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 카란, 「도나 카란」 떠나다!
이영지 객원기자 (yj270513@gmail.com)|15.07.06 ∙ 조회수 7,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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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베이스를 둔 디자이너 도나 카란이 그동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해온 자신의 브랜드 「도나 카란」을 떠나게 됐다고 LVMH그룹이 발표했다. 도나카란인터내셔널(이하DKI)은 "지난 7월 1일 패션계의 전설적인 디자이너이자 설립자인 도나 카란이 그동안 디자인 디렉터로서의 데일리한 책임에서 벗어나 앞으로 자신의 재단 ‘어반 젠(Urban Zen)컴퍼니’에 집중하기 위해 브랜드를 떠나게 됐다. 하지만 앞으로도 DKI의 카운슬러 역할은 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도나 카란이 지난 2007년 설립한 어반 젠 컴퍼니& 파운데이션은 의류, 액세서리, 주얼리, 홈 데코, 뷰티 제품 등을 아이티, 태국, 발리 등에서 제조해 판매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같은 결정은 누구의 결정인가? 도나 카란은 1985년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설립했고 이후 세계 1위의 프랑스 럭셔리 그룹 LVMH가 2001년 6억유로(약 7500억원)에 브랜드를 인수한 바 있다.
지난 30년간 미국 레디투웨어의 변화를 이끈 디자이너 도나 카란을 대변해 LVMH 패션 그룹의 CEO 피에르 이브 루셀과 DKI의 CEO 캐롤린 브라운은 공동 성명에서 "LVMH와 나는 이번 결정을 함께 내렸다"며 "나는 현재 내 인생에서 필요로 하는 것이 파운데이션(재단)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 집중하는 것이라고 판단, 이러한 결정을 내리게 됐다. 나의 비전인 박애를 실천, 커머스를 키우고 플래닛과 교육, 문화 보호 등에 집중하기 위한 개인적인 선택이다."라고 밝혔다.
DKI 떠나고 패션쇼와 컬렉션도 중단 예정
사실 지난 몇개월간 업계에서는 도나 카란이 과연 얼마나 더 디자인 디렉터로 버틸 수 있을지에 대한 소문이 돌았던 것이 사실이다. 특히 소문의 근거는 브랜드 「퍼블릭 스쿨」의 설립자겸 디자이너 듀오인 다오이 초(Dao-Yi Chow)와 맥스웰 오스본(Maxwell Osborne)이 지난 4월 「DKNY」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영입되면서 본격화 됐다.
한편에서는 DKI가 「마크 제이콥스」나 여타 브랜드들이 그랬듯이 「도나 카란 컬렉션」을 「DKNY」에 흡수시키면서 가격대를 내린 상품들로 새롭게 구성할 것이라는 예상도 제기돼 왔다. DKI측은 전문을 통해 "지난 30년간 도나 카란은 전 세계 여성들의 파워와 센슈얼리티를 아우르며 그들에게 영감이 됐다."라고 전하며 "도나 카란은 이 시대의 아이콘이자 비전을 가진 디자이너이며 열정적인 박애주의자다. 그녀는 여성을 입혔으며 또 대변하기도 했다. 그녀가 미국 패션사에 남긴 족적은 대단하며 앞으로도 그녀는 영감으로 남을 것이다."라고 디자이너에게 영광을 돌렸다.
한편 "「도나 카란」은 나의 일부이고 과거이자 현재이며 미래다. 그동안 여성들이 착장하는 방식을 뒤바꿔 놓은‘세븐 이지 피시스'를 여성들에게 알릴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말한 도나 카란은 "지난 30년동안 도나 카란 뉴욕을 내가 꿈꿨던 것 보다도 훨씬 성공적으로 만들어준 수많은 동료들에게 너무나 많은 감사와 깊은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
미국 패션사에 큰 획~ 도나카란 후임 '아직'
현재로서 도나 카란을 대체할 디자인 디렉터를 찾고 있지 않다고 전한 DKI측은 특별한 언급이 있기까지 당분간 패션쇼와 컬렉션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회사측은 앞으로 브랜드 라이선싱과 세컨드 브랜드 「DKNY」 팀을 재정비하면서 이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0년 F/W 도나 카란 컬렉션
도나 아이비 파스크(Donna Ivy Faske)는1948년 뉴욕 퀸즈에서 태어났다. 테일러였던 아버지는 그녀가 태어난지 3년 만에 세상을 떠난 후 그녀는 전직 모델로 재혼한 어머니와 롱아일랜드로 이사한다. 이후 뉴욕의 저명한 파슨스 스쿨오브 디자인(Parsons School for Design)에서 어렵게 학업을 이어가던 그녀는 남편 마크 카렌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앤 클라인」에서 처음 스포츠웨어 디자이너로 발을 딛게된 그녀는 이후 실력을 인정받아 1974년에는 브랜드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임명된다. 10년간 「앤 클라인」에서 일한 도나 카란은 이후 파슨스에서 만난 루이스 델 올리오와 컬렉션을 진행하기로 사인한다. 한편 마크 카란과 이혼 후에도 그녀는 도나 카란이라는 이름을 유지, 이후 그의 비즈니스 파트너가 된 스테판 웨이스와 재혼하지만 그도 2001년 암으로 사망한다.
1985년에 설립된 도나 카란 뉴욕은 첫 컬렉션부터 기능적이고 차분하며 인터체인저블한 의상을 선보이며 패션계에 눈도장을 찍었고 특히 액티브한 여성을 위한 바디수트는 브랜드의 중요한 축을 이룰만큼 히트 상품이 됐다. '세븐 이지 피시스(seven easy pieces)'라는 개념의 워킹 우먼을 위한 이상적인 워드롭은 오랜 세월 그녀의 브랜드 시그니처로 자리매김 했다. 또한 1988년에는 메인 라인 「도나 카란」보다 저가의 브랜드 「DKNY」를 론칭하면서 비즈니스 저변을 확대해 갔다.
워킹 우먼 위한 파워풀하고 센슈얼한 컬렉션
1996년 자신이 설립한 회사 DKI를 뉴욕 스톡 익스체인지에 상장한 도나 카란은 그로부터 5년 후인 2001년 DKI(전 라인을 포함)와 가브리엘 스튜디오(도나 카란 딸 이름의 회사), 모든 라이선스를 프랑스 럭셔리 재벌 LVMH그룹에 매각한다. DKI를 인수한 LVMH 그룹은 그동안 수익성이 떨어지는 라인을 정리하는 등 경영 구조를 개선해 왔다. 한편 애널리스트들에 의하면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이 6억유로의 거금을 들여 이 회사를 통째로 사들이는데 동의했지만 몇년 후 파악된 도나 카란 왕국의 실제 기업가치는 그것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2015년S/S DKNY컬렉션
「아르마니」를 거쳐 2010년부터 「캐롤리나 헤레라」를 매니지한 캐롤린 브라운에게 지난 몇개월간 CEO로서 DKI의 경영을 맡겨온 LVMH 측은 앞으로 투자에 있어서 어떠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브랜드 리스트럭처링에 들어간 이후 그녀에게 누가 진정한 스페셜리스트이고 아닌지를 가려내는 중대한 미션을 맡겨왔다.
캐롤린 브라운은 "도나 카란은 비전을 가진 디자이너였고 파워와 센슈얼리티를 재정립해 여성들의 착장 방식을 바꿔놓은 혁신을 이루어 냈다. 그녀의 영향력은 막대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그녀가 새로운 역할을 향해 나아가듯이 나는 DKI에 남아있는 많은 팀들에게 그동안 도나 카란이 쌓아온 유산을 유지하고 앞으로 펼쳐질 챕터를 향해 굳건히 함께 나아가기를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오늘날 미국을 상징하는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한 「도나 카란」은 힐러리 클린턴 미 대선 후보가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임명식에 「도나 카란」을 입어 화제가 됐고 「J.Crew」 등 미국 의류 브랜드만 입는 것으로 유명한 현재 퍼스트 레이디 미셀 오바마도 종종 이 브랜드를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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