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아리키엘」, <br>리앤펑에 매각 의미는
켜내며 직접 디자인까지 해왔던 소니아 리키엘. 40년간 독특한 패션세계를 이끌어온 프랑스의 마지막 독립 디자이너가 끝내 총 지분의 80%를 홍콩계 투자회사 펑 브랜드(Fung Brands)에 넘긴 것이다.
파리 패션계는 이를 두고 많은 아쉬움을 표했다. 일부 패션 관계자는 자존심을 버리고 중국 기업에 브랜드를 팔아넘긴 소니아 리키엘의 딸이자 대표인 나탈리 리키엘을 비난하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최근 몇 년 매출하락과 소니아 리키엘의 건강 악화 등으로 어려움에 놓인「 소니아리키엘」의 이 같은 결정이 브랜드의 실속과 미래를 위해 피할 수 없는 행보였음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2008년 이후「 소니아리키엘」의 매출은 꾸준히 하락했다. 2011년 매출은 9000만유로(약 1330억원)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으로 4년 사이 매출이 20% 가까이 떨어졌다. 나탈리 리키엘은 한 언론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가장 멀리까지 메종을 이끌어 왔다. 하지만 이제는 브랜드가 전 세계에서 활약할 수 있는 확실한 경영 전략과 그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강력한 자본이 필요한 단계에 도달했다”고 이번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지분 80% 홍콩계 투자회사 펑 브랜드에 넘기다
그녀의 이러한 발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오랫동안 파리 패션계를 이끌어왔던 크고 작은 독립 메종들이 그동안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직면해온 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소규모 아틀리에 방식으로 운영되는 독립 메종은 유럽 시장만으로는 더이상 비전이 없어졌다. '브랜드의 생존'을 위해 아시아와 북미시장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 아시아와 북미시장은 초기 자본력이 반드시 필요한 곳이고, 이를 개척하기 위해 대형 글로벌 기업의 힘을 빌려야 할지 선택의 여부만이 남겨졌다. 최초의 글로벌 명품기업이라 불릴 만한 LVMH는 1990년까지「루이뷔통」「 크리스티앙디오르」「 지방시」「 셀린느」와 같이 역사는 있지만 잦은 디자이너의 교체로 방향을 잃고 있던 독립 메종들을 싼값에 사들였다.
그리고 1998년부터 스타 디자이너 고용, 아시아 시장 개척 등 본격적인 투자를 시작한다. 조금 늦게 명품 브랜드 사냥에 뛰어든 PPR의 경우 1999년부터「 이브생로랑」「 발렌시아가」와 같은 프랑스 독립 메종부터「 구치」「 보테가베네타」 등의 이탈리아 메종들을 사들인다.
이렇게 대기업이 사들인 브랜드들은 새롭게 부활한다. 가장 큰 성공을 이룬 브랜드로「 루이뷔통」을 들 수 있다「. 루이뷔통」은 1998년까지 오랜 역사를 지닌 장인 브랜드의 이미지가 강했다. 주로 여행용 트렁크와 알마, 노에, 불로뉴 등으로 대표되는 모노그램 캔버스 소재의 한정된 모델들만이 오랫동안 부유층에 의해 소비됐다. 게다가 디자인 역시 유행을 타지 않는 무난한 스타일에 언제, 어디서, 어떤 옷에 매치해도 어울릴 만한 클래식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패셔너블한 브랜드라기보다는 어머니에서 딸에게, 또 그 딸에게 물려주는 골동품(?) 혹은 소장품을 생산하는 브랜드에 가까웠다.
90년대 LVMH, PPR등 글로벌 기업, 브랜드 사냥
하지만 1998년 말에 마크 제이콥스가 아트 디렉터로 들어오면서 모든 것이 바뀌기 시작했다. 단순히 디자인이 젊어진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타깃과 방향 자체가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400유로(약 60만원)대의 보다 저렴해진 제품군을 만들어 마치 계절마다 입을 옷을 쇼핑하듯 가방을 자주 갈아치울 수 있도록 했다.
「 루이뷔통」 가방은 더 이상 딸에게 물려줄 수 있는 골동품이 아니라 한 철이 지나면 유행에 뒤처져 들고 다닐 수 없는 소모품으로 변했다. 이 같은 변화는「 구치」「 펜디」「 지방시」「 이브생로랑」「 끌로에」「셀린느」와 같은 다른 명품 브랜드들에도 영향을 미쳤고 이들은 기업의 거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변화에 적응해 나간다.
하지만「 에르메스」나「 샤넬」과 같이 이미 나름의 시스템을 갖춘 메종들 외에 디자이너 중심으로 운영되던 보다 작은 규모의 독립 메종들은 조용히 거대자본에 흡수되거나 계속해서 고집스럽게 작은 규모에 만족하며 조금씩 메종의 촛불이 꺼져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파리지엔의 여성스러움과 시크함을 동시에 표현할 줄 아는 디자이너 소니아 리키엘은
1930년 파리에서 태어나「 로라(Laura)」라는 작은 부티크에서 옷 만드는 일을 시작한다.
1968년 서른여덟의 나이로 부유층이 모여 사는 뤼 드 그르넬(RuedeGrenelle)에 첫번째
「 소니아리키엘」 부티크를 열었다. 이곳에서 그녀의 상징인 몸에 딱 붙는 니트를 만든다.
또한 당시로서는 획기적이었던 그녀만의 끝단 처리와 홑겹의 니트는 그녀를 단숨에 ‘니트의
여왕’으로 부상하게 했다. 주로 검은색과 줄무늬, 반짝이는 모조 크리스털로 장식한 그녀의
니트는 섹시하면서도 시크한 파리지엔만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며 수많은 여성들의 사랑을
받게 된다. 소니아 리키엘은 디자이너들이 제안하는 유행에 맞춰 옷을 입기보다 여성 스스로가
각각 자신의 스타일에 맞게 옷을 입어야 한다는‘ 논패션’을 제안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녀는
여성들에게 단순히 예쁜 옷을 판매하기보다 여성으로서 지녀야 할 독립성과 섹시함을 동시에
심어주고 싶어 했다. 「소니아 리키엘」의 대표이자 아트 디렉터로도 활동하고 있는 나탈리
리키엘은 소니아 리키엘의 친딸로 스무 살 때부터 메종에서 함께 일을 시작했다. 1986년
그녀의 첫 임신에 맞춰 출시한 아동복 라인이 그녀의 디자이너로서의 첫번째 작품. 2002년에는
‘리키엘 우먼(RykielWoman)’이라는 부티크를 만들어 옷뿐만 아니라 섹스토이를 판매하는 등
독특한 세계관을 이어가고 있다.
독립 메종과 글로벌 명품 브랜드 사이 선택의 기로
이와 같은 독립 메종의 한 예로「 랑방」을 들 수 있다. 지금은 알버 엘바즈(Alber Elbaz)라는 뛰어난 디자이너에 의해 새로운 전성기를 맞은 브랜드이지만 1980년대부터 2001년까지 브랜드 소유주가 여러 번 바뀌는 운명을 겪었다. 한때는 프랑스 최초의 쿠튀르 메종 중 하나로 이름을 날렸지만 디자이너의 잦은 교체, 뚜렷한 마케팅 방향을 찾지 못한 채 이리저리 표류하다가 마침내 2001년, 왕쇼란(Shaw-Lan Wang)이라는 대만의 억만장자 여성 사업가가 메종을 사들이면서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다.
매출면에서도 2006년 7300만유로(약 1080억원)에서 2010년 1억5000만유로(약 2220억원)로 5년 사이 두 배가 넘는 성장을 이뤘으니 디자인과 마케팅 모든 면에서 성공을 이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밖에도「 멀버리」「 지미추」「 에스카다」와 같은 유럽의 독립 메종들이 속속 아시아 자본에 의해 소유주가 바뀌었다.
다시「 소니아리키엘」의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브랜드의 핵이라 할 수 있는 소니아 리키엘의 건강 악화와 최근 몇 년간의 매출 부진 사이에는 어쩔 수 없는 인과관계가 있다. 결국「 소니아리키엘」이 한 인물에게 여러 가지 역할을 의존해야 하는 전형적인 가족경영 독립 메종에서 경영전략과 마케팅 등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뤄 이익을 내는 기업 시스템으로의 변화를 필요로 하게 됐다는 것이다.
「랑방」, 대만 억만장자 사업가 만나 새 생명 찾아
「소니아리키엘」의 새로운 대표이사가 될 펑 브랜드의 재무이사장 마크 루비에(Jean-Marc Loubier)는 벌써부터 브랜드의 예술적 방향이 아닌 메종이 지닌 스토리의 힘과 소니아 리키엘이라는 전설적인 인물을 앞세워 전 세계적으로 펼칠 마케팅 방향에 대해 강조한다. 소니아 리키엘 본인에게는 슬픈 현실일 수 있지만 그녀의 사후, 브랜드가 계속해서「 소니아리키엘」이라는 이름을 지닌 채 살아남으려면 펑 브랜드에 집안의 열쇠를 쥐여주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의문은 남는다. 왜 LVMH, PPR과 같은 프랑스 대기업을 두고 그녀는 중국의 펑 브랜드를 선택한 것일까. 펑 브랜드의 모기업인 리앤펑그룹은 홍콩에 본사를 둔 중국계 무역회사로 연매출액이 200억달러(약 23조억원)가 넘는다. 10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리앤펑그룹의 주 사업분야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의류를 포함한 각종 공산용품의 생산부터 판매까지의 공급망을 관리하는 일. 최근에는 해외 브랜드를 사들이는 일에도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2010년에 프랑스 남성복 브랜드인「 체루티」를 사들인 바 있다. 「소니아리키엘」이 리앤펑을 선택한 데에는 무엇보다 리앤펑이 중국계 기업이라는 점, 전 세계에 공급망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듯하다. 나탈리 리키엘이 밝혔듯 오늘날의 명품시장은 프랑스적인 비전만으로 승부하기엔 아시아 시장이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 커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앤펑의 대표인 빅토 펑(Victor Fung)이 직접 나서 나탈리 리키엘을 설득할 만큼 리앤펑이 이번 일에 거는 기대가 크다고 볼 수 있다.
리앤펑, 연간 23조원 홍콩 베이스 중국계 무역회사
2000년대 들어서면서 명품시장에 변화가 일기 시작한 것은 2001년 중국이 WTO에 가입하고 시장을 개방하면서부터다. 이는 새로운 시장 개척에 목말라 있던 전 세계 명품 브랜드들에 돌파구가 됐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컨설팅 회사인 롤랜드 버거(Roland Berger)의 조사에 의하면 2011년 현재 중국시장이 전 세계 명품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7%다.
액수로 환산하면 230억유로(약 34조원)에 달한다. 2015년에는 570억유로(약 85조원)로 전체 시장의 34%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렇듯 아시아 명품시장 특히 중국시장이 전 세계 다른 시장보다 두드러지는 매출증가 현상을 보이는 것에 대해 프랑스 언론들은 적어도 20년간은 이러한 증가추세가 계속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중국 명품시장 2011년 34조원, 2015년 85조원으로
이를 반영하듯 중국에는 현재 95개의「 던힐」 매장, 50여개의「버버리」 매장,「 구치」와「 루이뷔통」은 각각 40여개의 매장이 젊고 부유한 중국인들을 맞이하고 있다「. 에르메스」의 경우 현재 중국 전역에 40여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2013년에는 파리, 뉴욕, 도쿄, 서울에 이어 다섯번째‘ 에르메스 메종’을 베이징에 오픈할 예정이다.
2010년에 중국은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해외에 투자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에 올라섰다. 게다가 중국 자본이 2010년까지 유럽에 직접 투자한 금액은 160억달러(약 17조8000억원)로 전체 해외 투자 금액 중에서는 5%정도다. 눈여겨봐야 할 것은 주요 분야가 제조&기술분야, 금융 컨설팅 그리고 명품 브랜드들이라는 점이다.
특히 동유럽의 의류, 가방 제조 공장을 주로 사들이고 있어 앞으로 중국 기업들이 유럽의 선진 제조 기술을 가지고 중국산 명품을 만들게 될 날이 머지않았음을 예상케 한다. 이는 유럽의 명품 브랜드들이 어쩌면 앞으로 중국 브랜드와 중국시장을 놓고 경쟁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럽에 직접투자 18조원, 세계 5번째로 해외투자 많아
중국 국제무역촉진위원회 섬유업계분회(CCPiT Tex) 인윤평(Lin Yun Feng) 부회장은 프랑스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의류분야에서 중국 내 기업들의 성장이 두드러질 것이라 예상된다. 따라서 중국에 진출하기를 원하는 해외 브랜드들은 지금이 중국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를 반영하듯 LVMH의 움직임은 적극적이다. 계열 투자회사인 L 캐피털은 2년 전에 L 캐피털 아시아라는 극동지역 전문 투자회사를 만들어 올 한 해 동안 인도와 중국의 중소기업들에 2억~3억달러(약 2200억~3300억원)까지 투자할 예정이다. 최근에는 중국 내 기성복 브랜드인「 조리아(Jorya)」를 포함해 6개의 여성복 브랜드를 소유한 신허패션(Xinhe Fashion)과 중국 내 럭셔리 여성복 브랜드인「 오실리(Ochirly)」를 소유한 트렌디인터내셔널그룹(Trendy International Group)의 지분 중 각각 최소 5%, 최대 20%까지 사들였다. 이 두 기업은 중국 내에 넓게 퍼져 있는 유통망과 최근 몇 년간 기복 없는 매출로 중국 내에서도 주목을 받는 기업들이다.
LVMH, 계열 투자회사 L캐피털 통해 인도 중국에 투자
L캐피털의 대표이사인 다니엘 피에트(Daniel Piette)는 이러한 투자 사실을 인정하며 투자의 목적을 기업 간의 M&A가 아닌 경영 컨설팅과 가능성 있는 중국 기업들을 키우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허와 트렌디인터내셔널그룹이 지향하는 고객층과 LVMH가 지향하는 고객층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 이유다.
실제로 중국 내에서 인기를 끄는 브랜드들이라 해도 아직은 유럽의 명품 브랜드들과 품질과 디자인 면에서 나란히 비교하기가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해야 하는 유럽의 투자회사들은 너무 늦기 전에 중국 기업들을 견제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이제 유럽 브랜드뿐만 아니라 세계시장에 중국시장이 의미하는 바는 확실해졌다. 피하고 싶어도 더 이상은 피할 수 없는, 반드시 안고가야 할 시장이 된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올해 초에 열렸던 프르미에르비종, 메스어라운드 등의 파리 섬유 박람회, 신인 디자이너를 위한 액세서리 박람회 등에서 중국 방문객이 작년에 비해 많게는 48%, 적게는 33%까지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박람회에 참가한 젊은 디자이너들은 이를 의식한 듯 중국풍의 데코레이션으로 중국 클라이언트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대량생산 ‘싫어’, 젊은 VIP대상 커스톰 메이드도
하지만 아직도 파리에는 독립 메종으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메종들이 있다. 파리 패션의 중심가인 생 토노레(Saint-Honore) 구역에 1853년 처음 문을 연 이후 꾸준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고급 여행 트렁크 전문 브랜드인「 고야드(Goyard)」는 고야드 가족이 지금까지 직접 경영을 하고 있는 프랑스의 얼마 남지 않은 가족경영 독립 메종이다.
「루이뷔통」보다 고가의 제품군을 판매하고 있는「 고야드」가 이처럼 치열한 명품시장에서 지금까지 독립 메종으로서의 자리를 굳힐 수 있었던 것은 의아하게도 특별한 마케팅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커스텀 메이드 제품 판매를 고집하는 메종의 정책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즉 아는 사람만 물건을 사게 됨으로써 대량생산을 피할 수 있고 따라서 메종의 품질관리와 고객관리가 철저하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것이야말로「 고야드」의 핵심적인 마케팅 방법이라고 볼 수도 있다.
고집스러운 마케팅을 이어가는「 고야드」의 2010년 매출은 1500만유로(약 220억원)로「 루이뷔통」이나「 에르메스」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숫자이지만 2006년 이후 순이익은 두 배 상승해 어느 명품 브랜드보다 황금알을 낳는 알짜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중국에서도 판매를 시작한 이 작은 거인은 대규모 광고 캠페인 대신 젊고 부유한 소수의 젊은 VIP고객들만을 초대해 제품을 소개하는 파티를 열어 브랜드를 알리고 있다.
「고야드」, 독립 메종 자존심 계속 지킬 수 있을까?
앞으로도 계속「 고야드」가 독립 메종으로서의 자존심을 지켜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소니아리키엘」이 그랬던 것처럼 수익을 내고 있는 브랜드라 하더라도 독립 메종으로서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으로도 판매를 하기 시작한 명품 브랜드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전문 경영인에 의한 경영과 독특한 마케팅 전략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래도 반가운 소식은「 소니아리키엘」이 비록 더 이상 가족경영 체제는 아니지만 나탈리 리키엘이 계속해서 메종에 남아 디자인에 참여할 것이라는 것이다. 특히「 소니아리키엘」이 취약했던 가방과 슈즈 같은 액세서리 부문이 강화될 예정이라고 하니 어쩌면 이전보다 더 자주「 소니아리키엘」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소니아리키엘」의 미래를 걱정하는 패션계 사람들에게 나탈리 리키엘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다음과 같다“. 우리가 오랫동안 고뇌한 끝에 펑 브랜드를 선택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이제는 프랑스적인 비전만으로 메종을 운영하는 데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게 됐다.「 랑방」의 성공적인 재기 뒤에는 뛰어난 디자이너 외에도 매우 부유한 대만 여성기업인이 있었기 때문임을 잊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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