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라」 공동창업자 로살리아 메라 타계

minjae|13.10.07 ∙ 조회수 9,377
Copy Link

「자라」 공동창업자 로살리아 메라 타계 3-Image




포브스(Forbes)가 선정한 전세계 여성 재력가 순위 19위, 상속재산이 아닌 자수성가형 여성재력가로는 전세계 1위, 남녀 모두 합친 재력가 순위에서는 전세계 195위! 자산 규모 약 61억달러(약 6조8000억원)인 이 여성을 재산 면에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우리나라 재벌들 중에서는 삼성의 이건희 회장(포브스 선정 전 세계 자산 순위 69위)말고는 아무도 없다.

그녀의 이름은 로살리아 메라(Rosalia Mera)다. 가톨릭 국가인 스페인이 가톨릭 큰 축제 중 하나인 성모승천대축일 행사로 떠들썩하던 지난 8월15일, 그녀가 갑작스러운 뇌출혈로 우리 곁을 떠났다. 향년 69세다.

로살리아 메라는 「자라」의 모기업 인디텍스사의 창업주이자 대주주인 아만시오 오르테가(Amancio Ortega)의 전 부인이자 인디텍스의 공동창업자이기도 하다.

그녀의 전남편 아만시오 오르테가와 마찬가지로 그녀도 스페인 북부의 소도시 코루냐의 가난한 집안의 딸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11세의 나이로 학업을 중단하고 옷을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아만시오 오르테가가 인디텍스 이전에 설립한 작은 옷가게 고아(GOA)에서 그녀는 직접 가운 등을 손바느질해 가며 만들어냈고, 그곳에서 8세 연상의 아만시오 오르테가를 만나 1966년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


학업과 맞바꾼 일, 열정으로 글로벌 기업 일구다

「자라」 공동창업자 로살리아 메라 타계 834-Image





로살리아 메라는 그녀의 남편과 함께 만든 옷들을 팔고 새로운 사업을 구상해 가며 1975년 드디어 「자라」의 첫 번째 매장을 코루냐에 마련했다. 그녀는 남편 뒤에서 조용히 내조만 하는 여성이 아니었다. 남편과 함께 사업을 확장하고 아이디어를 내는 등 당당한 동업자의 역할을 했다. 그녀가 단지 아만시오 오르테가의 전 부인이 아니라 「자라」의 공동 창업자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화려하고 당차 보이는 그녀도 개인적인 삶에는 아픔이 많았다.

그녀는 전남편과의 사이에서 산드라(Sandra)라는 딸과 마르코스(Marcos)라는 아들을 뒀다. 그중 아들 마르코스는 선천적인 지체장애를 가지고 태어났다.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그의 아들의 출생은 그녀가 장애인의 치료와 활동을 돕기 위한 비영리재단 파이데이아(Paideia)를 세우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됐다.

「자라」가 한창 성공가두를 달리던 1986년 그녀는 아만시오 오르테가와 공식적으로 이혼했다. 언론에 등장하는 것을 피하며 특히 사생활 문제의 언급을 극도로 꺼리는 두 사람답게 공식적인 자료는 없었다. 하지만 정황을 짐작하게 할 만한 ‘사건’은 있었다. 그들이 이혼하기 2년 전인 1984년 아만시오 오르테가와 그의 현재 부인인 플로라 페레스(Flora Perez) 사이에서 여자아이 마르타(Marta)가 태어난 것이다.


장애아의 출산과 이혼 등 불행한 개인적 삶

로살리아 메라와 아만시오 오르테가 사이에서 갈등이 벌어졌을 것임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플로라 페레스는 당시 인디텍스에서 근무하면서 아만시오 오르테가를 알게 됐다. 그러나 둘 사이의 결혼은 딸이 태어나고도 한참 후인 2001년 이루어졌다.

이와 대조적으로 로살리아 메라는 재혼을 하지 않고 이혼과 동시에 인디텍스 경영에서 물러난 뒤 비영리재단 파이데이아의 운영에 온 힘을 쏟는 한편 못다 한 학업을 잇는 데 큰 열정을 보였다. 그녀는 교육학 등을 공부했다.

그녀는 스페인에서 제일가는 여성 갑부였다. 남성과 견주어서도 전남편 아만시오 오르테가, 「망고」의 창업자 이삭 안딕의 뒤를 이어 3위의 재력가로 꼽힐 만큼 그녀가 가진 부는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그녀는 유년 시절의 어려움을 잊지 않고 늘 겸손했다.


사회적 책임을 외치는 겸손한 여성 활동가

다른 여성 재력가들과 달리 사치나 남성편력 등으로 가십거리에 오르내리지도 않았다. 그뿐 아니라 포브스가 선정한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00인 중 66위에 오른 그녀는 사회•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데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가 열정적으로 운영한 파이데이아 재단의 이름이 그리스어로 교육(Education)에서 유래했다는 것만 보아도 그녀가 얼마나 교육에 관심을 가졌는지 알 수 있다. 이혼 후 뒤늦은 교육학 공부와 함께 재력가로서는 드물게 사회의 여러 곳에서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했던 로살리아 메라.

그녀는 스페인 재정 위기로 인한 교육•공공의료 부분 예산축소와 폐지 등에 반대를 호소하는 입장을 나타냈고, 특히 현 보수여당이 추진 중인 낙태법 개정과 관련해서는 절대 통과돼서는 안 된다고 강력히 주장해 왔다.


파이데이아 재단 운영하며 교육계 대변도

일례로 지난 정권인 진보당이 1980년대 이후 바뀌지 않던 낙태 관련 법령을 ‘14주 이내에 자율적 낙태가 가능하고, 태아가 심각한 질병이나 장애를 가지고 태어날 가능성이 있는 경우 22주까지는 낙태가 가능’하도록 개정했다. 그러나 현 보수정당에서 이 법령을 다시 1980년 대 수준으로 돌려놓으려 하자 그녀는 현 법령이 ‘매우 잘된 법령’이라며 개정안에 대한 반대 의사를 밝혀왔다. 아마도 장애아를 키우며 겪은 실질적 어려움이나 고통이 낙태 금지법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짐작된다.

짧은 쇼트커트 머리에 편한 옷차림을 즐겼던 그녀는 재력을 으스대기보다는 고향인 지역사회에 환원하고 정치적 목소리가 낮은 이들의 대변인이 되기를 자처했다. 그녀의 친딸 산드라의 자녀이자 그녀의 손주인 2명의 아이들도 다른 기업가나 재력가들과 달리 비싼 사립학교나 유럽의 명문학교에 유학을 보내지 않고 코루냐의 공립학교에서 공부하도록 교육했다.

그러는 한편 기업가로서 건재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그녀가 최근까지 투자한 사업은 호텔 체인 ‘룸메이트(Room Mate Hotels)’다. 이 호텔 사업은 오리지널한 디자인과 고객의 진짜 수요에 맞춘 합리적인 서비스와 가격을 제공한다는 목표로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처음 시작했다.


룸메이트 호텔 30% 지분 소유 등 사업투자

현재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스페인의 주요 관광도시와 뉴욕, 부에노스아이레스, 암스테르담, 피렌체 등 전 세계에 18개의 호텔을 소유하고 있다. 룸메이트 호텔 지분의 30% 이상을 가지고 있는 로살리아 메라는 룸메이트 호텔이 3~4개에 불과하던 시절부터 사업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가 휴가지에서 뇌출혈로 쓰러진 뒤 코루냐에 있는 사립병원으로 옮겨져 임종에 이르기까지 그녀 옆에는 딸 산드라가 있었다. 그녀는 현재 로살리아 메라가 남긴 유산의 대부분을 상속받게 될 가장 유력한 가족이며, 그럴 경우 상속과 동시에 스페인 여성 재력가 리스트 상위권에 링크될 예정이다.

로살리아 메라와 아만시오 오르테가 사이에서 태어난 두 자녀 산드라와 마르코스 중 누구도 인디텍스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지는 않다. 다만 산드라의 경우 현재 가지고 있는 인디텍스 지분에 이어 로살리아 메라가 소유했던 7% 지분을 상속받으며 인디텍스의 유력한 주주로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 또 로살리아 메라의 뒤를 이어 파이데이아 재단을 이끌어 나갈 가장 강력한 후보자로도 산드라가 점쳐진다.


간소한 장례식, 그리고 그녀가 남긴 것은?

그러나 벌써부터 유산상속을 둘러싼 세금 문제나 아만시오 오르테가가 재혼한 가정 일원의 상속분 등 여론이 시끄럽다. 상속세를 더 많이 내야 한다는 여론도 있고, 앞으로 인디텍스의 경영이나 지분 등이 누구에게로 더 많이 넘어 갈 것인지 지켜보는 세간의 관심도 뜨겁다.

한편 로살리아 메라의 장례식은 그녀가 죽은 지 이틀 뒤 코루냐의 작은 지방 올레이로스(Oleiros)의 조그마한 교회에서 조용히 치러졌다. 결코 좋다고 할 수 없는 관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임종을 지킨 것으로 알려진 전남편 아만시오 오르테가는 물론 인디텍스의 현 최고경영자 파블로 이슬라(Pablo Isla)와 회사의 주요 경영진, 그리고 코루냐의 시장을 비롯한 여러 정치인 등 정•재계의 주요 정치인들이 모인 가운데 장례식이 진행됐지만, 그녀의 생전 삶의 모습처럼 식은 간소하게 치러졌다.

비록 그녀는 떠났지만, 그녀를 추모하는 수많은 보통 시민들의 애도 물결에서 그녀가 남긴 발자취를 읽을 수 있다. 상상도 못할 부를 가졌지만 한 번도 본인이 ‘상류사회’에 속한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말한 겸손한 재력가 로살리아 메라. 그녀는 이제 이 모든 이야기를 뒤로하고 자신의 고향 코루냐의 작은 마을에서 영원한 휴식에 들어갔다.


**패션비즈 10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Comment
  • 기사 댓글 (0)
  • 커뮤니티 (0)
댓글 0
로그인 시 댓글 입력이 가능합니다.
Related News
Ban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