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환「허환시물레이션」 대표 겸 디자이너
「허환시물레이션」은 브랜드의 이름처럼 실험적인 컨셉이 포인트다. 바로 디케이드 프로젝트(Decade Project)로 일종의 ‘크리틱 컬렉션’이라고 볼 수 있다. 1920~1990년대 사이에 일어났던 패션 관련 에피소드를 소재로 사회의식을 담아 디자인에 반영하고 있다. 허 대표는 “항상 새로움을 논하는 것이 패션이지만 완전한 새로움은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유행했던 스타일, 그 당시를 풍미했던 디자이너 그리고 화려한 패션 인더스트리에 감춰진 불완전한 모습까지 이 모든 것이 컬렉션의 좋은 영감이 된다. 이 소스를 활용해 프린트, 실루엣에 적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학 중 장학금의 기회, 복스홀 우승까지
다소 현학적인 내용이지만 신진 디자이너로 꾸준히 브랜드 컨셉을 지켜갈 수 있는 아이디어였다. 한양대에서 인문학을 전공한 그는 여성복 루비나를 거쳐 2004년 영국 센트럴 세인트마틴(Central saint martins college of art and design)에서 남성복을 전공했다.
당시만 해도 영국에 한국 유학생은 거의 전무했던 터라 비교할 대상 없이 거의 홀로 공부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해야만 했다. 1학년 과정을 마친 뒤 세인트마틴보다 등록금이 두 배가 비싼 영국왕립예술학교(Royal College of Art Fashion 이하 RCA)에 장학금을 받고 들어 갈 기회가 주어졌다.
허 대표는 “영국 유학길에 오를 때 늦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 당시에도 내 브랜드를 런칭한다는 전제하에 도전했기 때문에 큰 기회들을 잡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RCA 졸업작품쇼에서 피날레를 장식하며 화제를 모은 뒤 복스홀 패션 스카우트 위너로도 선정되며 진정한 런던의 스타가 됐다.
사회적 의미 담은 컬렉션, 실험자세 높이 사
복스홀 패션스카우트는 영국에서 명망 높은 디자이너 육성 프로그램 중 하나로 패션 이스트(Fashion East), 패션 프린지(Fashion Fringe)와 함께 3대 신진디자이너 등용문으로 꼽힌다. 패션 이스트와 프린지가 영국을 베이스로 한다면 복스홀 패션 스카우트는 비 영국인에도 좀 더 관대한 편이었다.
심사 과정은 길고 까다로웠지만 다양한 멘토링 시스템을 통해 오히려 새로운 걸 배울 수 있는 창구가 됐다. 더불어 세 시즌 컬렉션을 치를 수 있는 2만5000유로(약 3600만원)의 상금도 주어졌다. 신진디자이너에게 금전적인 부담 없이 런웨이쇼를 보여줄 수 있는 점은 그 어느 부상보다 값진 기회가 된다. 이와 함께 런던에서 먼저 인정받은 점도 그에게는 큰 무기가 됐다. 보다 먼저 빅바이어를 만날 수 있었고 패션의 도시 파리로 가는 루트도 빠르게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유럽에서 팔리는 옷과 한국 소비자가 좋아하는 옷의 차이를 현저하게 느낀다. 한국에서는 베이직한 아이템이 인기가 높은데 유럽과 아시아에서 동시에 컬렉션을 치르며 서로 다른 반응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 장점”이라고 말했다.
런던 베이스, 글로벌 디자이너로 한국에 역진출
“고무적인 사실은 내가 학생으로 런던에서 공부할 때와 비교해 지금은 한국 디자이너의 성장이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우선 양적 팽창 요인이 컸고 이와 함께 질적으로 실력 있는 디자이너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과거 일본 학생들이 절반 이상이었다면 지금은 한국 중국이 리드하는 분위기”라며 후배들의 움직임도 주목했다.
「허환시물레이션」은 불가리아 이탈리아 편집숍에 이어 파리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새해부터 국내 유통도 차츰 늘려갈 계획이다. 현재는 편집숍 ‘플로우’ ‘디누에’ ‘POT’에서 전개하고 백화점은 팝업스토어 형태로 테스트를 거친 뒤 입점할 예정이다. 허 대표는 “디케이드 프로젝트를 차근차근 쌓아 한 권의 책으로 만들 장기적인 계획도 세워놨다.
지금은 「허환시물레이션」에 집중해 여성복 컬렉션을 이어갈 예정이며 추후 세컨드 레이블이나 남성복 라인으로도 발전시켜 갈 것”이라고 말했다. 인문학도로 출발해 런던의 샛별로 떠오른 「허환시물레이션」. 10년 뒤 그가 완성할 디케이드 프로젝트의 실험 결과물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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