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패션 아이콘 ‘콜레트’ 아듀

    har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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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10.10조회수 129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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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소 - 안델만 모녀 듀오 폐업 결정



    “모든 좋은 것에는 끝이 있다. 콜레트 루소(창업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콜레트 없는 ‘콜레트’는 존재할 수 없다.” 지난 7월12일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충격적인 폐업 소식을 전한 ‘콜레트’는 지금까지 그래 왔듯 쿨하고 담담한 태도로 마지막을 알렸다.

    2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전 세계 패션 트렌드를 이끌어 온 ‘콜레트’가 올해를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편집숍이라는 콘셉트도 생소하던 때 세계 곳곳의 알려지지 않은 디자이너들을 소개하며 그녀만의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 온 ‘콜레트’의 폐업이 패션계에 던져 주는 충격은 상당하다.

    올해 초부터 업계에 심심치 않게 소문이 돌았지만 입지가 탄탄한 ‘콜레트’가 문을 닫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사람들은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폐업 발표는 놀라움과 아쉬움을 안겨 주고 있다. ‘콜레트’의 단골로도 유명한 칼 라거펠트는 “너무나 슬픈 일이다. ‘콜레트’가 없는 생토노레 거리는 그저 그런 평범한 쇼핑가가 될 것”이라고 말하며 안타까워했다.

    음악, 예술, 음식, 문화 체험하는 빅 패션 부티크

    1997년 오픈한 이후 가장 쿨하고 트렌디한 편집숍으로 자리 잡은 ‘콜레트’의 폐업은 단순히 어느 명품 브랜드의 아트 디렉터가 바뀌었다거나 역사와 전통을 이어 온 부티크가 문을 닫는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 ‘콜레트’는 정육점과 생선가게가 주를 이루던 생토노레 거리를 가장 트렌디한 패션 거리로 바꿔 놨고 물건을 파는 부티크에서 음악과 예술 등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파리 중심가의 상권을 완전히 바꿔 놓은 전 세계 유일의 편집숍 ‘콜레트’가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가족 경영 체제의 독립된 경영 구조라는 점이다. 건물의 소유주도, 부티크의 소유주도 창업자인 콜레트 루소(Colette Roussaux)다. 그리고 부티크를 경영하고 제품 바잉을 하는 사람은 그녀의 딸 사라 안델만(Sarah Andelman)이다.

    아무리 사랑이 넘치는 모녀지간이라도 같은 건물 옆집에 살며 같은 곳에서 일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두 사람은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고 끊임없이 대화하며 지금의 ‘콜레트’를 만들었다. 똘똘 뭉친 모녀 듀오가 바로 오늘날 ‘콜레트’ 성공의 가장 핵심적인 레시피가 아닐까 싶다.

    똘똘 뭉친 모녀 듀오, ‘콜레트’ 성공 핵심 레시피

    20년 전과 마찬가지로 ‘콜레트’ 매장이 있는 건물 꼭대기 층에 살고 있는 이들은 100여명의 직원을 거느려도 변함없는 방법으로 매장을 운영한다. 엄마는 ‘콜레트’ 운영에 필요한 행정 업무와 회계를 맡고 딸은 전 세계를 다니며 새로운 물건들을 바잉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픈할 때부터 지금까지 지켜 온 규칙이 한 가지 있다. 매주 바뀌는 윈도 디스플레이는 엄마가 직접 꼼꼼히 챙긴다는 점이다.

    엄마 루소는 매일 아침 매장에 나와 오픈 시간 전까지 직원들을 챙기고 매장 안을 돌아다니며 진열대의 위치, 물건이 놓일 장소, 디스플레이의 디테일을 변함없이 체크한다. 매주 일요일이면 매장은 문을 닫지만 쇼윈도 디스플레이를 새롭게 바꿔야 하기 때문에 할 일이 더욱 많다.

    쇼윈도에 소개되는 의상은 다림질 상태, 삐져 나온 실밥이나 떨어진 단추는 없는지까지 그녀의 손끝을 통해 빠짐없이 살펴본 후에야 진열된다. 이런 그녀의 열정 때문인지 ‘콜레트’의 쇼윈도는 신진 디자이너는 물론 내로라하는 명품 브랜드들도 앞다퉈 디스플레이하고 싶어 하는 곳이 됐다.



    루소, 매일 아침 매장과 디스플레이 직접 챙겨

    ‘콜레트’를 오픈하기 훨씬 전 의류 도매상들이 밀집해 있는 파리의 상티에(Sentier) 지역에서 옷가게를 운영한 경험이 있는 루소는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옷을 사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수완이 좋아 자수성가할 수 있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기존과 같은 방법으로는 도매사업을 이어 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 또한 느끼고 있었다.

    딸 안델만은 루브르 예술학교에서 예술사를 전공해 엄마와는 달리 패션의 비즈니스적 측면보다 미학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았다. 그녀는 전 세계로 여행을 다니며 독특한 디자이너, 제품을 접할 기회가 많았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소개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다 현재의 ‘콜레트’ 건물로 이사를 오면서, 늘 비어 있는 1층 공간을 아쉬워했다. 빛이 잘 들어오는 공간에서 패션, 디자인과 관련된 갤러리를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옷을 판매하는 엄마와 예술사를 전공한 딸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 ‘콜레트’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같기도 하다.

    경영 + 바잉 담당 안델만, 독특한 디자이너 소개

    파리에서 보지 못한 물건들을 판매하는 매장이 ‘콜레트’가 처음은 아니다. 생제르망이나 샹젤리제에도 그와 비슷한 콘셉트로 외국 서적, 인테리어 소품 등을 판매하고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제공하는 작은 규모의 부티크들이 있다. 또 1980년대에는 아르망 아디다(Armand Hadida)가 ‘레클레뢰르(l’eclaireur)’라는 편집숍을 열어 유럽 전역의 알려지지 않은 신진 디자이너들의 제품들을 판매하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파리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런던과 도쿄의 심플하고 모던한 스타일의 라이프스타일을 체험할 수 있는 부티크나 공간은 없었다. ‘콜레트’는 처음부터 700㎡에 달하는 넓은 공간을 스타일리시하게 꾸며 파리에서는 볼 수 없던 옷, 액세서리, 예술 서적, 코스메틱 제품, 첨단기기 등을 판매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매장에서 사진과 그래픽 전시회도 잇달아 열고 일렉트로 음악을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내는 등 엘리트적인 경영 정책으로 다른 부티크들과는 차별화된 ‘콜레트’만의 아우라를 만들어 갔다. 지하에는 ‘워터 바(water bar)’라는 레스토랑 - 바를 만들어 먹고 마시는 것 역시 ‘콜레트’답게 파리에서 유일한 것들을 판매했다.



    그래픽 전시회, 일렉트로 음악 앨범 등 차별화

    ‘워터 바’에서는 전 세계 60여개의 물을 판매했다. 아이슬란드의 얼음을 녹여 만든 물이나 스와로브스키의 크리스털 유리병에 담긴 물까지 다른 어떤 곳에서도 만나 보기 어려운 물들이다. 만만치 않은 가격(33cl 기준 평균 5유로(약 6600원))에도 ‘콜레트’의 마케팅과 아우라에 힘입어 총매출에서 만만치 않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렇듯 루소-안델만 모녀는 패션부터 서적, 음식까지 자신들의 취향과 스타일에 철저히 부합하는 것들로만 ‘콜레트’를 채웠다. 1997년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던 콘셉트 스토어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안한 것이다. 이후 전 세계적으로 우후죽순 생겨난 콘셉트 스토어들은 ‘콜레트’를 모델로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콜레트’가 처음으로 선보인 명품 브랜드들과의 단독 콜래보레이션 역시 짚고 넘어가야 할 성공 요인이다. 「에르메스」 「루이비통」 「샤넬」 「발렌시아가」 등과 같은 명품 브랜드들이 ‘콜레트’에서만 볼 수 있는 리미티드 에디션 제품들을 판매했다. 애플은 애플스토어가 아닌 매장으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콜레트에서 선주문을 받기도 했다. 이때 단 6일 만에 1292개를 주문받았다.

    지하 ‘워터 바’ 전 세계 60여개 유니크한 물 판매

    특히 안델만이 초창기부터 내세운 전략인 리미티드 에디션은 사람들에게 더없는 구매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콜레트에서만 살 수 있는 디자인의 「에르메스」 스카프’라면, 그것도 언제든 구매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분명히 그 자리에서 바로 구매할 확률이 더 높을 것이다. 제품 회전율이 매우 빠른 ‘콜레트’로서는 재고를 최소화할 최적의 방법이기도 했다.

    판매할 제품의 개수를 미리 정해 재고가 소진되면 더 이상 판매하지 않는 ‘콜레트’의 마케팅 정책은 후에 「슈프림」의 판매 전략에도 영향을 끼쳤다. 안델만은 예술에만 존재하는 희소성의 가치가 패션에도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고 그런 생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최근 콜래보레이션은 지난 7월 초부터 한 달간 ‘콜레트’ 매장 2층에서 진행한 「발렌시아가」와의 단독 콜래보레이션 컬렉션이다. 「발렌시아가」는 오랜 준비 기간을 거쳐 2017 F/W 남성복과 여성복은 물론 머그컵, 쿠션까지 합리적인 가격의 다양한 아이템을 ‘콜레트’에서만 선보였다.



    「샤넬」 「에르메스」 등 특별 리미티드 에디션 판매

    안델만은 「발렌시아가」를 시작으로 올해 말까지 매장 2층에 있는 공간에서 매달 단 하나의 브랜드와 단독으로 협업한 컬렉션을 선보일 계획이다. 지금까지는 신진 브랜드와 명품 브랜드들의 기존 의상들을 모두 한자리에서 선보였지만 앞으로는 ‘콜레트’에서만 만나 볼 수 있는 단독 협업 컬렉션을 정해진 기간에만 판매한다.

    「발렌시아가」 후속으로는 「로에베」 「자크무스(Jacquemus)」 「라로스파리(Larose Paris)」 「올람피아 르-탕」 등의 홍보대행을 맡고 있으며 파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홍보대행사인 ‘루시앙파제(Lucien Pagès)’와의 콜래보레이션이 기다리고 있다. 안델만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브랜드인 「자크무스」같이 작지만 독특한 브랜드들을 알리기 위한 좋은 기회다.

    이 밖에도 「사카이」 「톰브라운」 「샤넬」 「생로랑」 등이 연말까지 스케줄을 채울 예정이다. 9월 초부터 예정된 「사카이」와의 콜래보레이션은 ‘사카이 정원(Sacai Jardin)’이라는 주제로 ‘콜레트’에서만 선보일 남성복, 여성복, 아동복을 선보이는 것은 물론 일본식 카페와 디저트 바도 들어선다. 또한 「사카이」의 디자이너 아베 지토세(Chitose Abe)가 좋아하는 일본의 스트리트웨어 브랜드들도 함께 자리할 예정이다.

    연말까지 「사카이」 「생로랑」 「자크무스」 등과 콜래보

    ‘콜레트’가 명품 브랜드와만 콜래보레이션을 한 것은 아니다. ‘콜레트’가 파리에 알린 브랜드에는 「준야와타나베」 「프로엔자슐러」 「라프시몬스」 「톰브라운」 「꼼데가르송」 등이 있다. 안델만은 「사카이」를 2002년에 처음 알게 된 후 꾸준히 소개하고 있다. 이 밖에 「모스키노」의 아트 디렉터 제러미 스콧 역시 ‘콜레트’를 거쳤다.

    전 세계를 다니며 제품을 바잉하는 안델만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신진 디자이너들에 대한 책임의식을 밝히기도 했다. “지금의 ‘콜레트’가 있기까지는 신진 디자이너들의 역할이 가장 크다. 그들이 없었다면 ‘콜레트’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 역할은 단지 신진 디자이너들의 티셔츠 몇 개를 판매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자생할 수 있도록 대중적인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신진들에 대한 그녀의 편애는 패션뿐만이 아니라 예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다. 주로 팝 아트, 그래피티 아티스트같이 대중문화와 밀접하게 연관된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데 매달 6명의 작품들을 단독 혹은 다른 갤러리들에 앞서 소개한다. 그들이 ‘콜레트’ 매출에 영향을 미치진 못하지만 20년간 꾸준히 해 온 일이다. 안델만은 주변의 아방가르드를 표방하는 수많은 갤러리에 진짜 아방가르드의 역할을 행동으로 보여 준다.

    「준야와타나베」 「프로엔자슐러」 등도 콜레트 거쳐

    지난 8월 초까지 매장 내에 전시됐던 ‘누들드(Noodled)’라는 사진 컬렉션을 살펴보면 안델만의 예술적 감각이나 관심 분야가 상당히 깊이 있고 섬세하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안델만이 사진을 보자마자 ‘콜레트’에서 전시회를 하고 싶다고 요청한 ‘누들드’ 컬렉션은 여러 명의 사진작가가 헤어스타일과 파도를 연관시켜 제작했다.

    이 밖에도 ‘콜레트’는 계속해서 독특한 프로그램을 선보여 다른 편집숍들과는 다른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최고급 시계 브랜드 「재거-르쿨트르(Jaeger-LeCoultre)」의 아틀리에를 재현하기도 하고 ‘워터 바’에서는 쿠킹 클래스를 마련해 다양한 사람이 ‘콜레트’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기도 한다.

    또한 지난 3월에는 ‘콜레트’ 20주년을 맞아 일주일간 장식미술 박물관에서 ‘더 비치(The beach)’라는 주제로 다양한 즐길거리를 마련했다. 미국 출신 설치미술가 스나키텍처(Snarkitecture)가 작업한 공간에서는 거대한 볼 수영장을 비롯해 인터랙티브한 설치미술 등을 선보여 남녀노소 모두 ‘콜레트’의 20주년을 즐기며 축하할 수 있도록 했다. ‘콜레트’는 해변에서의 축제 같은 분위기로 모두와 함께 즐기기 위해 이런 행사를 마련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팝 아트, 그래피티 등 대중문화 영 아티스트 소개

    패션계 일부에는 ‘콜레트’의 고가 정책과 일 년 내내 단독으로 판매하는 리미티드 에디션 제품들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하지만 ‘콜레트’가 개척하고 만들어 낸 콘셉트 스토어는 분명히 선견지명 있는 선택이었고,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욕구를 충족해 주기도 했다. 게다가 패션과 관련된 어떤 이들에게 ‘콜레트’는 인생을 바꾼 곳이기도 하다.

    ‘콜레트’의 이런 성공이 더욱 대단한 것은 어떤 대기업의 수단을 이용하지 않고 오로지 루소-안델만의 개인적인 취향과 수완에 기대 자생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콜레트’의 작년 매출은 2800만유로(약 374억원)를 기록했다. 순이익은 총매출의 대략 15%를 차지한다.

    웬만한 중소기업 못지않은 규모인 만큼 이들에게 꾸준히 러브콜을 보내는 대기업도 많았다. 하지만 루소-안델만 모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같은 방법으로 꾸준히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부티크를 이끌어 왔다. 아마도 그러한 고집이 전 세계 유일의 ‘콜레트’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대기업 러브콜 ‘노 생큐’ 자신들의 방법으로 운영

    마케팅 공부를 한 적도 없는 두 모녀가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부티크를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그때그때의 유행을 따르기보다 그들 스스로 좋아하는 것, 새로운 것을 소개하는 데 집중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안델만은 바잉을 하는 기준을 “‘하이프(hype)’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아직도 모른다. 난 그저 나에게 좋아 보이는 것들을 구매할 뿐”이라고 간단하게 설명했다.

    그녀는 유행을 타지 않는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유행으로 만든다. ‘콜레트’의 홍보 담당자인 귀욤 살몽(Guillaume Salmon)은 그녀의 능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그녀는 어린아이의 시선을 가지고 있다. 비싼 명품이든 값싼 기기든 똑같이 흥미로운 시선으로 바라본다.”

    ‘콜레트’가 명품 브랜드들과 작업하면서 너무 고상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안델만은 “지난 ‘유로 2016’을 맞아 스티커 기업 파니니(Panini)와 협업한 패션 관련 인물 스티커는 최근 한 작업 중에 가장 흥미를 끄는 작업이었다. 「에르메스」와의 작업만큼이나 파니니와의 작업은 중요하다.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을 하는 게 좋을 뿐”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트렌드 따르기 싫어! 자신의 취향을 유행으로~

    파니니는 축구선수 스티커를 만들어 판매하는 기업인데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이들의 스티커를 수집하는 마니아들이 많다. 유로컵이 있을 때마다 출전 선수들의 스티커를 만들어 판매한다. 2016 유로컵 때는 ‘콜레트’를 거쳐 간 뮤지션, 브랜드, 디자이너들의 얼굴을 스티커로 제작해 판매했다.

    안델만은 신진 디자이너를 선택할 때도 자신만의 명확한 기준이 있다. 새롭고 매력적인 뭔가가 있어야 한다. 그게 작은 디테일이든 실루엣이든 흥미를 끄는 무언가가 있다면 컬렉션 전체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일단 관심을 둔다. 제품 퀄리티는완성도가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 컬렉션보다 미래의 컬렉션에 대한 기대를 주는 것이다. 그런 디자이너라면 그녀의 레이더망에 들어갈 수 있다.

    얼마 전에 그녀가 선택한 「시몬느로샤(Simone Rocha)」의 경우 처음부터 의류에서 슈즈까지 완성된 컬렉션을 선보여 디자이너가 오랫동안 아이디어를 다듬고 디테일까지 신경 썼음을 보여 줬다. 그런 세심함이 디자이너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 준다.

    새롭고 매력적인, 미래 기대주 디자이너 관심

    안델만이 특히 관심을 두는 부분은 ‘콜레트’ 오픈 때부터 스트리트웨어다. 오픈 당시 「블레스(Bless)」의 스웻 셔츠나 일본의 스트리트 브랜드 「바프(A Bathing APE)」의 티셔츠를 판매했을 만큼 스트리트웨어는 ‘콜레트’의 이미지를 대표한다. 안델만 스스로도 스니커즈와 스웻 셔츠 등을 즐겨 입는다.

    루소-안델만은 성향은 물론 외모적으로도 매우 닮았다. 둘 다 숏커트 스타일을 유지하고 힐보다는 스니커즈를 즐겨 신는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극히 꺼린다. 루소의 경우 지금까지 언론과 인터뷰를 한 적이 총 세 번뿐일 만큼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는다. 언론 응대는 그나마 안델만이 하는데 역시 인터뷰 횟수는 손에 꼽힌다.

    많은 사람이 미래의 계획을 물을 때마다 루소-안델만은 그런 걸 세운 적이 없다고 말했다. 안델만은 10년 후의 계획을 묻는 어느 인터뷰에서 “10년 전엔 ‘콜레트’가 지금과 같은 모습일지 상상하지 못했다. 미래 계획을 세우기보다 우리가 지금 좋아하는 것, 하고 싶은 것에 집중하는 편”이라고 답할 만큼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콜레트’를 바라본다.

    숏커트에 스니커즈 신고 언론 노출 극히 꺼려

    두 모녀가 어떻게 이렇게 모든 면에서 한결같을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지난 20년간 ‘콜레트’ 운영 방식을 관통하는 단어는 ‘한결같음’과 ‘겸손’이다. 패션계를 좌지우지하는 명품 브랜드들과의 협업에서 유일하게 독점권을 쥐고 있는 매장이지만 처음이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으로 ‘콜레트’를 가꿔 왔다.

    처음 ‘콜레트’가 문을 열 때 패션과 디자인, 예술과 레스토랑을 모두 한곳에서 보여 줄 수 있는 장소라고 홍보했다. 홍보 에이전시나 패션업계 종사자들은 그들의 생각을 터무니없는 것이라 치부했다. 패션이 있는 곳에 식당이 있다니 절대로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장담이었다.

    하지만 루소-안델만은 그런 의견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여유가 있었고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을 한군데 모아 놓는 일이 나쁠 것은 없을 거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콜레트’를 시작했다. 전 세계에 분점을 낸 ‘꼬르소꼬모’와는 달리 ‘콜레트’에서 쇼핑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파리에 가야 한다.

    도쿄 뉴욕 분점 오픈 요구에 “콜레트 복제불가”

    많은 사람이 도쿄나 뉴욕에 ‘콜레트’의 분점을 내줄 것을 요구하지만 안델만은 이러한 요구에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장담한다. “‘콜레트’는 복제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런 그녀의 말은 곧 루소-안델만 스스로가 ‘콜레트’의 정체성 자체라는 말이기도 하다.

    ‘콜레트’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한결같기는 마찬가지다. ‘콜레트’의 인테리어 디자인을 맡고 있는 에릭 슈발리에(Éric Chevallier)는 1998년 처음 ‘콜레트’와 작업할 당시 열아홉 살이었다. 학생일 때 시작한 작업을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또한 매장 내 직원들은 세계적인 스타든 평범한 관광객이든 같은 방법으로 응대하라는 지시를 받는다. 하루 평균 300~700명의 방문객을 응대하고 패션위크 때는 1500~3000명을 상대해야 하는 직원들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런 지침들 역시 처음과 다르지 않을 것을 고수하는 루소-안델만의 생각이다.

    유명 스타든 평범한 관광객이든 똑같이 응대

    이렇게 한결같은 ‘콜레트’가 문을 닫기로 결정한 것은 의아하지만 한편으로는 수긍이 가기도 한다. ‘콜레트’의 정체성인 루소가 더 이상 ‘콜레트’와 함께할 수 없다면 문을 닫는 것이 당연하다는 게 루소-안델만의 생각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같은 방법으로 심플하게 ‘콜레트’를 운영해 온 이들에게는 자연스러운 판단이라는 생각이 든다.

    안델만은 폐업 발표 후 인터뷰에서 “‘콜레트’의 폐업 소식이 이렇게 큰 반향을 일으킬지 몰랐다”고 말하며 오히려 놀라움을 드러냈다. 그녀는 폐업에 대한 걱정보다 앞으로 예정된 콜래보레이션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고 밝힐 만큼 ‘콜레트’ 소유주로서가 아닌 ‘콜레트’ 자체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그만큼 아끼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손에 넘기는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콜레트’의 소식을 접한 많은 사람이 완전히 문을 닫기보다 ‘콜레트’를 잘 이어 갈 수 있는 기업에 바통을 넘기거나 안델만 혼자서라도 이어 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조언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는 언론을 통해 “엄마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콜레트 자리엔 「생로랑」, 안델만은 다른 회사로?

    ‘콜레트’가 있던 자리에는 「생로랑」이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건물의 소유주는 변함없이 루소다. 안델만은 특별히 다음 계획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최근 인터뷰에서 다른 메종에서 일하는 것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는 후문도 있다. 연말이나 내년쯤에야 구체적으로 그녀가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질 ‘콜레트’가 남긴 흔적은 ‘콜레트’ 전과 후의 패션업계가 다르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의미 있는 것들이다. 게다가 그것들이 대기업의 자본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강한 캐릭터를 지닌 두 여성에 의해 자생적으로 나타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의미 있게 다가온다.

    안델만은 어느 인터뷰에서 많은 사람이 예견하는 패션의 종말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정말 신기한 일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나를 놀라게 하는 예술작품, 디자이너들이 있다. 모든 것이 이미 다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것을 만들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발견할 수 있는 눈만 있으면 된다.”

    ‘콜레트’는 사라지지만 새로운 사람, 새로운 것들이 또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고 우리에게 예상치 못한 발견과 즐거움을 안겨 줄 것이다.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에 의해 생겨날 수 있는 변화는 엄청나다. ‘콜레트’가 지난 20년간 그것을 우리에게 증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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