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정화 l 마혼코리아 대표 '슬기로운 초보 골프 생활 위한 조언'

패션비즈 취재팀 (fashionbiz_report@fashionbiz.co.kr)|24.05.13 ∙ 조회수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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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보슬보슬 내리는 날이었다. 지인 12명이 함께 골프를 치러 갔다. 제법 가깝게 지내는 이들과 조금 서먹하게 지내는 이들이 섞여 있었다. 그런데 신기한 경험을 했다. 같은 학교에서 함께 프로그램에 참석하며 1년 가까이 알고 지내면서도 친해질 기회가 좀처럼 없었던 이와 우연히 같은 조가 돼 함께 비를 맞으며 골프를 치는 사이, 그와 나 사이에 존재했던 얇은 막이 스르르 사라지고 있었다. 


산림이 파괴되고 생태계를 무너뜨리는 현장 한가운데 있구나 싶을 때는 마음이 불편해지기도 하고 적지 않은 비용, 기본 1시간 이상 운전해야 하는 편치 않은 접근성, 비 오고 바람 불고 눈 오면 망하고, 편향 운동이라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픈 이 골프는 안 좋은 점을 나열하자면 많지만 참으로 매력적이고 묘한 스포츠다. 막대기로 공을 쳐서 구멍에 넣는, 얼핏 보기에 단순하고 간단해 보이는 운동 안에 일생을 접해도 정복이 어려운, 삼라만상 우주가 담겨 있다.


골프 신이 강림한 날에는 별 생각 없이 툭 치기만 해도 공이 알아서 착착 움직이기도 하고, 타이거 우즈나 맥 길로이 같은 세계적인 선수도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하는 요상하기 그지없는 스포츠다. 도심에서 내내 지내다가 탁 트인 잔디 구장에 서면 속이 시원해지기도 하고, 풀 냄새와 나무 냄새에 흠뻑 취할 수도 있다. 더욱이 매력적인 것은 4명이 잔디를 밟으며 네다섯 시간 함께 골프를 치다 보면 술에 취한 것도 아닌데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나와 타인의, 예상치 못한 바닥이나 본심 구경도 가능하다.


나는 아직 자타 공인 ‘골린이’다. 여전히 공이 옆으로도 가고 뒤로도 간다. 스크린 골프 회사에서 10년 넘게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20년 지기 친구에게 짧지 않은 세월, 온갖 창의적인 회유를 받았음에도 바쁘다는 이유를 대며 도망 다니다 이제야 겨우 골프를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고 보니 이게 이게 정말 재미있는 거다. 내 상식을 벗어나고 고정관념을 깨는 스윙 원리 자체도 흥미롭고 공이 채의 정확한 위치에 맞았을 때의 쾌감도 아주 크고…. 소위 ‘잔디 밥을 먹어가며’ 골프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게 되니 신세계를 만난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가장 좋은 점은 술도 못 하고 커피도 힘들고 차도 버거운 내게 4시간 넘도록 다른 사람들과 즐겁게 어울릴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거다. 서먹서먹 데면데면 어색하던 사이도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반나절 이상 함께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게 참으로 좋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골프에 입문하기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는다’였다. 주먹보다 작은 공을 그냥 손으로 던져도 조절이 어려운데 공과 나 사이에 긴 도구가 하나 더 껴 있으니 더욱 까다로웠다. 주변 지인들이 골프를 같이 가자고 제안을 해도 ‘너무 초보라 연습 조금 더 하고 갈게요’를 조금 과장해서 500번은 한 것 같다. 가장 아쉽고 후회되는 부분이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초보는 누군가가 골프장에 같이 가자고 할 때 얼른 따라나서야 공을 칠 수 있더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는 멤버가 같은 조에 끼면 흐름이 끊어지고 앞뒤 밀리고 이래저래 불편하고 번거롭다. 초보에게 같이 가자고 제안해 주는 사람은 이 번거로움을 감수하는 ‘귀인’이다. 이걸 예전에 알았더라면 골프장 같이 가자고 제안하는 귀인이 나타났을 때 체면이나 불편한 마음은 집 냉장고 안에 잘 넣어두고, 얼른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슬기로운 초보 골프 생활을 영위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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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 Mahon Korea 대표

· 현) Golden Egg Enterprise 대표

· 동원그룹, LG전자,한솔섬유 근무

· 스페인 IE Business School M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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