상품을 완성할 수 있다.

부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처음에 전자동 장갑기계를 만들 때 ‘레지’라는 나사가 자주 풀리는 현상이 있었다. 이 나사를 기계와 일체화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했다. 그 원인을 생각해 보니 기계의 움직임에 진동이 있는 데서 비롯했고, 이 진동을 줄이기 위해 각도를 조정한다든지 하는 원인부터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다. 금속에 열을 줘서 부품을 강화시키는데, 열을 심하게 주면 반대로 불량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런 문제해결 능력과 함께 고객의 요구가 늘어나고 고객에 따라 대응하려 하는데 부품 가격을 올려 버리면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되고 빠르게 대응할 수가 없다. 때문에 부품 제작을 외주로 진행하지 않고 75%를 자체 제작한다. 이렇게 항상 고객 입장에서 생각하고 제품을 개발하고 마음을 다해 제공한다. 이것이 시마세이키의 기본 이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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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향후 진화의 방향은
“과거 이진법으로 생각했다면 이제 오진법 정도로 생각해야 한다. 이진법의 사고와 오진법의 사고는 동일한 속도로 나가도 100배의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과거 프로그램 수정에 6000분이 들었다면 종합적으로 생각해 600분으로 줄일 수 있다. 실제 물건을 만들고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이 아니라 샘플을 버추얼로 시뮬레이션해 만들 수 있다면 어느 나라의 고객과도 리얼 타임으로 소통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을 고객들에게 제안하는 기획제안력이 있어야 회사가 진화한다.

손가락이 몇 개인가? 열 개가 아니라, 뼈 마디마디를 하나로 본다면 한 손이 5*5=25개다. 다른 손과 두 발가락도 각각 25개라고 본다면 쓸 수 있는 것이 훨씬 많다. 일테면 토털 패션 시스템 SDS-ONE APEX3의 진화 방향도 패션, 스포츠, 나아가 의료 등의 하이테크에 적용한다면 적용 범위는 훨씬 넓어질 수 있다. 기존에 갖고 있는 것들과 새로운 것을 계속 연결해 나가는 것이 바로 진화다.

2D 스웨터에서 3D 홀가먼트로 넘어오면 일체형이면서 봉제선이 없어 훨씬 가볍고 엘레강스한 표현이 가능하다. 요즘 고객 트렌드가 아무리 좋아도 비싸면 사지 않는데 홀가먼트는 가격도 리즈너블하다. 커팅 로스가 50% 줄 수 있어 비용도 절감된다. 노동집약적인 업계에서 탈피해 하이테크 산업으로 갈 수 있다. 짜는 시간도 줄이고 생산성과 가격도 좋아 판매자 입장에서 더 많은 이익이 남는다.

또한 재고가 남지 않는 콘셉트라 SDS-ONE APEX3를 사용해 오더를 받아 바로 생산하고 바로 리피트를 진행, 시장의 반응을 보고 옷을 생산하는 개념도 들어 있다. IT 정보를 이용해 상품을 생산하며 버추얼 샘플 같은 경우 최첨단 산업에 들어간다. 결국 생산자, 판매자, 제품 구매자 모두 해피한 상황이 된다. 이는 분명한 이노베이션이다. 홀가먼트는 앞으로 시장에서 큰 비즈니스 찬스가 있을 것이다. 일어로 ‘모노즈쿠리(한국어로 ‘물건 만들기’인데 그 안에는 ‘제대로 된 물건 만들기’라는 의미와 정신이 함축돼 있다)’를 표방한다.”

- 20대에 사업을 시작했는데 후진에게 조언을
“20살에 사업을 시작해 회사를 만들어 독립한 것은 22살, 시마세이키로 바꾼 것이 24살 때다. 기업을 처음 시작할 때 돈도 없고 회사 이름도 유명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하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했다. 지식이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해 보겠다는 의지, 에너지 있는 사람이 많이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다.

당시 매출 100만엔, 차입금이 마이너스 3000만엔으로 누가 봐도 좋은 회사가 아니었다. 돈이 없어서 은행에 갔는데 계획을 얘기하니 아무도 안 믿어 줬다. 기분이 상했지만 성공하고야 말겠다고 생각했다. 이틀에 세 시간 자며 불철주야 개발에 매진했고 장갑기계를 완성했다. 장갑이 2분15초 만에 내려오던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안 될 거라고 한 사람들에게 전화했고 첫 오더로 10대를 출하하게 됐다. 상사에서도 연락이 와 오더를 받았고 이후 본격 생산에 들어갔다. 10대, 20대, 30대… 연간 600대로 늘어나고 회사에 현금이 들어오면서 은행에서 빌려 쓴 빚을 다 갚았다. 초반에는 생산성을 높여가다가 다음 단계에는 목표를 제한하고 대신 품질을 높이는 것에 집중했다. 우리만 잘한 것이 아니라 협력업체들도 잘해 주었기 때문에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사원들을 교육한다.”

-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은
“50년간 1년에 하루 혹은 이틀 정도 빼고 꾸준히 와인을 마셔 왔는데 이것이 아닐까(웃음). 와인은 산성이라 안주는 되도록 알칼리성으로 먹는다. 색깔과 향이 좋고 맛이 우아한 부르고뉴 와인을 특별히 좋아한다. 가성비가 좋은 5만~10만엔대를 주로 마시는데 싼 와인만 마시다 보면 어떤 것이 좋은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운동은 매일 현장을 돌며 5㎞씩 걷는다. 60㎝를 한 보로 치면 하루에 5㎞~6.8㎞를 걷는 셈이다. 공장을 돌 때는 코스를 달리해서 걸으며 중간에 10번 정도 멈춰서 직원들과 대화를 나눈다. 일적인 것도 있지만 ‘애가 잘 크냐’ ‘학교는 어디 다니냐’ 등 일상을 물어본다. 이런 질문을 하려면 기억을 잘 해야 하는데, 나는 원래 펜이나 휴대전화도 안 갖고 다닌다. 가능한 한 모든 내용을 기억해서 뇌를 움직이고 운동시키려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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