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랜드’ 한국형 편집숍 모델로!
과도한 연출로 패션인이라 의심되는 고객들이기보다는 지극히 ‘평범남’들이었다. ‘에이랜드M’은 기성세대와 달리 초식남 등 다양한 신조어를 낳으며 등장한 세대의 새로운 소비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 공간은 그동안 ‘에이랜드’가 보여 준 편집숍 비즈니스의 또 다른 이정표를 알리는 출발의 현장이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1층과 2층으로 구성된 이 매장에는 「반달리스트」 「유즈드피처」 등 국내 남성 디자이너 브랜드부터 「라이풀」 「커버낫」 등 남성 스트리트 브랜드들이 즐비했고, 가방 파우치 모자 스니커즈 양말 아이웨어 타이 포마드까지 남성에 관한 다양한 품목이 가득했다.
국내 12개점 해외 3개점, 작년 266억원 기록
‘에이랜드’는 2006년 ‘신진 디자이너를 위한 편집숍’이라는 기치 아래 명동 1호점으로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신진 디자이너에게는 등용문이자 오프라인 유통망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 수단이다.
‘에이랜드’는 디자이너 브랜드를 희망하는 주인공들에게 진입 장벽을 낮춰 줬다. 이후 봇물처럼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탄생했다. 이에 발맞춰 ‘신진 디자이너를 위한’ 편집숍이 수없이 생겨났다. 그 가운데서도 ‘에이랜드’는 독보적이다. 현재 ‘에이랜드’는 국내 12개점, 해외(홍콩) 3개점을 운영하는 규모로 성장했다. 2013년(금융감독원 기준) 266억원의 매출액을 기록했고 영업이익 24억원, 당기순이익 20억원을 올렸다.
국내에서 브랜드 비즈니스 시대가 지고 리테일 비즈니스가 떠오른 동시기에 ‘에이랜드’는 편집숍 비즈니스의 군계일학이 됐다. ‘에이랜드’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유통 방식으로 국내 패션유통산업에 크고 작은 영향력을 미치며 성장했다.
백화점식 운영 방식… 익숙한 쇼핑 패턴 고려
‘에이랜드’를 필두로 리테일 비즈니스가 본격화됐고, 기업들은 앞다퉈 다양한 편집숍을 론칭했다. 소규모 자본을 가진 브랜드의 진입 장벽이 낮아지고 실력파들이 생존에 성공했다. 백화점 유통은 글로벌 SPA 브랜드의 대항마로 ‘에이랜드’를 입점시켰다. 이처럼 ‘에이랜드’는 편집숍 이상의 의미가 있고 역할을 하고 있다. ‘에이랜드’의 다음은 과연 무엇일까. 그 키워드에 관심이 쏠린다.
‘에이랜드’가 한국형 편집숍 비즈니스의 대표 모델로 불릴 수 있는 키워드는 △위탁 운영을 통한 출점 가속화 △매장 중심의 슈퍼바이저 운영 시스템 △명동점의 MD 배치 효율성 강화 △추진력이 뛰어난 정은정 대표의 오너십이다.
먼저 ‘에이랜드’는 500여개 브랜드를 위탁 운영 중이다. 그동안 해외 선진 사례의 편집숍 비즈니스는 바잉을 기반으로 각 매장의 MD를 구성하는 홀세일 비즈니스인 반면 국내에서는 백화점이 취해 왔던 방식처럼 브랜드로부터 수수료를 받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에이랜드’ 역시 각 브랜드로부터 33~35%의 수수료를 받고 운영한다.
층별 구성도 백화점처럼 남성, 여성 등 복종별로 배치했다. 다만 백화점과 다른 점이 있다면, 복종별로 백 & 슈즈, 액세서리 등을 함께 구성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연출은 편집숍이라는 형태를 경험하지 못한 소비자들에게 기존에 충분히 경험한 백화점의 쇼핑 문화 방식을 제공해 ‘한국형 소비 패턴’에 맞춘 구성이라는 분석이다.
각 점에서 입출고 재고 매출 관리, 신속 대응
백화점을 꼭 빼닮은 수수료 중심의 위탁 체제를 고수하는 ‘에이랜드’의 운영 방식에 대해서는 찬반론도 거세다.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수수료 33%와 세금 10%를 제외한 57%에서 다시 샘플 제작을 비롯한 생산 비용, 유지비 등을 제외하면, 디자이너들은 고작 10~20%의 이익을 손에 쥐게 된다. 여기에 분실이나 도난 사태(?)까지 발생하면 억울한 건 입점 브랜드. 그래서 ‘애증의 러브스토리’로 평하며 ‘에이랜드’와의 비즈니스 관계를 설명한다.
반면 ‘에이랜드’에 관한 디자이너 브랜드의 원성은 지엽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A 기업의 대표는 “사입을 한다는 것은 사 온 물건을 다 팔 능력이 있다는 것 의미한다”라며 “각 시장에 맞는 규모와 시스템이 있다. 미주·유럽 시장은 사회, 역사, 문화적으로 성숙한 시장이다. 소비력도 우리네보다 월등히 뛰어나다. 조건이 다른 해외시장과 국내 시장을 비교하기보다 현주소에 맞춘 제도가 필요하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국내 백화점을 비롯한 유통 업태가 국내에 오면 변태되는 실정과 같은 맥락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모든 제도에는 장단점이 있는 법. 제도를 탓하기보다 국내에 토착화된 위탁 프로세스의 장점을 적극 활용한 프로세스 정립이 필요하다. 강원식 코넥스솔루션 대표는 “위탁 비즈니스는 잘만 활용하면 브랜드 덩치를 키우기에 알맞을 수 있다. 기업의 기초 체력이 없어도 일단 팔아 보고 그 판매 추이에 따라 수량을 늘리고 줄일 수 있어 적극적으로 전개가 가능하다”라며 “「탐스」가 이러한 전개 방식을 활용해 성장했다”라고 설명했다.
색깔과 방향 정하는 ‘좌표매장’ 명동점 특별해
「탐스」는 지난 2007년 국내에 론칭하면서 당시 주도권을 쥐고 있던 백화점을 지양하고 ‘샌프란시스코마켓’ ‘G533’ 등 편집숍을 통해 수입 유통했다. 강 대표는 “2008년 명동으로 시장 조사를 나갔다가 ‘에이랜드’ 명동점을 보고 유레카를 외쳤다. 「프레디」 「A.P.C」 등의 수입 브랜드를 비롯해 값싼 보세 품목, 빈티지 상품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국내에도 이런 숍이 있었나 싶었다. 이후 「탐스」는 백화점에서 전개하는 유통 방식이 브랜드를 띄우기 위한 핵심 요소는 아니라는 걸 ‘에이랜드’를 통해 증명했다”라고 설명했다.
‘에이랜드’의 또 다른 키워드인 슈퍼바이저 시스템은 글로벌 SPA 브랜드가 운영하는 매장 관리 방법과 유사하다. 먼저 ‘에이랜드’는 각 점포에서 업무 프로세스가 이뤄진다. 특히 명동점은 층별로 매니저가 배치되어서 브랜드 구성은 물론 입점 브랜드의 입출고, 재고 관리를 비롯해 목표 매출 설정과 달성 및 층별 경쟁까지 치열하다.
명동점은 점장이 따로 없고 층별 매니저가 점장 역할을 한다. 온디와 창열이라는 이름의 두 매니저가 그 역할을 한다. 2006년 론칭 때부터 함께 해 온 두 매니저는 모두 30대로 에이랜드 내부뿐만 아니라 입점 업체들 사이에서도 탁월한 매장 관리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두 매니저는 하위 스태프에게 층 내의 각 구역을 배당하고, 그 자리를 지키며 판매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한다.
명동에만 3개점… 복종별로 세그멘테이션 전략
‘에이랜드’ 명동점 1층에 들어서면 입구부터 행거별로, 아일랜드 구성의 부스 앞에, 그리고 「A.P.C」 등 각 구역에 서 있는 스태프들을 볼 수 있다. 이 배치가 바로 두 매니저가 요일에 따라, 시간에 따라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고객 응대 방식에 대해 불편함을 토로하는 고객도 있었다. 명동점에서 만난 최수희(24)씨는 “예전에 에이랜드에 오면 자유롭게 쇼핑하는 분위기에서 즐길 수 있어 신났는데, 지금은 마치 감시당하는 기분이 든다”라며 “에이랜드가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희소성 있는 제품보다는 싼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쇼핑공간이기도 하고, 10대도 너무 많다”라고 말했다. 그 외 다른 점포에서는 대부분 매니저 1명이 점을 책임진다.
명동점을 집중 관리하는 것은 명동점을 기준으로 타 점포의 MD 배치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에이랜드’는 매월 명동점의 매출전표를 통해 인기 브랜드와 제품, 인기 없는 브랜드와 제품 등을 점검하고 층별 & 점별 위치와 구성을 바꾼다. 따라서 이 점포는 이른바 ‘에이랜드’의 ‘좌표매장’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좌표매장’은 말 그대로 ‘에이랜드’가 나아갈 방향을 설정하고 입점 브랜드들의 매출 및 반응 현황을 살펴 그대로 둘지 아니면 다른 점포로 이동시킬지를 테스트하고 결정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직원 교육의 첫 단추도 바로 명동점에서 끼워진다. 본사의 MD 인턴으로 입사하면, 명동점에서 매장 근무 6개월 후 본사 MD로 이동할 수 있다. 이 과정을 통해 입점 브랜드를 한눈에 파악하고 ‘에이랜드’의 MD 성향과 현재 분위기, 트렌드를 함께 이해하도록 하는 ‘에이랜드’의 정책이다. 본사로 이동 후에도 일주일에 한 번씩 매장 라운딩이 필수 업무 중 하나다.
정은정 대표의 추진력 ‘에이랜드’ 성장 동력
‘에이랜드’는 명동 상권에만 3개점을 운영한다. 한 상권에 같은 이름의 편집숍이 3개나 있지만 MD가 겹치지 않도록 세그멘테이션했다. 명동 1호점은 여성전문관으로 지난 5월 리뉴얼을 마쳤다. 특히 그동안 ‘에이랜드’의 입점 브랜드가 하향 평준화됐다는 우려의 목소리에 대안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도표 에이랜드 명동 1, 2, 3호점 세그멘테이션 현황 참조)
2호점은 ‘세컨드 페이지’라는 이름으로 캐주얼 슈즈를 비롯한 잡화와 의류로 구성했고, 3호점은 남성전문관 ‘에이랜드M’이다. 그렇다면 ‘에이랜드’는 왜 명동에 집중하는 것일까? 결국 모든 것의 출발과 마침표는 정은정 사장의 오너십으로 귀결된다. 정 사장은 대구 동성로에서 작은 의류 상점으로 시작해 지금의 ‘에이랜드’를 일궜다. ‘사업가’로서의 첫 번째 도전이 바로 지금의 명동점이었다.
정 사장과 함께 일한 사람들은 그녀를 추진력이 대단한 인물로 평가한다. 단적으로 출점 현황만 봐도 이를 엿볼 수 있다는 의견이다. 에이랜드는 유한회사로 출발해 2010년 주식회사로 전환하며 점포를 확장했다. 국내에 이어 최근 홍콩까지 토종 편집숍을 오픈하고 해외 진출의 물꼬를 텄다.
홍콩 상장 준비… 해외 10개점까지 열 것
입점 브랜드들은 정 사장의 ‘세계관’을 신뢰한다. 이는 ‘에이랜드’라는 편집숍의 색깔을 규정하는 MD에 대한 신뢰다. ‘에이랜드’에 입점한 B 기업의 대표는 “편집숍은 디렉터의 철학이 투영될수록 색깔이 짙어진다. 정 사장은 자신의 철학과 색깔이 처음부터 뚜렷했고, 그 정체성이 지켜지고 있다. 비싼 것보다 합리적인 가격의 좋은 제품이라는 정책도 숍의 색깔을 결정하는 데 한몫을 했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그녀의 동생이 이사로 ‘에이랜드’ 업무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정 이사의 주요 업무는 매주 본사 VMD들과 각 매장을 라운딩하며 점포별로 매장을 뒤집고(?) 정리하는 매뉴얼을 만드는 것이다. 또 협업할 브랜드들을 만나 방향을 논의하고 콘셉트부터 기획물량 조절 등 구체적인 업무에까지 관여하며 함께 뛰고 있다. 정 이사는 백화점으로 치자면 부문장 격인 셈이다.
그렇다면 정 사장의 머릿속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에이랜드’는 매월 10개점의 매니저들과 조찬모임을 하며 세미나, 강연 등을 마련해 경청하도록 독려한다. 단순히 트렌드 설명회 수준이 아니라 리더십 교육, 웃음과 서비스 등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이른 아침 7시부터 시작되는 만큼 혈기왕성한(?) 매니저들의 볼멘소리도 크지만, 다녀오고 나면 모두 만족해하며 각자 점포의 스태프들에게 교육 내용을 전달한다.
해외 진출 박차, ‘스타 브랜드’ 함께 키워
정 대표는 그 자리에서 곧잘 포부를 밝힌다고. 최근에는 “지금껏 내가 원하는 모든 걸 이뤘다. 지금껏 그러했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며, 여러분과 함께 갈 것이다. ‘에이랜드’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금 홍콩에 3개점이 있지만, 앞으로 갈 길이 더 멀다. 해외에 10개점까지 출점할 계획이다”라며 의욕에 찬 청사진을 제시했다.
강한 추진력이 무기임에도 두 자매는 ‘우리가 뒤처지는 건 아닌가’ 하는 고민을 종종 한다고 한다. ‘에이랜드’는 남성전문관을 통해 2030세대의 새로운 소비문화를 만들고, 토종 편집숍으로 홍콩에 진출하는 등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앞으로도 ‘에이랜드’가 수행해야 할 과제와 기대는 크다.
홍콩을 비롯해 세계 10개점을 출점하겠다고 목표를 세운 만큼, 세계무대에서 함께 성장할 글로벌 브랜드를 ‘에이랜드’라는 채널 안에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실제 ‘에이랜드’와 함께 성장한 「로우클래식」 「라이풀」 등은 소규모 자본으로 창업해 이제 어엿한 사업가이자 국내 메이저 유통에서도 탐내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신규 브랜드 비즈니스 프로세스 바꾸는 폼을
이러한 성공 사례를 더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 궁극적으로 ‘에이랜드’의 가치를 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다. 때문에 국내에 이어 해외에서도 브랜드 인큐베이팅 작업이 이뤄진다. 홍콩점에 입점한 브랜드들도 과거에는 독립 디자이너 브랜드로 해외 진출에 애로사항이 많았다. 이 브랜드들은 ‘에이랜드’ 홍콩점을 통해 현지에서 세일즈 기회를 얻고 테스트할 수 있는 시장을 확보했다. ‘에이랜드’ 홍콩점을 기반으로 글로벌로 뻗어 나갈 수 있는 루트도 활짝 열렸다. 현지의 다양한 패션유통 관계자들이 그곳을 드나들며 한국 브랜드를 찾아다니기 때문이다.
‘에이랜드’는 씨드로지스틱스라는 해외 별도법인을 설립해 사업을 전개 중이며 올해 홍콩 상장까지 준비하고 있다. 이를 통해 홍콩 현지에서 공격적인 출점이 예상된다.(도표 에이랜드 해외 별도법인 씨드로지스틱스 운영 현황 참조) ‘브랜드의 보고’라는 역할은 국내 신규 브랜드 비즈니스의 프로세스를 바꿀 수 있는 폼(form)으로 업그레이드될 가능성도 제시되고 있다.
패션 전문기업의 한 관계자는 “기존과 같은 방식으로는 신규 브랜드 비즈니스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50억 안팎을 투자해 새로운 팀을 꾸리고 공격적인 사업 계획서를 세워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천편일률적인 비즈니스 접근 방식은 통하지 않는다. 이젠 성공 확률이 갈수록 낮아지기 때문에 먼저 검증된 브랜드, 가능성이 확보된 브랜드로 이후 확산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오히려 에이랜드 같은 채널에서 옥석을 가리고 브랜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툴을 만들어야 한다. 이런 장치를 통해 브랜드들을 핸들링하고 교량 역할을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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