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네트웍스, 한섬 인수 의미는?

10.09.01 ∙ 조회수 15,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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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전문기업들의 시대는 이제 종말을 고하는 것일까. 그동안 루머로만 떠돌던 SK네트웍스(대표 이창규)의 한섬 인수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SK네트웍스는 최근 한섬을 4000억~5000억원(추정치)에 인수키로 합의했다. 오래동안 끈질기게 소문으로 떠돌던 ‘설’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이다.

이랜드 품에 안긴 데코와 네티션닷컴, SK네트웍스로 넘어간 오브제, 기업 사냥꾼에게로의 매각과 부도로 이어진 쌈지와 톰보이 등 국내 패션 역사를 대표해 온 이들 패션기업에 이어 한섬마저 대기업인 SK네트웍스로 넘어간다는 소식에 패션업계에는 묘한 전운이 감돌고 있다.

전문기업 시대가 종말을 고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물론 한섬의 매각은 지난 3~4년 동안 이슈로 부각된 것만 수차례, ‘타이밍’만 문제지 넘어가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시선이었다.

매각하며 가치 인정 받는 패션기업 첫 사례
그러나 막상 일이 벌어지고 보니 이제 대외적으로 한국 최고 패션 전문기업으로, 대내적으로는 패션기업 롤모델로 포지셔닝해 온 한섬마저 대기업으로 넘어갔다는 이 상징적 의미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만큼 한섬이 국내 패션 역사와 산업에 미친 영향은 지대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관심을 끄는 것은 우선 한섬의 매각 금액이 과연 얼마일까이다. 이 금액이 중요한 이유가 있다. 그동안 망하기 직전 ‘헐값’에 매각되거나 비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넘어가는 사례가 많던 인수합병(M&A) 행태에서 한섬은 패션기업으로는 드물게 높은 미래가치를 인정 받는 첫 사례로 기록되게 됐다. 오브제의 경우 M&A는 강진영 윤한희라는 디자이너의 인수에 무게를 실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한섬과는 상황이 좀 다르다.

매각 금액이 아직 공표되지 않았지만 시가총액 4360억원, 연매출 4000억원 규모의 한섬 매각금액은 현재까지 4000억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처음 정회장이 제시한 금액으로 알려진 것이 4700억원. 이후 LG패션 제일모직 등과의 협의를 거치는 동안 3000억원대로 내려와 한때 3300억원이라는 설까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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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네트웍스 패션사업 확장, 이제 한섬까지?
하지만 이번 SK와는 이를 다시 4000억원대로 올려 협상했다고 하며, 현재 이 금액은 5000억원이라는 설까지 파다하다. 제 값에 팔겠다는 정회장의 생각과 “원하는 조건을 만족시켜 줄 테니 우리에게 팔아라”고 한 통큰(?) SK 측과 의견을 좁혀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여러 차례 고민을 거듭, 의사결정을 번복하며 마지노선을 고수해온 정회장의 전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앞으로 패션기업의 M&A에 있어 어느 정도 한섬의 사례가 영향을 미칠 것을 고려한다면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물론 이 정도의 수익성을 갖춘 패션기업은 흔치 않다. 하지만 정회장의 행보와 그동안의 협상 과정을 뚫어지게 지켜보는 국내 패션경영인, 특히 1세대 경영인들의 시선은 이것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는 SK네트웍스의 급부상이다. SK네트웍스는 오브제에 이어 한섬을 인수함으로써 국내 패션업계에 막강한 ‘권력자’로 떠오르게 됐다. 제일모직 LG패션 캠브리지코오롱 SK네트웍스 등 4개 대기업 가운데 가장 후발주자이면서 규모가 적던 SK네트웍스 패션부문(4400억원)이 이제 한섬을 인수하면서 8300억원 규모로 껑충 뛰어오르게 됐다. 매출 순위도 제일모직(1조2380억원) 이랜드+이랜드월드(1조2000억원) 코오롱+캠브리지코오롱(1조원 추정) LG패션(9222억원)에 이어 SK네트웍스가 랭킹 5위로 올라서게 된다.

8300억원 규모 ‘패션 권력자’로 껑충 뛰다
브랜드의 면면도 화려하다. 우선 수입 브랜드 위주의 SK네트웍스는 이미 「오브제」와 「오즈세컨」으로 여성복 입지를 굳힌 데 이어 여성 커리어(타임), 캐릭터(마인), 영캐릭터(시스템, SJSJ) 브랜드를 고루 갖추게 됨으로써 여성복 최강으로 올라선다. 뿐만 아니라 남성캐릭터(타임옴므, 시스템옴므)와 라이선스(랑방컬렉션)도 갖게 된다.

수입은 아직 변수가 남아 있다. 본사와의 재계약 등 복잡한 사안이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 넘어갈 경우 「랑방」 「셀린느」 「발렌시아가」 「끌로에」 「씨바이끌로에」 「지방시」 「앤드뮐미스터」 까지 갖추게 된다. 편집숍 무이와 톰그랜드하운드다운스테어즈도 있다.

이미 SK네트웍스가 보유한 「DKNY」 「DKNY맨」 「타미힐피거」 「엘리타하리」 「클럽모나코」 「리플레이」와 함께 하이엔드에서부터 컨템포러리를 어우름은 물론 복종 역시 여성복 남성복 캐주얼 아동복 패션잡화 등 전방위에 걸친 영향력을 지니게 된다. 하이엔드 편집숍을 확보하고 있는 것은 훌륭한 연구개발(R&D)팀을 갖추고 있는 셈.

문미숙 감사 있어야 운영되는 특성 극복해야
하지만 부상하는 만큼 숙제도 많다. 이들은 이미 오브제를 통해 ‘성공적인 M&A’의 사례를 보여주었다고 자평한다. 그 평가의 기준은 오브제 인수 후 경영합리화로 인해 매년 약 200억원 까까운 이익을 시현, 인수금액 600억원을 단기간 회수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인수금과 별도로 강진영 윤한희 두 디자이너에게 투자한 금액까지 합하더라도 이 두 브랜드가 중국에서 현재 보여 주는 희망적 상황을 감안하면 이는 SK 입장에서 봤을 때 기업적으로는 충분히 성공이다. 이번 한섬의 인수 역시 오브제를 통해 얻은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고 본다면 SK는 매우 자신감을 얻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과연 100% 성공일까. 여기에 물음표를 붙이는 이도 있다. 오브제가 과거에 누린 패션 산업 내에서의 확고부동했던 브랜드 파워,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언제나 열정적이던 그 기업의 역동성, 어떤 상황에서도 ‘최고’를 포기하지 않던 강진영과 윤한희의 치열했던 근성, 이로 인해 업계(유통 및 동종 업체)의 지지와 소비자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던 오브제. 그 이름 안에는 일개 패션기업이나 일개 브랜드, 한 명의 디자이너로서만이 아니라 한국 패션의 희망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상징적 이름인 것이다.

한섬, 엄격한 기준 만들어 선투자하고 길게 수익을
지금 과연 그 스피릿이 오브제에 살아있느냐는 한번쯤 짚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오브제는 과거에 비해 훨씬 시스템적이고 효율화됐다. 하지만 혹시 하나의 평범한 브랜드일 뿐인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과연 한섬은 어떨까?
한섬이 지니는 상징성은 오브제보다 더하다. 게다가 한섬이 돈을 버는 방식은 타기업과 좀 다르다. 열심히 옷을 팔아 이익을 내는 게 아니라 이익을 낼 수 있을 정도의 ‘최고’를 만드는 데 먼저 투자하고 그 기준을 엄격하게 지키면서 길게 수익을 뽑아내는 방식이다.

「타임」은 특히 그랬다. 누가 뭐라 하더라도 「타임」은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이자 국내 30년 역사상 가장 탁월한 브랜드다. 이들은 누구도 할 수 없는 국내 최고의 브랜드를 만들고 그 기준을 지속적으로 높여 감으로써 「타임」은 지난 20여 년 동안 최고 위치를 고수해 왔다. 한섬의 디자인, 상품의 질, 소재, 인테리어, 광고, 이를 만드는 디자이너들의 프라이드와 급여도 업계 최고였다.

전문기업 특유의 ‘한섬 왕국’시스템 유지될까
SK네트웍스가 과연 이 방식을 고수, 혹은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에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흔들림 없는 일관된 최고 기준을 지켜 가기 위해서는 실력과 인내가 동시에 필요하다. 모든 브랜드가 문미숙 감사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온 한섬의 상품기획 시스템을 과연 SK가 극복할 수 있을지, 이어갈 수 있을 지에 관심이 모아진다.

물론 정재봉 회장은 매각을 위해 지난 몇 년 동안 치밀한 준비를 해 온 것으로 보인다. 상품기획 프로세스를 시스템화하고 문감사의 기능을 의도적으로 축소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문감사의 존재감과 역할은 절대적이다. 또한 향후 5년간 이 두 사람은 컨설턴트의 위치에서 한섬에 머무를 예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들이 최고를 만들기 위해 그동안 설계해 놓은 상품기획 프로세스 안에는 대기업 눈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비효율’이 수없이 많다. 디자이너들의 눈과 손발 역할을 해 온 정보실 조직이나 거액을 지불하는 트렌드 정보사, 패턴실, 샘플실, 한섬의 독자적 기술을 든든하게 뒷받침하는 훈련된 협력 업체들, 샘플비와 비주얼에 투자하는 비용 등 이 모든 것이 문감사가 구축해 놓은 ‘한섬왕국’이다. 이러한 것들이 결집돼 현재의 한섬이 탄생한 것이다.

문감사 버금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있나?
이 왕국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문감사가 꼭 필요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아니면 그에 버금가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반드시 필요하다. 엄격한 기준을 고수하기 위해서는 일개 디자이너로는 어렵다. 이것은 사업부장도 하기 힘들다. 사업부장은 이익을 창출해 내야 하는 역할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오브제와 한섬이 그 오랜 시간동안 리더일 수 있었던 이유는 최고의 기준을 지켜 냈고, 그 기준을 계속 높이는 도전과 시도를 했다는 데 있다. SK는 기업만 인수한 게 아니라 이 기준과 정신까지도 인수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제 한섬 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정재봉 회장은 고령의 나이와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한섬을 던졌을 것이다. 일견 이해도 된다. 그렇다면 그는 어떤 기준으로 매각 대상자를 결정한 것일까. LG 제일모직 이랜드 해외 투자사도 다 싫다, 그리고 결정한 것이 SK네트웍스다.

한섬은 과연 ‘한국 대표선수’로서 결정했을까
여기서 하나의 의문이 생긴다. 다른 기업에 비해 SK는 충분한 댓가를 약속했다. 그렇다면 과연 정회장은 이들과 딜 할 때 100년, 200년이 지나도 한섬이 한국 대표선수로 존재할 수 있게 경영해줄 소양을 갖춘 파트너를 고민했을까. 자신과 문감사가 평생을 바쳐 일궈온 아름다운 기업을 더 멋진 모습으로 키워줄 대상을 찾은 것일까.

만약 그것이 돈이었다면 좀 실망스럽다. 왜? 한섬이니까. 돈은 곧 자존심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그동안 고수해 온 ‘최고의 기준’과 그 결정은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아 보인다. 우리 모두가 한섬에 기대한 리더로서의 멋있는 최후는 한국 최고 기업이 앞으로 영원히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섬은 정재봉 회장과 문미숙 감사의 작품이라는 데 아무도 이의를 달 수 없다. 그러나 한섬은 동시에 국민의 지속적인 사랑과 업계의 지지, 수많은 개미 협력업체의 오랜 피와 땀으로 이뤄진 기업이다. 물론 두 사람은 대주주였지만 그들의 힘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정회장, 문감사의 탁월한 능력에 보이지않는 많은 이들의 피와 땀이 버무려져 4000억원짜리 회사는 건설됐다. 그럼 이들은 패션계 또는 소비자들에게 뭔가 좀 돌려줬어야 하지 않았을까.

제일모직 등 대기업 구도에도 지대한 영향
패션 학교를 짓거나 패션계 후배 디자이너를 양성하는데 투자하거나 아니면 ‘패션펀드’를 조성하거나 코리안 브랜드 향상에 일조하기 위해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한다거나 소비자들을 위해 장학재단을 만든다거나...뭔가 의미있는 일을 말이다.
물론 한섬이 한국 패션의 품질과 실력을 훌쩍 높이고 패션기업의 주가 기준을 높이는데 기여했다는 것은 아무도 부정할수 없다. 하지만 한섬은 자신의 상품과 자신의 브랜드를 위해 치열하게 달려왔을 뿐이다. 만약 한섬이 홀로 세계 시장에서 고군분투하는 우영미에게 투자했다거나 준지에게 지원이라도 했다면 얘기는 좀 달라진다.

이제 업계로 시선을 돌려보자. 이번 M&A는 그동안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대기업 간 구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현재 제일모직 LG패션 캠브리지코오롱 신세계인터내셔날 등 대기업들은 여러가지 상황을 체크하느라 분주하다.

F&F 미샤 등 리딩 패션 전문기업 역할 커져야
순위도 바뀌지만 앞으로 일어날 서로간의 상관관계도 변화가 있을 전망이기 때문이다. 유통가 반응 역시 마찬가지다. 뻣뻣한 한섬도 유쾌한 상대는 아니였지만 수입과 내셔널 부문 양쪽에서 막강한 힘을 지니게된 SK도 이제 좀 부담스러운 상대다.
F&F 미샤 대현 등 패션 전문기업들에게도 이 사건은 민감한 사안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영향력 있는 전문업체들에게 당분한 한섬의 변화는 유리하게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자가 편집 능력이 약해 딱히 ‘믿을 언덕’이 없는 유통가에 새로운 콘텐츠를 창조할 능력을 갖춘 실력있는 전문 기업은 더욱 중요한 존재가 될 것이다.

특히 내수, 백화점 유통을 중심으로만 본다면 F&F와 미샤는 패션 전문기업, 여성복 전문 기업으로서 갑자기 리더로 등극, 책임이 막중해졌다. 하지만 100대 패션기업중 3000억원대 기업은 F&F 하나뿐(금감원 공시기준, 표 참조). 미샤 대현 아이올리 린컴퍼니 아비스타 아이디룩 등 1000억원대 기업만 6개고 나머지는 중소기업만 즐비하다.

한국 패션의 미래, 전문기업 시대 종말을
이제 미래 얘기를 해야겠다. 한섬 얘기로 시작해 한국 패션의 미래를 얘기할 수밖에 없는 것은 한섬이 바로 우리의 미래였기 때문이다. 앞으로 한국 패션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전문기업 시대는 막을 내리는 걸까.

일본에서는 산에이인터내셔날 화이브폭스 월드 등 수많은 패션 전문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했다. 게다가 꽤 똘똘한 글로벌 패스트패션 브랜드인 「유니클로」까지 탄생시켰다. 이탈리아는 대대손손 이어가는 패밀리 기업들이 패션산업을 이끌어 왔다. 프랑스는 이탈리아나 벨기에 등 인근 창조적인 나라의 중소기업을 사들여 그룹화하고 탁월한 경영 능력으로 브랜드 파워를 높이고 막대한 수익을 만들어 낸다. 패션 변방국가인 스페인은 최근 세계적인 패스트패션의 종주국으로 떠올랐다.

우리의 장점은 무엇인가. 전문기업도 사라져 가고 후계구도가 없는 디자이너도 사라져 간다. 한국 패스트패션의 보고인 동대문은 장사만 있지 비즈니스도 브랜딩도 없다. 대기업들은 과연 이 시점 어떤 미래를 준비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한국 패션의 미래는 누가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질문만 많지 답은 들려오지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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