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업체 죽이는 ‘롱테일* 어음’

esmin|14.11.07 ∙ 조회수 11,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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션소재업체인 A사는 지난 4월23일 스포츠 아웃도어 전문 프로모션인 하림으로부터 부도를 맞았다. 하림은 화승에 납품하던 봉제 프로모션으로 부도금액은 총 50억원. 이 금액 중 화승에 관련된 원부자재업체들이 하림으로부터 받은 부도금액만 28억8000만원이다. 이번 부도를 맞은 업체들이 모인 채권단(TBinc 외 20여개사)은 하림을 사기죄로 고소했다.

채권단에 따르면 관련 원부자재업체들이 지난 2013년 11월부터 2014년 4월까지 하림에 납품한 대금을 받지 못했다는 것과 이 부도가 ‘고의’일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피해업체들은 하림이 부도를 내기 전에 별도의 법인을 만들어 채무는 하림에 남기고 채권은 이 법인에 남기는 수법으로 자금을 빼돌리고 고의로 파산신청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하림의 사기죄 고소에 대해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이다(박스 1 참조).

이 사건을 들여다보면 그 배경에는 브랜드업체 → 프로모션 →원부자재업체로 이어지는 국내의 뿌리 깊은 ‘불공정 결제관행’과 그로 인한 산업의 경쟁력 약화라는 큰 이슈가 숨어 있다. 이번 하림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2013년 11월에 원단을 프로모션에 납품한 원단업체는 그 달에 마감해서 12월 말 하림으로부터 3개월 23일짜리 어음을 받았다. 총 115일짜리 어음이 떨어지기 직전인 4월23일, 하림은 부도를 냈다.

하림 50억 부도로 28개 원부자재 기업들 ‘휘청’

프로모션들은 브랜드에서 결제를 받아 원부자재 업체에게 결제를 해준다. 대체로 아웃도어 스포츠캐주얼 프로모션들은 원부자재 대금의 어음 결제를 납품 후 익월 말일자에 지급한다(11월30일 납품이면 그다음 달 말일이니 30일 만에, 달이 바뀌어 1일에 받으면 60일 만에 지급).

원단업체 입장에서는 그 어음이 3개월 25일짜리라면 +115일이 되므로 아무리 빨라도 총 145일이, 길게는 175일이 지나야 현금화되는 셈이다. 통상 3개월짜리 어음일 때 납품 후 5~6개월이 지나야 마침내 '돈'이 된다. 3개월짜리면 120~150일, 5개월짜리면 180~210일인 6~7개월이 소요된다.

반면 원단업체는 가공 전 원단인 인그레이(생지)를 구매할 때 그 다음 달 바로 생지에 대한 대금결제를 해 줘야 한다. 그 생지는 가공을 거쳐 대금 지급달의 다음 달에 출고된다. 생지원단을 생산 가공하는 2~3개월의 리드타임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원단업체는 이 단계부터 돈이 1~2개월 묶인다.

결제 후 4~8개월 후 현금화 ‘불공정 관행’ 심각

원단업체는 브랜드가 아닌 프로모션으로부터 결제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우량 기업에서 받을수있는 것이 3개월짜리 어음. 지급 날짜가 정해져 있어(3개월 후 통상 5일 10일 15일 20일로) 결국 기간은 95~115일까지 기간이 늘어난다. 소재업체 입장에서는 생지대금을 선지급해야하므로 월말 자금 수요를 따지면 실제 받을 돈과 나갈 돈의 텀이 최소 4개월로 늘어나는 셈이다.

때문에 원단업체는 국내에서 살아남으려면 최소 매출의 50% 정도는 자금력을 확보해야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음을 할인해야 하는데 지금 극도로 경쟁이 치열한 섬유산업의 상황에서 사실 어음할인 이자를 제외하고는 마진을 확보하기가 상당히 어려운 실정이다.

아웃도어 기능성 원단업체인 B사는 올해 하림을 비롯해 부도 2건을 맞았고 작년에도 2건(1억원)을 맞았다. 지금 패스트패션을 비롯 글로벌 브랜드들이 급성장하고 내수 브랜드들의 성장이 부진하거나 도태되는 상황에서 아웃도어 시장마저 활기를 잃고 점점 위축되고 있어 부도 위험성도 늘고 있다.

완사입 생산방식 늘면서 결제관행, 기간 더 악화

자금력이 좋은 빅 브랜드에는 역시 비교적 안정적인 프로모션들이 포진해 부도 위험이 덜하나 거래할 수 있는 진입장벽이 높다. 중저가나 중소형 브랜드들은 진입장벽이 높지 않으나 취약한 프로모션들과의 거래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어서 거래를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상황.

게다가 이런 프로모션의 부도에 대비하기 위해 매출채권보험이라는 제도도 있지만 실제 그 보험금의 요율이 너무 높아 비용부담이 과다하다보니 대부분 업체들은 그런 제도가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때문에 항간에는 금융기관을 배부르게 하는 제도가 아니냐 하는 지적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윤을 추구하는 회사 입장에서 매출 증대를 꾀해야 하나 부도의 위험성 때문에 적극적으로 거래를 활성화하지 못한다. 그 결과 제품 개발이나 마케팅 투자는 먼 나라의 일일 뿐이다. 한국의 섬유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긴 어음제도가 결국 이런 부분으로 연결되는 것. 정부에서 섬유산업 발전을 외치고는 있으나 공염불이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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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단업체, 열악한 프로모션과 거래 ‘할까, 말까’

사실 패션업계에서 긴 어음할인 기간은 오랜 관행이다. 지금은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자산규모 기준 대기업들의 어음기간을 2개월 이상 주지 못하게 돼 있다. 하지만 원단업체들은 대부분 브랜드와 직접 거래하는 것이 아니고 프로모션과 거래하므로 이 룰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중간에 끼어 있는 프로모션들이 결제를 받고도 다음 단계인 소재업체에 결제를 해 주지 않으면 그뿐이다.

해외 생산이 늘어나는 것도 문제. 과거 국내 생산일 때는 생산기간이 지금보다 짧았다. 지금은 해외 생산이 늘어 운송기간 등을 포함하면서 프로모션들도 원단을 납품받아 완제품을 만들어 공급하는 리드타임이 한두 달 더 길어졌다.

프로모션들의 열악한 마진구조도 심각하다. 오더를 주는 브랜드 본사에서 프로모션에게 인정해 주는 전체적인 마진 구조는 공식적으로 10~13% 내외다. 프로모션들이 날고 뛰어 마진을 더 확보한다고 하면 17%, 불량 반품 클레임 납기지연으로 에어로 싣고 어쩌고 하면 결국 봉제해서 10% 이상의 마진을 확보하기가 어렵다. 정확히 얘기하면 7% 선으로 추정된다.

해외 생산 늘면서 생산 리드타임 한두 달 더 늘어

거기에서 은행이자도 내고 어음할인도 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프로모션의 매출이 20% 30% 늘어나도 실제 자기자본이 그렇게 늘어나지는 않는다. 열악한 마진 구조 때문에 브랜드 매출이 20~30% 신장하고 그에 따라 프로모션의 매출이 20~30% 신장해도, 느는 만큼 자기자본이 늘기 어렵다는 얘기다.

브랜드가 신장해서 그만큼 많은 물량의 오더를 프로모션에게 준들 생산업체는 더 많은 원단을 생산하고 사입도 더 많이 해야 한다. 많이 신장할수록 돈이 부족하다. 낮은 이익 구조 때문에 프로모션의 자기자본이 매출 신장률을 따라가지 못해 결제 여력은 점점 약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구조가 지금의 현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금 잘못된 관행에 대해 프로모션만 탓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프로모션들이 돈이 없어 줄 능력이 안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아웃도어의 성장과 함께 고기능성 아웃도어에 특화된 프로모션이 많지 않아 일부 프로모션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프로모션 현실? 낮은 마진 구조 벌면 벌수록 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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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마트 아이보리 유니코글로벌 풍신 거화(KH) 원전교역 등 아웃도어 전문 프로모션들의 경우 급성장해 1000억원대 이상의 규모가 될 정도로 성장했다. 이런 프로모션들은 어느 정도 규모도 되고 잘 돌아간다. 그러나 이런 업체들도 거래조건은 비슷하다. 한 업체의 사례를 보면(아래 TIP 참조) 결제조건이 좋은 데가 2~3개월, 안 좋은 데가 4~5개월까지 간다. 7개월 8개월짜리가 나오는 프로모션도 있다.

브랜드와 프로모션간 거래방식에는 완사입, CMT, 임가공 세 가지가 있다(박스 2 참조). 프로모션이 모든 상품을 완성해 납품하는 완사입과 원자재를 브랜드에서 구매해 그 원자재를 프로모션으로 넘겨 봉제하는 CMT가 있고 두 가지를 병행하는 브랜드도 있다.

결제방식은 천차만별이다. CMT의 경우 브랜드 본사에 상품이 입고되면 납품 후 바로 다음 달에 프로모션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브랜드도 있다. 하지만 이는 자금 사정이 좋은 일부 브랜드의 경우로 극히 드물다. 대부분 완사입 형태로 이뤄지고 CMT인 경우라도 자금 사정이 좋지 않은 곳이면 4~5개월짜리 어음이 나오기도 한다.

브랜드도 자금난, 완사입 → CMT로 마진 구조 변경

CMT는 옷을 생산하는 봉제료와 그에 대한 마진을 브랜드 본사가 가져가고 완사입은 프로모션이 원부자재를 구매하므로 프로모션의 자금으로 구매해서 프로모션의 책임하에 진행된다는 점이 다르다. 프로모션 입장에서 CMT로 바뀐다는 것은 결국 매출도 마진도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 프로모션은 완사입을 원하고 특히 경쟁력 있는 프로모션들은 CMT를 하지 않으려 한다. 최근 일부 스포츠아웃도어 기업들이 프로모션과의 거래방식을 완사입에서 CMT로 변경하고 있다. 이는 브랜드 본사가 마진을 더 취하는 방식으로 바꾸는 것으로서 오래동안 거래해 오던 대표 프로모션들이 거래를 끊는 사례도 있다고 한다.

최근 스포츠아웃도어 업체들이 거래방식을 완사입에서 CMT로 전환하는 추세라 앞으로 프로모션의 부도 도산은 더욱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그 하부구조에 있는 원단업체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전전긍긍하고 있다.

‘상생’으로 지속가능한 패션비즈니스 요원할까?

완사입의 경우도 구조적으로 브랜드 업체에서 마진 구조가 약한 을 기업(프로모션)에 결제권을 넘기는 것이 맞는가 하는 의문도 남는다. 이번에 하림의 재판을 진행하면서 담당 변호사가 “원단의 컬러 가격 납기 선적 스케줄 등도 브랜드에서 정하고 품질성적서 컬러 컨펌 등도 모두 했으므로 그 브랜드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것이 돈을 받기 더 쉽지않겠나"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패션산업의 관행이 참 잘못돼 있더라는 것이 그 변호사의 의견이다.

하지만 을 기업인 원부자재업체 입장에서는 “우리가 현재 거래를 하고 있는 갑 기업을 함부로 공격할 입장도 못 되고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도 모르겠다”라며 한숨을 쉬었다.

이런 잘못된 결제관행은 대체 어디에서 시작된 것일까. 시작점을 기억할 수도 없이 '원래 그래왔다'라는 관행을 우리는 언제까지 계속할 것인가. 이제 우리는 좀더 지속가능한 방식의 비즈니스를 고민해야 하지않을까. 고도성장을 누린 기업이 자신의 성장을 도와준 후속단의 협력업체들과 그 수혜를 나눠가짐으로써 서로가 서로의 경쟁력을 더해주는 멋진 관계, 국내에서는 요원한 것일까.

**패션비즈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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