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패션계 구루 프랑코페라로
이탈리아 패션의 형태와 모습이 완전히 바뀌는 변화의 시작은 12년 전인 2001년에 글로벌 SPA의 선두 주자인 스페인의 「자라」가 이탈리아에 첫 매장을 열었을 때부터다. 사실 「자라」의 경고는 처음부터 매우 강력한 것이었다. 「자라」는 최고급부터 대중적인 저가 부문까지 전 분야에 직접적이고도 강력한 도전장을 내밀었다.
모두가 주지하는 것처럼 「자라」는 디자인 측면에서는 초고가 럭셔리 브랜드의 모델을 모방하는 동시에 가격 측면에서는 아주 싼 대중적인 제품 수준을 지향하고 있어 시장 전반에 걸친 그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자라」는 이탈리아 시장 진입 시 「베네통」 그룹의 막강한 부동산 부문 파트너 회사인 페르카시 그룹(Percassi Group)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들어왔다.
「자라」 부동산 기업 페르카시와 제휴로 伊 상륙
덕분에 이탈리아의 패션시장 요지에 대형 매장을 아주 프로페셔널하고 적극적으로 오픈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자라」의 자가 대형 매장 + 시즌 내 지속적인 상품 추가 공급이 가능한 ‘신속한’ 비즈니스 모델은 그 당시 이탈리아 패션 업계와 비교하면 거의 획기적인 것이었다. 시즌 내 추가 상품 공급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시즌 개념의 ‘저속’ 비즈니스 모델과 비교하면 도저히 게임이 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라」는 잘 알려진 대로 일주일에 두 번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 그리고 제품의 디자인에서 제작 후 매장에 진열되기까지 그 모든 것이 단지 10~15일 내에 가능하다. 이는 말이 쉽지 지금 시점에서도 제대로 따라 하기가 힘든 일이다.
지금은 많은 경쟁 업체들이 「자라」의 전략과 시스템을 모방하고 있지만 그 당시 「자라」가 보여준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교한 조직 운영과 물류 등 밸류 체인 전반에 걸친 수직 계열화는 경쟁 업체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완전히 차별화된 전략이었다.
조직운영 물류 등 밸류 체인 수직계열화
「자라」의 이탈리아 입성 1년후 이번에는 「자라」와 매우 유사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스웨덴 「H&M」이 들어왔다. 「자라」와 차별화된 점을 지적하자면 「H&M」은 ‘매스티지(Masstige)’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기반으로 한다는 것이다. 이 비즈니스 모델은 기본적으로 소비자가 매우 비싼 디자이너 제품을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말 그대로 ‘매스티지’는 ‘대량 시장(Mass market)’과 ‘명성(Prestige)’을 합성한 신조어다. 즉 고급 브랜드를 저가 대량 소비 제품으로 연계한 고도의 전략이다. 곧 이어서 이번에는 「마씨모두티」 「스트라디바리우스」 등 「자라」의 모체인 인디텍스 그룹의 패밀리 브랜드들이 밀려 들어왔다.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서 「자라」와 치열한 경쟁 관계인 「망고」가 들어오고, 연이어 미국의 두 개 체인 브랜드 「아베크롬비 & 피치」와 「갭」이 들어 왔다. 그들은 정말이지 짧은 시간에 이탈리아 시장에서 상당한 부분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했다.
「망고」이어 美 「아베크롬비 & 피치」 「갭」도 ‘속속’
그러나 두 개의 패션 세계, 즉 이탈리아의 패션과 해외의 소위 SPA 브랜드들로 알려진 외국 의류 체인의 세계는 서로 다른 길을 향해 달려가는 동시에 점점 더 유사한 길을 걷게 됐다. 럭셔리 브랜드들은 더욱더 차별화된 고급 럭셔리를 지향하게 됐고, 반면에 「H&M」은 「베르사체」와 같은 이탈리아의 주요 디자이너 브랜드들과 전격적으로 전략적인 협업을 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H&M」과 유명 디자이너 브랜드 간의 주기적인 협업은 결과적으로 「H&M」의 전략적 승리로 평가됐다.
하지만 협업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H&M」과 디자이너 브랜드 모두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어 주기에 충분했고, 그 결과로 다음 협업에 대한 전 세계 고객들의 기대치를 높여 아주 성공적인 흥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최고급 디자이너 제품을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게 해준 「H&M」의 매스티지 전략은 실로 독창적인 것이었다.
이전까지 소비자들이 소위 ‘니즈(Needs)’에 의해 의류를 구입해 오던 오랜 관행을 유명 디자이너 협업 제품을 보는 순간, 순간적인 욕심에 의해 필요하지도 않은 의류를 구매하게 된다는 이른바 ‘원츠(Wants)’ 구매라는 새로운 소비 현상을 야기하기도 했다.
소비자 구매 요소를 ‘니즈’에서 ‘원츠’로
반면에 「프라다」 등 이탈리아의 주요 브랜드 회사들은 일종의 대응 전략으로 국내외 직영 매장 확장 등의 리테일 부문에 과감한 투자를 단행해 나름대로의 새로운 입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동시에 ‘조금 저렴한 럭셔리(Affordable Luxury)’를 표방하는 브랜드들이 유럽 시장에서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탈리아의 경우를 보자면 의류 부문의 「오비세(Oviesse)」와 「모티비(Motivi)」, 언더웨어 부문의 「칼제도니아(Calzedonia)」, 가죽 제품의 「카르피사(Carpisa)」 등이 대표적인 것들이다.
이제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사실 「자라」와 「H&M」이 이탈리아 패션 시장에 가장 크게 기여한 점은 이탈리아 및 유럽 시장에 팽배했던 고정관념 두 가지를 완전히 부숴 버린 일이다. 그 하나는 「자라」와 「H&M」이 이탈리아 시장에 진입할 당시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선진국 패션시장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는 완전 포화상태라는 생각이다.
두 번째는 패션이 전 세계적으로 완전 성숙 단계라 더 이상 혁신할 것이 없다라는 고정관념이었다. 글로벌 SPA 기업들은 이 두 가지 생각이 틀렸다는 점을 지속적인 혁신과 새로운 시스템, 그리고 국제적인 자금 유치를 통해 대형 매장들을 전 세계에 개설해 매출 신장을 이어감으로써 만천하에 증명했다.
「프라다」 등 메이저 기업, 리테일에 과감한 투자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SPA 브랜드들마저 정체에 빠져들기 시작한 2014년 현 시점에서는 상황이 조금 바뀐 듯하다. 그들이 발표한 매출 및 투자 계획들만 바라보면 SPA 브랜드들이 주도하는 성장세가 멈춰 서기에는 아직은 때가 이른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SPA 브랜드들도 개별적으로 자세히 살펴보면 상황들이 각각 다르다.
이제 SPA 브랜드 중 이탈리아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는 브랜드로는 일본의 「유니클로」 정도인데, 「유니클로」는 다른 SPA 브랜드와 판이하게 소비자가 스타일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보다는 제품의 품질과 기술적인 가치에 더 관심을 갖고 있다고 믿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유니클로」는 소재와 패턴 등 제품 개발에 다른 SPA 브랜드들보다 장시간 매달리고 소재 전문 회사와도 장기간의 동반자 관계를 유지한다.
이런 점에서 보면 「유니클로」의 설립자인 야나이 다다시 회장의 전략은 마치 기술적으로 앞선 신차 개발에 수년씩도 걸리곤 하는 자동차 산업의 전략과 유사해 보이기까지 한다. 특히 모든 사회가 점점 더 노령화돼 가는 현시대의 추세를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개인적으로 패션 산업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이라고 진단하는 데 올인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유니클로」, 품질과 기술적 가치에 포커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볼수록 「유니클로」의 전략은 살아남을 승리 전략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아직 혈기왕성한 SPA 브랜드들을 평가절하할 하등의 이유나 근거는 솔직히 아직 없다. 현재 세계 패션시장에서 견실하게 확보한 그들만의 위치를 경쟁력 있게 유지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좀 더 큰 시각으로 볼 때 패션 리테일 시장은 다른 산업의 시장에서도 의미 있는 주체로서 리드해 나가려면 특정 전략이나 방법을 떠나 꼭 주지해야만 할 사항이 있다. 이제까지의 경쟁이 시장에 제품을 출시한 후 누가 먼저 소비자 반응을 정확히 파악해 해당 시즌 내에 경쟁자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대응하느냐는 것이었다면 이제부터의 경쟁은 달라졌다.
차별화를 끝없이 추구하면서도 동시에 제품이 시장에 출시되기 전에 소비자의 반응이 어떨지를 누가 먼저 정확하게 알아내느냐의 문제로 전환돼 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향후의 주도권 경쟁은 특정 형태의 사업 주체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먼저 소비자의 선호도를 정확히 포착해낼 수 있는 정조준된 타기팅 시스템을 개발해 낼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될 것으로 보인다.
‘누가 더 크고 빠르냐’보다 ‘누가 소비자를 잘 아나’
과거 SPA 브랜드들이 혜성처럼 등장해 시장의 판도를 근원적으로 뒤바꾼 구조적인 변화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기술 격차가 갈수록 줄어들고 경쟁이 극심한 현실에서 그럴 가능성보다는 기존 패션 강자들 사이에서 방법과 수단은 점점 더 고도화되지만 결국 어떻게 하면 소비자 니즈를 정확히 예측하고 거기에 맞게 대응하느냐보다 근원적인 문제로 귀결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우세하다.
또한 거대한 SPA 브랜드들이 세상을 지배하는 이 흐름이 당분간 더 이어지기는 하겠지만 그 반대쪽에서는 보다 유니크하고 창의적인 움직임과 에너지가 매우 빠른 속도로 부상, 공존할 것으로 보인다. 작은 마켓을 겨냥하는 이들은 거대 기업들의 움직임과는 전혀 다른 방향 또는 다른 모습으로 소비자들과 커뮤니케이션할 것이다. 이들은 소비자와 함께 호흡하므로 거대기업보다 훨씬 빨리 훨씬 민감하게 소비자들을 이해하고 소통할 것이다.
더 간단히 말하자면 앞으로 누가 패션 시장을 선도할 것인가의 문제는 어떤 특정한 사업 형태와 주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누가 더 경쟁자보다 소비자를 조금이라도 더 잘 알고 극심한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대처할 것인가의 문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번역; 파비즈 글로벌 국성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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