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어가죽 1인자 정희윤, 그녀는?

sky08|14.01.27 ∙ 조회수 15,979
Copy Link
이태원 작은 상점에서나 봄직한 장어가죽의 가방과 소품. 외국인들에게나 어필하던 장어가죽이 정희윤 에이치와이인터내셔날대표 겸 디자이너를 통해 새로운 마켓을 열었다. 패션잡화 조닝에 디자이너 브랜드 카테고리에서도 그녀의 터치는 센세이셔널했고, 오직 장어가죽만 사용해 모든 컬렉션을 완성하는 그녀의 브랜드 「뽐므델리(Pomme d’Ellie)」는 철저하게 차별화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경영인이자 디자이너로 활약하는 그녀는 한마디로 ‘장어가죽 1인자’다. 단순히 디자인만 하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장어가죽이라는 소재 가공부터 기술 개발 건조, 염색, 손질, 재단, 패턴, 봉제, 기술 개발까지 모두가 그녀의 몫이다. 그뿐 아니라 국내 유통 전개를 위한 영업과 인테리어까지 모두 그녀가 직접 한다. 이제 현대 코엑스점 등 백화점에서만 4개점을 운영해 수익 구조를 계산기로 두드리며 ‘사장님 노릇’을 할 법도 한데 요즘 그녀는 연예인 수준으로 바쁘다.

시즌 제품 개발을 비롯해 디자인에 알맞은 생산 방식을 핸들링하느라 사무실이 있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과 공장이 있는 경기도 의정부를 매일 오가고 있다. 장어가죽은 1970~1980년대는 수출 효자 품목이었지만, 1980년대 ‘소가죽과 양가죽 시대’를 맞은 이후 사양산업이 됐다. 이 때문에 장어가죽 기술은 1970~198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동안 방치돼 있던 만큼 기술 개발을 하고 또 해도 여전히 부족하다. 정 대표가 매 시즌 제품을 개발할 때마다, 시간 나는 틈틈이 공장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대코엑스 자투리 매장을 월 8000만원 알토란

또한 기존에 장어가죽 전문 가방이 없었기 때문에 매일 매장을 찾아 판매 직원들에게 하나하나 교육시키는 과정 역시 중요한 일과다. 현장에서 직원들에게 교육하다 직접 판매원으로 나서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뽐므델리」의 4개점 가운데 처음 문을 연 매장은 현대 코엑스점이다. 이 매장은 점포내에서 공식적으로 매장으로 활용되기 위한 공간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 바로 옆 코너에 26.4㎡의 ‘자투리’ 공간을 「뽐므델리」가 월평균 8000만원 효율 매장으로 만들었다.

이 매장에 들어서면 톱니바퀴 모양의 이색적인 인테리어가 한눈에 들어온다. 이 인테리어도 정 대표의 손을 탄 ‘작품’이다. 이 작품의 의미는 ‘하모니’다. 정 대표는 “장어의 상태는 저마다 다르고, 가죽으로 벗겨내 염색을 하면 상태에 따라 한 줄 한 줄의 색감이 다르게 나타납니다. 그리고 줄을 모아 가방으로 재단하기 위한 크기로 붙여요. 가방 패턴에 맞춰 자르고 잇고 붙이기를 하는 과정이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요. 한마디로 조화로운 상태, 하모니가 이뤄져요”라고 말했다.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조각(장어가죽)이 모여 하나의 가방을 만들기 때문에 어쩌면 같은 디자인이지만 같은 가방은 없다는 것이 정 대표의 지론이다. 장어가죽도 엄연한 생명체에서 오는 재료이기 때문에 환경에 따라 장어가죽 각각의 질감과 상태가 다르다. 이처럼 특별한 가방임에도 불구하고 「뽐므델리」의 가격대는 착하다(?).


‘수출이 더 쉬웠어요’ 북유럽 바이어 호응 뜨거워

「뽐므델리」의 유일한 빅 백인 ‘에리오(Erio)’가 41만5000원으로 제일 비싸고, 20만~30만원대(토드&숄더백 등 가방 기준) 가격대가 평균이다. 2배수가 겨우 넘는 마크업이라 지금 가격보다 2배는 올려야 적당하지만 ‘돈 벌기’는 조금 미뤄 뒀다.

지난해 5월 첫 매장을 열기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장어가죽 가방으로 수출 사업을 전개했다. 대부분 서유럽과 북유럽 중심으로 세일즈가 이뤄졌고, 당시까지만 해도 ‘쉽게 돈 벌었다’라고 회상하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최고의 제품만 만들면 됐어요. 유럽은 국내와 세일즈 문화가 확연히 다르죠. 가방에 새겨진 스크래치보다 브랜드나 제품의 컨셉과 철학에 관심을 갖는 소비자들이니까요. 장어가죽은 외국인들을 사로잡기 충분한 매력을 가졌지요. 특히 그들이 봤을 때 이국적인 분위기 외에 장어가죽이 업사이클링(upcycling)이라는 점도 크게 어필했어요. 수주 첫 해에 한 덴마크 바이어가 오더 금액 기준으로 3억원을 결제할 정도였어요.”


장어가죽 1인자 정희윤, 그녀는? 2218-Image




과거 4대 브랜드 강세 속 ‘때를 기다렸다’

수출을 먼저 시작한 또 다른 이유는 당시 시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뽐므델리」를 2010년 런칭할 당시 패션잡화 시장에는 ‘4대 브랜드’의 강세였어요. ‘4대 브랜드’ 외에는 여타 브랜드를 찾아볼 수 없었던 이 시장을 보면서 ‘아무것도 없으니까 니치 마켓이구나’라는 막연한 가능성이 아니라 ‘아직 시장이 없구나’라는 절망감이 들었어요. 시간을 벌어야 했죠. 이 때문에 수출을 먼저 시작했고, 제 입장에서는 수출이 오히려 더 쉬웠어요. 해외 유명 전시에 참가해서 오더를 받으면 되니까…. 그렇게 2여년이 지나니까 점차 ‘디자이너 브랜드’에 대한 니즈가 생겼고 독특한 소재와 셰입, 합리적인 가격대 등의 요소를 갖춰 국내 시장에 진입하게 됐지요”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에게는 ‘스크래치’가 아주 중요하고 민감한 부분이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새 것’에 가치를 부여했고, 일부러 구겨지고 흔적이 새겨진 제품들은 유럽 바이어들 사이에서는 인기였지만 국내에서는 A/S실로 직행했다.

장어가죽 1인자 정희윤, 그녀는? 2885-Image




사업가 부모 슬하… 20대부터 좌충우돌 도전

하지만 그녀는 소비자로부터 이해를 구할 수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라는 타이틀이 있었다. 성장과 발전의 시간을 조금 앞당겨 보고자 텍스처 개발은 기본이고 접착 방식, 염색, 후가공 등 뭐든 끊임없이 해 봤다. 그래서 가격대도 조금은 미뤄둔 것이다. 정 대표는 「뽐므델리」의 출시 제품 중 90%를 소장하고 있다는 VVIP 고객에게 직접 A4 3장 분량의 편지를 손으로 쓴 적이 있다고 한다.

정 대표는 디자이너로 역량도 뛰어나지만 사업가 기질도 갖춘 인물이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사업가였던 집안에서 태어나 ‘이대 나온 여자’로 청춘을 보내던 당시, 친구들은 대기업에 취업하거나 좋은 집안에 시집가기를 바랐다. 하지만 정 대표는 중구 명동에 작은 숍을 냈다. 옷부터 가방, 슈즈, 액세서리 등 토털 패션숍에서 자신이 제작한 제품 70%와 사입 30% 정도로 소비자들을 만났다.

이 숍은 6년 동안 서울에만 18개의 매장을 운영할 정도로 규모가 커졌고, 매장 직원까지 20여명의 직원을 뒀다. 안타깝게도 이 사업 모델은 불미스러운 일로 접게 되고, 그 길로 정 대표는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정 대표는 “당시 사업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어요. ‘매니지먼트’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달았고, 제작자가 하고자 하는 것과 소비자가 원하는 것의 괴리감을 철저하게 느끼기도 했죠. 사실 어린 나이였고, 경험이 부족했던 것도 있었기에 공부를 더 해보자는 욕심으로 유학을 가게 됐어요”라고 설명했다.


경험으로 얻은 매니지먼트 지식, 밑거름 돼

영국 유학 당시에도 ‘공부’만 하지 않았다. 자신의 디자이너로서 수준을 평가 받기 위해서 베를린의 유명 트레이드 페어 ‘B.B.B’에 티셔츠를 들고 전시에 참여하기도 했다.

“단순히 그냥 티셔츠가 아니라 내가 표현할 수 있는 감성의 모든 걸 프린트 작업으로 완성했어요. 프린트와 핫픽스 등 재미있고 요란한 부자재도 사용해 보고, 지금도 티셔츠라는 아이템은 정말 매력적인 거 같아요. 현장에서 의외로 티셔츠를 사겠다는 바이어가 있을 정도였고 지인들과 패션 관계자들의 평가도 호의적이었어요.”

그 시점에서 디자이너로서 감도를 인정받았고 고민했던 두 가지 조건, ‘진입 장벽이 높은 사업 모델’ ‘해외 수출에서도 경쟁력 갖춘 품목’을 모두 갖춘 것이 가방이었다. 그중에서도 장어가죽이라는 희소성 가진 소재로 만드는 가방을 발견했다. 장어가죽은 사업 모델로는 필요충분조건을 갖췄지만 정 대표는 “이렇게까지 이 산업이 정체된 상태라는 것을 처음부터 알았으면 시작 안 했을 것”이라며 크고 작은 애로사항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한숨도 잠시였다. 정 대표는 한국인으로서, 토종 브랜드로서 ‘내가 꼭 해야 하는 것’이라는 고집이 있었다.

“어쩌면 30여 년 전 사라졌던 역사를 다시 쓰는 거니까. 그래서 수익구조가 조금 취약하더라도, 손이 너무 많이 가더라도, 지금 또 도전하고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하는 거예요.” 그녀의 진정성 넘치는 말들이 진하게 와 닿았다.


**패션비즈 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Comment
  • 기사 댓글 (0)
  • 커뮤니티 (0)
댓글 0
로그인 시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Related News
Ban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