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 뉴 CD 알레산드로 미켈레

    이영지 객원기자
    |
    17.01.01조회수 11813
    Copy Link
    화려한 부활 이끈 ‘패션 킹’



    알레산드로 미켈레
    「구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1972년생, 로마 출신
    · ‘아카데미아 델 코스튬델라 모드’ 졸업
    · 「펜디」 액세서리 디자이너
    · 2002년 「구치」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입사
    · 2011년 크리에이티브 디렉션에서 프리다 지아니니의 어시스턴트
    · 2015년 1월 「구치」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탈리안 브랜드로 1921년 설립돼 지금까지 존재하는 「구치」는 늘 매출에 업다운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구치」는 전년 대비 매출이 17% 증가(2016년 3사분기 기준)하면서 마치 한참 성장기인 틴에이저처럼 ‘거침없이 하이킥’ 중이다. 패션계에서 가장 핫한 브랜드를 카피하는 공공연한 유행 속에서 이제 모든 의류 브랜드 가운데 은근히 「구치」 냄새를 풍기는 아이템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요즘 어느 매장이든 들러 보면 어두운 블랙이나 그레이에 딱딱하고 차분한 의상들로 채워지던 디스플레이에 이제는 뉴 「구치」의 시그니처인 나비, 호랑이, 뱀 등 컬러풀한 애니멀 아플리케로 장식된 화려한 의상들이 대폭발(?) 중이다. 그 구심점에는 「구치」의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있다.

    빈티지 스타일의 스웨터, 청바지 차림에 히피 느낌의 긴 머리와 수염을 기른, 그다지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디자이너, 2015년 1월 첫선을 보인 남성복 데뷔 무대 후 「구치」를 당대 가장 핫한 브랜드로 부활시킨 알레산드로 미켈레, 그는 누구인가?

    호랑이 등 애니멀 아플리케 전 세계 패션 덮다
    그는 「구치」에서 핸드백, 주얼리 등 액세서리를 담당하던 디자이너로 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프리다 지아니니의 오른팔이었다. 당시 새롭게 부임한 「구치」의 CEO 마르코 비자리는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2015년 1월 갑작스럽게 회사를 떠난 프리다 지아니니를 대신해 남성복 컬렉션을 일주일 만에 성공적으로 선보이는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올해 44세로 「구치」에서만 14년을 일한 오리지널 ‘구치맨’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로마 출신으로 ‘아카데미아 델 코스튬 델라 모드’를 졸업했다. 이후 「펜디」에서 액세서리 디자이너로 일했고 2002년부터 「구치」에 몸담으면서 프리다 지아니니와 십여년간 함께 일했다. 임기 후반으로 갈수록 비평가들에게서 컬렉션이 지루하다는 혹평을 받은 프리다 지아니니는 결국 스캔들로 갑작스럽게 해고돼 한동안 패션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프리다 지아니니가 떠난 후 「구치」 디렉터 후보로 「지방시」의 리카르도 티시와 에디 슬리먼 등 유명 디자이너뿐 아니라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영감을 얻던 톰 포드까지 다시 거론되는 등 무명의 2인자이던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설 자리는 없었다. 당시 「구치」에 새롭게 영입된 CEO 마르코 비자리는 새로운 디렉터 선정을 위해 내부 사정을 가장 잘 아는 미켈레에게 조언을 구하게 된다.

    극적인 결정, 14년 묵묵히 일한 「구치」 산증인
    “나는 내부에 내가 원하는 방향을 제대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바로 진정한 ‘구치’라는 것을 깨달았다. 알레산드로 미켈레야말로 십여년 넘게 브랜드와 살면서 그 역사를 이해하는 산증인이었다. 누구도 그보다 더 ‘구치맨’일 수는 없다”고 회고한다.

    알레산드로 미켈레에게 극적으로 기회가 다가온다. 그는 단 일주일 만에 부르주아 럭셔리 스타일의 지아니니표 남성복 디자인(차분한 컬러의 스웨터와 정돈된 캐시미어 피코트 등)과는 전혀 다른, 멋부린 듯한 콘셉트의 독특하고도 새로운 남성복 컬렉션을 만들어 냈다.

    그는 자신의 스타일을 확실히 각인했다. 저 유명한 르네상스 시대 화가 라파엘의 조수이던 줄리오 로마노처럼 수년간 회사를 위해 묵묵히 일한-브랜드가 돌아가는 것을 조용히 배우고 자신의 크리에이티브 비전을 다른 이를 위해 서비스하면서 승화시킨-그는 지금 라파엘의 포지션으로 수직 상승해 있다.



    데뷔 컬렉션, 르네상스풍과 히피 패션 선보여
    네크라인을 푸시캣 보(리본으로 묶는) 처리한 핑크 색상의 블라우스, 호스빗(말 재갈) 버클 장식과 밍크로 안창이 처리된 로퍼 스타일의 뮬 등이 런웨이를 장식했다. 디자인 사무실이 위치한 로마의 고성 ‘팔라조 알베리니’에 살던 사람들이 좋아했을 법한 르네상스풍의 의상은 실키한 배스 가운(bath gown)과 플라워 프린트 팬츠, 레이스 톱 등 1970년대 히피 스타일과 어우러졌다.

    그는 남성복 컬렉션 무대에 남녀 모델을 동시에 올리며 그만의 모던 에지를 표현했다. 데뷔쇼 이틀 후인 2015년 1월 21일, 그는 공식적으로 「구치」 전 라인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된다. “처음에는 주변 사람들이 ‘이 사람 어쩌면 좋아요, 제발 프리다로 돌려 놔요’라고 말했다”고 비자리는 밝혔다.

    그로부터 한 달 후에 진행된 컬러풀하고 페미닌하면서도 쿼키(기이)한 룩의 패션쇼는 사람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패션 비평가들의 호평과 바이어들의 주문이 이어졌고 심지어 마크 제이콥스는 그의 첫 번째 컬렉션에서 슈트를 구매하면서 “지금까지 「구치」에서 물건을 사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마크제이콥스도 반한 컬러풀, 기이한 첫 컬렉션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선보인 첫 컬렉션은 그가 동경하는 톰 포드의 전성기 시절을 기념하는 듯한 뉘앙스도 많이 풍긴다. 테일러드된 팬츠와 여성스러운 셔츠의 매칭, ‘어 싱글 맨(톰 포드가 콜린 퍼스와 줄리안 무어를 주연으로 제작, 감독한 영화)’의 뮤직, 톰 포드가 사랑한 더블 GG 로고 벨트가 컬렉션 내내 노출되면서 그의 사인은 여실히 확인됐다.

    이렇게 개인적이면서도 노골적인(?) 터치는 알레산드로 미켈레에게 엄청난 행운을 가져다줬고 그의 전격적인 임명은 브랜드 「구치」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줬다. 글래머와 쿨 섹시, 마력에 도취된 듯한… 그것은 바로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브랜드에 주입하고자 하는 것이다.

    유명 디자이너를 고용할 계획이었음에도 미켈레를 임명한 것이 너무나 성공적인 베팅이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심지어 알레산드로 스스로도 처음 디렉터 임명 소식에 놀라며 “나는 후보 리스트에 들지도 못했다”고 하퍼스바자와의 인터뷰에서 밝히기도 했다. 비자리는 “어느 순간 모든 잡지에서 「구치」의 컬러, 스타일, 사이즈 등이 트렌드로 소개되기 시작하고 이제는 모든 컬렉션에서 그것들을 볼 수 있게 됐다. 알레산드로가 만든 변화들이다”라고 전했다.

    「구치」 아카이브에 자신의 유니크한 모던 에지
    어떤 점이 그가 디렉터 자리에 오르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을까? CEO 비자리가 인정했듯이 그는 무엇보다도 「구치」에서만 14년을 일한 진정한 ‘구치맨’이다. 처음 액세서리 부서를 시작으로 이후 크리에이티브 디렉션(2011년에 프리다 지아니니 바로 밑인 디자인 수석 자리에 임명)에서 일하면서 그는 브랜드 아카이브에 대해 깊은 노하우를 갖추게 됐고 스스로를 발전시키며 브랜드 코드를 마스터해 나갔다.

    그는 점점 커머셜해지는 브랜드들의 컬렉션에 지친 패션계에 자신만의 차별화된 비전으로 독특하고 맛깔스러운 스타일을 선보인다. 마치 전기 충격과도 같은 강한 자극을 업계에 주고 있다. 평소의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유니크한 마인드로 자신만의 크리에이티브 세계에 사는 이답게 진이나 스탠 스미스에 마치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듯한 빈티지 핑크 카디건을 즐겨 입는다.

    손가락마다 앤티크풍의 링을 한 독특한 스타일의 소유자기도 하다. 컬렉션에 영감을 주는 앤티크와 카펫, 오래된 텍스타일 소재 등이 쌓여 있는 그의 아파트는 마치 오래된 보물 창고와도 같다. 모든 로마인의 피에 미적인 감성과 역사가 흐른다면 알레산드로 미켈레에게서는 그것이 거의 발작급(?)이다.

    영화사에서 일한 어머니, 항공사 기술자 아버지
    필름 프로덕션 ‘씨네시타’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한 어머니와 ‘알리탈리아’ 항공사에서 기술자로 일한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항상 아티스트의 소울을 가진-쉬는 시간에 조각가로 일하며 역사에 관심이 많던-바바쿨(‘히피’의 프랑스 표현)한 아버지와 함께 종종 로마의 유서 깊은 성당이나 미술관을 방문했다.

    부모의 아트시(Artsy)한 영향력하에 어린 시절 텔레비전에서 1980년대 팝 스타들의 클립을 보고 어머니가 종종 무비 스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그는 패션의 영향력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됐다. 예술성이 풍부한 부모 밑에서 자라나 어린 시절부터 자연과 컬처에 매혹을 느낀 그가 동물 우화에 상징처럼 나오는 뱀, 벌, 공작, 꽃 등 자연을 모티프로 크리에이티브 작업을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탈리아의 저명한 영화감독 비스콩티와 펠리니의 팬이기도 한 그는 원래 영화 코스튬 디자이너가 되기를 원했지만 「펜디」의 칼 라거펠트를 보면서 패션도 미적인 표현을 가능케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필름, 문학, 철학 등에 두루 관심이 많던 그는 첫 스텝으로 로마의 ‘아카데미아 델 코스튬 델라 모드’에서 코스튬 디자인과 의상을 전공하면서 패션에 입문했다. 그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자신이 “지금도 코스튬 디자이너의 마인드로 일한다”고 밝히며 “아웃핏(의상)에 영혼을 불어넣고 캐릭터 아이디어를 시도한다”고 말했다.

    “지금도 코스튬 디자이너 마인드로 일한다”
    졸업 후 볼로냐에 위치한 니트 업체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자신이 액세서리에 더 열정적임을 깨닫고 다시 로마로 돌아온다. 「펜디」의 액세서리 디비전에서 당시 핸드백 디자이너로 일하던 프리다 지아니니 밑에서 일하게된 것. 「펜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칼 라거펠트와 오너인 실비아 벤추리니 펜디와 다이렉트로 함께 일하며 경험을 쌓는 행운도 누렸다.

    한편 이탈리안 패션계에 또 하나의 라이징 스타로 떠오른 마르코 드 빈센조는 알레산드로가 「펜디」에서 함께 일한 사람이라며 “그가 일할 때 얼마나 몰입하는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특히 자신의 직관과 기억들을 활용해 실질적으로 형상화하고 사물화하는 능력, 무엇보다도 디자인을 할 때 마치 놀이를 하는 듯한 그 방법의 가벼움(?)은 내가 가장 흠모하는 부분이다”고 말했다.

    톰 포드의 러브콜로 2002년 「구치」에 영입된 프리다 지아니니의 제안으로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구치맨’ 라이프를 시작했다. 그가 지금까지 진행한 각각의 컬렉션을 살펴보면 전체적으로 「구치」에서 일하며 배운 것들의 재배합과 자신이 선호하는 영감인 과거와 역사로부터의 오리지널 아이디어를 참고하고 빌려온(?) 것들로 이루어졌다.

    패션과 로맨티시즘 재결합, 과거에서 온 영감
    예를 들면 개성 있는 비주얼의 모델들을 패션쇼에 기용하는 부분은 독특한 스타일의 전설적인 디자이너 스키아파렐리의 ‘졸리 레이드(Jolies laides, 뷰티풀 어글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장식적인 화려함과 자수, 주얼리 등은 르네상스 시대에서, 퇴폐적이면서 앤드로지너스한 댄디즘은 1970년대에서 찾을 수 있다. 성적인 부분의 모호성도 그에게 반복되는 주제다. 프리다 지아니니 시절 「구치」의 타깃이 누구인지 알기 쉬웠다면 미켈레는 마치 혼동을 주는 데 재미를 느끼는 듯하다.

    이것이 바로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타파하고 새롭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패션과 로맨티시즘의 재결합, 더 원대하고 화려한, 플로럴 프린트들과 작렬하는 컬러들, 리치한 컬처와 그로테스크함까지…. 이 솔직하고도 이상주의적인 「구치」의 아티스틱 디렉터는 그간 액세서리 부서에서 일하며 갈고 닦은 디테일에 집중하는 센스로 보디에 맞춘 듯한 제품(액세서리) 컬렉션을 선보인다.

    특히 안창을 모피 처리한 로퍼와 그가 새롭게 선보인 핸드백 ‘디오니소스’는 「구치」의 헤리티지를 성공적으로 재해석한 제품으로 엄청난 성공을 가져왔다. “알레산드로는 「구치」를 미적으로 더 크리에이티브하게 푸시했고 우리는 그가 시작할 때부터 이러한 방향을 서포트했다”고 ‘네타포르테’의 부사장 사라 러슨은 말했다.



    모피 안창 로퍼와 핸드백 ‘디오니소스’ 대히트
    고객들은 첫 쇼부터 긍정적으로 반응했고 「구치」는 가장 잘 팔리는 브랜드로 재기에 성공했다. 또한 「셀린느」 이후 미니멀리즘이 한동안 대세이던 패션계에서 그는 더 대담하고 주관적이며 화려한 패션에 대한 기대와 바람을 자극했다. “알레산드로 미켈레의 비전은 매우 강력하고 우리는 그가 「구치」를 확실히 변화시키기를 원한다고 느꼈다”고 「꼼데가르송」과 ‘도버스트리트마켓’의 오너 아드리안 조프는 전했다.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구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지 1년도 채 안 된 지난 2015년 11월 ‘브리티시 패션 어워드’의 베스트 인터내셔널 디자이너를 수상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해 6월에는 런던에 위치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최초로 패션쇼를 진행한 디자이너라는 영광을 얻었다.

    알레산드로 미켈레와 영국, 아니 런던은 인연이 깊다. 그가 「구치」에서 처음 자리 잡은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산 곳도 런던이다. 그는 모든 타입의 브리튼(Britons) 스타일에 감동했다고 말한다. 11세기부터 왕관 수여식을 거행해 온 영국 고딕 아트의 정수라 할 수 있는 이 사원에서 2017 「구치」 크루즈 컬렉션을 진행, ‘패션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얻으면서 그는 이 시대의 진정한 패션 킹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Related News

    • 럭셔리
    News Image
    피레티, 2024 F/W '모던 엣지' 컨벤션 성료
    24.01.18
    News Image
    저성장 맞은 럭셔리산업, 초부유층 공략? or 신시장 개척?
    24.01.17
    News Image
    FCG, '와이드앵글·피레티' 투트랙...1000억대 GO
    24.01.16
    조회수 1008
    News Image
    퍼렐 윌리엄스의 첫 '루이비통' 남성복 컬렉션은?
    24.01.15
    More News
    Banner Im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