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문화복장 출신들 Who’s Who

    bkp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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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6.12.27조회수 16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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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내 취업률 1백%를 자랑하고 현재 일본 패션업계의 70%가 문화복장학원 출신이라는 소문이 번지면서 불경기를 면치 못하는 국내 패션 인재들이 이곳을 주목하고 있다. 김삼숙과 임선옥 등 복장학원 출신 국내 디자이너들의 활동 영역도 커지고 있다.

    겐조다카다와 요지야마모토 등 세계적인 일본 출신 디자이너를 배출하며 패션 재능을 길러내는 노하우를 쌓은 일본문화복장학원(이하 복장학원). 지난 1919년 여자를 위한 작은 의상학교로 설립, 4년 뒤 공인 패션 직업 학교가 된 복장학원은 일본에 서양 복식을 대중화시키는데 공헌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일본 내 취업률 1백%를 자랑하고 현재 일본 패션업계의 70%가 이곳 출신이라는 소문이 번지면서 불경기를 면치 못하는 국내 패션 업계에서도 이곳을 주목하고 있다. 김삼숙 임선옥 등 복장학원 출신 국내 디자이너들의 활동 영역도 커지고 있으며 장기철 백화점세이 부장과 허성은 무인양품 MD 등도 이곳 출신이다.



    강희범 원장, 후진 양성 위한 활동을

    지금까지 이곳을 졸업한 한국인 유학생만 2천명이나 되고 현재 패션업에 종사하는 인재만 5백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또한 매년 3월마다 복장학원에 재학중인 한국인 유학생들의 패션쇼가 개최된다. 이 행사는 한국 문화복장학원 총동문회가 후원하며 조직 단위로 움직이고 있다. 이같은 규모와 조직적 활동은 해외 교육기관 중 유일하다. 현재 총동문 회장은 강희범 이노패션연구원장이 맡고 있으며 이정기 노블리제 기획이사가 부회장을 맡고 있다.

    현재 이노패션연구원 원장과 문화복장학원 총동문 회장을 겸임하고 있는 강희범 회장. 그는 이호정 계명대학장, 서진석 「솔로」 사장과 한국인 최초로 게이오백화점 바이어가 된 오영석 사장에 이어 4대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 88년 복장학원에 입학해 패션비즈니스과와 유통전공과를 전공한 그는 모자 「이노」를 수출했으며 「비바체」 이사를 거쳐 이노패션연구원 개원 후 일본문화복장학원과 총동문회 주도하에 패션시장 연수를 진행하고 있다.

    패션 선진국의 패션시장 조사를 학생들 대상으로 실시해오다 최근에는 국내 패션기업들도 참여하는 행사로 키웠다. 지난해 초에는 롯데백화점 바이어들과 학생들에게 일본의 매장과 패션거리를 보여줌으로써 실질적인 도움을 줬다. 시부야 하라주쿠 신주쿠 등 일본의 패션메카들을 방문한 이 견학프로그램도 이미 20회를 넘길 만큼 인기를 얻고 있다.

    강 회장이 패션 선진국 중 특히 일본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자신이 직접 일본을 경험한 이유도 있지만 아직 한국은 일본의 영향권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한국은 현재 가시적인 안목으로 볼륨을 중요시한 상업적 패션을 지향하고 있다. 이에 반해 일본은 기초단계부터 실무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줌으로써 제대로 된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게 한다. 물론 일본도 패션이라는 산업 특성상 상업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지만 산업의 중심에서 ‘옷’이라는 완성품을 결코 빼놓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패션 만능엔터테이너, 이정기 이사

    동문회 부회장이기도 한 이정기 이사는 현재 명동에 위치한 명품 아울렛 쇼핑몰 하이해리엇의 기획 총괄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지난 88년 인하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남대문에서 의류를 제조 생산 판매해 왔으나 전문 지식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생각에 유럽으로 건너가 선진 패션을 경험했다. 당시 유럽은 우리나라 실정과 다르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패션이 발전돼 있음을 실감한 그는 곧바로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복장학원 패션비즈니스과를 93년 졸업하고 귀국한 그는 「티바이앤」 사업본부장과 시대패션학원 머천다이징 전임 강사를 거쳤다. 또한 유통에도 관심이 남달라 밀리오레 디자인밸리 기획총괄을 맡았고 하이해리엇을 오픈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생산 판매 개발 유통 등 여러 분야를 거치면서 커리어를 쌓아온 그는 “아직도 배우는 중”이라며 ‘~ing’를 외친다.

    그가 지금에 와서 느끼는 점은 패션을 발전시키는 요소는 어느 한 분야가 아니라는 것이다. “패션은 인프라가 굉장히 중요한 산업이다. 국내는 비즈니스를 강조하다 보니 산업의 바탕이 되는 인프라 구축에 소홀하게 되고 인재 양성에 게으른 감이 있다. 또한 시장 동향과 경기를 강조하는데 패션은 이같은 요소가 중요한 것이 아닌 고부가가치 산업이기 때문에 언제든 발전 여지는 충분하다. 다만 소비자에게 필요한 상품이 올바르게 전달되는가가 최대의 관건이다”고 피력한다.



    고시노 디자이너에서 김삼숙 CEO로

    일본에서 디자인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선망의 기업인 히로코 고시노 인터내셔널의 칩디자이너 출신 김삼숙 사장. 그는 지난 86년 복장학원의 디자인과를 졸업한 그해 일본모피협회가 주최한 JFA콘테스트에 참가해 총 4천4백명 공모자 중 최종 8명의 수상자 명단에 올라 4개 부문상을 휩쓸며 디자이너로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 10대 디자이너 히로코 고시노의 눈에 띄며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 7년간 이 회사 디자이너로 자리매김했다. 3년 뒤인 89년에는 칩디자이너로 활동하고 94년 CFD 도쿄디자이너 22인에 당당히 들며 도쿄컬렉션에 참가하는 등 일본에서 전성기를 맞았다. 화려했던 일본에서의 디자이너 생활을 뒤로 하고 모국으로 돌아온 그는 2001/2002 F/W SFAA 컬렉션에 참가하면서 한국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다양한 컬렉션에 참가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김 사장은 “한국에서는 디자이너가 옷을 만드는 재주는 있어도 비즈니스적인 마인드가 없으면 성공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일본에서는 대기업이 스폰서가 돼 디자이너는 좋은 옷을 만들기만 하면 된다. 이런 유기적인 장치가 있음으로 해서 패션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되는데 한국은 아직까지 그런 부분이 부족하다. 서구 트렌드에 치우치기보다 한국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디자이너를 배출하고 육성시킬 수 있는 인프라를 조성해야 한국 패션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현재 대전 백화점세이에서 영업을 담당하고 있는 장기철 부장. 그는 우리나라 유통이 활성화되지 않은 80년대부터 이 분야에 관심을 갖고 1년간의 어학공부를 마치고 문화복장학원에 입학하게 됐다. 그곳에서 패션비즈니스과를 전공하고 유통에 대한 철학을 세운 그는 94년 한국 땅을 다시 밟게 됐다. 그해 장 부장은 애경백화점 바이어로 활동하며 한국유통시장에 대한 흐름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유통 베테랑, 장기철 백화점세이 부장

    일본에서 기본기를 바탕으로 유통 경력을 착실하게 쌓던 그는 지난 96년 지금의 롯데백화점 분당점의 전신인 블루힐백화점으로 회사를 옮겨 자신의 커리어를 보탰다. 그로부터 3년 후 당시 지방상권의 중심 역할을 수행했던 백화점세이에 입사해 지금까지 대전 유통의 베테랑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 13년간 유통 흐름을 몸소 겪은 장 부장은 국내 유통에 대한 생각을 드러낸다.

    “현재 바잉 측면에서 지방 유통이 수도권에 비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또한 빅3 백화점에 비해 지방 백화점이 밀리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앞으로의 패션 시장을 생각해 볼 때 지방점이 살아야 국내 유통의 균형적인 발전을 모색할 수 있다고 본다. 우후죽순처럼 번지는 로드숍도 이미 한계를 드러낸 상황에서 지방의 특색있는 상권을 체계적으로 육성시키고 지금의 유통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임선옥씨는 2003년 대종상의상상 수상

    지난 2003년 대종영화제에서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으로 의상상을 받아 화제가 됐던 디자이너 임선옥씨.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그는 한국에서 디스플레이 디자이너로 활약하던 중 일본에 대한 좋은 인상을 받아 지난 90년 복장학원에 입학해 패션공과를 전공했다. 96년 한국으로 돌아와 가로수길에 ‘EGO’라는 숍을 오픈하면서 디자이너로서 첫발을 내디뎠다.

    98년 당시 정구호 심상보 양복형 등 디자이너와 함께 SFAA에서 패션쇼로 데뷔하고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신진디자이너 패션쇼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한 해 평균 6번의 쇼를 가질 정도로 바쁜 일정을 소화해 낸 임 사장은 2002년 정선우 감독의 영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에서 의상 제작 제의가 들어오자 이를 재도약의 기회로 삼았다.

    6개월의 노력을 들인 영화의상으로 1년 뒤 대종영화제 시상식에서 의상상을 받았다. 그는 2003년 결혼을 계기로 현재 자신만의 색깔을 찾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디자이너에게 있어 패션은 여러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옷을 잘 만드는 것이 나의 존재가치를 입증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시적인 안목으로 볼륨만을 중시한 상업적 패션에서 세계적인 명품은 결코 나올 수 없다고 확신한다”는 소신이다.

    지난 93년 패션MD과를 졸업한 김기훈 「올젠」 MD과장은 남자 유학생 중 이곳에 최연소로 입학했다. 그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19세 때 일본행을 결심한 이유는 한국인 최초의 문화복장 졸업생인 고모의 영향이 컸다. 제일모직과 논노의 기획이사로 활동한 김정복씨가 그의 고모이자 오늘의 그를 있게 해준 정신적 지주이다.

    국내에 FIK나 에스모드 같은 MD과정 교육기관이 없었던 시절 김정복씨는 한국패션에 MD의 역할과 비중이 어느 때보다 커질 것을 예감하고 조카인 김 과장의 문화복장 입문을 적극 권유했다. 김 과장은 고모와 뜻을 같이 해 지금은 신성통상(대표 허무영)을 대표하는 MD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현재까지 「후즈후」 「닉스」 「데얼스」 「온앤온」 등 여러 조닝을 넘나들며 쌓아온 경험을 「올젠」에 쏟아붓고 있다.



    김기훈 과장, 신성통상 「올젠」 MD로 활약

    그는 “「올젠」이 트래디셔널존에서 입지를 다지며 조금씩 발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매월 20~30% 신장하는 「올젠」을 보면 MD를 직업으로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유학 시절 기본 과정에서 눈코 뜰새 없이 옷을 만들었는데 지금 보면 그 시절 패션에 대한 기본기를 다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무인양품」 5호점을 오픈하며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고 있는 허성은씨. 복장학원의 스타일리스트과를 전공한 패션 인재다. 인하대 시각디자인과를 전공하고 지난 95년 어학을 위해 일본 유학을 결심한 그는 97년 당시만 해도 단어조차 생소한 스타일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 복장학원에 입문한 그 해 한국에서는 IMF가 터져 학비 조달도 어려워 아르바이트로 생활하며 꿈을 버리지 않았다.



    허성은씨, 롯데에서 「무인양품」 바잉MD로

    너무나 길기만 했던 유학 생활을 마치고 99년 경방필백화점에 입사해 여성캐주얼 PB 「모노매니아」의 MD를 담당했다. 한국에 돌아온지 얼마되지 않아 시장 파악도 어려웠지만 늦은 나이에도 기회를 준 것에 감사하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에 매진해왔다. 2001년에는 무역회사에 입사해 일본 유학시절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수출업을 했고, 그로부터 2년 뒤 롯데상사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와 「무인양품」의 MD를 맡게 됐다.
    지난 2003년 영플라자 1호점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총 5개점을 확보한 「무인양품」은 현재 누계 매출 1백70억원을 기록하며 그의 노력을 뒷바침하고 있다. 허 MD는 “일본에서 한국을 저평가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잠재적인 능력을 견줘봐도 그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일본 브랜드를 택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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