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문패션, 이번엔 부활할까?
롯데백화점을 비롯 주요 쇼핑몰에 동대문패션 진출이 줄을 잇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영플라자 명동점을 시작으로 전점에 영스트리트와 온라인 장르를 확대해 가고 있으며, 현대백화점은 영 타깃의 유플렉스 중심으로 동대문패션을 늘려 가고 있다. 롯데자산개발에서 작년 5월 말 오픈한 ‘롯데피트인’은 동대문패션 중심으로 매장 MD가 짜였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동대문패션은 도매상권에 자리한 ‘두타’ ‘밀리오레’ 등 소매쇼핑몰과 「스타일난다」 등 온라인 브랜드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제도권 브랜드와 해외 명품 브랜드 위주로 매장이 구성된 빅3 백화점에서 동대문패션을 접하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동대문패션이 넘쳐 난다.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느낄 정도다.
왜 이렇게 상황이 돌변했을까? 2000년대 후반만 해도 국내 백화점들은 고급화에 목을 맸고, 명품 수입 브랜드 유치에 사활을 걸었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와 경기불황이 장기화하면서 백화점의 주력 MD이던 명품마저 팔리지 않게 됐다. 백화점을 찾는 소비자들이 명품 대신 합리적인 구매성향을 보이기 시작하자 백화점 측은 새로운 콘텐츠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불과 2~3년 만에 동대문패션 수면위로 급부상
글로벌 SPA의 급성장도 영향력이 컸다. 백화점들이 앞다퉈 유치한 글로벌 SPA를 접해 본 소비자들을 기반으로 패스트패션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그와 견줄 수 있는 동대문패션을 적극 수용하기 시작한 것. 제도권 브랜드보다 퀄리티가 떨어지더라도 트렌디한 제품을 빠르게 소화해 낼 수 있는 동대문패션에 대한 이해도가 상승한 것이다. 더불어 동대문패션도 2000년대 이후 제도권 출신이나 패션을 제대로 공부한 신진 디자이너들이 속속 가세하면서 퀄리티 향상이 이뤄졌다.
온라인 시장의 급성장 역시 동대문패션의 양성화·활성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모든 거래 자료가 투명하게 오픈되는 온라인 시장의 급팽창을 계기로 그동안 고질적으로 문제가 되던 무자료 거래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흐름을 보인 것.
동대문시장을 ‘레몬 시장*’이라 부르며 정보 비대칭의 대표적 시장으로 설명하던 시기는 지났다. 거래의 투명성이 요구되는 구조가 동대문패션시장의 판도를 바꿔 과거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부흥기를 맞이하고 있다.
경기침체 · 불황 여파로 알뜰구매 확산이 계기
동대문패션에 대한 문호가 활짝 열리자 제도권 비제도권 가릴 것 없이 패션기업들은 앞다퉈 리테일형 브랜드를 선보이고 있다. 백화점에서 ‘찬밥 신세’로 내몰리던 제도권 패션기업들도 소비자들이 거부감 없이 동대문패션을 받아들이자 이를 비즈니스 모델로 적극 개발하는 분위기다.
여성복 대표기업인 아이올리(대표 최윤준)는 「랩」을 통해 동대문패션을 소개하고, 위비스(대표 도상현)는 「컬처콜」로 이 흐름에 동참했다. 캐주얼 대표주자인 MK트렌드(대표 김상택 김문환)는 「KM플레이」를 통해 동대문패션을 담아낸다. 영캐주얼 「숲」을 전개하는 동광인터내셔날(대표 이재수)은 「플러스에스큐」와 「데카당스」를 선보였다. 최근 아이디룩(대표 조승곤)은 별도법인 아이디조이(대표 이은경)를 설립하고 「레코브」로 중저가 패스트패션 시장에 도전했다.
「토모톰스」를 비롯 「브루앤주디」 「SBO」 「주마」 「아이디」 등 동대문 태생의 브랜드들도 활동영역을 넓혀 가고 있다. 제도권 출신이 뛰어들어 론칭한 「스칼레토」 「앤도르」 「플러스마이너스제로」도 공격적으로 유통망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글로벌 SPA 성장 계기로 패스트패션 이해도 ↑
이뿐만 아니라 ‘원더플레이스’ ‘레벨파이브’ ‘스마일마켓’ ‘스파이시칼라’ 등 리테일 시대 환경에 맞춰 태동한 편집숍 브랜드들도 동대문패션을 근간에 놓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다. 여기에 「스타일난다」 「난닝구」 「나인걸」 등 온라인에서 기반을 닦은 뒤 오프라인에 진출한 브랜드에 이르기까지 동대문패션을 담아내는 그릇의 형태는 각양각색을 띠고 있다.
그야말로 동대문패션 전성시대다. 최근 2~3년 동안 제도권의 패션 브랜드 론칭은 몇 손가락으로 꼽힐 만큼 극소수인 반면 동대문 베이스의 리테일 브랜드 론칭은 하루가 멀다고 이어지고 있다. 40년에 달하는 국내 패션시장에서 동대문패션이 이토록 전면에 부상한 적이 있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80년대 후반 「빌리지」 「포스트카드」 등에 의해 동대문패션이 처음으로 가두상권에 진출했다. 2000년대 중반에는 「소울21」 「타이거샵」 「양파주머니」 「버스갤러리」 등에 의해 가두 비즈니스가 펼쳐졌다. 그러나 이 동대문패션 브랜드들의 수명은 그리 길지 못했다. 고공비행을 거듭하던 경제성장의 흐름 속에서 ‘싼 게 비지떡’ ‘비쌀수록 좋다’라는 소비자들의 거품의식과 무자료 거래가 일상화된 도매시장의 현실에 동대문패션이 제대로 양성화·활성화되지 못한 것.
투명거래 온라인, 동대문패션 양성화 이끌어
그러나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획기적인 전환이 이뤄졌다. 편집숍 「원더플레이스」 1호점 오픈(2010년)과 여성복 대표기업 보끄레머천다이징의 「코인코즈」 론칭(2010년) 아이올리(대표 최윤준)의 「랩」 출범(2011년) 온라인 전문 난다(대표 김소희)의 「스타일난다」 오프라인 1호점 홍대점 오픈(2012년) 등은 최근 4~5년 사이에 일어난 일들로 동대문패션이 수면으로 급부상하는 계기가 됐다.
2012년 F/W시즌에 적용된 롯데 영플라자 명동점의 대대적인 MD 개편은 이러한 변화의 화룡점정이다. 롯데는 이제 이 바통을 영플라자를 넘어 백화점 전점으로 확대해 가고 있고, 현대백화점 신세계백화점 AK플라자 갤러리아백화점도 각 상권에 맞게 동대문패션을 적용해 가는 분위기다.
빅3를 비롯 백화점들이 동대문패션을 적극 수용하는 자세에 대해 일단 시장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자금력이 취약한 중소 패션기업들이 백화점에 진출할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실제 신성통상 「탑텐」 사업부장 출신인 김금주 플마제 대표는 영스트리트캐주얼 「플러스마이너스제로」를 이번 F/W시즌 롯데 본점 영플라자점을 비롯 영등포점과 대구점 등 3개점에 오픈했다. 동대문패션 바잉을 중심에 놓고 티셔츠 등 일부 자체 제조를 병행해 브랜딩 작업을 시작했다.
아이올리 MK트렌드 등 제도권 기업들도 ‘속속’
블랙 & 화이트 컬러를 압축해서 풀어낸 「플러스마이너스제로」에 대해 고객 반응이 빠르게 올라오고 있으며 백화점의 러브콜도 이어지고 있다. 김 대표는 “제대로 된 SPA형 브랜드를 론칭하려면 기획 생산 마케팅에 투자되는 경비가 수십억~수백억원 요구됩니다. 이러한 비용을 투자할 수 있는 개인은 없어요. 백화점에서 팝업으로 매출을 검증받고 「플러스마이너스제로」를 적극 유치했기에 소규모 창업이 가능했죠”라고 비결을 털어놓는다.
빌리지유통(대표 김재권)에서 2012년 F/W시즌에 의욕적으로 론칭한 「아이디」를 전개하는 김근진 본부장도 백화점 중심으로 이를 풀어내고 있다. 김 본부장은 “패션 핫스폿인 서울 가로수길에 오픈한 직매장을 손해를 감수하고 1년 만에 정리했어요. 투자 대비 효율이 너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가로수길 1개점에 투자하는 비용이면 백화점 3~4개 매장 오픈이 가능해요”라고 말한다. 「아이디」는 롯데 영플라자 명동점과 현대 천호점에 이어 이번 F/W시즌 롯데백화점 광복점과 현대 중동점에 추가 입점했다.
그러나 백화점 유통이 동대문패션을 수용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다. 국내 패션유통의 맏형 격인 백화점이 장기적인 안목으로 동대문패션을 받아들였다기보다는 당장 눈앞의 이익만 좇는다는 지적이다. 백화점에서 공간만 내어 줬을 뿐 시스템화나 제도화, 활성화를 위한 지원과 투자는 너무 미약하다는 원성이 자자하다.
브랜드 출신들, 동대문패션으로 백화점 도전장
실제 ‘스파이시칼라’ ‘스마일마켓’ 등 동대문패션을 공격적으로 전개했던 몇몇 업체는 수익성 저하에 따른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백화점 유통을 철수하는 등 여러 진통도 뒤따르고 있다. 현우인터내셔날에서 전개했던 「북마크」는 론칭 3년 만에 리테일 사업을 전면 철수하는 시행착오도 거쳤다.
중대형 편집숍을 운영하는 A사 사장은 “백화점 유통이 동대문패션을 진정으로 껴안으려면 보유한 소비자 분석자료를 오픈해 상품개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정보를 제공해야 합니다. 평균 45일 동안 묶여 있는 결제관행도 중소기업들의 자금회전을 위해 좀 더 단축돼야 해요”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나마 쇼핑몰은 백화점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롯데피트인’은 매월 15일 마감 20일 후 결제로 평균 27.5일 만에 자금회전이 이뤄진다. 그러나 이곳의 거래조건은 변형된 임대을 방식을 적용해 크게 빈축을 샀다. 보증금을 받고서도 롯데피트인의 POS를 사용토록 한 것. 리뉴얼 오픈 당시 200억원에 달하는 투자비 일부를 중소 입점업체에서 받은 보증금 60억원으로 일부 충당했다고 전해진다. ‘재벌기업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20~25% 百 수수료 맞추려면 2.7~3.5배수 돼야
지난 9월부터 임대갑에서 임대을 방식으로 거래조건을 바꾼 ‘두타’는 월임대료가 많게는 두배 이상 올라가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보증금을 낮췄고 매일 현금이 도는 구조라서 자금회전에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는 평가다.
최근 제도권의 리테일 브랜드로 자리를 옮긴 B 사업본부장은 “백화점이 동대문패션을 수용하기 위해 제도권 브랜드 대비 판매수수료를 대폭 낮췄다고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어요. 20~25% 수준에 달하는 백화점 수수료를 맞추려면 2.7~3.5배수 마크업은 돼야 브랜드 운영이 가능합니다. 가두 대리점 위주로 판매하는 동대문패션 브랜드는 2.5~2.7배수를 일반적으로 적용합니다. 문제는 사입처가 비슷하다 보니 브랜드별로 중복 아이템이 넘쳐 난다는 거죠.”
그는 이어 “중복 바잉 아이템의 경우 백화점에 입점한 리테일형 브랜드의 가격 신뢰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백화점에 입점한 동대문패션 브랜드 간 출혈경쟁도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요. 이렇게 방치하다간 두 차례 어려움을 딛고 부상한 동대문패션이 또다시 위기에 봉착할 수 있어요. 이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백화점이 앞장서 철저한 감독관 기능을 할 것이 요구됩니다”라고 덧붙였다.
특정매입 · 임대을 방식 중 이점만 수용 ‘빈축’
즉, 콘셉트가 뚜렷한 리테일 브랜드 위주로 매장을 구성해 소비자에게 지루함과 피로감을 덜어 줘야 한다는 주장이다. 최근 1~2년 동안 동대문패션이 봇물처럼 늘어나 롯데 영플라자 명동점만 해도 신선도가 많이 퇴색했다. 최근 들어 온라인 기반의 A 브랜드나 동대문 기반의 B 브랜드, 제도권에서 진출한 C 브랜드 역시 바잉 상품이 겹치다 보니 모두 비슷해 보이는 문제점을 낳고 있다.
이를 벗어나기 위해 「스타일난다」는 ‘3컨셉아이즈’라는 자체 코스메틱 브랜드를 숍인숍으로 구성하면서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 편집숍 ‘원더플레이스’는 라이프스타일 콘셉트의 「레스트앤굿스」와 주얼리 액세서리 전문의 「액센트」를 신규 론칭하는 등 색깔 입히기에 나섰다. 자체 제조기반을 갖춘 동대문 기반 브랜드와 10여개의 자체 유통채널을 확보한 브랜드들도 별도 제작을 통해 가격경쟁력 확보 및 상품 차별화에 나섰다.
“제대로 브랜딩하기 위해 동대문 바잉 상품도 자체 브랜드로 메인 라벨을 교체하고, 자체 태그도 달고, 잡사도 일일이 제거해요. 잔손길이 많이 가지만 이렇게 해야만 소비자들에게 브랜드로 인정받지 않을까요? 자체 브랜드 로고가 새겨진 폴리백도 준비하는 등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쓰고 있어요.” 이번에 「플러스마이너스제로」를 백화점에 데뷔시킨 김 대표의 세세한 설명을 통해 동대문패션이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한 준비 작업이 만만치 않음을 실감할 수 있다.
백화점이 칼자루 잡고, 관리는 입점업체에 전가
브랜딩을 위해 이러한 노력을 기울이는 브랜드도 있지만 메인 라벨과 케어 라벨없이, 또는 홀세일 브랜드 라벨을 그대로 달고 판매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최근 롯데백화점은 라벨갈이가 소비자 기만행위라는 이유로 이를 교체하지 말도록 권고하는 공문을 각 리테일 브랜드에 보냈다고 한다. 뿐만아니라 메인 라벨과 케어 라벨, 브랜드의 태그를 안 붙여도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고.
이러한 궁여지책이 일부 수렴은 된다. 특히 혼용률을 표기하는 케어 라벨의 경우 원단을 제대로 시험 분석하는 데만 아무리 빨라도 1주일 이상 소요되는 상황에서 2~3일 만에 생산 시스템이 돌아가는 동대문패션이 이를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동대문패션의 선진화와 양성화, 브랜드화를 위해서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백화점이 이를 권고할 사항인지는 의문이 든다.
소비자 입장에서 메인 라벨조차 달리지 않는 제품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값싼 재고 땡처리 물량으로 여겨지지 않을까? 최소 홀세일 브랜드의 라벨을 달거나 더 정성을 보인다면 리테일 브랜드의 라벨을 달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동대문패션 선진화, 百 감독관 기능 절실히 요구
현재 동대문상권에 포진한 패션 홀세일 업체 수만 1만1800개 홀세일 시장 규모는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이 이틀 단위로 뽑아내는 스타일 수만 해도 상상을 초월한다. 정말 어마어마한 한국 패션의 경쟁력이다. 한국 상륙 10년 만에 연매출 9000억원 규모로 급성장한 일본 「유니클로」의 야나이 다다시 회장은 이런 말을 했다.
“한국 패션의 경쟁력은 바로 동대문패션을 얼마나 경쟁력 있게 양성화 활성화하느냐에 달렸습니다” 맞는 말이다. 지금 우리는 동대문패션을 제대로 키워 낼 수 있는지 실험대 위에 올랐다. 그리고 이 칼자루를 국내 패션유통의 맏형 역할을 하는 백화점과 대기업 쇼핑몰이 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온라인 유통이 동대문패션의 양성화를 이끌어 낸 것처럼 이제 빅3 유통이 국내 패션산업의 마지막 보루인 동대문패션을 멋지게 키워 낼 감독관 또는 리더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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