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장 진출 해법 없나?
“얼마 전 중국 진출을 추진하는 R기업으로부터 한국인이든 중국인이든 상관없으니까 영업총괄 가능한 인재 후보군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여러 루트를 통해 조사해 보니 이 회사가 중국 진출을 위해 70억원에 가까운 자금을 확보하는 등 나름 체계적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어요. 한국인 5명과 중국인 5명을 추천했고 최종 면접까지 진행했으나, 최종결정은 ‘사장님이 명품 브랜드 출신으로 직원을 채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서 직원 채용이 전면 보류됐어요.”
이는 최근 중국 상하이에서 13년째 근무 중인 모 패션기업의 지사장이 들려준 얘기다. 한국에서 매출 규모가 1000억원 넘고, 조직력과 자금력, 기업 신뢰도까지 갖춘 나름 탄탄한 패션기업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시장의 현실을 너무 모른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 것은 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돌파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견해차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한국 패션기업, 중국 사업설계 준비 태부족
“한국 패션기업이 중국시장을 공략해 들어가는 방식이 전근대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준비해서는 아무리 한·중 FTA가 체결됐다 하더라도 중국에 진출하면 다 망해요. 수십억~수백억원에 달하는 투자비만 몽땅 날릴 뿐이죠. 수많은 한국 패션기업이 진출했지만 이랜드와 베이직하우스를 제외하고 제대로 성과를 올리지 못했어요. 실패 사례를 면밀히 검토하고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데 아직도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습니다”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지적하는 한국 패션기업의 중국 진출에서 나타난 문제점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압축하면 중국 사업설계에 대한 준비 부족, 즉 글로벌 사업에 대한 노하우 부족이다. 이는 중국 사업을 위한 TF팀을 짤 때부터 어긋나기 시작한다. 한국 중소패션기업들이 중국 진출을 위한 준비팀을 구성할 때 주로 대학에서 중국어를 부전공한 사람과 중국 몇 번 다녀온 사람 위주로 뽑는다. 중국시장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상태로 비즈니스의 기초 설계가 어설프게 짜인다는 것.
R기업 역시 중국 전문가들로 TF팀을 짜기보다는 중국 진출을 먼저 단행한 경쟁사 S사에서 두 명을 스카우트해 와 준비를 맡겼다. 그러나 이들은 중국시장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는 전문가라기보다는 어깨너머로 풍월을 들었던 수준에 불과했기 때문에 실질적인 비즈니스 설계에 들어가서는 계속 난관에 부딪히기 일쑤였다.
中 진출 TF팀, 비전문가로 구성되기 일쑤
영업총괄 책임자를 결정하는 데도 한국인을 내세울 것인지, 중국인을 내세울 것인지 방향성이 없었으며 현지 채용 관리기준도 세워져 있지 않았다. 그저 월급 싼 사람을 구하는 데 급급한 수준이었다. 중국인과 근무해 본 경험치가 전혀 없기 때문에 이들의 업무수준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당장 눈앞에 드러난 문제점이다.
비단 R기업뿐만이 아니다. 한국 패션기업들은 막연하게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중국인을 채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시스템을 제대로 만들 수 있는 중국인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글로벌 브랜드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중국인일지라도 이들은 글로벌 본사의 시스템대로 일하고 본사에서 지시하는 일만 했기 때문에 한국 본사에서 원하는 형태로 조직을 짤 수 있는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
또한 한국어 의사소통이 가능한 중국인을 영업총괄 책임자로 구한다고 해도 현지 입점 조건에 대한 협상과정의 세밀함을 한국 본사에서 컨트롤 가능할지 의문이다. 막상 운영에 들어가면 상품대금을 비롯해 사무실 및 매장 운영비(임대료, 매장월세, 급여, 인테리어 등) 물류비 창고비 관세비 운송비 GB*테스트 비용, AS와 마케팅 비용에 이르기까지 챙겨야 할 항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글로벌 사업 노하우 부족, 中 진출 실패 속출
상품의 입고시기 조율 및 매장 인테리어 VMD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디테일과의 싸움이다. 이를 세밀하게 컨트롤하기 위해서는 현지에서 충분히 경험을 쌓고 노하우를 갖춘 제대로 된 전문가와 손잡는 것이 성공적인 중국 진출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매장을 확보하고 매출을 얼마 올리느냐보다 중요한 것이 어떤 인재를 통해 사업 진출의 구조와 판을 어떻게 짜느냐임에도 여기에 대한 전략적인 고민과 설계가 턱없이 부족한 것이 한국 패션기업들의 중국 진출 현주소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명확한 사업 비전이 세워져 있지 않음에도 중국시장에 대한 근거 없는 자신감, 알 수 없는 자신감은 하늘을 찌른다. 핵심 상권에 매장만 내면 쉽게 대박 매출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허황한 기대가 가득한 것이 더 큰 문제다.
“R사의 대표 브랜드인 「J」가 현재 롯데백화점 잠실점에서 월 6억~7억원 정도를 판매한다고 합니다. 이 중 중국 고객의 매출비중이 70~80%를 차지하기 때문에 중국에서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하더군요. 선발 경쟁브랜드도 중국에서 고공비행을 거듭하고 있는 만큼 매장만 내면 매출은 자신 있다는 거예요. 그러나 중국 A급 상권에 매장을 오픈해도 허탕을 치는 경우가 주위에 즐비합니다. 중국 현지에 맞는 상품기획이 이뤄지지 못하면 1년 이상 영업을 해도 매장 운영비조차 제대로 못 건져요”라는 그의 지적이 뒤따른다.
철저한 전략 수립, 이랜드 등 벤치마킹 필수
중국 관광객이 구입하는 브랜드가 현지에서도 잘 판매될 것이라는 가정은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중국 관광객이 한국 여행 시 잘 구매하지 않는 이랜드, 베이직하우스가 왜 중국에서 폭발적으로 성장했을까? 이를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고 아주 단순한 가정으로, 초보적인 사업전략으로 중국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아주 위험하고 또 위험한 생각이다.
“중국에 진출하는 대부분의 한국 패션기업은 상하이 쉬자후이 강후이광장 2층에 매장을 오픈하고 싶어 합니다. 이곳 강후이광장 쇼핑몰 2층에는 「MCM」 「케이트스페이드」 「DVF」 「클럽모나코」 「막스앤코」 「아네스B」 등 글로벌 세컨드-티어스* 브랜드들의 각축장이지요. 이곳에 매장을 오픈하겠다는 「J」의 목표의식은 좋습니다.”
“그러나 중국 백화점 바이어들이 왜 듣도 보도 못한 한국 브랜드를 입점시켜야 하는지, 자신들을 입점시키면 어떤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다른 고민이 없어요. 철저한 사전 진출전략이 수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남들이 하니까 한다는 의식이나, 한·중 FTA 체결에 따라 더 늦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는 생각으로 중국에 진출한다면 그 결과는 너무나 불을 보듯 뻔합니다”며 오히려 자중할 것을 권했다.
그렇다면 중국 진출의 초기 리스크를 줄일 방법은 없을까? 기업 규모에 따라 대응책은 다르겠지만 중소기업의 경우는 중국 현지 법인 운영보다는 한국 사업부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는 조언이다. 중국 실정을 모르는 가운데 경험이 없는 본사 사업부 직원이 파견돼 현지 업무를 하기보다는 한국 본사에서 중국을 컨트롤하는 것이 초기 위험부담을 줄일 수 있는 이상적인 접근법이라는 것.
초기 리스크 줄이려면? 韓서 컨트롤해야~
미국을 대표하는 어포더블 럭셔리 브랜드 「토리버치」도 베이징 신광천지 정상매장과 톈진 플로렌샤 아울렛 등 2개 매장으로 3년을 운영하면서 시스템을 숙성시킨 뒤 본격적인 확장이 이뤄졌다고 한다. 「DVF」도 중국 내 5개 매장 운영 시까지 현지 사무실 없이 매장에 팩스와 컴퓨터 2대(본사 보고용, 매장용)를 갖추고 미국 본사에서 상품 동향을 직접 컨트롤했다는 것. 미국 본사에서 홍콩 대리상을 통해 중국 본토 점장을 컨트롤하는 절차가 이뤄진 셈이다. 대신 미국 본사에는 중국 프로젝트팀을 두고 1개월 1회 7일 출장기간으로 중국을 방문해 각 매장 관리가 뒤따랐다고 한다.
이제 G2로 급부상한 중국은 아무나 진입해서 성공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 시스템을 먼저 완성하고 확장하는 수순을 거쳐야 한다. 멀리서 벤치마킹 사례를 찾을 필요도 없다. 이랜드와 베이직하우스가 중국에서 성공한 이유를 면밀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이 기업이 중국에서 성공한 이유는 무엇보다 그룹 내 CS(Chief Strategy)와 CH(Chief Human) 부서가 탄탄하기 때문이다. 사업부에서 아무리 장밋빛 미래를 그린 사업계획을 가져와도 냉철하게 분석해서 사업이 되게끔 하는 구조적인 시스템 설계가 잘 짜여 있다.
이번 한·중 FTA 타결을 계기로 한국 중소패션기업들도 냉철하게 중국 진출 프로젝트를 짜 나가야 한다. “중국시장을 우습게 보지 말고 더 많은 준비를 하고, 본인들이 모를 때에는 겸손하게 시장을 잘 아는 전문가를 채용해서 최소 6개월은 준비를 하고 중국에 진입해야 합니다.” 중국 전문가의 현실적인 조언을 잘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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