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마틴」, 타임리스 파워 주목!
100여년의 역사가 있는 슈즈 브랜드 「닥터마틴」은 영국을 대표하는 아이코닉한 브랜드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폭넓은 고객층을 보유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지난 1960년에 론칭한 「닥터마틴」의 대표 스타일인 1460 부츠는 64년이 지난 지금도 동일한 디자인을 같은 공법으로 제공한다.
패스트 패션이 지배하는 21세기 글로벌 패션인더스트리에서 시간의 흐름에 관계없이 타임리스 파워를 자랑하는 「닥터마틴」이 최근 변화와 혁신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글로벌 CEO 스티브 머레이와 아시아 사장 유르겐 스트라페에 이어 글로벌 리테일 디렉터 데이비드 리지웨이 등 임원진의 진용이 크게 바뀐 것.
대부분 「아디다스」 「반스」 「리복」 「락포트」 등 글로벌 스포츠 & 슈즈 브랜드 출신으로 캐주얼화, 두(do)스포츠 운동화에 대한 실력을 보완한다. 특히 아시아 사장인 유르겐 스트라페 전 아디다스 사장은 아시아만 총괄하는 사장이 아니라 보드 멤버로서 아주 파워풀한 경영진이다.
늙지 않는 유스풀 브랜드, 홀세일로 1조원 규모
CDO인 대런 캠벨과 마케팅 디렉터인 사이먼 잡슨 등 과거 「닥터마틴」 출신 멤버들의 「닥터마틴」 DNA 위에 글로벌 리더들을 대거 보완함으로써 캐주얼화, 두스포츠 운동화에 대해 이해도를 높였다. 이는 브리티시 클래식 헤리티지라는 기존의 콘셉트에 스포티브하고 역동적인 브랜딩 전략을 접목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부츠 중심에서 토털 패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변화를 꾀하는 것이다.
특히 그동안 홀세일 중심(전 매출의 70% 차지)에서 리테일 강화 정책으로 적극 선회함으로써 리테일 스토어 콘셉트를 새롭게 구축하는 등 혁신적인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새로운 리테일 디렉터가 온 후 첫 번째로 지난 6월 일본 하라주쿠에 새로운 콘셉트의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다. 기존 신주쿠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새 매장 콘셉트는 이후의 새 매장에 계속 접목해 나간다는 방침.
브리티시 헤리티지와 클래식을 대표하는 「닥터마틴」은 트렌드가 변해도 언제나 신을 수 있는 클래식 스타일로 50개국의 170여개 직영 매장과 3000여개 판매처를 보유하고 있다. 최근 이 같은 변화로 새로운 콘셉트의 모노숍을 계속 늘려 가고 있다.
글로벌 CEO•아시아 사장 교체, 혁신 바람 솔솔
지난 몇 년간 스니커즈가 폭풍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은 물론 가볍고 편안한 신발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진 시점에 「닥터마틴」도 예외가 아니다. 스포티한 신발에 관한 니즈에 대해서 「닥터마틴」은 전통적인 디자인과 스니커즈를 믹스한 하이브리드 스타일을 개발하고 있다. 편하면서 오래 신을 수 있는 내구성이 강한 상품을 지향한다.
「닥터마틴」은 지난 2000년 생산의 효율성을 위해 생산 베이스를 대부분 중국과 태국으로 옮겼다. 하지만 빈티지 라인은 여전히 런던에서 약 120km 떨어진 노스햄튼 지방 월러스턴(Wollaston) 소재의 공장에서 생산된다. 영국산 상품의 가격은 같은 스타일이어도 약 80% 이상 비싸지만 극성 팬들은 메이드 인 잉글랜드 상품을 고집하기도 한다.
「닥터마틴」의 영국산 레인지는 소비자에게 선택권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1960년 「닥터마틴」 부츠를 론칭한 그 공장에서 같은 공법으로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아직도 생산 시설을 가지고 있는 것에 자부심이 있습니다.” 글로벌 마케팅 디렉터인 사이먼 잡슨의 설명이다. 하지만 현재 대부분의 「닥터마틴」 상품은 아시아에서 생산된다.
전통적 디자인 + 스니커즈 믹스 하이브리드 스타일로
글로벌 시장에 어필하는 마케팅을 만들기 위해서 로컬 시장의 니즈에 귀 기울인다고 잡슨은 강조한다. “런던의 헤드 오피스에서 글로벌 시장에 맞출 수 있는 마케팅 툴 킷을 개발했습니다. 이를 마켓별로 제안하고, 이 중 로컬 시장의 소비자에게 가장 잘 맞을 수 있는 채널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해당 국가 시장은 그 시장의 마케팅 디렉터가 컨트롤할 수 있도록 합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아이코닉 브랜드 「닥터마틴」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한 데는 이처럼 글로벌 고객의 다양성을 포용하는 전략과 로컬 시장의 니즈를 반영하는 마케팅 전략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거기에 상업성을 내세우지 않고 유스 컬처와 연계한 브랜드 히스토리와 아직도 언더그라운드의 분위기를 유지하도록 하는 브랜딩이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런던에서 북서쪽으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월러스턴의 콥스 레인 공장(Cobbs Lane)에서는 아직도 매일 50켤레의 「닥터마틴」 상품이 생산된다. 생산 베이스를 중국과 태국으로 옮긴 지도 10여년이 지났지만 이 공장에서는 아직도 50여년 전과 똑같은 디자인, 치수, 공법과 프로세스로 헤리티지 클래식 상품을 생산한다. 이 밖에 오더 메이드 구두도 제작한다.
빈티지 라인, 노스햄튼 월러스턴 공장에서 생산
주문화의 경우 고객의 발에 딱 맞도록 퍼스널라이즈드 라스트(last)를 제작해서 여기에 고객이 원하는 가죽으로 제작하고, 이름을 새길 수도 있다. 딜리버리 기간은 4주 이내로 선택한다. 가죽과 사이즈에 따라 가격은 최고 230만원(1300파운드)까지 올라간다. 가장 유명한 오더 메이드 고객으로 교황 존 폴 2세가 흰색의 「닥터마틴」 부츠를 주문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월러스턴은 영국의 전통적인 구두 생산지인 노스햄튼(Northampton)에 있다. 「닥터마틴」 외에도 「처치스(Church’s)」 「치니(Cheaney)」 「그렌슨(Grenson)」 「로크(Loake)」 등 30여개 브랜드가 제조시설을 운영한다. 900년의 구두 제조 역사를 자랑하는 노스햄튼 지방은 하이퀄리티의 부츠와 구두의 대명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국 내전, 미국 남북 전쟁을 위한 군화를 제공한 것은 물론 제1차 세계대전에 사용된 부츠의 2/3인 7000만켤레를 생산했을 정도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구두 생산 기지였다. 이 지역은 초원이 넓어서 소를 많이 키웠고 가죽이 풍부했다. 또한 풍부한 떡갈나무(오크)는 구두 라스트로 이용하기가 쉬워 가죽 비즈니스가 번성했다고 한다.
16~24세 젊은이들 ‘견습제도’로 전문가 양성
「닥터마틴」의 영국 생산 부장(UK production manager)인 스티븐 벤트(Stephen Bent)의 설명에 의하면 콥스레인 공장에서는 가죽을 재단하고 재봉으로 구성하며 완성하기까지 모든 공정을 한 장소에서 한다. 주로 4개 공정으로 나뉘는데 우선 가죽을 재단(clicking)한 뒤 이를 스티지로 결합한다(closing). 그 후 라스트에 가죽을 밀착해서 입체적인 구두 윗부분을 완성한 후(lasting) 창과 연결한다.
그런 다음 그 유명한 「닥터마틴」의 노란색 스티치를 하고, 검사한 후 패킹(finishing)하면 매장으로 나갈 준비가 된 것이다. 한 켤레 제작에 총 1시간 5분이 소요된다. 생각보다 생산직의 연령대가 높지 않은데, 이는 견습제도를 활용하기 때문이다. 현재 노스햄튼에서는 약 20개 구두 제조사가 견습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닥터마틴」은 이 중 가장 먼저인 4년 전에 견습제도를 시작했다.
16~24세의 젊은이 중 연간 4명을 선발해서 약 1년 동안 공장 내 전체 공정을 배우는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1년 견습을 하면 그 후 자신의 전문 분야를 정해서 정식 직원으로 취업하게 되며, 이미 견습제도를 이수한 젊은 직원들이 생기고 있다.
1960년대 이후 작업화에서 로큰롤 서브 컬처 연계
최초의 「닥터마틴」 스타일은 1960년에 소개돼 올해로 55주년을 맞고, 기업의 역사는 훨씬 이전인 19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닥터마틴」의 이름은 1940년대 당시 혁신적인 고무 밑창을 개발한 당시 군의관이던 클라우스 마틴스의 이름에서 비롯했다. 스키 사고로 발목을 다친 후 좀 더 편안하고 쿠션이 있는 신발을 원한 마틴스 박사는 에어쿠션 밑창을 발명했고, 친구인 허버트 펑크(Hebert Punck) 박사와 함께 항공기의 폐타이어를 녹여서 탄성이 있는 에어쿠션 밑창을 생산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편안한 것은 물론 걷고 뛸 때 그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창업자인 빌 그릭스는 독일 의사들로부터 탄성 있는 에어쿠션 밑창에 대한 라이선스를 취득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상품을 만들기 위해 부츠의 디자인도 전격적으로 새로운 것을 선보였다. 노란색 스티치 외에도 힐루프에 문구(AirWair with Bouncing Soles)를 넣어서 혁신적인 기술은 물론 브랜딩이 들어간 새로운 구두를 시판했다. 아직도 「닥터마틴」을 대표하는 디자인인 8홀 부츠는 1960년 4월1일 론칭했고, 이날을 기념해서 스타일을 1460(영국식으로 날짜를 쓰는 방식, 1일/4월/60년)이라고 이름 붙였다.
공장에서 노동자가 신는 등 몇 년 동안 작업화(working boots)에 지나지 않던 「닥터마틴」이 패션계로 나오게 된 것은 1960년대 인기 밴드 후(The Who)의 기타리스트이던 피트 타운센드(Pete Townsend)가 「닥터마틴」을 신고 무대를 누비면서부터다. 1960년대를 기점으로 「닥터마틴」은 로큰롤과 서브 컬처와 연계되기 시작했다. 특히 작업화로서의 전통은 「닥터마틴」을 노동자 계급의 상징으로 만들었고, 1970년대의 암울하던 영국의 사회상을 반영하면서 모즈, 펑크, 스킨헤드, 사이코빌리(Psychobillies), 고스(Goth) 등의 스타일을 완성하는 아이템이 됐다.
2013년 퍼미라가 인수 후 점진적 개혁 ‘성공’
그런지 패션이 부상하면서 「닥터마틴」은 급격히 성장했고 1994년에는 런던의 코벤트 가든 지역에 「닥터마틴」 토털숍을 오픈하고 신발 외에도 의류, 시계, 식품까지 판매하기에 이른다. 종업원 수는 2700명, 수익은 2900억원(170m파운드)까지 매출이 올라갔으며 연간 약 1000만켤레의 상품을 생산했다.
하지만 사업 다각화로 2000년대 들어서면서 「닥터마틴」의 비즈니스가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2003년 부도 위기까지 넘기게 되면서 사업을 구하기 위해 생산 시설을 중국과 태국으로 이전하는 리스트럭처링으로 1만명의 영국 직원이 직장을 잃기도 했다. 2004년 월러스턴 공장이 재가동되면서 「닥터마틴」은 회생의 길을 걷게 된다. 현재는 2013년에 「닥터마틴」을 퍼미라(Permira)가 인수한다. 퍼미라는 휴고보스, 덱스트, 더벤하임 백화점을 소유한 리테일 투자 전문 회사다.
「닥터마틴」의 시작은 기능성과 유틸리티의 본질을 포함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적용한 케이스다. 거기다가 1960년대 이후 유스 컬처와 연계되면서 패션과 뮤직은 물론 정치적인 구호로서의 상징을 보여주기도 했다. 자기 표현, 반항, 자유로운 생각은 「닥터마틴」의 정수로 헤리티지 속에서 이노베이션을 만들어 낸 코어 밸류로서 시간이 지나도 변치않는 포에버 언더그라운드 브랜드 정통성의 기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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