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건 l 대현 대표
「듀엘」이어「엣플레이」까지... ‘뉴 대현’ 이끄는 이노베이터 CEO
소신과 신념을 갖춘 불도저 CEO.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며 느낀 그에 대한 생각이다. “오너가 닦아놓은 길을 걸어갔을 뿐”이라며 인터뷰를 극구 사양하던 신윤건 대현 대표는 “그저 가장 잘하는 것에 집중했다”며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미래 성장엔진을 발굴하는 CEO가 각광 받는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전략적이며 창의적인 마인드로 기업을 경영하는 리더십이 요구된다. 지난해 최고의 브랜드로 손꼽힌 「듀엘」의 탄생은 그의 이 같은 경영 철학이 바탕이 됐다. 모두가 SPA, 아웃도어가 대세라고 할 때 신 대표는 가장 잘하는 것에 집중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여성복, 그중에서도 ‘영캐주얼’을 하자.” 다들 어렵다고 움츠릴 때 오히려 다이내믹하게 움직이며 찬스를 잡아낸 소신 있는 리더, 그는 「듀엘」이라는 멋진 브랜드를 만들어냈다. 신 대표는 패션업계 장수 브랜드들의 몰락 속에 국내 패션산업을 이끌어 온 선두주자로서 대현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다.
도전 & 혁신 키워드로 ‘보수적 이미지’ 타파
“2007년부터 근 3년간은 많이 방황했던 것 같다. 리딩 브랜드를 쫓아가기 바쁘고, 실적을 방어하기에 급급한 시절이었다. 야심차게 준비한 「칵테일」도 수익성 하락으로 2년 만에 중단해야 했다. 그러나 그 시절을 보내며 깨달았다. 가장 큰 실패는 ‘포기’하는 순간, 바로 그때라는 것을.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는 것으론 대세를 바꿀 수 없다, 포기하지 않고 쉼 없이 도전하는 것만이 답이다.
” 2012년 2월 탄생한 「듀엘」은 업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베스트 브랜드로 떠올랐다. 런칭 당시 8개 매장으로 시작했던 「듀엘」은 지난해 말 36개로 늘었고 26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현재 57개점을 전개하고 있으며 올해 목표 매출은 470억원이다. 런칭 1년 만에 흑자 전환까지 가능할 것으로 예측된다.
“패션은 끊임없는 도전이다. 끝까지 여성복을 고수하겠지만 새로운 접근으로 ‘다른’ 여성복을 보여줄 예정이다.” 대현은 「듀엘」의 돌풍에 이어 하반기 또 한번 일(?)을 낼 준비를 마쳤다. 아우터 전문 브랜드 「엣플레이(at play)」가 주인공이다.
「듀엘」 통해 얻은 자신감, 「엣플레이」까지
영하 10도가 넘어가는 추운 겨울이 길어지면서 보온성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편안함과 실용성을 추구하는 성향은 강화됐으며 소비자들의 레저 라이프는 확대되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을 똑똑한 대현이 놓칠 리 없다. 레저 라이프에 맞는 야상과 점퍼, 길어진 한파를 대비한 다운과 패딩을 특화하고 디자이너의 테이스트가 느껴지는 캐주얼 슈즈를 더한 「엣플레이」로 시장을 리드해 갈 계획이다.
대현은 A~Z까지 모두 만드느라 기획 타임이 늦는 국내 브랜드의 단점을 「엣플레이」라는 아우터와 슈즈를 깊이 있게 파고든 단품 브랜드로 해결할 생각이다. 품목을 줄이면 8개월, 길게는 1년 전 기획이 가능하기 때문에 해외 시장 개척에도 용이하다는 것.
“40~50가지 메뉴를 내걸고 장사하는 음식점에는 대표 메뉴가 없다. 종합선물세트보다는 깊이 있게 파고든 똘똘한 놈(?)으로 승부를 볼 생각이다. 자기 컨셉이 분명한 브랜드만이 살아남는다는 것은 「듀엘」을 런칭하면서 확신했다. 이번엔 한발 더 나아가 ‘아이템’으로 집중 공략할 생각이다.”
전문 브랜드로 승부, 콘텐츠 혁명 이뤄낼 것!
이어 그는 “모든 브랜드들이 ‘아이덴티티’가 중요하다 외치는데 연간 600~800모델을 만들어내야 하는 국내 영캐주얼 브랜드 특성상 아이덴티티를 만들고 지켜가는 것은 너무 어렵다. 특히 수백 명의 디자이너를 두고 움직이는 글로벌 브랜드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현실에서 이 같은 어려움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몽클레어」나 「캐나다구스」처럼 스폐셜라이즈화된 단품 브랜드가 시장을 리드하는 시대가 올 것이다. 국내 패션기업들도 경쟁력을 한곳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한다.
「듀엘」 런칭 후 바로 이듬해 또다시 신규 브랜드를 선보일 수 있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올까. 37년 동안 한 우물만 파왔던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볼 수 있다. 신 대표는 ‘위기가 곧 기회’라고 여기며 ‘잘하는 것’에 집중해왔던 철학으로 접근했다. ‘연은 순풍이 아닌 역풍에 가장 높이 난다’는 처칠의 말처럼 불황기에는 패션업계의 틀이 바뀔 가능성이 크다. 잘하는 것에 집중해 공격적으로 대응하는 것만이 살 길이다.
「블루페페」 「주크」 「씨씨콜렉트」 「모조에스핀」까지 전개 중인 브랜드가 고른 매출과 이익을 내는 것도 공격적인 경영을 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이는 각 브랜드가 모두 시장 내에서 작지만 강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기업이 안정적으로 비즈니스를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지난해 브랜드별 매출을 살펴보면 「블루페페」 480억원, 「모조에스핀」 530억원, 「씨씨콜렉트」 580억원, 「주크」 665억원을 기록했으며 평균 8%의 고른 영업이익률을 보이고 있다.
영업이익 전년비 48% UP, 불황 속 신장 지속
“20대 초반의 여대생을 타깃으로 하는 「씨씨콜렉트」와 「주크」, 커리어우먼을 공략하는 「모조에스핀」과 가두 상권에서 제 역할을 해내는 「블루페페」까지 중가, 감도, 시장친화 등 각기 다른 길을 걷지만 ‘여성복’이라는 틀 안에서 움직인다. 여성복 전문기업으로서는 완벽한 포트폴리오다. 하루 동안 성격이 전혀 다른 5명의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헷갈리고 버겁고 지칠 때도 있다. 그러나 같은 듯 다른 브랜드를 전개하다 보니 균형 감각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재무적으로 건전하다는 점도 꾸준히 도전할 수 있는 힘이 된다. 1999년 686%에 달했던 부채 비율은 현재 90%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다. 반면 자기자본 비율은 12%에서 55%까지 상승했다. 신 대표는 “1999년 IMF 외환위기 때 채권차환 발행에 실패하며 워크아웃 대상 기업으로 선정됐다. 1년9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졸업했으나 「도니라이크」 「스푼」 등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 대현엔 잊지 못할 시련이 있다. 엔씨에프, 지엔코 등 계열사를 두며 잘 나가던 패션 기업에서 외환위기 충격으로 회사가 간판을 내려야 하는 최악의 순간까지 경험했다. 그러나 대현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체질개선의 결과로 워크아웃 추진 기업 중 최단기간인 1년9개월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했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방법을 터득하는 내공은 이때 생겼다.
‘연은 순풍이 아닌 역풍에 가장 높이 난다’
그는 오너 신현균 회장과 오랜 세월 호흡을 맞춰오며 바로 옆에서 회사에 대한 애정과 열정, 끈기를 배웠다. 신 회장의 침착하고 안정적인 성향과 노련함에 신 대표의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성격, 빠른 추진력이 더해지며 회사는 한층 빠르고 견고하게 성장했다. 동시에 세상의 변화를 매의 눈으로 파악하고, 상황을 냉철하게 판단하는 이성도 갖추고 있다는 외부의 평가처럼 그는 보수적이고 올드한 기업 이미지를 능동적이고 도전적인 이미지로 변화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1983년 대현에 입사한 후 30년간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왔다. 장기적인 시각으로 이상과 현실, 수익과 이미지의 경계 속에서 균형감을 유지하고자 한다. CEO의 최대 자질은 미래를 읽는 통찰력, 인재를 활용하고 조직을 포용하는 리더십, 비즈니스를 개발하고 발전시키는 역량이다. 아직 나는 부족하다. 그러나 대현을 시장 내 ‘톱(TOP)’으로 만들고자 하는 열의는 누구보다 크다.”
대현은 국내를 넘어 해외시장에서도 인정받는 ‘톱’을 목표로 한다. 현재 중국 사업은 지속적인 호조를 띠고 있다. 2005년 중국 타까복장유한공사와 「주크」 「모조에스핀」 브랜드의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처음 중국시장에 발을 들인 대현. 2010년에는 계약기간을 10년 연장했으며 한류 확산으로 점점 더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연간 55만달러(약 6억2400만원)의 로열티 수입을 벌어들이고 있으며 지난해 60억원 상당의 수출 매출도 기록했다. 「듀엘」 또한 중국에 상표 출원을 한 상태이며 미국과 유럽 시장 진출도 고려하고 있다.
선택과 집중, ‘히트’ 브랜드로 ‘톱’기업 GO
향후 포부를 묻는 질문에 신 대표는 다소 원론적인 얘기지만 모범답안을 들려줬다. “국내에 몇 안 남은 ‘여성복 전문 기업’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시장을 리드하는 기업, 열정과 도전 정신이 있는 조직문화를 구축해 구성원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회사로 만들고자 한다”고 말한다.
신 대표의 경영 철학을 들여다보면 2005년 스티브 잡스가 스탠퍼드대학 졸업식에서 한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이 떠오른다.‘ 끊임없이 갈망하고 우직하게 나아가야 한다’는 스티브 잡스의 말처럼 그는 겸손함을 잃지 않되 도전을 이어갈 계획이다.
인터뷰를 끝내고 나오는 길에 그가 책 한 권을 선물했다.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마법의 순간’이라는 신간이었다. ‘진정한 땀의 대가는 그래서 우리가 무엇을 ‘얻느냐’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엇이 ‘되느냐’입니다’라는 글귀가 적힌 부분에 책갈피가 꽂혀져 있었다. 그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대현의 모습이 적힌 문장이었다. 돈을 많이 ‘얻는(버는)’ 회사가 아닌 시장 내 리더가 ‘되기’ 위해 그는 오늘도 내일도 진정한 땀을 흘리며 쉼 없는 레이스를 펼쳐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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