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올해를 빛낸 세계의 브랜드
최근 파리 패션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뉴스가 발표됐다. 바로 「베트멍」의 설립자 뎀나 그바살리아(Demna Gvasalia)가 알렉산더 왕의 뒤를 이어 케링그룹의 역사를 자랑하는 럭셔리 메종 「발렌시아가」에 영입됐다는 소식이다. 론칭 1년을 갓 넘긴 무명의 언더그라운드(?) 디자이너가 어떻게 파리 최고의 메종에 발탁됐을까? 대체 「베트멍(Vêtements)」은 어떤 브랜드일까?
이미 럭셔리에 식상함을 느낀 쿨한 파리지앵 패션 피플들 사이에서 오버사이즈 실루엣과 해체주의적 콘셉트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하며 올해 가장 핫한 대세 브랜드로 떠오른 브랜드 「베트멍」.
이 브랜드는 설립자가 럭셔리 메종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되면서 패션계 최고의 관심사로 부상했다. 케링그룹의 오너 프랑수아 앙리 피노는 “그바살리아가 오늘날 크리에이티브 세계에서 떠오르는 강력한 포스(force)”라고 치켜세우며 큰 기대를 내비치기도 했다.
무명 디자이너 그바살리아 케링그룹 발탁 ‘쇼킹’
럭셔리와 언더그라운드 컬처를 결합한,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한 영 디자이너 브랜드 「베트멍」 뒤에는 7명의 잘 알려지지 않은 디자이너들이 숨어 있다. 만약 ‘안티컨포미즘(anticonformisme 타협을 거부하는)’이 브랜드 성공의 요소(?)가 된다면 이들은 이미 성공으로 가는 길에 들어선 셈이다.
야밤에 컬렉션 쇼가 진행된 마레 지구에 위치한 게이 클럽 ‘데포(Dépôt)’는 천둥처럼 울리는 음악 소리에 일반적인 패션쇼 장소와는 거리가 멀지만 지난해 3월 론칭한 영 브랜드 「베트멍」은 특유의 악동 같은 세계로 우리를 초대했다. 지난 10월 파리패션위크 기간에 선보인 이번 패션쇼는 브랜드 「베트멍」의 세 번째 ‘안티컨포미즘’ 컬렉션이다.
이번 컬렉션 쇼를 관람하기 위해 태평양(?)을 건너온 셀러브리티들의 면면을 보면 이 신진 브랜드에 대한 패피(패션피플)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래퍼 카니예 웨스트, 배우 자레드 레토 등이 콘돔 봉투와 파퍼(poppers-섹스숍에서 판매하는 향정신성 제품) 병들이 쌓여 있는 사이에 앉아 소방관과 안전구조요원의 유니폼을 쿠튀르 노하우로 재작업한 의상들을 여유롭게 관람했다.
‘LVMH 어워드’ 세미 파이널리스트 올라 화제
‘LVMH 어워드’의 세미 파이널리스트(준우승)이기도 한 이 신생 브랜드는 이번 컬렉션에서 인터내셔널 프레스뿐만 아니라 언더그라운드 파리지앵을 동시에 유혹하는 그들만의 독자적인 2015 빈티지 ‘쿨(cool)’(브랜드의 5개 요소 중 하나) 스타일을 정의해 선보이며 패션쇼를 성공리에 마쳤다.
이들이 선보인 엄격한 듯 기하학적이며 극적인 요소들은 마치 마틴 마르지엘라의 그것을 많이 연상케 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브랜드 「베트멍」의 뒤에 숨어 있는 7명의 디자이너가 모두 벨기에 출신의 신비주의 디자이너 브랜드인 「메종마르지엘라」를 거친 이들이다.
지난 10월7일 ‘뎀나 그바살리아가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전격 영입된다’는, 패션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깜짝 소식이 발표되기 전까지만 해도 구글에 「베트멍」을 치면 15페이지가 지나도록 이 패션 브랜드에 대한 내용을 찾기가 어려웠다.
기하학적이며 극적인 요소로 펼친 악동들의 세계
영 디자이너가 뜨기 위해서는 하이퍼커넥트(hyperconnect)돼 있어야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소셜 네트워크에서 침묵하는 커뮤니케이션을 전파(?)한다. 오늘날 수많은 패션 디자이너가 소셜 네트워크에 자신의 프로페셔널 또는 퍼스널 라이프를 올리며 디지털 시대에 발맞춰 살아가고 있지만 「베트멍」은 오히려 그와 반대로 대부분 익명으로 남고자 하는 것이다.
그동안 알려진 것이라고는 설립자 뎀나 그바살리아가 마틴 마르지엘라를 배출한 안트워프 왕립학교를 졸업했고 「루이비통」의 그랑 에콜(la grande école Louis Vuitton)을 거쳤다는 사실 정도였다. 나머지 디자이너들은 모두 사진 촬영을 거부했다.
우리는 “옷(프랑스어로 vêtement[베트멍])을 모든 액션의 중심에 두고자 한다”고 그바살리아는 설명했다. 베일에 가려진 듯한 그들의 미스터리는 오히려 프레스의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뎀나 그바살리아 「루이비통」 「마르지엘라」 출신
「베트멍」의 설립자 뎀나 그바살리아는 1981년 조지아(유럽)에서 태어났고 독일에서 자랐다. 안트워프 왕립학교를 졸업한 그는 설립자가 떠난 직후의 「마틴마르지엘라」와 「루이비통」에서 마크 제이콥스와 니콜라 제스키에르 시절을 거치며 일했다.
「루이비통」에서 그는 ‘진정한 럭셔리 제품’이 무엇인지, 그리고 ‘기술적인 자료의 방대함’에 대해 배웠고 「마르지엘라」에서는 ‘민주적(democratic)’인 방식, 즉 팀워크와 패션에서 크리에이티브를 가장 중심으로 하는 사고(「베트멍」은 데뷔 초부터 「마틴마르지엘라」의 영감을 표현했다)를 습득했다.
그 사이 그는 두 명의 파트너를 만나게 되고 비밀리에 일을 시작했다. 그들과 함께 첫 리사이클 데님을 만들면서 뎀나 그바살리아는 브랜드 「베트멍」의 성공의 밑거름을 마련했다. 이렇게 중고나 벼룩 시장 또는 밀리터리 서플러스 등 빈티지 의류 제품들을 재활용해 시작된 「베트멍」의 의상들은 섬세한 디자이너들의 손을 거쳐 조심스럽게 다시 재단, 창조된다.
‘베트멍(불어로 옷)’ 중심, 리사이클 처리된 쿠튀르?
기능적인 의류들을 다소 ‘불량한(?) 엘레강스’라는 DNA를 지닌 새로운 컬렉션 아이템으로 변신시켰다. 특히 이번 2015/2016 F/W 컬렉션에서는 소방관의 유니폼을 이용, 펜슬 라인 스커트나 스웨터, 한쪽이 길게 끌리는 시어링(양털) 재킷으로 변형한 아이템들과 맥주 브랜드 로고가 찍힌 티셔츠 등을 선보였고 스페셜(?) 액세서리로 설거지용 고무장갑까지 등장시켰다.
「베트멍」 컬렉션은 일면에는 쿠튀르의 노하우와 수작업의 까다로움, 정확성이라는 럭셔리적인 요소, 다른 일면에는 빈티지 티셔츠에 고딕 그룹의 이미지를 프린트하거나 스케이터(skater) 느낌의 스웻셔츠 또는 바이커 재킷을 만드는 언더그라운드적 감수성이라는 묘하게 상반된 요소를 동시에 지닌다.
럭셔리의 ‘장인 정신’과 핫한 파리 젊은이들의 얼터너티브한 나이트아웃(파티나 클러빙)에서 일어나는 모든 장르의 ‘서브 컬처(subcultures)’, 이 둘의 결합은 브랜드 「베트멍」의 강력한 아이덴티티다. “어떤 디자이너들은 여행에서 영감을 얻지만 우리는 파리의 지하철을 타고 벨빌과 바베 사이를 오간다”고 그바살리아는 전했다.
럭셔리 + 언더그라운드 + 서브 컬처, 상반된 요소
브랜드 이름 ‘베트멍(불어로 ‘옷’을 뜻함)’에서 알 수 있듯이 스타일의 가장 순수한 본질을 찾고 트렌드의 위험성(?)을 타파하고자 하는 그들의 열망은 일상복을 베이스로 한 이지투웨어 아이템들을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그들만의 터치로 재탄생(구조의 변형과 과장된 사이즈 등)한 컬렉션은 데자뷰(이미 본 듯한)의 느낌을 넘어서 신선한 관점으로 다시 바라보게끔 우리를 선동(?)하는 역동적이고 크리에이티브한 트위스트가 존재한다.
한편 이번 시즌에 그들이 발송한 컬렉션 인비테이션은 같은 장소에서 진행된 에스코트 여성(러시아 출신) 동반의 은밀한 파티를 광고하는 플라이어(전단지)가 첨부된 상태로 보내졌다. 소셜 사이트의 하나인 ‘e-vite’에 역시 자극적인 비디오 이미지(성 기구와 파퍼(popper) 병과 더불어 브랜드 컬렉션의 날짜와 시간을 알리는 영상)를 게재하기도 했다.
론칭한 지 1년을 넘기면서 불과 3개의 컬렉션을 선보였을 뿐이지만 현재 파리의 ‘더브로큰암(The Broken Arm)’과 런던의 ‘조지프(Joseph)’ 등을 비롯해 전 세계 46개의 부티크에서 판매되고 있다.
자극적 이미지 등 대담한 커뮤니케이션 화제
과연 지금 같은 시대에 이들의 성공 비결은 무엇인가? 옷 자체에 모든 중심을 맞춰 군더더기 없고 도리어 매스큘린(남성적인)한 컷과 인위적인 것을 피하고 억지로 꾸미지 않는 무심함이다. 게다가 익명으로 남고자 하는 어떤 테이스트라고나 할까?
대부분의 규모 있는 럭셔리 메종들이 동시대에 가장 핫한 모델들을 앞다퉈 쓰고 있을 때 「베트멍」은 그러한 관행을 깨뜨리는 것을 오히려 즐기는 듯하다. 이번 패션쇼 기획에 참여한 스타일리스트이자 무대의 오프닝을 장식한 로타 볼코바(Lotta Volkova)의 뒤를 이어 럭셔리계에서는 얼굴이 익숙하지 않은 일단의 모델들(파리의 야행성 화류계 인사라면 금방 알아볼)이 걸어 나왔다.
이렇게 무대를 장식한 이들은 파티 오거나이저로 알려진 디제이 디젯(DJettes)과 바텐더들, 밤잠 못 이루는(?) 다수의 올빼미 클럽족 등이다. 공통점은? “그들은 강한(?) 여성이다. 성전환자도 있고 또 벼룩시장에서 장을 보고 아침 8시까지 춤추고 나서 시크한 레스토랑에서 식사까지 마치는 이들도 있다”고 전했다.
관행은 가라! 길거리 캐스팅, 뮤즈 없고 홍보도 No
“우리의 작업은 토털 룩이나 라이프스타일에 영향을 받은 룩이 아닌 솔로로 한 피스씩 구상돼 태어난다. 일반 브랜드처럼 시즌에 맞추거나 테마를 정하는 것도 피한다. 우리의 컬렉션은 여성들이 사자마자 바로 입고 거리로 나갈 수 있는 것에 맞춰져 있다.”
“타깃에 바로 맞추어 진행하므로 뮤즈나 브랜드 노출, 홍보 등을 위해 활용하는 블로거가 필요 없다. 처음에는 주위의 가까운 친구들에게 입히는 것으로 시작됐고 항상 그런 식으로 움직여 왔다. 중요한 것은 마켓의 요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만든다는 사실이다.”
패션 웹사이트 Style.com은 「베트멍」이 향후 “뉴욕의 브루클린이 그렇듯이 파리의 젊은이들이 무엇을 입는지를 보여 주는 가장 앞서가는 브랜드가 될 것”이라고 점쳤다. 통상적인 럭셔리와 서브 컬처 사이에 놓인 벽을 깨뜨리고 뒤섞어 놓는 그들은 현실적인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통해 우상 파괴(iconoclastic)를 완성했다.
소수 정예 소규모 비즈니스 남성복 론칭도 계획
현재 이들은 8명의 소수 정예가 일하는 작은 규모의 비즈니스지만 타협을 거부하는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내일은? “우리는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이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필터링하고 성장을 조절하면서 천천히 나아가기를 원한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옷(vêtements)을 만들고 싶은 것뿐이다.” 그의 말처럼 서툴게 새로운 것을 시도하느니 심플하면서도 노블한 신념을 갖고 자신의 일에 임하는, 어찌 보면 겸손한 그들의 접근법은 오히려 신선하기까지 하다.
향후 「베트멍」은 여성복 라인을 너무 키우는 것보다 남성복을 새롭게 론칭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물론 단독 부티크를 오픈하는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베트멍」이 음지(익명)보다는 양지를 더 좋아한다는 것을 곧 확인시켜 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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