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탈리 마스네, 파페치로 귀환

    정해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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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05.01조회수 60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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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타포르테 떠난 후 창투회사도 론칭

    2015년 9월 세계적인 럭셔리 패션 이-테일러(e-tailer) 네타포르테그룹의 당시 나탈리 마스네(Natalie Messenet) 회장이 육스그룹과의 공식적인 합병을 앞두고 회장직을 사임함으로써 산업계에 큰 충격을 줬다. 그 후 패션과 럭셔리 부문에서는 ‘과연 그의 다음 행보는 무엇일까’에 대해 끊임없이 추측이 나왔지만 별다른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던 마스네가 얼마 전 인스타그램을 통해 자신이 이-커머스(E-commerce) 그룹인 파페치(farfetch.com)에 공동 회장으로 조인한다고 발표했다. 네타포르테그룹을 떠난 지 18개월 만에 다시 럭셔리 이커머스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마스네의 귀환 소식에 패션계와 미디어가 떠들썩할 때, WWD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마스네 관련 뉴스를 전했다.

    그가 신생 이커머스 벤처를 지원하는 새로운 투자회사를 설립해 펀드를 조성 중이라는 것이다. 럭셔리 패션을 온라인으로 판다는 콘셉트를 현실화한 마스네의 혁신적인 마인드가 과연 패션과 테크놀로지에서 또 어떠한 변화를 만들어 낼지 업계의 관심이 모인다.

    육스와 합병 후 개성 강한 두 리더 중 한 명 사임
    마스네가 네타포르테의 강력한 경쟁사인 파페치에 공동 회장(Co-Chairman)으로 가는 것과 관련해 미디어에서는 2015년 네타포르테를 떠난 것에 대한 작은 승리라고 할 만큼 그가 합병과정에서 실망이 컸다고 전했다. 당시 네타포르테의 오너인 리치몬트그룹이 네타포르테그룹의 가치를 저평가한 것은 물론, 합병으로 탄생할 육스네타포르테(Yoox Net-A-Porter)그룹의 회장직을 마스네가 맡기로 했지만 이 역시 평탄치 못하자 네타포르테그룹을 떠난 것으로 해석된다.

    육스의 오너 페데리코 마르체티(Federico Marchetti)의 돌출 발언 때문이다. 마르체티가 CEO직을 맡고 마스네가 체어맨을 하기로 서로 합의했지만 마르체티가 영국의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새로 탄생하는 육스네타포르테그룹에는 한 명의 보스가 있을 뿐’이라고 말한 것에 마스네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마르체티가 자신이 보스이고 경영을 책임질 것이라고 비공식적으로 밝히면서 두 사람의 사이가 벌어졌고 결국 마스네가 사임하게 된 것이다.

    당시 분석가들은 마스네의 사임이 합병을 통해 탄생하는 육스네타포르테그룹 차원에서는 막대한 손실이지만 피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의견을 모았다. 이미 합병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패션 산업계에서는 마스네가 네타포르테에서의 직책을 사임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보는 경향이 있던 만큼 이는 놀랄 만한 뉴스는 아니라는 반응을 보였다.

    파페치와 네타포르테, 차별화 모델이자 경쟁자
    결국 개성 강하고 경영 스타일이 다른 창립자 출신의 두 헤드가 공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모델, 스타일리스트, 패션 에디터 출신으로 팀이 함께 성취하는 것을 지향하고 동기부여를 통한 매니지먼트 스타일을 보이는 마스네, 그리고 MBA 출신으로 명석한 두뇌의 아웃사이더 스타일인 마르체티는 끝내 공존하지 못했다.

    온라인 럭셔리 마켓에서 파페치와 네타포르테는 나란히 경쟁하지만 둘의 비즈니스 모델은 완전히 다르다. 네타포르테는 온라인 숍이고 파페치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파페치는 세계 각지의 오프라인 편집매장과 연계해 고객들이 파페치 사이트를 통해서 상품을 고르고 살 수 있게 한다. 결정적 차이는 상품을 파느냐(네타포르테), 서비스를 파느냐(파페치)라고 할 수 있다.

    파페치의 창립자이며 CEO인 호세 네베스(José Neves)는 그동안 여러 차례 투자를 유치했으며 내년 중 상장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마스네 같은 업계 거물과 힘을 합하면서 파페치를 더욱 파워풀한 기업으로 포지셔닝해 가고 있다. 마스네를 공동 회장(non-executive co-chairman)으로 추대하면서 육스와의 합병 때 잃었던 마스네의 얼굴을 세워 주는 효과도 있다.



    상품 판매 온라인 숍 VS 서비스 파는 플랫폼 강자
    마스네의 럭셔리 패션계 인맥과 패션 노하우, 그리고 고객 경험을 위한 헌신은 따라올 사람이 없다고 평가된다. 파페치에 마스네가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상징적 의미가 있지만, 실제로 마스네는 파페치가 케링과 LVMH그룹은 물론 200여개 패션 브랜드와의 관계를 더욱 밀접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궁극적으로 파페치를 더욱 강력한 브랜드로 만들고 패션 산업 내 연계를 강화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파페치의 투자자이며 네타포르테에도 투자했던 카르멘 부스케츠(Carmen Busquets)를 이번에 파페치에서 만남으로써 마스네와 함께 파페치를 네타포르테만큼 성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파페치는 포르투갈 출신인 호세 네베스가 2008년 론칭한 럭셔리와 하이엔드 패션 플랫폼으로 상품 재고를 보유하지 않는 것이 다른 온라인 리테일러와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세계 각지의 브랜드와 매장을 보여 주는 대형 숍 윈도처럼 파페치 사이트를 운영한다. 현재 700여개 편집매장의 네트워크를 갖췄으며 200명의 디자이너가 파페치를 통해 고객에게 다이렉트로 상품을 판매한다. 세계 190개국으로 배송하며 창립 이후 연평균 성장률 70%를 기록했다. 파페치는 약 1조5000억원(10억파운드) 규모의 상장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 시기는 빠르면 2018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커머스 투자 펀드 이매지너리벤처스 창립
    WWD는 3월7일 자에서 마스네가 닉 브라운(Nick Brown, 투자회사 14W의 파트너)과 함께 올해 늦봄에 창업투자회사인 이매지너리벤처스(Imaginary Ventures)를 론칭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새로운 투자회사는 리테일, 패션, 라이프스타일, 뷰티 등의 이커머스 부문을 대상으로 하며 첫 번째 투자 대상은 파페치와 데일리하비스트(Daily Harvest, 수프와 스무디 딜리버리 서비스), 트렌디 음료 회사인 더티레몬(Dirty Lemon)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창업투자회사의 비즈니스 파트너로 알려진 닉 브라운(31세)은 뉴욕 베이스의 창업투자회사인 14W의 파트너로 모다오퍼란디(Moda Operandi), 굽(Goop), 「에버레인(Everlane)」, 데일리하비스트(Daily Harvest), 와비파커(Warby Parker) 등의 투자를 이끌었다. 이미 마스네와 브라운은 펀드 조성을 위해 40~50명의 투자자와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네타포르테 론칭 당시의 보편적인 관념은 아무도 고가의 럭셔리를 입어 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더욱이 만져 보지도 않고서 사는 사람은 없을 거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17년이 지난 지금 네타포르테는 매출 규모 1조원 이상의 비즈니스로 성장했고 마스네는 이커머스를 개척한 선구자로 인정받고 있다.



    비전을 현실로! 럭셔리 이커머스 개척 선구자
    당시 네타포르테 아이디어의 시작은 금융계에서 일하던 마스네의 남편이 보여 준 랩톱 컴퓨터였다고 한다. 출산한 지 얼마 안 된 마스네는 집에 편안히 앉아서 잡지 화보의 아웃핏을 보며 간단히 마우스를 클릭하는 것으로 구매하고 싶다는 염원이 있었고 이를 비즈니스화한 것이다. 시간은 없고 패션 구매 예산은 높은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와 시즌별로 아주 특별한 아이템을 쉽게 살 수 있는 버추얼 리테일러를 네타포르테로 구현함으로써 여성들의 패션 쇼핑 방식에 혁명을 가져왔다.

    패션 에디터 출신으로 2000년 네타포르테를 론칭한 후 여성 사업가, 또한 테크 스타트업 창립자로 유명해진 마스네(51세)는 영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지고 스타일리시한 비즈니스 우먼이라고 할 수 있다. 2009년과 2015년에는 패션 산업에 대한 공로로 영국 여왕에게서 훈장(MBE)과 데임(Dame, 남자의 ‘Sir’에 해당) 칭호를 받기도 하는 등 그의 족적은 이미 인정받고 있다.

    그의 패션에 대한 열정은 자신의 비즈니스를 넘어 영국 패션을 지원하고 홍보하는 일로까지 확장됐다. 2013년 이후 영국패션협회(The British Fashion Council)의 체어맨으로서 연간 2회 열리는 런던패션위크는 물론 영국 디자이너를 해외에 홍보하는 일을 적극 지원하는 마스네는 패션 산업 전체에 기여하는 인물로 평가된다. 이제 그동안의 공백기를 벗어나 파페치의 회장으로, 창업투자회사의 헤드로 컴백하는 마스네의 에너지 넘치는 활동을 기대해 본다.


    **패션비즈 2017년 5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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