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모션은 사양산업인가(?!)
최근 프로모션업체 A는 브랜드로부터 오더를 받은 상품 2스타일을 포기했다. 이미 기존 진행 제품에 대한 대금 결제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추가 오더를 받았다가 회사 부담만 더 커지기 때문이라는 것. 오더가 된 것만 해도 다행인데 그것을 포기하다니 어떤 속사정이 있는 것일까.
이유는 최근 판매 부진이 이어지면서 스타일 제안에서 채택, 그리고 결제까지 최소 8개월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 제품을 진행하고 물량을 생산하기 위해 미리 선지급해야하는 공임이 있는데 완제품에 대한 결제는 8개월이니 도저히 버텨낼 재간이 없다는 것이다. 공식적인 평균 결제일은 120일이고 결제 조건이 좋은 대기업의 경우 45일임을 감안하면 프로모션 업체에는 악몽의 240일이다.
프로모션 업체의 공식 마진은 15~20%로 판매가 기준 10억원을 납품해도 빨라야 8개월 후 1억5000만~2억원이 결제되는데 이러한 상태로는 도저히 자금회전을 원활히 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설상가상으로 기업에서는 공식 마진보다 더 낮춰줄 것을 요구하고, 더 낮은 마진율로 제살깎기 경쟁을 하는 프로모션업체도 생겨났다.
마진 15~20%지만 “더 낮춰” 요구도 빈번
중국 생산으로 공임을 낮춰왔던 기존 시스템도 환율 폭등으로 경쟁력을 상실했고 국내 공장들은 기존 안정된 거래처 외에는 선불로만 거래를 하려고 해 국내 소싱처를 찾기도 어렵다. 최근에는 브랜드 업체에서 직접 소싱처를 찾아 공장 거래를 하고 있어 소규모 프로모션 업체의 입지는 점점 없어지고 있다.
신발 프로모션을 하다 최근 제과점 프랜차이즈로 업종을 전환한 한 사장은 “10평 미만의 작은 공간이지만 이렇게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매장을 하고 보니 왜 진작 바꾸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적은 금액이라도 이곳은 빵 하나 사가면 바로 현금이나 카드 매출이 일어난다. 수천 스타일을 납품해도 몇 달 뒤에 결제하거나 트집을 잡아 클레임 처리해 결국 프로모션 업체만 낭패를 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며 비통해한다.
매일 현금 도는 ‘빵장사’가 훨씬 낫다?
데님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있는 B사는 환차손 때문에 낭패를 봤다. 브랜드와 계약할 당시 환율과 중국 결제 시의 환차가 심하면 그 차이만큼 고스란히 프로모션 업체가 떠안게 된다. 50%씩이라도 공동 부담하는 상도의 있는 브랜드는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
가장 큰 문제는 클레임이다. 퀄리티나 납기 부분에 있어 프로모션 업체가 판매시점에 대한 약속을 못 지킨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수긍하고 그만큼 클레임을 감당해야 한다. 문제는 패션업체가 소비자가를 다운시키고 나서 마크업은 4배를 맞춰야 하기 때문에 결국 프로모션 코스트를 낮출 것을 요구해 모든 손실을 프로모션 업체가 떠안도록 한다는 데 있다. 브랜드 입장에서 4배수의 마크업을 고수하기 위해선 결국 프로모션 업체는 적으면 5%에서 많게는 50%까지 기존 책정 가격대비 납품가를 떨어뜨려야 한다.
“우리는 갑도 을도 병도 아닌 정의 입장이다. 거래하는 브랜드들은 백화점 등 유통망에 비교해 본인들이 ‘을’이라고 한다. 우리는 대형 생산 공장을 가지고 있는 다이렉트 소싱처의 입장인 ‘병’도 아닌 ‘갑을병’의 상황에 따라 울어야 하는 ‘정’밖에 안되는 서러운 입장이다” 최근 프로모션 사업을 정리한 모 사장의 넋두리다.
소비자가↓ 마크업 4배 고수 부담 어디로?
전문 인력을 채용하기도 프로모션 업체는 힘들기만 하다. 특히 실력 있는 디자인팀장 등 경력을 채용하고 싶어도 그들은 프로모션 입사를 기피한다. 그렇다고 브랜드급 이상의 연봉을 제공하면서 채용을 강행하기엔 무리가 따른다. 애써 기획팀을 신설했더라도 샘플비나 기획비가 전혀 책정되지 않는 등 효율이 떨어져 기획팀을 구조 조정한 프로모션사가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유럽 등 패션 선진국에서 시작된 디자인스튜디오 등은 날로 번창하고 있는데 국내 프로모션 업체는 왜 활성화되지 못할까. 전문가들은 “국내 패션산업의 구조적인 문제다. 크게는 영업 시스템 자체가 홀세일 사입 시스템이 아닌 위탁이 대부분이다 보니 메이커에서도 유통에서 팔린 이후에 프로모션 업체에 결제를 해주고 있다. 메이커의 의식 또한 효율적인 아웃소싱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 아닌 내부 소속된 직원들에게 제품을 핸들링하게 하니 프로모션 업체는 디자인 스튜디오가 아닌 단순 하청업체로 전락하고 만다”고 지적한다.
이어 “디자인 기획이나 샘플을 위해 프로모션 업체가 투자하는 것에 대해 브랜드 메이커가 지원해 주지 않는 시스템도 문제다. 그 브랜드 컨셉을 파악해 새로운 샘플을 제안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자료와 시장조사를 통해 디자인을 하고 샘플을 만드는데, 결국 브랜드에서 선택받지 못하면 끝나고 만다. 브랜드에서는 선택할 수 있는 수많은 샘플들 중 손쉽게 결정하는 데서 끝나지만 그 샘플 하나하나를 위해 투자되는 프로모션의 비용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물론 이는 기존의 많은 프로모션 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무료 샘플을 제공하며 브랜드에게 저자세로 임해온 문제이기도 하다”라며 기획료가 인정되지않는 프로모션 업체들의 상황도 지적한다.
“프로모션 업체들이 대부분 영세한 것도 경쟁력을 상실한 요소다. 사장을 중심으로 소규모로 움직이며 샘플 하나 빼는 데도 어려운 처지의 프로모션 업체들이 성행하다 보니 메이커에서도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프로모션 기업들도 일괄 생산 라인 및 메이커가 선호하는 버티칼 시스템을 갖추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프로모션은 ‘을’도 아닌 ‘정’입장?
“프로모션 회사에서 단독으로 품평회를 개최해 우선적으로 많은 물량을 오더한 브랜드에게 우선권을 주는 등 해외 디자인 스튜디오처럼 내부 디자인 기획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 수동적으로 브랜드에서 제공하는 유명 브랜드 카피 제품이나 ODM에 불과한 수준으로 진행하는 프로모션 업체는 갈수록 존속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고.
최근 글로벌 SPA브랜드들이 전세계 패션시장을 석권한 이후 국내에서 더욱 강조되는 것이 스피드다. 특히 순발력이 강점인 국내 패션 기업들에는 트렌드를 반영하면서도 퀄리티 있고 가격도 메리트 있는 이상적인 상품을 스피디하게 출시해야만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시대다. 프로모션 기업들과 브랜드 메이커의 밀도 있는 코워크는 더욱 강조될 것이다.
프로모션 마진을 주지 않고 코스트를 낮추기 위한 다이렉트 소싱 또한 큰 시각에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소싱팀을 직접 운영하는 인건비 와 해외 출장경비, 안정되지 않는 퀄리티 컨트럴 등…. 단순한 프로모션 업체 마진이 절약된 이상으로 실질적인 효율이 있는지를 분석해야 할 것이다.
브랜드를 전개하는 메이커는 물론 프로모션 기업도 기존 방식이 아닌 시대의 변화를 리드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변신해야만 한다. 브랜드는 소비자 판매대금이 돌아야 프로모션 업체에 결제를 하는 행태를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
계속 이월되는 결제 불이행, 브랜드 마크업 보장을 위해 프로모션에 책임을 전가하는 클레임 처리, 중국 생산에 대한 합리적인 환차손 보존 등으로 상생하는 협력시스템이 정착되어야만 한다. 패션 산업이라는 큰 동력은 발빠르고 전문화된 수많은 개미들에 의해 움직여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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