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 로버트 폴렛과 6인의 CDO

08.04.01 ∙ 조회수 11,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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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21주년 특별기획
Global Star CEO & Designers




‘구치그룹,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최근 구치그룹은 새로운 전성기를 맞고 있다. 대표 브랜드인 「구치」가 럭셔리 업계의 지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음은 물론 새롭게 떠오른 「보테가 베네타」의 비상과 함께 2007년 말 흑자전환을 이룬 「스텔라 매카트니」와 「알렉산더 맥퀸」, 빠르게 실적개선 중인 「이브 생 로랑」과 2005년 흑자전환을 완료하고 급성장하고 있는 「발렌시아가」로 화려한 실적을 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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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 아니다. 새로 싹트고 있는 「부쉐론(Boucheron)」에 이르기까지 구치그룹의 모든 브랜드들은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현재 부진한 브랜드가 없는 구치그룹은 ‘럭셔리 멀티 브랜드’ 전략의 성공적인 사례를 보여주며 3월 초 발표한 2007년 사업실적에서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30% 성장한 좋은 결과를 나타냈다.

이같은 구치그룹의 성공에는 4년 전 새로 영입한 CEO 로버트 폴렛이 있다. 그는 지난 2004년 4월 구치 부활의 성공주역인 도미니코 데 솔레가 사임한 이후 새로 부임했다. 당시 패션계의 반응은 매우 냉소적이었다. 로버트 폴렛은 명품에 대한 경험이 전혀 없는데다 세계 두 번째 규모의 럭셔리 업체 구치그룹에는 「이브 생 로랑」 「알렉산더 맥퀸」 「스텔라 매카트니」「발렌시아가」 등 적자투성이의 브랜드들이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전 세계 패션계는 그의 강력한 리더십에 찬사를 보내는 한편 그가 과감하게 기용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있다. 구치그룹의 새로운 전성기를 만들어낸 로버트 폴렛과 환상 드림파워를 만들어낸 6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에 대해 싣는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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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7월 구치의 상징과도 같은 톰 포드와 함께 구치그룹의 환상콤비이던 도미니코 데 솔레가 돌연 사임한 후 구치그룹은 잠시 혼란에 빠졌다. 전 세계 패션계는 술렁였다. ‘환상콤비’로 유명한 톰 포드와 도미니코 데 솔레, 이들의 자리를 메울 구원투수가 과연 누구일까? 수많은 스타급 CEO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스카우트설이 파다했다.

하지만 소문과 달리 그 해 7월 구치그룹에 기용된 CEO는 유니레버의 냉동식품 부문 사장을 맡고 있던 로버트 폴렛(52세). 패션의 베이스가 없는 그가 과연 구치그룹을 잘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했다. 또한 톰 포드라는 빅 디자이너가 빠진 상태에서 그가 영입할 새로운 스타 디자이너에 비상한 관심이 쏠렸다.
모든 예상을 뒤집고 그는 스타 디자이너를 영입하는 대신 내부 디자이너의 승진이라는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구치그룹은 과연 ‘스타’ 없이 ‘브랜드 파워’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이에 대해 전 세계 패션계는 강한 의문을 품었다.

해마다 30% 영업이익 성장, 전 브랜드 UP

로버트 폴렛이 경영을 맡은 지 3년. 세간의 의문을 불식시키고 구치그룹은 성공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4년간 해마다 영업이익이 30% 넘는 성장세를 기록했고 「구치」는 22억유로(약 3조3000억원) 규모로 「보테가 베네타」는 3억6600만유로(약 5400억원) 규모의 빅 브랜드로 성장했다. 또한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이브 생 로랑」은 적자폭을 35% 감소해 현저한 실적개선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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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에는 드디어 「스텔라 매카트니」와 「알렉산더 맥퀸」의 흑자전환에 성공했다. 그 외 작은 브랜드들 중에서 「발렌시아가」는 목표보다 2년 빠른 2005년에, 「부쉐론」과 「세르지오 로시」는 2006년에 흑자전환을 달성한 후 급성장 대열에 들어섰다.

이에 따라 로버트 폴렛은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토드 그룹의 디에고 델라 발레 CEO 등과 함께 명품업체의 성공 CEO로 추앙받고 있다. 이뿐 아니다. 톰 포드로 상징되던 「구치」와 「이브 생 로랑」에 톰 포드의 아이덴티티가 사라진 지 오래됐다. 그가 톰 포드에 이은 새 수석 디자이너로 과감하게 기용한 「구치」의 프리다 지아니니(Frida Gianini)와 「이브 생 로랑」의 스테파노 필라티(Stefano Pilati)는 새로운 시대를 이끌며 이미 스타 디자이너 반열에 올랐다.

3년 만에 럭셔리 기업 대표 성공 CEO로

새롭게 떠오르는 「보테가 베네타」의 경우도 마찬가지. 액세서리뿐 아니라 RTW에서도 다크호스로 자리잡은 「보테가 베네타」의 수석 디자이너 토머스 마이어(Thomas Maier) 역시 스타 디자이너로 명성을 날리고 있다. 그 외에도 「발렌시아가」의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와 스텔라 매카트니, 알렉산더 맥퀸은 평론가들뿐 아니라 대중적으로도 인지도를 높인 빅 브랜드의 주인공이 됐다.

이렇게 화려한 스타들이 포진한 구치그룹에 지난 2004년 이후 어떤 일이 있던 것일까? 2004년 12월 말 사업보고 자리에서 새로 임용된 로버트 폴렛이 야심 찬 매출 목표와 성장전략을 담은 3개년 계획을 발표했을 때 패션언론들은 일제히 사업계획을 보도하며 취재경쟁을 벌였다. 새로운 CEO에 대한 기대도 있었지만 그와 함께 패션업계 전문가들은 우려 섞인 시선을 보낸 것이 사실이다.

가장 핵심적인 사안은 급격한 매출성장 목표로 인해 「구치」가 매스패션화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었다. 그가 명품에 대한 경력이 전혀 없는데다가 유니레버사에서 26년간 냉동식품을 다뤘기 때문에 ‘희귀성(exclusivity)’이라는 명품의 전문성을 모르고 매출신장에만 주력한다는 선입견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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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두 번째 크기의 「이브 생 로랑」이 적자를 털어버리고 언제 흑자전환이 가능할 것인가가 주변의 주된 관심사였다. 당시 로버트 폴렛은 즉답을 피했지만 「이브 생 로랑」의 매출이 3000만유로(약 4500억원)가 되면 자연스럽게 흑자로 전환할 것이라고만 대답했다(결과적으로 현재 「이브 생 로랑」은 흑자전환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차근히 실적개선 중이며 「보테가 베네타」가 두 번째 규모의 브랜드로 급성장했고 다른 모든 브랜드들도 흑자로 전환했기 때문에 「이브 생 로랑」의 문제는 시급하지 않은 문제가 됐다).

유니레버 출신 CEO로 회의적 시각 팽배

3년이 지난 지금 구치그룹의 로버트 폴렛은 목표 이상의 성과를 달성해 패션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탁월한 리더십으로 패션업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CEO 중 한명이 됐고 럭셔리 기업을 운영하는 뛰어난 전문가로 평가받고 있다.

로버트 폴렛은 “모든 브랜드들이 전에 세운 목표를 향해 제대로 가고 있다”면서 “일반적인 성공 회사와 뛰어나게 성공한 회사의 차이는 실제로 세운 목표를 달성하는가 여부에 달려 있으며 성과는 일관성과 끊임없는 채찍질로 가능하다”고 말해 자신이 세운 목표가 처음에는 실현 불가능해 보였지만 초과 달성한 데 대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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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 이상 성과 ‘럭셔리 상품=희귀성’ 승부

지난 3년간 로버트 폴렛은 모든 브랜드에 대해 높은 목표를 세웠고 이를 추진하는 데 성공을 거뒀다. 이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구치그룹은 전체 연간 매출 성장률 14.7%를 달성했다. 그가 전에 제시한 목표 매출 성장률은 10%였지만 그는 목표치를 상회하는 14.7%라는 실적을 올렸다. 패션업계, 특히 럭셔리 부문에서 15%에 달하는 매출 성장은 대단한 것이다. 또한 영업이익 증가세는 매출증가세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뛰어난 실적을 거뒀다. 해마다 30%가 넘는 영업이익 성장률을 기록했는데 2004년에 35%가 성장한데 이어 2005년에는 44%가, 2007년에는 30%가 성장했다.

「보테가 베네타」가 급격히 성장해 「구치」에 이은 두 번째 규모의 캐시카우로 부상했다. 「보테가 베네타」는 2005년 흑자전환에 성공했으며 2007년에는 3억6600만유로(약 5450억원)의 매출규모에 영업이익이 9200만유로(약 1370억원)에 달하는 빅 브랜드로 성장했다. 2005년에는 「이브 생 로랑」과 비슷한 매출규모였지만 2006년 이래 구치그룹의 두 번째 캐시카우 브랜드로 자리매김했으며 실적 성장은 경이적이다. 2004년 1억유로(약 1500억원) 매출에 적자상태이던 「보테가 베네타」는 2005년에 매출이 60% 증가하면서 흑자로 전환했고 2006년에는 67% 매출증가, 300% 영업이익 증가세를 보였고 2007년에는 37% 매출 증가, 영업이익은 69% 증가했다.

「이브 생 로랑」을 제외한 모든 브랜드들이 흑자로 전환됐다. 2007년 말을 기점으로 브랜드들이 흑자로 전환될 것을 예상한 구치그룹은 2007년 말 「알렉산더 맥퀸」 「스텔라 매카트니」를 마지막으로 흑자를 달성했다. 2005년에는 계획보다 2년 먼저 「발렌시아가」가 흑자로 돌아섰고 2006년에는 「세르지오 로시」 「부쉐론」이 계획보다 1년 먼저 흑자전환했다. 「구치」 「이브 생 로랑」 외에 ‘그 외 브랜드들’로 분류되는 부문의 영업이익은 2007년 말 3300만유로(약 500억원) 규모로 전년 대비 330%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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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테가 베네타」, 「구치」 이은 캐시카우로

「이브 생 로랑」의 실적 개선이 이뤄졌다. 「이브 생 로랑」은 현재 흑자전환은 이뤄내지 못했지만 실적이 현저히 개선되고 있다. 2007년 매출은 2억2100만유로(약 3300억원)로 전년 대비 14% 증가한 액수이고 적자는 3200만유로(약 475억원)다. 적자폭은 전년 대비 35% 감소했다. 로버트 폴렛은 「이브 생 로랑」의 매출이 3000만유로(약 4500억원) 수준이 되면 자연스럽게 흑자로 전환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올 1월에 로레알사에 전략적 제휴를 통해 「YSL 보떼」 부문을 매각 및 라이선스화하면 실적 개선이 좀더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과거는 돌아보지 않는다”고 말하는 로버트 폴렛은 “지금까지 사업이 잘돼 왔지만 작년 말부터 대두된 미국의 경기침체 문제로 럭셔리 마켓도 영향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비즈니스가 둔화될 것이라고 예상한다”면서 “그러나 구치그룹은 해마다 7%의 성장은 최소한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구치」는 22억유로(3조2800억원) 매출 규모지만 7년 이내에 2배 규모인 40억유로(약 6조원)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그룹 전체 차원에서는 해마다 7% 성장을 이루는 것이 현실적인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구치」, 7년 내 현재 2배 규모인 6조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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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폴렛은 자신의 성공비결로 무엇을 꼽을까? 그는 구치그룹의 성공비결을 묻는 WWD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의 성공비결은 브랜드의 자율성과 독립성 강화, 부서간 정보 공유확대, 목표의 명확성이라고 밝혔다. 톰 포드-도미니코 데 솔레 CEO의 듀오 시대와 비교할 때 자신이 맡은 이후의 최대 변화는 ‘브랜드의 자율성’이라고 말했다. 철저히 브랜드의 자율적인 경영을 중시해 각 브랜드의 CEO에게 전권을 위임하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창의성을 고무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또한 그는 소비자 조사를 강화하고 부서간 정보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회의를 늘리고 고무한 것도 한 요인이라고 했다. 로버트 폴렛은 정보를 매우 중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처음 영입됐을 당시 로버트 폴렛이 럭셔리 비즈니스에 대해 배우기 위해 전 세계 매장을 돌며 판매사원과 정보를 교환한 것은 업계에서는 매우 유명한 일화다.

럭셔리 비즈니스에 문외한이던 로버트 폴렛은 첫 2개월 동안을 할애해 매장 조사와 소비자 동향을 살피는데 주력했다. 그는 우선 전 세계 163개의 자사 매장을 돌았으며 100여 곳의 경쟁 럭셔리 업체의 매장을 방문했고 2500여명에 달하는 판매사원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듯 적극적인 그의 업무태도와 정보를 중시하는 측면은 다시 구치그룹의 상품개발에 철저히 반영됐다.
세 번째로 그는 새로운 혁신을 중시해 다양한 시도를 거듭하고 있다. 그중 한 예는 고급 주얼리 「부쉐론」이 전자상거래 사이트를 개설한 것이다. 이는 고급 주얼리는 오프라인에서 눈으로 직접 보고 구매하는 상품이라는 통념을 깨는 발상으로 로버트 폴렛은 “「부쉐론」이 가장 큰 주얼리 업체는 아니지만 혁신적인 업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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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자율성과 CDO창조성 강화

“럭셔리는 항상 새로운 도전”이라고 단언하는 그는 럭셔리 부문에서도 전자상거래의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는 CEO 중 한명이다. 주얼리 브랜드 「부쉐론」의 전자상거래와 「보테가 베네타」의 미국 전자상거래 개시 외에도 올 초에는 「이브 생 로랑」의 전자상거래 판매를 미국에서 시작했다.

이처럼 구치그룹을 지난 3년 반 동안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그의 리더십에는 브랜드의 자율성, 정보의 중시, 다양한 혁신구사 등을 꼽을 수 있겠지만 패션업계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트렌드를 읽는 그의 탁월한 식견을 꼽는다. 유니레버 푸드사업부에서 구치 CEO로 처음 영입됐을 때 패션업계에서 보낸 우려-「구치」를 매스패션화할 것이라는-와는 반대로 그는 ‘트레이드 업’ 전략을 통해 급속한 매출 증대를 이뤄냈다.

그는 그가 제시한 높은 매출 성장목표를 소비자들의 ‘트레이드 업’ 소비현상에 초점을 맞춰 성취해 낸 것이다. 「구치」 브랜드에 대해 저렴한 세컨드 라인을 런칭하거나 판매망을 증대하는 등의 방법을 쓴 것이 아니라 이와는 반대로 ‘구치시마(Guccissima)’ 등 고급 라인을 런칭해 큰 성공을 거뒀으며 70% 이상의 「구치」 상품을 직영점을 통해 유통함으로써 독점성을 유지했다. 소비자들의 트레이드 업 현상을 꿰뚫어 본 그의 통찰력이 오늘의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고 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적극적 소비자 조사, 온라인 등 새로운 혁신

현재 로버트 폴렛이 관심을 두는 현상은 ‘나만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상품’이라는 컨셉이다. 럭셔리 브랜드들이 대중화되면서 로버트 폴렛은 럭셔리의 특징인 독점성(exclusivity)이 사라져 가는 것이 럭셔리 브랜드의 최대 함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점점 더 소비자들은 자기만을 위해 만들어진 상품과 서비스를 선호하고 있다”면서 “나만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상품이라는 컨셉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상품은 주문형 상품이나 리미티드 에디션 상품으로서 이들이 최근의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럭셔리 브랜드의 희귀성과 독점성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최근에는 더 넓은 소비자층에서 희귀성을 소구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매스패션화 보다 ‘트레이드 업’ ‘고급화’

구치그룹은 ‘럭셔리 멀티 브랜드 전략’의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톰 포드와 도미니코 데 솔레 시대에 수많은 M&A를 통해 몸집을 불린 구치그룹은 대표적인 브랜드 「구치」 외에도 「보테가 베네타」 「이브 생 로랑」 「스텔라 매카트니」 「알렉산더 맥퀸」 「발렌시아가」 「부쉐론」 「YSL 보떼」 「베다 앤 코」 등 다양한 브랜드들을 보유하고 있다.
구치그룹의 특징은 이 모든 브랜드들이 타깃 소비자층과 가격대 면에서 또는 감성적인 면에서 서로 오버랩 없이 자기영역에서 아이덴티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기반 위에서 로버트 폴렛은 명확한 사업목표를 세우고 이를 끊임없이 추진하면서 오늘날의 성공을 이뤄냈다.

「이브 생 로랑」을 제외한 모든 브랜드의 흑자전환을 이룬 지금, 구치그룹은 7년 안에 대표 브랜드 「구치」를 현재의 2배 규모의 럭셔리 빅 브랜드로 키우겠다는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또한 구치그룹 전체는 최근 미국의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7% 성장을 꾸준히 이뤄내겠다고 밝혔다. 럭셔리 업계 최고의 CEO로 떠오른 그의 새로운 목표에 기대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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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 로버트 폴렛, 리더십 탁월한 창조 패션 C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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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폴렛은 유니레버사 푸드 부문에서 26년간 근무하면서 98년 이래 아이스크림과 냉동식품 부문의 사장을 지냈다. 유니레버사에서는 「브레이어」 「벤&제리」 외 40여개 아이스크림 브랜드를 운영했으며 그가 경영한 이래 유니레버사의 냉동식품 부문은 순익이 70% 성장했다.

그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태어났으며 네덜란드 니젠로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미국 오리건 대학에서 MBA를 했다. 그는 언어에 능통하다. 영어,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독어, 이탈리아어의 5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유니레버사에서 근무하는 동안 파리, 밀라노, 브뤼셀, 함부르크, 말레이시아에서 마케팅을 맡아 국제적 감각이 풍부하다.
구치그룹의 CEO로 영입되면서는 강력한 리더십과 기업가적인 능력에 초점이 맞춰졌다. 구치그룹의 모기업 PPR의 인사총괄을 맡은 서지 웨인버그는 그를 설명하면서 “로버트 폴렛의 리더십은 탁월하다”면서 “중요한 점은 그의 경력이 아이스크림 부문뿐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가 재능이 뛰어나다는 점이며 구치그룹은 ‘럭셔리 전문가’보다는 ‘기업가’를 필요로 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구치그룹에는 뛰어난 브랜드 CEO들이 존재하며 로버트 폴렛의 강한 카리스마가 전체 브랜드를 아우르며 통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또한 구치그룹의 모기업 PPR의 후계자이며 회장인 프랑수아 헨리 피노는 “구치그룹은 멀티 브랜드 기업으로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 같은 인물이 필요하며 로버트 폴렛은 명품업체의 창조적인 면을 잘 알고 있어 적임자”라는 말로 영입의 변을 대신했다.
로버트 폴렛은 CEO로 영입되는 데 대한 질문에서 “유니레버사에서 26년간 경력을 쌓았다. 나의 경력을 요약한다면 인간관계, 브랜드와 혁신”이라면서 “브랜드별 CEO와 관계 속에서 전체 구치그룹의 비즈니스를 발전시키겠다”고 언급했다.







<디자인 파워 이끄는 6 STARS> 「구치」 수석 디자이너, 프리다 지아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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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는 구치 그룹의 대표적인 브랜드이다. 2007년 전체 영업이익 7억3100만 유로(약 1조900억원) 중 무려 88%를 차지하는 6억4700만 유로(약 97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는 「구치」는 구치 그룹의 대들보다. 2007년 매출은 22억 유로(약 3조 2800억원)에 달했다.
「구치」는 2004년 4월 톰 포드가 사임한 이후 남성복, 여성복, 액세서리 부문으로 나눠 존 레이, 알레산드라 파치네티, 프리다 지아니니의 3명이 디자인팀을 이뤄 운영되다가 존 레이, 알레산드라 파치네티의 사직으로 2006년 2월 프리다 지아니니가 수석 디자이너를 맡게 됐다.
현재 프리다 지아니니는 패션평론가들의 찬사를 받는 스타 디자이너의 반열에 올랐으며 ‘플로라’ ‘구치시마’ 등 디자인하는 라인마다 성공을 거뒀다. 올 초에는 뉴욕 5번가의 플래그십 숍 런칭과 함께 한정판으로 출시한 ‘아이 러브 구치’ 핸드백을 출시했으며 의류, 액세서리, 시계 라인 등 모든 라인에서 감각을 인정받는 재능있는 디자이너다.
프리다 지아니니는 1973년생(만 36세)으로 이탈리아인이다. 로마의 아카데미아 코스튬 모다를 졸업한 후 가족이 경영하는 액세서리 사업을 하다가 「펜디」에 입사해 6년간 일한 후 「구치」에 입사했다. 「펜디」에서는 칼 라거펠트와 함께 일하면서 바게트 백을 500개 이상 디자인하는 등 재능을 발휘했다. 이후 「펜디」가 LVMH와 프라다에 공격적으로 인수되는 과정을 겪으면서(프라다는 「펜디」를 LVMH와 합자회사를 설립해 공동인수했다가 결국에는 LVMH에 매각했다) 「구치」로 옮겨왔으며 톰 포드 사임 후 2006년 수석 디자이너 자리에 오르는 영광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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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테가 베네타」 수석 디자이너, 토마스 마이어

「보테가 베네타」는 매출 규모 3억6600만 유로(약 5500억원)의 구치 그룹에서 2번째로 큰 럭셔리 액세서리 브랜드다. ‘베니스 아틀리에’라는 뜻의 「보테가 베네타」는 로고는 없지만 브랜드 명이 암시하는 대로 수공예적인 격자꼬임 핸드백으로 유명하다. 2005년 3월에 처음으로 밀라노에서 여성복 컬렉션을 개최하면서 의류 부문을 런칭했으며 토마스 마이어의 탁월한 감각은 패션평론가들을 사로잡아 해마다 밀라노의 베스트 패션쇼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토마스 마이어는 2001년 7월 구치 그룹이 「보테가 베네타」를 인수한 초기부터 수석 디자이너직을 역임해 왔다. 「보테가 베네타」는 일반 럭셔리 브랜드와는 달리 로고도 없고 철저하게 장인정신을 강조한 꼬임기술에 의존하는 니치 브랜드. 가장 낮은 가격대가 1500달러선에 달하는 고급라인으로 포지셔닝됐다.
이처럼 엘리트적인 니치 브랜드인 「보테가 베네타」를 맡았던 토마스 마이어는 그 첫 과정을 고난의 연속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첫 근무를 시작한 이후 911 사태와 SAS 등을 겪어내야했고 로고도 없는 상품을 디자인하면서 어려움이 너무 많았다”면서 “알다시피 「보테가 베네타」는 다른 럭셔리 상품의 철학과는 전혀 다른 철학으로 지금에 이르렀다”고 말한다.
토마스 마이어는 독일 출생으로 2001년 구치 그룹이 인수하면서 질스 디콘(Giles Deacon)의 후임으로 영입돼 「보테가 베네타」의 성공을 이끌었다. 그의 심플한 실루엣과 클린한 컷, 그리스풍의 드레이프와 주름은 「보테가 베네타」의 독특한 스타일을 구성했으며 컬러는 주로 뉴트럴한 컬러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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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브 생 로랑」 수석 디자이너, 스테파노 필라티


「이브 생 로랑」은 매출 규모 2억2100만유로(약 3300억원)의 구치그룹의 세 번째 규모 브랜드다. ‘만년 적자 브랜드’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최근 실적 개선이 현저히 이뤄지고 있어 차세대 브랜드로 꼽힌다. 로버트 폴렛은 매출이 3000만유로(약 4500억원) 수준이 되면 자연스럽게 흑자로 전환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올 1월 로레알사에 전략적 제휴를 통해 「YSL 보떼」 부문을 매각 및 라이선스화할 것을 계약했으며 올 2월에는 파리 점포에 스테파노 필라티의 감성을 담아 밝은 톤의 새로운 점포 형태로 리노베이션했다. 향후 5년 안에 전 세계의 점포를 이 새로운 형태로 교체할 계획이다.

스테파노 필라티는 톰 포드의 보조 디자이너로 근무하다가 2004년 톰 포드가 사임한 후 「이브 생 로랑」의 수석 디자이너로 승진했다. 처음에 「이브 생 로랑」의 수석 디자이너로는 구치그룹의 다른 디자이너인 알렉산더 맥퀸이 제의를 받았으나 그가 고사함으로써 스테파노 필라티에게 기회가 주어졌다. 당시 스테파노 필라티는 「이브 생 로랑」을 그만두고 자신의 고향인 밀라노로 돌아갈 것이라는 소문까지 돌았다.

1966년생(만 42세)인 스테파노 필라티는 패션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여동생을 위해 드레스 스케치를 하고 보그 사진을 자주 접하면서 패션에 눈이 떴다. 1993년 「조르지오 아르마니」 디자이너를 시작으로 패션계에 입문했으며 1995년에는 「프라다」에 옮겨가 5년간 「미우미우」의 수석 디자이너로 남성복과 여성복을 총괄했다. 2000년 3월에 「이브생 로랑」에 와서 톰 포드의 보조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으면서 톰 포드의 신임을 받다가 4년 만에 수석 디자이너의 자리를 거머쥐었다.

「이브 생 로랑」은 1998년 이브 생 로랑이 은퇴한 이래 3번 디자이너가 교체됐다. 처음에는 알버 엘바즈가 이브 생 로랑이 은퇴한 후 3번의 컬렉션을 진행했으며 1999년 구치그룹에 인수된 후에는 톰 포드가 맡아 8번의 컬렉션을 진행했다. 2004년 가을부터는 스테파노 필라티가 메가폰을 잡게 됐으며 스테파노 필라티는 결국 평론가들이 인정하는 스타 디자이너의 반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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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렌시아가」 니콜라스 게스키에르

「발렌시아가」의 니콜라스 게스키에르(Nicholas Ghesquiere)는 30년간 잠자고 있던 브랜드를 1997년에 맡으면서 새롭게 부활시킨 대표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최근에 새롭게 핫한 브랜드로 다시 태어난 「발렌시아가」는 2001년 구치그룹이 인수했으며 2004년 로버트 폴렛이 맡으면서 계획보다 2년 이른 2005년에 흑자전환하고 해마다 두 자릿수의 급성장을 이루고 있다.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는 1971년생(만 37세)으로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12세 때 이미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 니콜라스는 의상 스케치를 했고 14세에는 학교를 휴학하고 「아네스 B」와 「코린 콥슨」에서 인턴십을 하면서 패션디자이너의 고됨을 알게 돼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졸업 후에는 「장 폴 고티에」의 보조 디자이너로 2년간 일한 후 「발렌시아가」에 입사했으며 26세라는 어린 나이에 1997년에 수석 디자이너의 자리에 올랐다.

그후 파리 컬렉션에서 별다른 두각을 내지 못하던 「발렌시아가」는 2001년 2월에 열린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패션계의 거물 비평가인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지의 수지 멘키스가 ‘진정한 오리지널리티를 지녔다’는 호평과 함께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그후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는 보그가 선정한 ‘우리시대 디자이너 7인’에 선정되는 등 보그의 안나 윈투어를 비롯해 프레스들의 관심은 물론 패션계의 주목받는 디자이너가 됐다. 2001년에는 구치그룹이 「발렌시아가」를 인수하면서 성장을 위한 재정적 뒷받침이 마련됐다.

현재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는 이브 생 로랑과 스타일 면에서 비견될 정도로 큰 디자이너로 꼽힌다. 2000년 10월에는 보그 어워드에서 ‘올해의 아방가르드 디자이너’ 상을 수상했고 2001년에는 CFDA의 ‘올해의 여성복 디자이너 상’을 거머쥐었으며 2005년에는 타임지가 선정한 ‘올해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지난 몇 년간 「발렌시아가」는 모토백이 ‘잇백’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매출성장에 기여했으며 2005년에 흑자를 기록한 후 최근에는 해외시장 개척과 남성복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가장 최근인 작년 겨울에는 새로 제작한 제니퍼 코넬리의 광고캠페인은 독특한 이미지로 패션계에 반향을 일으켰다.

창업자인 발렌시아가는 1950년대 크리스티앙 디오르와 함께 패션사의 양대 산맥이던 인물이다. 1968년 은퇴한 후 1972년 사망했고 그 이후 30년간 「발렌시아가」 브랜드는 패션사에서 거의 잊혀진 브랜드였다가 1986년 매각됐다. 그후 별다른 비즈니스적 성공을 이루지 못하던 「발렌시아가」는 1997년에 니콜라스 게스키에르가 수석 디자이너를 맡아 부활했으며 2001년 구치그룹에 매각된 후 사업적 성공과 함께 2005년에는 흑자전환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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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 매카트니」의 스텔라 매카트니

이젠 비틀스의 멤버 폴 매카트니의 딸로서보다 패션 디자이너로 유명해진 스텔라 매카트니는 특유의 컬러 감각과 컷으로 천재 디자이너로 일컬어지는 런던 컬렉션의 대표주자다. 스텔라 매카트니식 아이코닉한 니트 드레스와 카디건이 특징이며 채식주의자이자 동물애호가로서도 전 세계 트렌드에 영향을 미치는 인사로 유명하다. 이같은 철학을 반영해 상품에 가죽과 모피 등을 쓰지 않고 합성가죽과 모피 등을 사용하는 윤리적인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그는 2001년 구치그룹의 제안으로 「스텔라 매카트니」를 런칭했으며 런칭한 지 6년 만에 흑자전환을 이뤄냈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아직 매출이 200억원 규모의 작은 브랜드이지만 그의 탁월한 디자인 감각과 상품성,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디다스」 「레스포삭」 「H&M」, 호주 「타깃」 등과의 콜래보레이션을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넓혀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잠재력이 큰 브랜드로 평가된다. 실제로 「스텔라 매카트니」는 지난 2004년 로버트 폴렛이 영입된 이래 사세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비즈니스를 넓히고 있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알렉산더 맥퀸」보다 이른 시점인 2006년 말로 소폭 흑자전환을 이뤘다고 발표했다. 2007년 10월 런던에서 발표한 바에 의하면 「스텔라 매카트니」는 2005년 12월 말로 마감한 2006년 회계연도에서 매출액 910만파운드(약 170억원), 순익은 18만파운드(약 3억3000만원)를 기록해 처음으로 흑자를 달성했으며 2005년에 비하면 매출이 25% 증가했다. 2005년에는 매출 730만파운드(약 136억원), 적자 120만파운드(약 22억원)라고 밝혔으며 가장 최근인 2007년 실적은 아직 발표하지 않았다.

스텔라 매카트니는 1971년생(만 37세)으로 1995년 런던의 디자인 스쿨 세인트 마틴을 졸업하자마자 프랑스 명품 브랜드 「클로에」를 맡으면서 패션계의 혜성처럼 떠올랐다. 1997년 「클로에」의 첫 컬렉션을 가진 뒤 매출을 5배가량 신장시켰다. 2002년에는 「클로에」를 사임하고 구치그룹과 50:50으로 「스텔라 매카트니」 브랜드를 런칭해 지난 6년간 전 세계적인 브랜드로 키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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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스텔라 매카트니는 다양한 콜래보레이션 작업을 통해 자신의 이름을 대중적으로 알리는데 성공을 거둬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2005년 2월에 「아디다스」사와 런칭한 액티브 스포츠웨어 「아디다스 바이 스텔라 매카트니」다. 러닝복, 수영복으로 시작한 「아디다스 바이 스텔라 매카트니」는 하이킹복, 산악암벽 등반복, 테니스복, 스키복, 요가복까지 추가하며 상품라인을 확장하고 있다. 오는 2010년 계약이 만료되면 재협상 여부에 따라 브랜드가 지속될지가 결정될 예정이다. 또한 2005년 11월에는 대표적인 스웨덴발 패스트패션 「H&M」과 손잡고 「H&M 스텔라 매카트니」 라인을 런칭해 25~200달러(약 2만~19만원)의 옷으로 3시간 만에 품절사태를 빚기도 했다.
리테일로는 전 세계에 8개점을 운영하고 있으며 올해 안에 3개점을 오픈할 계획이다. 올해 4월에는 베이징과 홍콩에 점포를 오픈할 계획이고 올해 말에는 파리에 개점할 예정이다. 전자상거래 부문도 활성화하려고 한다. 올 3월에 미국에서 전자상거래를 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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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맥퀸」의 알렉산더 맥퀸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선정적인 쇼와 극단적이며 드라마틱한 디자인으로 끊임없이 패션계의 논란을 일으키는 알렉산더 맥퀸. 그는 패션계의 ‘악동’이라는 명성으로 유명하다. 그는 탁월한 창의성과 독특한 디자인 감각에 완벽한 재단기술을 겸비한 패션계의 천재 디자이너로 ‘올해의 런던 디자이너 상’을 4회 수상했으며 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CFDA)의 해외 디자이너 상을 수상했다.

런던의 택시운전사의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알렉산더 맥퀸(1969년생)은 어려서부터 누나의 옷을 만들어준 타고난 재능의 소유자였다. 16세에 런던 새빌로에서 재단 견습생으로 재단을 배웠고 20세에는 「코지 타수노」, 21세에는 밀라노의 「로메오 질리」 디자이너로 경력을 쌓았다. 1994년에는 런던으로 돌아와 세인트 마틴 디자인 스쿨에서 재단강사로 일하던 중 학장의 눈에 띄어 학생으로 등록하게 되고 패션디자인 석사까지 마치게 됐다. 그의 석사졸업 패션 컬렉션 전체가 런던의 명사 이사벨라 블로에게 모두 판매됐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그후 이사벨라 블로는 그의 든든한 지원자가 됐다.

곧 알렉산더 맥퀸은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하고 첫 번째 컬렉션으로 ‘고원의 강간(Highland rape)’을 선보여 패션계의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드라마틱한 쇼와 선정적인 의상, 특히 로컷의 범스터(bumster) 바지는 논란의 핵심이었다. 1996년에는 LVMH 그룹의 「지방시」의 수석 디자이너로 존 갈리아노의 후임으로 영입돼 주목을 받았고 2001년 3월까지 일했다.

2000년 12월에는 지분의 51%를 구치그룹에 매각하며 구치그룹에 소속한 브랜드가 됐다. 현재 알렉산더 맥퀸은 「알렉산더 맥퀸」과 세컨드 라인 「McQ」를 운영하고 있으며 2004년 로버트 폴렛이 영입된 이래 매출이 3배 이상 급성장했다. 2007년 말에는 계획한 흑자전환을 드디어 이뤘다. 스텔라 매카트니가 다른 브랜드와 콜래보레이션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늘리는 전략을 구사하는 반면 알렉산더 맥퀸은 자사 브랜드에 주력하며 콜래보레이션은 많이 하지 않는다.

지금은 구치그룹과 자매사가 된 「퓨마」와(모기업 PPR이 지분을 인수함) 2005년 10월에 콜래보레이션한 상품을 출시했고 2007년 2월에는 「샘소나이트」와 여행용 가방을 출시한 것이 전부다. 여성복과 남성복, 액세서리와 구두, 안경과 향수를 상품군으로 하는 「알렉산더 맥퀸」은 액세서리 라인과 2006년 런칭한 세컨드 라인 「McQ」를 핵심동력으로 성장을 꾀하고 있다. 액세서리 부문은 지난 3년 동안 급성장해 전체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부문이 됐고 2007년에 런칭한 ‘ELVIE’와 ‘Flapper’ 라인이 바이어들과 잡지사에서 선정한 ‘머스트 해브(must have) 아이템이 되면서 액세서리 부문의 성장이 가속화하고 있다.
「맥큐」는 2006년 가을 런칭한 세컨드 라인으로 남녀 액세서리 상품군이며 16~30세를 타깃으로 하는 컨템포러리 라인이다. 이탈리아 의류 제조업체 SINV SpA사에서 라이선스 생산하며 런칭 후 3년 이내 1000억원대의 매출을 올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는 다크호스 브랜드다. 2007년에는 패션 디렉터 어워드에서 ‘올해의 브랜드’로 선정되는 등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현재 알렉산더 맥퀸은 「알렉산더 맥퀸」 「McQ」의 브랜드하에 전 세계적으로 39개국에 194개의 매장에서 유통되며 뉴욕, 런던과 밀라노에 플래그십숍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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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 흑자전환한 스텔라 매카트니, 알렉산더 맥퀸의 사업 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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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랜드 명 : 스텔라 매카트니

구치 그룹 인수시기 : 2002년 50:50으로 런칭

콜래보레이션 현황 :

2005~2010년 아디다스 2005년 말 「H&M」
2006년 「레스포삭」, 「타깃」 오스트레일리아,
란제리 「벤돈」, 레인 크로포드 조이스그룹과
아시아 판권계약

전개 브랜드 : 「스텔라 매카트니」

상품군 : 여성 의류, 액세서리, 구두, 향수, 오가닉 스킨케어제품, 란제리

리테일 점포 : 전세계 600여개 매장 8개(뉴욕, 런던, LA, 상하이, 싱가포르, 모스크바와 중동은 2008년 오픈)
3개 오픈예정(파리, 베이징, 홍콩)

전자상거래 : 작년 말 영국 개시, 3월부터 미국에서 개시

상품군 비율 여성의류:구두:핸드백 = 70:20:10

흑자전환시기 : 2006년 말 3억3000만원 흑자

사업목표 : 미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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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랜드 명 : 알렉산더 맥퀸

구치 그룹 인수시기 : 2000년 12월 지분 51%인수

사업전략 차이 : 콜래보레이션보다는 자사 브랜드 집중

콜래보레이션 현황 : 2005년 「푸마」
2006년 「샘소나이트」
「알렉산더 맥퀸」 「McQ」

상품군 : 남성의류, 여성의류, 액세서리, 구두, 안경, 향수

리테일 점포 : 전세계 194개 매장 3개 직영(뉴욕, 런던, 밀라노) 4개 프랜차이즈(라스베이거스, 이스탄불, 모스크바, 도쿄) 3개 오픈예정(LA, 파리, 중동)

전자상거래 : 홍보사이트 운영

상품군 비율 여성의류:액세서리:남성의류 = 50:30:20

흑자전환시기 : 2007년 말(액수 미발표)

사업목표 : 5년 안에 2억유로(약 3000억원) 매출목표


사업목표 : 미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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