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패잡_패션과 소통]이정화 l 마혼코리아 대표
‘여기, 일어서는 땅’ 임옥상 화백의 개인전

패션비즈 취재팀 (fashionbiz_report@fashionbiz.co.kr)|23.02.08 ∙ 조회수 3,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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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미술사학자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처음 등장한 표현이다. 책이 300만부 이상이 팔리면서 이 표현 또한 널리 익숙하게 쓰이게 됐다. 제대로 보고 느끼기 위해서는 깊고 다양한 지식을 쌓아야 한다는 의미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몰라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있다. 누가 만든 건지, 누가 언제 그린 건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전혀 몰라도 그냥 좋은 것도 있다. 모르고 봐도 작가의 의도가 느껴지는. 혹은 만든 이의 뜻과 전혀 상관없는 해석으로 감동을 주는 작품도 있다. 얼마 전 이런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을 다녀왔다.

작년 10월부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한국 현대미술의 주요 작가로 손꼽히는 임옥상 화백의 대규모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임화백은 1981년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40여 년 간 한국 미술판에서 이른바 ‘민중미술’의 대표 작가로 활동을 해온 원로 작가다. 회화 작가이자 조각가이며 설치예술 작가이면서 공공미술가인 임화백은 오래전부터 전시장과 미술관 밖으로 나와 거리와 광장에서 왕성한 활동을 펼친, 대중과의 소통에 진심인 작가다.

이번 전시회에는 임화백의 대형 회화와 대형 설치 신작 3점 등 40여 점의 작품과 130여 점의 아카이브가 공개돼 있다. 아파트 4층 정도 되는 높이 12미터의 벽화, 미술관 내부 마당에 전시돼 있는 땅에서 뚫고 올라오는 듯한 흙색 철로 만든 조각상 등 다양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중 나를 가장 사로잡은 작품은 ‘성균관 명륜당 은행나무를 그리다’이다. 멀리서 보면 유화인데 가까이서 보면 흙으로 만든 부조가 보인다. 물에 젖은 흙을 캔버스 위에 바른 후 마르기 전에 큰 붓으로 흙을 밀어내며 그린 그림이라 한다.

나무 기둥 부분이 흙으로 입체적으로 표현돼 있는데 그림 어느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면 나무 기둥이 이리저리 움직일 것 같이 생동감이 있었다. 은행잎 하나하나가 어찌나 섬세하게 묘사돼 있는지, 아주 가까이서 한참을 봤다. 웅장하고 멋스러운 한 점의 그림에 전통적인 아름다움, 현대적인 우아함, 남성적인 힘, 여성적인 섬세함, 쓸쓸함, 풍요로움 등이 모두 담겨 있다.

또 하나 아주 인상적이었던 건 100권이 넘는 작가 노트다. 크기도 형태도 다양한 노트가 두 면이 펼쳐진 채 여러 단으로 쭉 전시돼 있는데 한 권씩 자세히 살펴보면 기가 막힌다. 작가의 넘치는 에너지와 집중력, 상상력, 필력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노트들이다.

토해내 듯 휘갈긴 글씨와 그림, 아주 공을 들여 섬세하게 그린 그림, 전시회 기획과 구상, 수묵화 풍의 그림, 휘몰아치는 감정이 담긴 추상화, 동화 삽화 같은 그림 등 종류도 다양하다.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고 있다 보니 그 자체로 하나의 전시회인 듯 느껴지고 그림 100점이 아니라 100권의 노트라는 사실에 아주 놀라기도 했다. 작가의 이런 창의적인 글과 구상, 그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건지 머릿속이 궁금해질 만큼 대단했다.

‘국립’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는 미술관은 그냥 단순히 그림을 전시해 두는 곳이 아니다. 국립 미술관에 걸리는 작품은 그 나라 미술계의 본보기가 되고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 되며 또한 역사의 한 자락으로 남는다.

이 때문에 생존 작가가 국립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연다는 건 적어도 그 작가의 작품이 동시대 미술계의 전문가 집단으로부터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다는 것으로 여겨도 무방할 듯하다. 또한 우리 일반인들이 큰 고민 없이 관람을 결정해도 좋을 전시회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내 개인적 소회는 그렇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거장 원로 작가의 개인전, 올해 3월 12일까지다. 놓치기 아까운 귀한 전시회다.


■ profile
- 현 Mahon Korea 대표
- 현 Golden Egg Enterprise 대표
- 동원그룹, LG전자, 한솔섬유 근무
- 스페인 IE Business School MBA





이 기사는 패션비즈 2023년 2월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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