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5 시대는 옛말(?) 양극화 속 패션·유통 ‘미들존’ 붕괴
패션·유통 시장에 미들 마켓이 붕괴되고 있다.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화되면서 상위권과 하위권의 격차가 점점 크게 벌어지며 시장 전반에 불황이 짙어지는 추세다. 경기침체와 고물가 시대에서 백화점도 잘되는 곳만 더 잘되는 구조로 흘러가고 있다. 백화점 의존도가 높은 국내 패션 브랜드들은 불확실성에 불안할 수 밖에 없다.
올 상반기(1~6월) 전국 백화점 70개 점포의 매출이 공개된 가운데 전년 동기대비 성장한 곳은 단 26개점에 불과했다. 나머지 45개 점포는 마이너스 실적으로 반기 매출을 마감했다. 게다가 롯데·신세계·현대 등 빅3 백화점과 갤러리아·AK플라자의 격차는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며 실질적으로 빅5 유통의 시대는 옛말이 됐다.
지난 상반기 매출 기준으로 갤러리아백화점(5개점)과 AK플라자(4개점)는 전 점포가 역성장하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매출에서 갤러리아백화점은 상반기에 -5.3%, AK플라자는 –4.4%를 기록했다. 반면 신세계백화점은 전년 동기대비 5.4% 성장해 가장 견고한 실적을 올렸으며, 그 뒤로 롯데백화점은 1.4%, 현대백화점은 1.0% 성장으로 상반기를 방어했다.
70개 전국 백화점의 총매출은 19조7949억원으로 전년 동기대비 2.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12개의 점포가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만큼 우량 점포에 쏠림 현상이 강하다. 상반기 매출로 1조를 돌파한 곳은 4개점으로 이들은 ‘초우량’ 점포로 거듭나고 있다.
신세계 강남점 등 4개 점포 1조 돌파 ‘쏠림’
가장 높은 매출을 기록한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은 전년 동기대비 12.9% 성장한 1조6396억원을 올렸다. 2위는 롯데백화점 잠실점으로 전년 동기대비 8.8% 증가한 1조1572억원으로 집계됐다. 3위는 롯데백화점 본점으로 2.6% 성장한 1조96억원, 4위는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으로 6% 증가한 1조77억원으로 나타났다.
신세계 강남점은 지난해 3조 시대를 연 백화점답게 지난 2월 디저트 전문관 ‘스위트 파크’를 열어 히트를 쳤으며, 명품은 명품대로 유지하면서 신진 디자이너의 K-패션을 담아내는 ‘뉴 스페이지’를 꾸려가며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정준호 대표가 강력하게 밀어붙인 고급화 전략이 통하며 본점과 잠실점의 성장이 두드러진다. 여성복, 남성복, 잡화, F&B 등 전 층에 걸쳐 대대적인 리뉴얼을 진행해 MZ세대를 공략했으며 외국인 매출까지 잡으면서 약진할 수 있었다.
더현대서울, 전년대비 가장 높은 15% 성장
현대백화점은 1조 매장 명단에 오른 점포는 없었지만, 더현대서울이 전 점포를 통틀어 가장 높은 성장률이자 유일하게 두 자릿수인 15.2% 성장률을 보였다. 상반기 6016억원을 올린 더현대서울은 현대백화점 내 매출 순위로는 현대 판교점(8525억), 현대 무역점(6230억), 현대 본점(6018억)에 이은 4위지만 잠재된 성장률에서 앞서며 트렌드를 리딩하고 있다.
백화점 업계의 고민은 초대형 점포가 탄생하는 만큼 비효율 점포가 늘어나 이를 해결할 솔루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에루샤’를 비롯한 명품 브랜드들이 대거 입점해 있는 우량 점포와 그렇지 못한 점포 간 격차가 심해지고 있는 데다 명품 매출도 코로나19 시기와 비교하면 10~15% 떨어진 상황이라 이를 대체할 MD가 절실하다.
이 때문에 소비자들을 단기간에 끌어올 수 있는 팝업스토어 기획을 늘리고, F&B를 강화하는 추세이기는 하지만 비효율 점포일수록 새로운 MD 전략을 대입하기 어렵고, 입점하려는 브랜드들도 저조해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백화점과 쇼핑몰의 강점을 결합한 타임빌라스 수원점 내부
지방 점포 살리기 미션, 윈윈 전략 절실
따라서 지방 점포 경쟁력 강화가 백화점 업계에 주어진 과제다. 최근 영업을 종료한 현대백화점 부산점은 오는 9월 6일 ‘커넥트 현대’로 새롭게 선보일 예정이다. 커넥트 현대는 최신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와 함께 부산의 특색을 살린 로컬 콘텐츠와 체험형 테넌트, 정상·이월을 동시에 판매하는 복합매장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현대백화점은 내년 오픈 예정인 충북 청주의 신규 점포를 포함해 커넥트 현대 모델의 추가 확장까지 검토하고 있다.
현대백화점은 또 디큐브시티점이 내년 6월까지 운영하기로 했다. 디큐브시티점은 현대백화점 16개점 점포 가운데 14위에 자리한 곳으로 매출이 그리 좋지 못하다. 서울 서남부상권을 공략한다는 차원에서 여러 차례 리뉴얼을 진행해 변화를 줬지만, 1·2호선 환승역인 신도림역과 연결된 위치와 유동인구가 하루 13만명에 달하는 데 비하면 경쟁력이 낮았던 곳이다. 디큐브시티 백화점 자리는 오피스로 변경될 전망이다.
롯데 수원점은 지난 5월 말 백화점과 롯데몰을 통합해 ‘타임빌라스’로 재단장하면서 활기를 되찾고 있다. 백화점과 쇼핑몰의 강점을 결합한 ‘컨버전스 쇼핑몰’로서 차별화했다. 롯데는 ‘중소형점 태스크포스(TF)’팀을 운영하면서 지방 중소점포의 경쟁력을 끌어 올리기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비효율 매장이 가장 많은 롯데 입장에서 업계 1위의 위상을 되찾기 위해서는 비효율 점포를 효율 매장으로 터닝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소형점 점포 활성화에는 대구점, 상인점, 울산점, 포항점 등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매출 최하위권이었던 마산점은 영업을 종료한 상태다.
의류 판매 저조 영향도, 국내 여성복 침체
여기에 백화점 매출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의류 판매가 저조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보통 백화점의 2~3개 층을 장악하고 있는 여성복 매장은 올 상반기 가장 힘든 시기를 보냈다. 특히 국내 영캐주얼 브랜드들은 작년에 비해 성장한 브랜드가 없다시피 했다. 한때 ‘백화점의 꽃’이라 불렸던 여성복 매출이 온라인, 직구, SPA 등으로 분산되면서 매출이 바닥을 쳤다.
지난 4~6월 백화점 5곳(롯데·신세계·현대·갤러리아·AK)의 여성 영캐주얼 매출을 살펴보면 성장한 브랜드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건한 매출을 올리던 ‘스튜디오톰보이’ ‘주크’ ‘시스템’ ‘보브’ 등 영 캐주얼 4인방 모두 5~10%의 역성장세를 보였다. 한 자릿수 마이너스는 양호한 성적으로, 대부분이 10~20%대의 마이너스를 기록하며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여성복 브랜드들은 백화점 내 좋은 위치를 수입 브랜드에 내주는 등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온라인 유통과 쇼핑몰로 확장할 콘텐츠를 새로 기획하는 기업들이 많다. 대현, 시선인터내셔날, 제이씨패밀리, 동광인터내셔날 등 여성 영캐주얼 전통 강호인 이들 기업은 올 상반기와 하반기에 걸쳐 신규 브랜드를 잇따라 내놓으며 백화점보다는 쇼핑몰과 온라인 플랫폼을 겨냥하고 있다.
상반기 매출 선방한 데상트 롯데 본점 매장
잘나가던 아웃도어·스포츠도 격차 심해
패션 시장에서 성장세과 매출볼륨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아웃도어와 스포츠 브랜드도 상위권과 하위권의 격차가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아웃도어는 ‘노스페이스’가 올 상반기 전년 동기대비 13.7% 성장해 4621억을 올리며 질주하고 있다. 2위인 ‘디스커버리’가 상반기에 2165억원을 올려 차이가 2배나 벌어졌다. 또 아웃도어 톱 5 매출 밖의 브랜드들은 마이너스 폭이 커지는 현상을 보였다.
상반기 스포츠 브랜드 중에서는 ‘데상트’가 나홀로 성장이라 할 만큼 돋보였다. 연매출 1조대를 넘어선 나이키, 아디다스, 뉴발란스를 제외하면 데상트만 괄목할 만한 성장을 나타냈다. 전년 동기대비 9.4% 늘어난 1212억원을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패션시장이 고가 아니면 저가로 양분화되면서 미들 마켓이 붕괴되고 있다”라며 “대부분의 국내 패션기업들이 미들 마켓 내에서 경쟁하고 있고, 백화점 오프라인 매장에 집중돼 있었는데 중상위권 백화점 점포들이 무너진 상황에서 국내 브랜드들의 어려움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이를 돌파하기 위해 온라인 등 다른 유통채널을 개발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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