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브랜드 속 KOREAN POWER!

패션비즈 취재팀 (fashionbiz_report@fashionbiz.co.kr)|08.04.11 ∙ 조회수 5,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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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KNY」의 제인정, 「스말토」의 박윤정, 「세르지오로시」의 현기순 ….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패션의 메인 스트림인 뉴욕 파리 밀라노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디자이너라는 것. 그것도 외국인과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총애를 받으며 수석 디자이너로 당당하게 올라섰다는 것이다.

지난 2008년 1월호에 영국 파이낸셜 타임스는 ‘Korea opportunities’라는 제목으로 미국 패션 미래는 한국인 손에 달렸다는 내용의 기사를 썼다. 이 기사에서는 최근 세계 패션의 중심지 뉴욕에서 떠오르고 있는 한국 디자이너들을 소개했다. 이 기사에 따르면 미국 패션디자이너의 등용문으로 알려진 젠 아트(Gen Art)가 최근 선정한 디자이너 8명 중 4명은 한국인 또는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것이다. 또한 지난해 미국 파슨스에서 디자인 관련 학위를 받은 학생들의 절반은 아시아계이며, FIT에서 미술학위를 받은 한국 유학생들이 지난 2003~2006년에 두 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리차드채 두리정 등 뉴욕 컬렉션에서 자신의 이름을 걸고 끼를 펼치고 있는 한국 디자이너들이 화제가 된 지도 이미 오래다. 이처럼 자신의 이름을 걸고 디자인을 준비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이들 못지않게 「DKNY」 「베르사체」 「랄프로렌」 등 전 세계 패션을 리드하는 글로벌 브랜드 속에서 당당하게 자신의 끼와 열정을 펼치는 코리안 디자이너들도 활약하고 있다.
이제 막 시작한 새싹 디자이너들이 있는가 하면, 인턴부터 어시스턴트 과정을 한 단계씩 밟아 올라가 막강 파워를 자랑하는 자리를 차지한 디렉터들도 있다. 이들은 단지 디자이너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비주얼 머천다이저 또는 그래픽 디자이너 등 다양하다. 이들이 세계 패션을 이끄는 글로벌 브랜드에서 한국인으로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성실함뿐 아니라 탁월한 재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패션의 미래를 이끌어갈 이들은 과연 어떠한 꿈과 비전으로 세계무대를 휘젓고 있는 것일까. 글로벌 브랜드에서 맹활약 중인 21명의 한국인들을 Q&A식으로 엮었다.

<편집자주>

김은수 기자 sue0207@fashionbiz.co.kr
박진희 기자 jhpark@fashionbiz.co.kr

밀라노 최애경 리포터·
파리 김다희 리포터·
뉴욕 최진선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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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hee Kim 「Polo Ralph Lauren」
Director of Technical Designer


김소희는 현재 「폴로랄프로렌(POLO RALPH LAUREN)」의 테크니컬디자인파트의 디렉터로 재직중.
커리어는? 한국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미국 오하이오주에 오게 됐다. 부모님은 내 전공을 살려 석사학위를 받기 원했지만, 4살 때부터 키워온 패션 디자이너의 꿈이 꿈틀거렸다. CCAD(Columbus College of Art and Design)학교를 졸업하고 뉴욕으로 와서 일을 찾기 시작했다. 처음 몇 년간은 작은 회사에서 일을 시작하다가 「센존」 「랄프로렌」과 같은 하이엔드 감성 브랜드의 디렉터로 올라갔다.

장점은? ‘탁월한 패션 감각(Great fashion sense)’이 나의 장점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창의성은 패션시장에서 중요하지 않다. 패션은 비즈니스다. 내가 거의 17년간 패션 산업에 종사하면서 나의 강점은 어떠한 가격 범위에서든지 일하고 디자인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화려하고 비싼 것을 만드는 사람이 좋은 디자이너가 아니다. 예를 들면 마시모와 아이작 미즈라히는 고가가 아닌 타깃을 대상으로 디자인해 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큰 볼륨을 형성한다.

성취감 느낄 때는? 휴가 때 그리스에 놀러간 적이 있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이 내가 직접 디자인한 옷을 입고 있는 것을 봤다. 나의 작품이 뉴욕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를 돌고 그 옷을 멋지게 소화하는 사람을 봤을 때 자부심을 느낀다. 내가 오늘 로또에 당첨이 된다 하더라도 나는 내일 일터에 나갈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너무나 사랑하고 좋아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으로서 세계 중심에 서려면? 한국에서는 겸손과 인내가 미덕이다. 이것이 미국 문화에서 해가 될 수도 있지만, 겸손은 여전히 나의 강점이다. 내가 겸손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은 항상 회사에서 나의 보스로부터 신뢰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진취적으로 나아가서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때 비로소 새로운 시작이 열린다. 패션산업은 좁기 때문에 당신이 잘하면, 금방 소문이 퍼져서 존경받는 직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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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ho Lee 「ELLEN TRACY」
Outwear Designer


이재호(72년생)는 현재 「엘렌트레이시(ELLEN TRACY)」의 아웃웨어 디자이너로 재직중.
「엘렌트레이시」는? 전문 직장여성을 타깃으로 한 모던 & 심플함에 화려한 컬러를 조화시킨 브랜드다.
당신의 역할은? 아웃웨어 디자이너다. 이 브랜드에서 구성하는 울코트, 다운재킷/코트, 가죽재킷/코트, 레인코트 등 모든 코트류를 디자인한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이어서 이곳 상황에 따라 각 부분을 분리해 디자인한다.
「엘렌트레이시」에 오기까지? 단지 영어를 배우겠다는 이유로 미국으로 왔다. 아칸소 주립대학에서 어학공부를 한 후 FIT와 이탈리아의 폴리모다에서 의상을 공부했다. 「캘빈클라인」에서 아메리칸 스타일 컬렉션을 체험하고 「DKNY」에서 아웃웨어 디자이너로서 기본기를 다졌다. 그후 현재 「엘렌트레이시」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한국인으로서 힘든 점? 13년이란 시간이 지나도 역시 언어의 장벽은 높다. 남미인(콜롬비아, 에콰도르, 쿠바 등) 미국인(유대인, 이탈리아계 미국인) 이탈리아인 등과 함께 일을 한다. 각기 다른 국민성으로 인한 의견 일치가 힘들 때도 있다. 언제 디자이너로서 뿌듯한가? “We need you here” 회사 사장과 면담 중에 이런 말을 들은 적 있다. 내가 회사에 필요한 존재라는 것은 곧 매출과 직결된다. 거리에서 내가 디자인한 옷을 보는 횟수가 잦아질수록 매출이 올라가고 보람을 느낀다.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때? 한국인은 다른 외국인들이 부러워할 만큼 부지런하고 책임감이 강한 민족이다. 실력도 뛰어나다. 한국인의 한 명으로서 지금 이 위치에 있다는 것이 항상 자랑스럽다.
디자이너가 꿈인 후배들에게 한마디? 지금 내가 있는 이 자리도 우리 선배들이 일궈 놓은 기회일 수도 있다. 나 또한 그런 기회를 많은 한국인 후배에게 만들어 주고 싶다. 진정 자신이 원하는 모습이 디자이너라면 선배가 마련해 놓은 기회를 놓치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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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nna Hwang 「DKNY Jeans」
Woven Associate Designer


제나 황(황지은 81년생)은 현재 「DKNY Jeans」의 우븐 디자이너로 재직중.
「DKNY JEANS」은? ‘City of Dreams, City of Jeans’이다. 뉴욕의 라이프스타일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국제적이고 즐겁고 현실적인 삶에서 필요로 하는 패션이다. 캐주얼부터 이브닝룩까지 폭넓게 제안하며 끝없는 가능성의 원천지인 뉴욕과 닮았다.
「DKNY」에서의 포지셔닝은? 우븐디자이너다. 이 브랜드는 디자인팀 머천다이징팀 세일즈팀으로 구성된다. 옷을 디자인하는 것부터 상품화되기 전까지를 디자인팀이 담당한다.

힘들었던 점과 자신 있는 일은? 언어의 장벽은 너무 높다. 내 생각을 영어로 자신 있게 표현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내성적인 성격에 더욱 힘들었지만 디자인을 발표하고 생각을 표현하는 훈련을 꾸준히 하고 있다. 반면 디테일과 하드웨어를 쓰는 일은 재미있다. 데님, 액티브웨어와 재킷, 코트류 디자인은 자신 있다.
어떤 디자이너가 되고 싶나? 바이어들에게는 반응이 좋지 않았던 반면, 소비자의 베스트셀러에 등극해 리오더가 들어왔을 때 내가 이해하고 믿고 있던 소비자들에게 원하는 것을 전달한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이 브랜드를 위해 일하는 동안 소비자 입장을 좀 더 이해하고 좋은 디자인을 캐치하는 눈을 키우도록 노력하는 좋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한국인의 장점은? 한국인은 개인보다는 브랜드의 성향을 크게 내다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주의적 미국사회에서는 타인과의 조화를 중시하는 우리 민족이 단연 돋보일 수밖에 없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어느 학교 출신이든지 어디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 ‘훌륭하다’ 또는 ‘보잘것없다’라는 것을 정의할 수 없다. 그 시대와 문화에 대한 꾸준한 연구와 아이디어에 자신의 미적 감각과 영감을 더한 진정한 미를 소비자에게 바로 전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어디에서 어떤 디자인을 하든지 자신의 능력이 올바로 쓰일 수 있다면 좋은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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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Choi 「Double RL」
Technical Designer



데이비드 최(최동진 79년생)는 현재 랄프로렌컴퍼니의 「더블알엘(Double RL)」이라는 브랜드에 테크니컬 디자이너로 재직 중.
「더블알엘」은 어떤 브랜드? 1993년에 런칭한 랄프로렌 회사의 빈티지 라인이다. 처음 런칭 때는 빈티지 마니아인 랄프로렌 자신이 애착을 갖고서 만들었다가 반응이 좋아지면서 2005년부터 프리 스탠딩 스토어를 시작하게 됐다. 현재 뉴욕에 2개, 캘리포니아에 1개, 일본에 1개 등 총 4개의 스토어가 있다. 데님이 가장 큰 포션으로 구성되어 있고 데님의 경우 225달러부터, 그 외 다른 패션웨어는 325달러부터 시작된다. 모두 ‘made in USA’다. 처음 시작 단계는 오리지널 빈티지의 컬러, 패턴, 텍스처 느낌을 그대로 제작한다. 디테일 경우 시장에서 찾기 힘들어 새로 개발할 때가 많다. 이 브랜드의 키워드는 ‘빈티지를 표현하되 핏은 모던하게’라는 점이고, 그 일이 바로 나의 역할이다. 처음 샘플이 만들어지면 워싱리뷰, 피팅 체크, 피니싱과 디테일 교정 등 그 후의 작업은 모두 나의 몫이다.

경력은? 중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를 나왔다. 할머니는 한복점, 아버지는 패턴메이킹, 어머니는 의상실을 하셨다. 가족의 영향이었는지 대학교에 들어가서 자연스럽게 관심이 생겼다. 졸업 후 아동복 회사에서 1년간 있다가 「클럽모나코」에서 2년 반 그 후 「랄프로렌」에서 3년째 일하고 있다.

「더블알엘」의 컨셉은? 예전에 일했던 「클럽모나코」의 경우 매 시즌을 준비할 때 유럽에서 받아오는 트렌드 포캐스팅의 리포트가 가장 처음 시작되는 포인트다. 반면 「더블알엘」은 오리지널한 빈티지가 언제나 컬렉션의 영감이 된다. 즉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컨셉인 거다. 확고한 오리지널리티를 가진 브랜드라 멋지다. 현재 일에 만족하나? 내 자신이 브랜드 컨셉을 높이 사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무엇을 원하는지 상품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 내 역할에 있어서도 결과물이 좋다. 이 브랜드에 대한 애착도 많지만, 보스 또한 나의 뮤즈이자 정신적 지주다. 자신이 일하는 곳에 긍지를 느끼고 좋은 상사를 갖고 있는 것은 참 행운이다. 그만큼 난 이곳에 오래 있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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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rril Hwangbo 「RALPH LAUREN」
Graphic Designer



쉐릴 황보(황보원영 83년생)는 현재 랄프로렌컴퍼니에서 「폴로」컬렉션과 블루·블랙·퍼플 라벨을 맡고있다. 웹과 런웨이 비디오 에디팅, 모델 촬영 등 그래픽과 관련된 모든일에서 활동 중.
「랄프로렌(RALPH LAUREN)」에서의 역할은? 매 시즌 패션쇼가 끝나면 패션쇼 비디오 에디팅, 트렌드 포케스팅에 전달, 웹사이트 업데이트 등을 단 하루 만에 다 끝내야 하기 때문에 대단한 스피드가 요구된다.

커리어는? 본적은 한국이지만 3살 때부터 계속 미국에서 자랐다. 그래픽 전공으로 RISD를 다니면서 겨울학기 동안 제일기획에서 인턴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졸업 후 한국으로 들어와 LG전자에서 2년 동안 일했다. 모든 전자상품 내에 부착되어 있는 스크린의 그래픽을 담당하는 컴퓨터 사용자 인터페이스 부서에 있었다. 능숙하지 못했던 한국어와 문화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다. 그 후 미국으로 돌아와 「랄프로렌」에 취직했다. 지금은 웹사이트 등을 통해 보다 큰 캔버스에서 다양하고 크리에이티브한 디자인을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즐겁다. 또한 LG에서 일하는 동안 유저들이 사용하는 것에 대한 이해력을 키웠기에, 현재 「랄프로렌」에서 웹사이트를 디자인할 때에 많은 도움이 된다.

성공하려면? 성공하려면 자신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자신을 믿어 도전을 두려워 말고, 자신의 본능을 따르는 것이 가장 정확한 정답일 때가 많다.
가장 보람을 느꼈던 때는? 지난 2월 뉴욕 패션위크에서 20명의 웹 디자인 팀과 한몸이 되어 24시간 밤샘 작업을 했을 때. 몸은 너무나 피곤했지만 하루만에 성과물을 만들고 모든 것을 웹에 띄웠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
현재 위치에 오르기까지 중요한 점은? 매번 나에게 임무가 주어질 때마다 치열하게 노력을 했다. 포트폴리오 준비부터 꼼꼼히 하고 밤새면서 준비한 적도 많다.
앞으로의 꿈은? 지금은 현재 위치에 만족하지만, 기회가 된다면 공부를 더해서 교수가 돼 강의를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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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J Harrington 「Catherine Malandrino」
Technical Designer


EJ 해링턴(곽은정 75년생)은 현재 「캐서린 말란드리노(Catherine Malan drino)」라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테크니컬 디자이너로 재직중.
「캐서린 말란드리노」 브랜드는? 「캐서린 말란드리노」는 매년 아카데미 수상식이나 뮤직 어워드에서 많은 셀러브리티가 선호하는 디자이너 브랜드다.
테크니컬 디자이너로서 본인의 역할은? 테크니컬 디자이너는 패션의 엔지니어링이다. 내가 하는 일은 디자이너들이 놓쳤던 부분들을 에디팅하여, 좀더 우아하게 브랜드의 이미지에 맞게 고쳐주는 작업이다. 옷이 만들어지는 가장 마지막 작업인 만큼,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이다. 엉망이었던 옷이 나의 손을 거쳐 리오더가 들어온다든지, 손님들로부터 ‘핏이 너무 좋더라’는 반응을 전해들을 때 정말 행복하다. 「Tracy Reese」 「Rebecca Taylor」에서 경력을 쌓은 것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는 것 같다.

패션에 대한 열정은?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집안사정이 좋지 못해 새 옷을 살 형편이 아니었지만, 옷이 너무 좋아 집에서 계속 혼자 만들었다. 7살 때에는 어머니가 내버린 이불보를 다시 집안으로 끌고 들어와, 티셔츠 모양으로 잘라 손바느질로 ‘나’라는 글자를 뒤에 새겨 입고 다녔다. 그 후 10년 후에 콜로라도 주립대에서 Best Designer of the Year로 졸업하게 되었고, 지금의 자리에 서게 됐다.
장점은? 항상 웃는 미소로 남들을 대한다. 나를 만나는 외국 동료들로부터 ‘한국인들은 친절하지 않을 줄 알았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남을 도와주느라 늦게까지 남는 일도 다반사다. 남을 도와주면 반드시 나에게 되돌아온다. 자기 공간 안에만 있으면 성공할 수 없다.

꿈은? ‘한석봉이 눈을 감고 떡을 썰듯이’ 척 보기만 해도 그 옷의 피팅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싶다. 경험과 노력뿐이다. 항상 꿈이 있으면 꾸준히 연습하고 노력해야 한다. 또 한 가지는 긍정적인 마인드이다. 좋은 상상을 계속하면 결국 현실로 이루어진다. 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자신에 대해 만족하면 일도 잘될 뿐더러 다른 이들에게도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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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 Lee 「ADIDAS」
Account Planner


창 리(이창익)는 「아디다스」에서 3개월 인턴을 하다가 풀타임으로 고용돼 7년째 재직중.
교육 배경은? 92년 고등학교 때 미국으로 왔고 인디애나주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제대후 FIT에서 패션 머천다이징 매니지먼트를 공부했다.

「아디다스」에서의 역할? 「아디다스(ADIDAS)」는 퍼포먼스 라인, 오리지널 라인, 스포츠스타일 라인으로 구성돼 있는데 가장 패션에 가까운 ‘스포츠스타일’을 맡고 있다. 이 라인에서는 Y-3(요지 야마모토와 콜래보레이션), 포르셰 디자인 스포츠(자동차 포르셰와 콜래보레이션), 컨소시엄(리미티드 에디션 스니커즈)을 전개하는데 이와 관련된 리테일 바잉, 재고 관리, 판매 분석, 물품 주문, 운송 관리까지 디자인과 프로덕션을 뺀 모든 일을 맡고 있다. 세계적인 브랜드인데 비해 실제로 회사 규모는 작다. 스포츠스타일 라인의 스태프는 20명이 채 안 된다. 정말 바쁠 때에는 하루에 이메일이 100개씩 된다. 이처럼 많은 분량의 일을 타임라인에 맞추어 제시간에 성공적으로 끝내는 것에 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현재의 일이 만족스러운지? 세계적인 패셔니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Y-3」와 같은 대규모 패션쇼에 매 시즌 참석할 때면 글로벌 패션회사에서 일하는 흐뭇함을 느낀다. 또한 컨소시엄 라인의 경우 마니아층 고객을 다루는 리테일러인 만큼 바이어들도 대부분 젊고 재미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즐겁고 그들로부터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좋다.
한국인으로서 힘들었던 점은? 다행히도 없다. 「아디다스」는 독일회사이기에 이곳 뉴욕 오피스에도 외국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스위스,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나를 포함해 회사의 절반이 모두 외국인이다. 「Y-3」의 헤드가 요지 야마모토이기 때문에 품평이나 쇼를 할 때에 동양인이 많이 보여 마음이 편안한 점도 있는 것 같다.
후배들에게 한마디? 무모하더라도 혹은 무식하더라도 우선 질러보는 도전정신이 중요하다. 가만히 기다리고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찾아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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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san Park·Linda Park
「LIZ CLAIBORNE」
Handbag Designer·Associate Woven Designer

수잔 박(박유현 79년생)과 린다 박(박유경 82년생 경력 3년차)은 현재 리즈클레이본이라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고 있는 닮은 자매다. 언니 수잔은 핸드백 부서에서 가죽파트를 담당하고 동생 린다는 여성복 우븐파트에서 디자이너로 재직 중.
리즈클레이본 컴퍼니는? 「리즈클레이본(Liz Claiborne)」 뿐만 아니라 「케이트스페이드(Kate Spade)」 「주시쿠튀르(Juicy Couture)」 「럭키브랜드(Lucky Brand)」 등 40여 개의 브랜드를 소유하는 미국 내 가장 큰 규모의 회사 중 하나다. 우린 한국에서 태어나 중학교 때 미국으로 왔고, 둘 다 RISD 졸업생이다. 얼핏 보면 쌍둥이 같을 정도로 비슷한 분위기를 지녀 에피소드가 많다. 동생 린다가 「리즈클레이본」의 HR(Human Resource) 오피서를 처음 만나는 날 ‘너 벌써 여기서 일하고 있지 않니’라는 소리를 들으며 착각했을 정도다.

현재 일이 만족스러운지? 이번 봄부터 아이작 미즈라히가 「리즈클레이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역할을 시작하게 된다. 전설적인 패션디자이너와 같은 회사에서 일하게 되는 게 영광이다. 그와 함께 일하면서 많은 좋은 경험을 할 것에 대해 기대된다. 회사가 더욱 좋은 이미지로 좋은 판매결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바라는 것이 있다면? 한국 중국 홍콩 등 아시아에 공장이 많은데, 한국인으로서 커뮤니케이션 진행이 더 수월해진다. 공장 셀렉션 때 이왕이면 한국공장이 채택되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한국공장에서 많은 오더를 받게 될 때는 참 뿌듯하다.
가장 큰 보람을 느낄 때는? 디자인이란 내 만족을 위해 나만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기보다 남들과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디자인한 상품이 사람들로 가득한 백화점에 디스플레이 돼 있는 모습, 지나가다가 남들이 그것들을 어깨에 걸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흐뭇하다. 그들이 나의 디자인을 함께 즐기는 때에 비로소 보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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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njung Park 「SMALTO」
Creative Director


박윤정(78년생)은 현재 「스말토(SMALTO)」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직중. 「스말토」의 다음 컬렉션과 디자인 등 전체적인 방향부터 디테일한 면까지 총괄하고 있다.
「스말토에 대해? 프랑스 전 미테랑 대통령이 즐겨 입었다는 프랑스 정통 남성복. 이탈리아 테일러였던 ‘프란체스코 스말토’가 프랑스로 건너와서 만든 브랜드로 오트 쿠튀르(100% 맞춤복)/준 오트 쿠튀르(50% 맞춤복)/프레타포르테(기성복 퍼스트라인)/스말토 바이(기성복 세컨드 라인) 네가지 라인을 가지고 있다.

현재 위치에 오르기까지 과정은? 스위스 태생으로 중·고등학교 때는 방학 때마다 한국에 나가서 한국말을 배웠고 스위스 학교에서는 이탈리아어와 프랑스어를 배웠다(총 5개 국어 능통). 그러면서 파리에서 의상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파리로 와 에스모드에 입학했다. 졸업시즌 경험을 쌓기 위해 「스말토」에서 헬퍼를 경험했고 정통 정장을 배우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무작정 인턴사원으로 들어가서 일하게 됐다. 열심히 한 만큼 운도 많이 따랐고 그래서인지 생각보다 빠른 승진을 하게 됐다.
장점은? 사고방식 차이·커뮤니케이션에 가장 자신 있다. 모든 사람과 어울려서 하는 모든 일은 의사소통이 가장 중요하다. 이는 내가 5개 국어를 능통하는 것도 플러스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의견일치·협상(negotiation)이 가장 내가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가장 큰 보람은? 잊을 수 없는 2008 S/S 컬렉션이다. 그동안 ‘프랑크 보클레’가 총괄하다가 내 이름 ‘박윤정’을 걸고 한 첫 쇼여서 많이 긴장됐지만 보람이 컸다. 프레스들의 반응도 상당히 좋았고 매출 역시 23% 신장했다. 너무 고맙고 힘들었고 또 잊지 못할 쇼였다. 이제는 스말토 프랑크 보클레가 아닌, 스말토 윤정박이라고 많이들 말해줘서 현 위치에 만족한다.
이루고자 하는 계획은? 「스말토」를 글로벌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 등 세계 속으로 계속 뻗어나고 그 속에 박윤정의 느낌이 들어 있었으면 좋겠다. 시원시원함과 강한 「스말토」의 이미지를 동시에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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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ona Jung 「DANIEL CREMIEUX」
Chef de Produit



정연아는 현재 「다니엘크레미유(DANIEL CREMIEUX)」의 Chef de Produit(한국의 MD와 비슷한 역할)로 재직중.
「다니엘크레미유」는? 프랑스 고급 남성복 브랜드다. 캐시미어, 시 아일랜드 코튼 등 고급 소재를 베이스로 정통 유럽과 현대의 만남을 위주로 세련된 실루엣을 표현한다. 프랑스에는 파리 마들렌 등 5개의 직영점을 운영하며 미국 대형 백화점인 DILLARDS’에 350개점 이상이 입점돼 있다.
현재 포지션? 브랜드의 메인 이미지인 ‘실버 레이블 디비전 컬렉션’을 맡고 있다. 시장조사부터 시작해 컬렉션 테마 선정, 오너숍과 라이선스의 생산 오더, 가격결정까지 담당한다. 힘들었던 순간은? 프랑스 섬유의상 경영학교 IFM에서 학위를 받고 98년부터 「다니엘 크레미유」의 한 식구가 됐다. 프랑스에서 계속 일하기 위해 3개월 후 신분 변경 신청을 했지만 거절됐다. 단 3개월의 근무였지만 능력을 인정받아 장장 4년이란 시간 동안 외국인 고용 신청을 거절한 노동청을 대상으로 재판을 해 결국 노동 허가증을 받게 됐다.

해외에서 일할 때 필수조건? 유럽 미국 아시아 등 글로벌 시장에 있는 업체들과의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영어가 꼭 필요하다. 언어가 통하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아이디어를 갖고 있어도 무용지물이다.

최근 성과는? 프랑스 국가대표 축구협회의 공식 정장을 디자인했다. 프랑스 국가대표 축구 선수 팀원인 티에리 앙리, 프랑크 리베리 등과 3월 말부터 피팅을 거쳐 4월 초 영국 원정경기 때 처음으로 선보인다. 최근 가장 뿌듯한 일이다.

보람 있었을 때? 이 브랜드는 매우 클래식하다. 하지만 타이트하고 길이가 짧은 블레이저(Blazer)를 디렉션 동의 없이 런칭했다. 본사는 한마디로 뒤집어졌다. 하지만 일주일 만에 솔드아웃. 3년째 베스트셀러 중 하나로 3개월에 한 번씩 리오더한다.
꿈꾸고 있는 것? 프랑스의 패션, 생산 유통 시장 등을 잘 알고 있고 국제 라이선스업자와 바이어 등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한국기업과 프랑스의 패션시장을 잇는 다리가 되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그동안 모아온 패션, 디자인 자료를 바탕으로 파리지앵의 라이프스타일을 알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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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unhyo Kim 「Dries Van Noten」
First Design Assistant


김건효(81년생)는 「드리스반노튼」의 퍼스트 디자인 어시스턴트로 재직중.
현재 위치에 오기까지? 서울예고-네덜란드 아른헴 아트스쿨(빅토르앤롤프의 출신학교로도 유명함)에서 첫 학년 과정을 수료한 후에 벨기에 왕립미술학교 4년 과정을 작년 6월에 마치면서 「드리스 반 노튼」의 디자인 어시스턴트로 일하게 됐다. 드리스 반 노튼은 매년 자신의 모교인 앤트워프 왕립학교의 졸업생 중 한명을 택해 수상하는데 그 상을 받게 되면서 현재의 일을 시작했다.

외국인들과의 경쟁에서 힘든 점은? 디자이너로 일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실현해야 하는 이 작업은 힘들다. 하지만 내가 외국인이고 또 다른 국적의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다른 국적을 지닌 여러 사람을 만나고 함께 일하는 것은 너무나도 재미있다.

가장 뿌듯함을 느꼈던 때는? 드리스와의 첫 번째 작업이었던 작년 S/S는 프린트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데서 뜨거운 반응을 받은 쇼였다. 많은 프레스로부터 젊어졌다는 평가와 함께 가장 드리스다웠다는 평을 들었다. 그와의 첫 번째 작업에서 인상적이었고 가장 큰 보람을 느낀 쇼였다.

현재의 위치에 대해서 만족하나? 대만족이다. 바로 졸업한 학생을 자신의 퍼스트 디자인 어시스턴트로 받아줄 세계적인 디자이너는 흔하지 않다. 드리스는 프레스오 바이어를 동시에 만족시킬 줄 아는, 밸런스를 가진 디자이너다. 창의적인 면과 상업적인 면에서 그에게서 배울 점이 너무 많다.
「일갈란투오모」에 대해서? 이번 파리 패션위크 동안 나의 브랜드인 「일갈란투오모」로 첫 쇼룸을 열었다. 드리스와 일하면서 동시에 병행하는 것에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삼성패션디자인펀드(SFDF) 수상으로 많은 부분을 도움 받으면서 일하고 있다.
인생 목표? 우선은 많은 경험을 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내가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르겠다.
글로벌 브랜드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행동이 생각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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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ny Kim 「Bally」
Director of mens&womens accessories design


김세니(68년생)는 현재 이탈리아에 있는 디자인 기획 오피스에서「발리 (BALLY)」의 남성과 여성 액세서리 디자인 총괄 매니저로 재직중.
현재 일하는 곳은? 1851년 프란츠 발리가 창업한, 스위스 장인정신의 자존심이라 불리는 「발리(Bally)」다.
현재 위치에 오르기까지? 독일에서 자라고 베를린 예술대학에서 일러스트레이션과 패션디자인을 전공했다. 「에르메스」 「크리스티앙 라크루와」에서 스타주를 하며 96년 「찰스주르당」에서 정식으로 액세서리 디자인을 맡았다. 그 뒤 LVMH그룹의 「루이뷔통」에서 가방디자이너로 스카우트됐으나 언제나 똑같은 「루이뷔통」의 모노그램에 한계를 느끼고 프리랜서 활동을 시작했다. 그 뒤 「셀린」 파리 본사의 액세서리 부문 가방, 신발류의 디자인과 생산 컨트롤을 직접 당당하다가 현재의 「발리」로 옮겼다.

해외에서 인정받기 위해 갖춰야할 점은? 패션계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많은 경쟁자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진짜 프로는 찾기도 힘들고 만나기도 힘들다. 타이밍과 행운, 즉 기회가 잘 맞아야 이 행운을 거머쥘 수 있다. 상대방의 말과 마음을 읽고 들어줄 줄 아는 아량도 있어야 한다. 크리에이티브적 일을 요구하는 분야이므로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고 그 속에 살아야 한다. 단지 눈에 보이기만 하는 창작이 아닌, 결과에 대한 정확한 판단분석도 할 줄 아는 과감함이 있기에 인정받는다.
인정받은 성과는? 「루이뷔통」백 루핑(Bag looping, 1999). 「셀린느」 때도 전반적인 액세서리 컬렉션이 더 좋았다고 평가받았다.

글로벌 브랜드 속 한국인의 장점? 어려서부터 독일에서 자랐지만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가르침과 한국여행 중 남은 기억이 동서양의 교차를 느끼게 해준다. 동양인에게서 느낄 수 있는 젠(Zen) 스타일과 강한 카리스마, 서양인이 가지고 있는 실질적이고 직선적인 부분이 오늘날 내가 보여주는 성격인 것 같다.
글로벌 브랜드를 희망하는 한국의 후배들에게 할 말은? 자신의 일에 당당하고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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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isoon Hyun 「SERGIO ROSSI」
Head Designer

현기순은 현재 40년 전통의 이탈리아 수제화 「세르지오로시 (SERGIO ROSSI)」의 헤드 디자이너로 재직중.
「세르지오로시」는? 이 브랜드는 「루브땅」 「마놀로블라닉」 「지미추」의 대열에 당당히 속해 있다. 엘레강스한 힐 위주로 일하는 직장여성부터 이브닝슈즈까지 제안하는 방식이 폭넓다.
현재 위치에 오르기까지? 한국에서는 목공을 공부했고 전공을 공부하러 밀라노로 건너갔다. 마랑고니에서 액세서리 파트를 공부했으나 「베르사체」에서는 텍스타일 디자이너로서 5년 반 동안 일했다. 그 후 액세서리파트가 패션의 중심으로 떠오르며 「세르지오로시」로 영입됐다.

보람을 느낄때? 이 브랜드에서 일한 지는 3년이 지났다. 시즌마다 데이터 분석을 해서 베스트셀러 슈즈를 리스트 업하는 작업을 한다. 내가 작업한 디자인이 1~2위를 다투며 그 시즌의 톱이 됐을 때 힘들었던 시간은 모두 사라진다. 셀링 1위는 곧 전 세계적으로 15만~16만 켤레가 판매됐다는 것이다. 3~5년 사이에 삼성 붐이 일어나기 시작하며 컴퓨터나 전자 쪽에서 한국이 인정을 받기 시작했을 때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지속적인 한국의 발전을 기대한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변화가 필요한 나라가 곧 한국이란 생각도 해본다.

좌우명은? ‘긍정적으로 살자’이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처음부터 톱 브랜드의 좋은 위치에서 일했고 내가 디자인한 슈즈는 기가 막히게 세계 각지 소비자의 테이스트를 맞추고 있다. 그것은 곧 긍정적인 나의 라이프스타일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것을 위해 최대한 노력을 하고 공부하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이것은 진리다. 또한 당당함이 살 길이다. 이곳에서는 senior든 junior든 모두 동등한 위치에 서 있다. 누구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으며 아이디어가 뛰어나면 톱이 된다. 특히 밀라노는 세계 각지에서 패션피플이 몰려오는 패션의 중심지다. 끝까지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이 승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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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hee Shim 「Versace jeans couture」
VJC(Versace jeans couture) Designer


심선희는 「D&G」 란제리 비치웨어 라인 디자인을 거쳐 올 2월에 지아니 베르사체 회사의 「VJC」에 남성복 디자이너로 재직중.
현재 일하는 곳은? 1975년 프레타 포르테 컬렉션을 시작으로 80년대 세계 패션계의 빠질 수 없는 인물 중 하나가 된 지아니 베르사체가 설립한 브랜드다. 97년 베르사체 사망 후 여동생인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컬렉션을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오기까지?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 2000년 5월 이탈리아로 유학을 왔다. 그 후 마랑고니 패션스쿨 1년 인텐시브 코스 입학, 1년간 마스터코스를 거쳤다. 졸업 후 각종 패션콩쿠르에 참가해 2등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2006년 1월 돌체앤드가바나의 「D&G」에 입사했고 란제리, 비치웨어 라인을 디자인했다. 2년의 경력을 거쳐 「D&G」 비치웨어 라인의 치프(Chief) 자리를 제안 받았다. 그날 아이러니하게도 「베르사체」에서 면접을 보자는 연락을 받았고 현재의 위치를 선택하게 됐다.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있다면? 나의 적극적인 성격·꼼꼼한 일처리·끈기를 그들은 가장 높이 사는 것 같다. 이것은 실력이 뛰어난 한국인의 공통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외국인들 또한 그 점을 알고 높이 산다. 오랜 기간 외국 생활을 하고 있지만 문화적인 견해 차이로 감정이 상할 때가 종종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남성복 분야의 전문적인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아직은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에서 일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현재 익히고 있는 실무를 바탕으로 국내 남성복 패션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 나의 개인적인 브랜드 런칭이 소망이다.

후배들에게 한마다? 내 실력에 비해 항상 높은 꿈을 가지고 있던 것이 어떻게 보면 내가 이 자리에 오르는데 도움을 준 것 같다. 진부한 이야기일지 모르나 높은 꿈을 가지고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준비하면 원하는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항상 적극적이고 조금은 과하다 싶을 정도라도 자기주장을 확실히 이야기할 수 있는 자세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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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youngwon Choi 「Marni」
Fashion coordinator / VMD responsible


최경원(72년생)은 현재 「마르니(MARNI)」의 패션 코디네이터 겸 비주얼 머천다이저 총괄 책임자로 재직중.
커리어는? 중앙대 공예미술학과 졸업, 서울 에스모드 패션디자인 중퇴, 이탈리아 밀라노 소재 마랑고니에서 패션 디자인 마스터 과정 수료. 이 후에 영국 본사 「버버리 프로섬」과 퍼스트라인 「프라다」에서 6년 동안 VMD로 경력을 다진 후에 현재 「마르니」의 수석디자이너에 의해 스카우트돼 VMD 총괄 책임자로 일하게 됐다.
힘든 점이 있다면? 나름대로 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지만 내가 모르던 그들만의 패션 역사, 문화, 인물에 대해서 토론할 때 처음으로 나는 아주 무식한 사람이 되었다. 이탈리아인에게 패션은 바로 시대적 배경과 상황 등 모든 것이 함축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들과의 경쟁은 그들의 역사를 배우고 나만의 독특한 방법으로 표출하는 것이다.
성취감을 느낄 때는?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오프닝과 패션쇼를 나의 오른팔 역할을 하는 두 어시스턴트들과 함께 진행한다. 이때 선보이는 우리의 인테리어와 디자인, VMD 작업이 유럽 미국 일본 등 수많은 패션잡지와 엘르 데코나 인테리어 잡지에 기획되어 나오는 것을 볼 때 새삼 뿌듯함을 느낀다. 재미로 디자인한 몇 개의 가방이 실제 상품으로 나와 높은 판매기록을 낼 때와 내가 디자인한 구두를 카피하는 디자이너들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
현재의 위치에 대해서? 만족은 없다. 「마르니」를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시키는 일을 하고 싶다. 멋진 비주얼로만 남는 것보다 비즈니스적으로 큰 성과를 남기고 싶다. 인생의 목표 VMD로는 어느 정도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나의 꿈은 ‘위치’나 ‘레벨’에 있지 않다. 나의 재능과 열정이 있는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내 브랜드를 런칭할 계획이다.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세계를 향해 나가라! 그리고 열심히 그 나라 말을 배워라! 아무리 좋은 기회가 주어져도 자신을 표현할 수 없으면 거기서 끝나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손재주가 많다. 그 기술에다가 더 많은 영감과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더불어 표현할 수 있다면 최고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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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han Shim 「Versace Jeans Couture」
Accessory designer


심보한은 현재 「베르사체(VERSACE)」의 세컨드라인인 젊은 럭셔리 세대 타깃의「베르사체진스쿠튀르(VJC)」 와 「베르사체스포츠(V SPORT)」의 남성 여성용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재직중.
커리어는? 홍익대 기계공학과-이탈리아 피렌체의 폴리모다(Polimoda)에서 여성복과 니트웨어 3년과정을 수료했고 밀라노 마랑고니에서 패션디자인 마스터 과정을 마쳤다. 그 이후에 경력사원을 모집하던 「베르사체」는 경력은 없지만 나의 디자인에 높은 관심을 보임과 동시에 정식사원으로 일할 것을 제의해 왔다.

외국인들과의 경쟁에서 힘든 점은? 「베르사체」는 규모 있는 글로벌 브랜드다. 그래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다국적이다. 이들은 「베르사체」를 위해 헌신한다. 문화 차이는 있지만 오히려 다양한 문화와 환경 속에 있는 사람들을 접할 수 있어 흥미롭고 배울 게 많다. 처음에는 전공과 다른 핸드백이나 슈즈 등의 액세서리를 「베르사체」 컨셉으로 디자인한다는 것이 힘들었다. 그러나 나의 첫 컬렉션부터 심상치 않다며 큰 갈채를 보낸 총괄 디자이너의 반응답게 액세서리 라인이 높은 매출로 이어져 새로운 활력소를 찾았다. 혼자서 모든 일을 진행하기 때문에 일도 많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 디자이너 어시스턴트로 있는 것보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계획, 디자인할 수 있어서 좋다.

인생의 목표는? 현재의 위치에서 계속 디자인해 나아갈 것이다. 앞으로는 나를 포함해 새로운 세대가 더 노력해서 유명 글로벌 브랜드의 한국인 수석 디자이너가 되든지 유명 한국 글로벌 브랜드를 이곳 밀라노에서 런칭할 계획이다.
글로벌 브랜드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한국인은 체계적인 업무 능력이 뛰어나다. 다시 말해 한국인은 일이 많으면 가장 빠르고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터득해 나가며 다른 무엇보다 성실히 일한다. 한국인이 서양인보다 자신을 드러내는 프리젠테이션 능력은 다소 미흡하지만 단점에 연연하기보다 장점을 살려 자신의 능력을 키우고 경력을 쌓아 무한한 경쟁력을 쌓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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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hye Jang 「Versace」
Junior Visual Merchandising Designer


장지혜는 현재 「베르사체(VERSACE)」에서 디스플레이 이벤트 인테리어 패키징 등 그래픽과 관련된 모든 작업을 하는 비주얼 머천다이징 디자이너로 재직중.
현재 위치와 역할은? 밀라노에 온 지 횟수로 6년째다. 마랑고니의 홈컬렉션 & 디자인(Home collection & Design) 3년 과정을 마치고, 얼마 후에 「베르사체(Versace)」 비주얼 사무실에 인턴사원을 마치고 정식직원이 됐다. 컴퓨터 3D, 2D 그래픽 디자인 능력과 작년 초 「베르사체」 초콜릿 패키징 디자인으로 인정받았다. 현재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하고 있는 편이며 앞으로도 계속 이 일을 하고 싶다.

한국인으로서 장점이 있다면? 외국인에 비해 예절교육과 윗사람에 대한 공경이 뛰어난 것 같다. 이는 외국 사람들에게 좋은 인식을 심어준다고 생각한다. 또한 어떠한 일을 맡겼을 때 재빨리 움직이고 감각적으로 사람을 대하는 점은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가장 힘든 점을 꼽는다면? 이탈리아에서는 외국인에 대한 체류허가증법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일은 계속 이곳에서 하고 싶지만, 체류허가증과 관련해서 돌아갈까 말까 고민한 적이 많았다.(현재는 체류허가증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
가장 힘들게 부딪치는 벽은? 언어문제를 꼽고싶다. 「베르사체」 조직 내에서 일을 하다 보니 그들의 의견을 따라야 할 때가 많고, 때로는 나의 의견을 피력해야 한다. 그들과 어울리고 그들과 한 조직 안에서 생활하기 위해서는 이탈리아인의 눈으로 생각하고 사고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로벌 브랜드에서 일하기를 희망하는 후배들에게? ‘난 이게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왔으면 좋겠다. 요즘 아무 생각없이 유학 와 한국인의 인식을 나쁜 쪽으로 흐리게 하는 친구들을 보면 안타깝고 부끄럽다. 이곳에 와서 한국인들끼리 어울리는 친구들이 가장 한심하다. 단단한 마음가짐과 부지런한 사고방식을 갖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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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sun Jang 「John Richmond」
Accessory Designer


장유선(81년생) 은 현재 독특한 디자이너 감성 브랜드 「존리치몬드(JOHN RICHMOND)」의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재직중.
「존리치몬드(John Richmond)」는? 영국 출신 디자이너 존 리치몬드의 브랜드로 영국의 스트리트 패션과 이탈리아의 엘레강스한 하이패션을 믹스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존 리치몬드는 음악에서 얻은 파괴 혼란 무질서 등을 거리의 세련미라는 주제로 표현해 독특하고 창조적인 디자이너의 캐릭터를 살린다. 컬렉션 라인인 「존 리치몬드」를 비롯해 「리치몬드 X」 「리치몬드 데님」 등 총 세 가지 라인으로 구성돼 있다. 기타와 음표를 활용한 프린트나 비즈 장식의 티셔츠, 액세서리는 ‘리치몬드 데님’의 대표적인 베스트 아이템으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

현재 위치에 오르기까지? 20살 나이에 유학을 선택, IED밀라노 디자인학교 베이직 과정 이수-마랑고니 액세서리 마스터 코스를 수료하고 졸업반 학생들을 위한 신인 디자이너 발굴 공모전 입상의 행운을 통해서 입사하게 됐다. 입사 1년간 피나는 노력을 한 끝에 2년 만에 한 라인을 총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어려운점이 있다면? 우리나라와 다른 사고방식과 언어문제가 가장 어려운 점이었다. 예의를 중시해서 참고 인내하는 것이 장점으로 여겨지지만 이곳에서는 옳고 그름을 확실하게 질책해 주고 의견을 뚜렷하게 이야기할 때 더욱 인정받는다. 무조건 Yes라고 하기보다 No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능력을 인정받은 적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가장 큰 성과가 있었던 컬렉션은 2008년 여름 컬렉션 패션쇼 디자인이었다. 긴 체인의 해골 귀걸이 아이템에서 칭찬을 받은 것을 계기로 한 주간 30차례 디자인을 제출했는데 그때 제출한 디자인의 80%가 퍼스트라인 제품으로 출시, 메인 아이템으로 채택됐다. 그 해 많은 광고와 「존 리치몬드」의 메인 액세서리 위치를 돈독하게 할 수 있어서 여러 사람으로부터 인정받은 컬렉션이었다.
후배들에게 한마디? 높이 나는 새가 멀리 본다면 낮게 나는 새는 자세히 볼 수 있다고 한다. 누구든 꿈은 날개를 만들어 줄 수 있고 노력과 긍정적인 마음의 준비만 있다면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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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ngbae Suk 「Fornarina」
Senior footwear designer


석용배는 현재 「포르나리나(Fornarina)」의 제화와 스포츠라인 책임 디자이너로 재직중.
현재 위치에 오르기까지? 한성대 산업디자인과-이탈리아 토리노에 소재한 이에디(IED-Istituto Europeo di Design)에서 인더스트리얼 디자인 마스터 과정을 수료하고 자동차 디자이너 어시스턴트로 일하던 중 이탈리아 본사 「휠라(Fila)」 신발 디자이너로 발탁돼 패션분야와 인연을 맺었다. 그 후에 「카파(Kappa)」 액티브 스포츠라인 시니어 디자이너로 본격적인 활동을 하다가 이탈리아 영캐주얼을 상징하는 「포르나리나」에 스카우트됐다.

외국인과의 경쟁에서 힘든 점은? 세계 패션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외국인 특히 동양인 시니어 디자이너로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활동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자부심을 느낀다. 그러나 그에 따른 심적 부담과 고민도 따르게 마련. 초기에는 현지 적응도 하나의 과제였지만 특히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조언을 구하거나 상의할 사람없이 무엇이든 혼자서 헤쳐 나가야 함을 깨닫고 받아들이기까지가 가장 어려웠다.

외국 사회에서 인정을 받으려면? 그들에게 필요한 능력을 보여 줘야한다. 그들이 받아들이는 실력이라면 동양인이란 핸디캡은 존재하지 않는다. 언제나 최종적인 평가는 디자인한 제품이 시장에서 얼마나 관심을 받고 팔리느냐에 달렸다.
자신의 능력과 장점? 회사에서 디자이너로서의 독창성과 제품이 출시될 때까지 전 과정을 총괄하고 추진하는 나의 능력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 결과 새로운 컬렉션 프로젝트와 아이디어가 필요한 경우엔 어김없이 내게 맡겨진다.
가장 최근 성과는? 회사에서 현재 진행하는 중요한 프로젝트 중 하나인 캐릭터 TOKIDOKI의 첫 스니커즈 컬렉션 디자인을 내가 총괄하는 것.
후배들에게 한마디? 항상 꿈꾸고 상상하던 프로젝트를 철저한 프로세스를 거쳐 제품화하고 세계 마켓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으면 자신감과 용기를 갖게 된다. 아직도 내 안에는 시도하지 않은 새로운 디자인에 대한 열망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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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lly Park 「One Clothing」
Head Designer

켈리 박(박회경 68년생)은 논노 대현 미샤 등을 거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 「원 클로딩(ONE CLOTHING)」의 헤드디자이너로 재직중.
「원 클로딩」은? 메이시스와 노스트롬 백화점을 메인 상권으로 유통을 진행한다. 이 두 곳에서는 브랜드 네임을 「원 클로딩」으로 사용한다. 또한 프라이빗 레이블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맨해튼에 있는 쇼룸에서 쇼를 한 후 셀링을 진행한다. 모든 샘플은 주니어 사이즈로 제작해 바이어들에게 소개한다. 10~20대 초반 영주니어가 메인 타깃층이다.
역할은? 소재를 오더하는 것부터 시작해 샘플링을 하고 VMD, 머천다이징까지 이 브랜드에서 헤드디자이너는 마치 슈퍼맨과도 같다. 미국시장은 한국과 달리 상권마다 시차와 환경, 스타일 차이의 갭이 크다. 변덕스럽고 다양한 바이어들의 입맛을 맞추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힘들었던 점은? 일상 회화가 힘들다는 것은 핑계이고 엄살이다. 국내에서도 패션시장에서만 쓰는 슬랭 같은 용어가 따로 있듯이 미국에도 있다. 메이시스와 노스트롬에서의 런칭 후 「원 클로딩」은 하루아침에 바이어들이 손에 꼽는 톱 브랜드 안에 들기 시작했다. 바잉하는 지역이 다르기 때문에 바잉 스타일도 천차만별이다. 이런 다양한 바이어들을 타이트하게 상대하는 것이 힘들었다. 또한 미국에서 커리어 우먼으로 살기 위해선 컬처를 반드시 이해해야 하고 내 몸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 부분을 극복하기 위해 1주일에 4~5번은 서로 다른 지역에 시장조사를 다녔다.
한국인으로서 장점은? LA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한국인 중 패션을 전공하지 않고 비즈니스 경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패션계에서 성공한 사람이 많다. 그것은 부지런함과 성공을 향한 도전에 대한 성과다.
글로벌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첫째도 언어, 둘째도 언어다. 영어는 가장 중요한 Must have 아이템이다. 미국에서 일하고 싶으면 영어를, 일본에서 일을 하고 싶으면 당연히 일어를 자신의 세컨드 랭기지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은 기본이자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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