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패션 레전드 「꼼데가르송」
조태정 객원기자 (fashionbiz.tokyo@gmail.com)|15.04.09 ∙ 조회수 15,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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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최고의 디자이너 브랜드 「꼼데가르송」. 이 회사는 크리에이션뿐만 아니라 비즈니스적인 면에서도 꾸준히 사업을 전개하고 있으며 17개나 되는 「꼼데가르송」 관련 브랜드 라벨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 브랜드 중에 인터내셔널 브랜드로서 이처럼 성공한 디자이너 브랜드는 없을 것이다. 디자이너 가와쿠보 레이의 천재적인 크리에이션과 함께 경영인 아드리안 조페(Adrian Joffe)의 탁월한 비즈니스 감각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가와쿠보 레이는 1969년 「꼼데가르송」 브랜드를 론칭한 창업자이자 오너 디자이너 겸 사장이다. 아드리안 조페는 가와쿠보 레이가 회사를 설립한 이래 글로벌 마켓을 책임지고 감수하고 있다. 가와쿠보 레이의 감성적이며 감각적인 우뇌와 아드리안 조페의 논리적인 좌뇌가 서로 밸런스를 이루어 패션 비즈니스를 꾸준히 전개하고 있는데, 디자이너 브랜드로 연간 매출 약 200억엔이 넘는 브랜드를 유지하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 둘이 1992년 법적으로 혼인한 부부 관계라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두 사람은 바쁜 스케줄과 인터내셔널 브랜드라는 위치로 인해 부부라기보다는 파트너에 가깝다. 가와쿠보 레이가 파리에 가거나 아니면 아드리안 조페가 도쿄에 오거나 할 때만 만나곤 한다. 그 외에는 거의 각자 혼자서 생활한다.
부부이자 파트너, 감성적 우뇌와 이성적 좌뇌 결합
때문에 이들의 부부로서의 관계는 오래전에 끝났다는 것이 업계의 정설. 그럼에도 이들이 계속 콤비를 이루어 꾸준히 사업을 함께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그리고 이렇게 콤비를 이루어 패션 비즈니스를 만들어 가면서 어떤 성과를 얻었을까.
1970년, 1980년대의 하이 패션(컬렉션 브랜드)에서는 블랙 색상을 쓰는 경우가 드물었다. 1981년 가와쿠보 레이가 처음으로 컬렉션에 블랙이라는 컬러를 쓰면서부터 확산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가와쿠보 레이는 구멍 뚫리고 헤진 옷을 보여 주면서 미에 대한 개념을 바꿨으며 이는 ‘블랙 쇼크’라고 불릴 만큼 혁신적이었다.
지금도 매 시즌 새로운 컬렉션으로 많은 패션인을 깜짝 놀라게 하는 가와쿠보 레이의 크리에이션은 일반적인 상식이나 권위적인 의식과 거리가 멀고 여태까지 본 그 어떤 패션에도 존재하지 않는 스타일을 고집한다.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의식해서 만든 옷과는 다른 마치 예술 작품에 가깝다. 세간에는 그녀의 작품을 반골 정신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만큼 강한 의지가 있는 여성으로, 점점 상업적으로 변해 가는 패션계를 마치 비웃기라도 하듯 도도하게 자신의 컬렉션을 발표하고 있다.
자신이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자신이 믿는 아름다움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자신이 살아 있는 것의 이유는 무엇인지… 이런 수많은 요소를 포함한 철학적 의식이 담긴 크리에이션을 끊임없이 선보이는 디자이너는 드물다.
‘블랙 쇼크’라는 패션에 대한 새로운 이념 전파
그녀의 사상에 관한 논문이 수없이 쓰였고 작품을 해석하는 방식 또한 참으로 여러 가지다. 이렇듯 가와쿠보 레이는 패션업계에서 카리스마적인 존재이며 항상 새롭고 강한 메시지가 담긴 작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한다.
꼼데가르송의 모든 브랜드는 그녀의 손을 거쳐 나간다. 모든 것을 설계하고 브랜드 구성에도 그녀의 가치관이 깊이 침투해 있으며 옷뿐만 아니라 매장, 인쇄물, 명함이나 리테일 전략도 전부 그녀의 가치관으로 통일돼 있다.
그녀는 크리에이티브이기 이전에 자신은 약 800명의 사원을 책임지는 사장이기 때문에 한순간도 쉴 수 없다고 말한다. 많은 디자이너를 거느리고 있지만 그중 디자인과 패턴이 탁월한 인물은 몇명으로 정해져 있으며 크리에이션은 비즈니스가 성립돼야만 패션으로도 인정받고 성립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어느 한쪽에만 치우쳐 있다면 브랜드를 지속할 수 없고 다음 작품을 만들 수도 없기 때문이다.
가와쿠보 레이, 26세 패션 시작 38세에 파리로
가와쿠보 레이는 사람들 앞에 잘 나타나지 않는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인터뷰를 잘 하지도 않고 자신의 취향을 세상에 잘 말하지 않는다. 그녀가 46년 전에 브랜드를 탄생시키고 지금 세대에도 현저한 활약을 보이며 오랫동안 혁신적인 패션 세계를 보여 줄 수 있는 근원은 이렇게 크리에이티브적인 면은 물론 비즈니스적인 면도 뛰어난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가와쿠보 레이는 26세 때 처음으로 「꼼데가르송」이라는 브랜드로 옷 판매를 시작해 1973년 30세에 회사를 설립, 5년 후에는 맨즈 라인을 발표했다. 1981년인 38세 때 처음으로 파리에서 미니 컬렉션을 발표했고, 그 후 파리에도 회사를 설립해 매장도 오픈했다.
본격적으로 파리에서 컬렉션을 발표한 것은 「꼼데가르송옴므플러스」를 론칭하면서부터다. 「꼼데가르송」이라는 브랜드 잡지를 발간하고 사진전도 발표하며 아주 적극적인 크리에이션 활동과 함께 순조롭게 브랜드도 계속 론칭하면서 비즈니스 우먼으로서도 왕성하게 활약했다.
적극적인 크리에이션 활동과 브랜드 론칭 거듭
처음 파리에서 활약할 당시에도 가와쿠보 레이의 브랜드는 크리에이션 그 자체였으며 자유롭게 창조하며 마켓의 원리를 초월하는 방식(이것도 크리에이션의 일종)으로 브랜드를 전개해 왔다. 성별과 미의 일반적인 개념을 벗어난 중성적이면서 추상적인 옷을 계속 제작해 온 그녀는 아드리안 조페와 결혼하면서 잠재적인 크리에이션 능력을 더욱 발휘할 수 있었고 비즈니스적인 면에서도 더 많은 활약을 보여 줬다.
이런 가와쿠보 레이를 지지하고 오른팔로서 비즈니스적인 면을 도와 주는 사람이 바로 남편 아드리안 조페다. 2014년 블룸버그 비즈니스 위크(Bloomberg Business Week)라는 잡지의 별책으로 발간된 고급 라이프스타일지 블룸버그 퍼슈츠(Bloomberg Pursuits)에 아드리안 조페를 인터뷰한 기사가 있다.
‘패션계의 선승, 카리스마 있는 부인은 혁신적인 탐방(여행)을 계속한다’라는 타이틀로 “아드리안 조페씨는 일본의 대표적인 선 사상과 언어학에 대한 조예가 깊고 온화한 사람으로 보이는데, 잘 모르는 사람은 그의 본성(?)을 알면 깜짝 놀란다. 그는 아주 놀라울 정도로 철저하게 효율성을 중시하는 사람이며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 위해 정신이 산만해지는 요소는 아주 빨리 해치우거나 없애는 성격이다. 이런 점이 그의 가장 두드러진 면이다”라고 실려 있다.
크리에이션&비즈니스 밸런스 잘 유지하는 기업
「꼼데가르송」이 뛰어난 크리에이션으로 지금까지 계속 주목받고 있는 것은 비즈니스를 계속 유지해 오기 때문이다. 매출이 발생하고 이익이 유지되도록 중심을 잡는 것이 바로 아드리안 조페의 역할이다. “비즈니스적인 면에 창조성을 믹스하는 것은 항상 어렵다. 아주 아주 아주 어렵다.” 아드리안 조페는 어렵다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할 정도로 강조한다. 실제로 꼼데가르송의 경영자 입장에서 가와쿠보 레이의 크리에이션을 비즈니스 형태로 만드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일 것이다.
아드리안 조페는 꼼데가르송인터내셔널의 CEO다. 그가 이 세계에 들어오게 된 데는 아주 우연한 일이 계기가 됐다. 남아프라카공화국 출생으로 영국에서 자란 그는 런던 대학에서 일본어와 티베트어를 전공하면서 문화를 공부했다. 원래는 일본에서 공부하려고 1977년 일이 없는 상태에서 일본에 왔고, 오사카에서 살면서 바에서 아르바이트하며 일본어를 완벽하게 마스터했다. 그리고 선 사상에 대해 수행하기(승려가 되기) 위해 아주 신중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그 후 런던에 돌아가 티베트와 불교, 선종의 박사과정까지 공부했다. 그러다가 패션 디자이너가 된 여동생을 위해 도쿄에서 비즈니스를 도와준 것이 계기가 돼 패션업계에 종사하게 됐다. 1987년부터 파리의 꼼데가르송에서 근무하다 1991년 퇴직했는데 가와쿠보 레이의 요청으로 그다음 해에 꼼데가르송으로 돌아왔다.
아드리안 조페, 18년간 함께한 스마트 경영인
1992년 이 둘이 결혼한 후 아드리안 조페가 꼼데가르송의 사장으로 임명됐다. 1993년 꼼데가르송에 취임하면서 그는 기존 꼼데가르송사의 룰을 타파하기 위해 자신이 공부한 철학을 회사에서 사업으로 살릴 수 있는 새로운 방책을 궁리했다. 그 후 수익이 될 파리 꼼데가르송으로 거점을 옮겨 꼼데가르송인터내셔널로 돌아가면서 이듬해인 1994년 「꼼데가르송퍼퓸」 라인을 론칭했다. 그리고 가와쿠보 레이는 도쿄의 사업과 주로 크리에이션 쪽에 집중했다. 글로벌 사업에 든든한 버팀목이 생긴 덕분이다.
아드리안 조페는 가와쿠보 레이가 아주 예민한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진 사장이지만 향수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아주 강력한 권유로 둘은 새로운 분야의 가능성을 감지하고 향수사업을 시작했다. 미용, 화장품 업계의 상식은 무시했다. 현재까지 이들은 77개나 되는 향수를 발표했을 정도다.
아드리안 조페가 꼼데가르송에서 담당하는 많은 일 중 하나는 표면에 나타나는 것이라기보다는 표시 나는 것을 싫어하는 가와쿠보 레이의 통역 겸 창구 역할이다. 그녀는 왠만하면 영어로 말하지도 않으며 자기 자신을 외부 세계에 이해시키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그런 것에는 흥미가 없는 것.
독특하고 까다로운 레이, 세상과 연결하는 브릿지
아드리안 조페는 자신의 일 중에서 아주 어려운 부분이 일적으로 그녀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경우라고 말한다. 과연 가와쿠보 레이가 아드리안 조페를 만나지 않았더라도 「꼼데가르송」이 비즈니스적으로 이렇게까지 성장하고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많은 이가 ‘아니다’라고 대답하는 데 이의가 없을 것이다.
이를테면 「도버스트리트마켓」의 비주얼과 관련해서는 모두 가와쿠보 레이가 주도한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시간이 한정돼 있고, 실제 그녀는 여러 가지 요구를 하고 사라진다. 그 후 아드리안 조페가 우리는 무엇을 바잉할까, 우리는 어떻게 비즈니스 형태로 만들까를 고민한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가치관이 동반돼야 한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기업의 지속가능성 제안이라는 점에서 메인 라인인 「꼼데가르송」의 가치관이 가장 중요하다. 컬렉션을 보면 「꼼데가르송」의 가치관이 무엇인지 컬렉션 안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아드리안 조페는 기본적으로 디퓨전 브랜드 라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메인 라인의 효과를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랜드 가치를 낮춤에도 이런 디퓨전 라인이 비즈니스 면에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브랜드 가치관 동반한 커머셜한 비즈니스 라인
꼼데가르송의 가와쿠보 레이와 아드리안 조페의 성공 법칙 첫 번째는 커머셜한 디퓨전 라벨 개발이다. 아드리안 조페는 비즈니스와 창조성은 항상 딜레마의 관계라고 말한다. 이 딜레마의 원천은 가와쿠보 레이가 갖고 있는 것이며 패션기업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다.
하나는 돈을 만들어 내는 방법, 또 하나는 세계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가와쿠보 레이의 크리에이션을 서포트하는 방법이다. 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이런 맥락에서 그는 매장을 만들거나 프랜차이즈를 늘리거나 하는 것에 대해서도 항상 그런 문제와 함께 고민한다.
꼼데가르송 그룹의 연간 매출은 약 215억엔(약 2000억원, 2013년 추정치)인데 그는 “우리가 여태까지 이렇게 올 수 있었던 것은 열렬한 팬이 있기 때문”이라고 늘 강조한다. 꼼데가르송의 가치관을 지켜 나가고 동시에 디퓨전 라인을 계속 만들어 가면서 크리에이션을 동반한 상품을 통해 비즈니스적인 면을 유지하고 성장해 나가도록 하는 것은 온전히 아드리안 조페의 역할이다.
「도버스트리트마켓」 론칭과 커머셜 디퓨전 라벨
아드리안 조페는 2004년 멀티 브랜드 리테일이라는 콘셉트로 영국 런던에 「도버스트리트마켓」을 오픈했다. 그리고 당시 센세이셔널했던 이 유니크한 편집숍을 2012년 도쿄에도 오픈한 후 2013년 뉴욕에까지 비즈니스를 확장했다. 그의 성과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상업적인 성공이다.
그가 주로 관리하는 브랜드는 여러 가지 의류와 액세서리, 잡화 분야, 예를 들면 「월렛꼼데가르송」 라벨(지갑 관련)과 영층을 타깃으로 셔츠 중심으로 전개한 「플레이꼼데가르송」이다. 가와쿠보 레이의 가치관을 잘 지키면서 베이직한 패션으로 해석한 이 같은 상업적 성과가 큰 커머셜 라벨을 만들고 관리한다.
이들의 성공 법칙 두 번째는 콜래보레이션과 게릴라 스토어다. 아드리안 조페의 아이디어는 다른 곳에서는 절대 따라 할 수 없을 정도로 혁신적이다. 예를 들면 「꼼데가르송」의 기간 한정 게릴라 스토어다. 지금은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매장 형태로, 단어 그대로 돌발적인 콜래보레이션 형태의 기간 한정 스토어를 말하며 지금의 팝업 스토어의 원형을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다.
비틀스 등 다양한 아티스트와 콜래보레이션
「꼼데가르송」은 일찍부터 동종업계 혹은 이업계와의 콜래보레이션을 실행해 왔고 별주(別注, 별도 주문) 아이템이라는 분야와 관련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해 왔다. 그중에서도 「준야와타나베꼼데가르송맨」은 매년 콜래보레이션 라인을 보여 준다.
아티스트(비틀스, 구사마 아오이, 롤링스톤스, 만화가 맷 그레이닝(Matt Groening) 등), 캐릭터(디즈니, 핑크팬더), 패션 브랜드(「스테판존스」 「레페토」 「몽클레어」 「크롬하츠」 「비즈빔」 「비비안웨스트우드」 「언더커버」 「슈프림」 등)는 물론 잡지를 비롯해 성공적인 콜래보레이션과 팝업 스토어는 언제나 화제를 모은다.
성공 법칙 세 번째는 「꼼데가르송」의 철학, 가치관을 철저하게 지키면서 역할을 분담해 신규 사업에 도전한 것이다. 아드리안 조페의 역할을 아주 명확히 말하는 것은 어렵다. 가와쿠보 레이가 꼼데가르송에서 디자이너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한 종교의 교주 같은 존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와쿠보 레이는 주로 도쿄에서 생활하고 지금도 일본 국내 사업에 대해서는 사내 본사에서 직접 지휘한다.
철학, 가치관 철저하게 지키면서 신규 사업 도전
아드리안 조페는 전 세계의 리테일 사업을 담당하면서 지금까지 꼼데가르송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을 생각해 낸다. 런던, 뉴욕, 도쿄를 거점으로 백화점이 아닌 개념의 상업시설 중 좋은 평가를 얻고 있는 상업 공간 「도버스트리트마켓」을 총괄한다. 신규 사업과 함께 향수 부문도 꼼데가르송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신규 사업에 대해 그의 철학이 담긴 문구가 있다. “디퓨전 라인을 생각할 때 「랄프로렌」은 「RL」, 「도나카란」은 「DKNY」으로 전개한다. 디퓨전 라인의 타이틀에는 통상 간단한 이름을 붙이지만 우리는 「꼼데가르송」의 세컨드 라인을 만들 때 일부러 「꼼데가르송꼼데가르송」이라는 긴 타이틀을 고집했다.
「꼼데가르송꼼데가르송」은 디퓨전 라인이 아니라 확장판이기 때문이다. 「꼼데가르송」의 리얼한 가치관을 보여 주는 컬렉션 라인과 비교했을 때 메인 컬렉션 라인과 너무 동떨어져 버리면 「꼼데가르송」의 가치관을 유지할 수 없다. 역시 「꼼데가르송꼼데가르송」의 콘셉트 배경은 메인 라인인 「꼼데가르송」이 없으면 존재할 수가 없다.”
「플레이꼼데가르송」 등 17개 브랜드 수평적 확장
「플레이꼼데가르송」 같은 베이직한 라인인 T셔츠, 카디건, 스웨트셔츠, 니트웨어 그리고 그 외 캠퍼스 스니커와의 콜래보레이션 라인은 기업에 아주 중요한 이익이 되는 라인이다. 「플레이꼼데가르송」은 총매출의 약 12%를 차지하며 현재 꼼데가르송에서 아주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성공 법칙 네번째는 「플레이꼼데가르송」 등 17개 브랜드의 수평적 확장이다. 그는 「플레이꼼데가르송」이 이렇게까지 성장할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한다. 뉴욕 베이스의 그래픽 디자이너 필립 파고스키와의 콜래보레이션으로 우연히 만든 눈 뜨고 있는 하트 로고는 「꼼데가르송」의 철학을 잘 보여 준다. 이 브랜드는 「꼼데가르송」의 가치관을 잘 반영하면서 매출 면에서도 중요한 원천이 되는 효자 브랜드다.
준야 와타나베 등 꼼데 2세 디자이너 육성과 활약
「꼼데가르송」은 명확한 타깃층이나 객층이 있는 브랜드가 아니다. 때문에 상하 관계(수직적인)의 브랜드 확장보다 평행 확장으로 자유롭게 성장해 나가는 정책을 펼친다. 이에 대해 아드리안 조페는 “이렇게 브랜드를 항상 평행한 레벨로 유지하지 않으면 우리는 깊이 있게 성장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다국적기업처럼 세계 여기저기에 플래그십을 오픈하거나 할 수 있는 형편이 아니고 그럴 만한 충분한 여유가 없다. 하지만 그런 반면 브랜드를 옆으로 옆으로 확장해 기업을 성장시켜 나간다”라고 설명한다. 바로 이것이 꼼데가르송이 17개라는 많은 브랜드를 보유한 이유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 브랜드를 계속 유지할 것이고, 각 브랜드의 오리지널리티를 지키면서 천천히 자연스럽게 성장하기를 바란다.”
성공 법칙 다섯 번째는 준야 와타나베 등 꼼데 2세 디자이너들의 육성과 이들의 눈부신 활약이다. 이 회사의 미래에 대한 그의 생각은 어떨까. “가와쿠보 레이가 꼼데가르송 그룹 관련 주식을 대부분 소유하고 있다. 하지만 상장하더라도 투자자를 모집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꼼데가르송에는 약 800명의 종업원이 있다. 그리고 이 중에 유능한 디자이너들이 있다. 이들은 가족과도 같은 존재다.”
브랜드 지탱하는 강한 정신력이 아이디어 근원
준야 와타나베, 간류, 구리하라 다오가 대표적인 디자이너이며 해외에서의 인지도도 높아졌다. 2013년 S/S부터는 패턴 디자인을 담당하던 디자이너를 발탁해 새롭게 브랜드를 론칭했다. 바로 「노와르케이니노미야(noir kei ninomiya)」이며, 니노미야 케이는 꼼데가르송에서 배출한 다섯번째 디자이너다.
이들은 모두 가와쿠보 레이가 눈여겨보고 키워 온 디자이너들이며 꼼데가르송의 미래를 지켜 나갈 중요한 존재다. 카리스마적 존재인 가와쿠보 레이와의 사이에서 쿠션 역할을 하며 밸런스를 맞춰 가는 아드리안 조페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든든히 지켜 주는 차세대 디자이너들이 있고 비즈니스적인 면에서 끊임없이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은 꼼데가르송이 정말 영원히 계속될 살아 있는 일본의 대표적 브랜드가 틀림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성공 법칙이다.
마지막 성공 법칙은 브랜드를 지탱하는 강한 정신력이 아이디어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성공한 브랜드를 유지하고 계속 새로운 창조를 하기 위해서는 아주 강한 정신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이 부부가 아니면 과연 꼼데가르송이 성공할 수 있었을까? 아드리안 조페 외에 「꼼데가르송」이 이렇게까지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가와쿠보 레이의 크리에이션을 이해할 수 있게 세상에 내보내고 해석할 수 있게 하는 인물이 또 있을까? 이들은 황금 콤비라고 할 수 있다.
카리스마적인 가와쿠보 레이는 패션 세계에서는 너무나 멀고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다. 남편 아드리안 조페가 세상에 그녀의 크리에이션을 통역해 주고 비즈니스적으로 뒷받침해 주었기에 지금의 꼼데가르송이 가능할 수 있지 않았을까?
가와쿠보 레이의 46년, 창조와 상업의 융합 경영
패션업계에 동업계에 종사하는 부부는 많다. 개인의 개성적인 삶과 일이 합쳐지고 나면 ‘어떻게 하면 계속 브랜드를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아주 어려운 문제에 닥친다. 결국 표면에도 나타나기 마련인데, 가와쿠보 레이는 현재 72세다(누구도 믿을 수 없는 나이). 자기 자신이 만든 크리에이션이라는 룰과 목표는 매 시즌 가와쿠보 레이 본인을 아주 강하게 만들었다. 철학적인 개념이기는 하지만 아드리안 조페는 이 부분에 대해서 “아주 큰 고뇌다”라고 말한다.
가와쿠보 레이가 지금까지 가꾸어 온 약 46년 동안의 행적은 단 6개월 만에 새로운 크리에이션을 계속 발표하는 것이었다. 그 새로운 작업들은 늘 성공해 왔고 이런 경험이 점점 무거워져 자신을 더욱 힘들게 한다고 한다. 이렇게 말하는 아드리안 조페도 절대 타협하지 않는 성격이다. 그는 불교 사상을 받들고 종교로 수행하면서 매일 명상하는 습관이 지금도 아주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창조성이 필요한 많은 기업에서 예술과 상업적인 면의 밸런스까지 갖추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예술적인 면과 상업적인 면 어느 한쪽도 무시할 수 없는 패션업계에서 이 둘은 콤비를 이루어 아주 멋진 형태로 융합해 브랜드를 유지하고 있다.
**패션비즈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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