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뮤직 붐 속 「피어오브갓」 점프

    백주용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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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12.08조회수 230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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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니예 웨스트 앨범 ‘이저스’로 점화



    국 패션 시장에서 올해 가장 관심을 끈 브랜드와 상품을 꼽자면 제리 로렌조의 브랜드 「피어오브갓」을 들 수 있다. 이 브랜드의 히트와 가장 가까운 현상을 꼽는다면, 이런 트렌드의 시작에는 래퍼 카니예 웨스트의 7번째 앨범 이저스(yeezus)의 투어 상품(Tour Merchandise)이 있다. 이 둘은 끈끈하게 연결돼 하나의 현상으로 이어진다.

    이저스 상품에 사용된 그래픽은 장미, 해골, 십자가 같은 헤비메탈 밴드들이 과거에 써 오던 것들이며 폰트 또한 밴드 메탈리카의 것과 흡사하다. 「피어오브갓」 또한 헤비메탈 밴드 티셔츠와 타탄체크 셔츠, 찢어진 청바지를 주력 아이템으로 내놓으며 유행을 더해 갔다.

    패션에서 유행의 주기는 평균 10년이라고 했다. 「타미힐피거」 「게스」 「캘빈클라인」 같은 추억의 브랜드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고 트렌드에 민감한 친구들은 재빨리 공을 들여(?) 더욱 촌스러워 보이려고 노력한다. 자연스레 큼지막한 로고나 그래픽 위주의 옷이 유행하고 스트리트 패션의 인기가 다시금 치솟았다.

    추억의 브랜드 재등장, 큰 로고와 그래픽 인기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여러 가지 트렌드가 복합적으로 맞물리고 있는데, 올해 또 유행처럼 돌아온 것이 있다면 메탈리카, 슬레이어, 아이언 메이든, 건즈 앤 로지스 등 올드 헤비메탈 밴드들의 티셔츠다. 인기 모델, 패션 스타, 바이어, 블로거 등이 앞다투어 이런 류의 패션을 입었다. 제일 재미있는 것은 래퍼들도 이런 패션을 입었고 그들이 그런지 룩을 모방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느 밴드의 티셔츠를 입는다는 것은 하나의 아이덴티티다. 음반을 샀을 뿐만 아니라 공연까지 보러 갔다는 충성심을 표출한다. 하지만 밴드 티셔츠는 꼭 그들만의 것은 아니다. 지난 몇십년간 패션의 영역에서 하나의 꾸준한 아이템으로 입지를 굳혀 왔다. 문제는 실제 충성심을 가진 메탈리카 리스너들과 그저 예쁜 티셔츠라서 입는 패셔니스타들의 논쟁인데 이는 좀 어려운 부분이다.

    밴드 티셔츠는 2000년대 들어 많이 모습을 감추었지만 다시 등장해 지금 스트리트 패션에서 키 아이템으로 꼽히고 있다. 현재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와 불법 다운로드가 만연하니 뮤지션들이 앨범으로 수익을 내기가 어려워졌고 콘서트 투어와 기념 상품으로 내는 수익에 더욱 힘을 실어야 하게 됐다.

    올드 헤비메탈 밴드 티셔츠와 스트리트 패션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많은 뮤지션이 자신의 투어와 관련된 패션 아이템을 속속 내놓고 있다. 팝업 스토어가 있어 꼭 정해진 날짜에 공연장에 보러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팬들에게는 반가운 일. 카니예 웨스트의 팬이 아니더라도 라이프 오브 파블로(Life of Pablo)가 적힌 티셔츠를 입고 패션위크 사진에 찍히는 것이 이제는 흔한 일이다.

    카니예 웨스트가 헤비메탈 바이브를 인용하고 이를 다시 수면 위로 올려놨다면 실제 록 음악의 그런지 룩과 밴드 티셔츠를 유행시킨 사람은 「피어오브갓」의 설립자이며 디자이너인 제리 로렌조다. 이제 겨우 네 번째 시즌을 맞은 하이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피어오브갓」이 어떻게 이런 갑작스러운 인기를 얻게 됐을까.

    그것은 바로 뮤지션들의 덕이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피어오브갓」은 카니예 웨스트, 데이비드 베컴, 저스틴 비버 같은 유명한 팬들을 두고 있다. 가격은 만만치 않다. 셔츠 50만원대, 청바지와 코트는 80만원부터 100만원 이상의 고가임에도 대부분의 상품은 품절에 품절 현상을 일으킨다.

    데이비드 베컴, 저스틴 비버 등 유명 인사가 팬
    「피어오브갓」의 상품을 보면 제리 로렌조가 누구인지, 어떤 백그라운드를 갖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흑인이지만 백인이 많던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그들의 문화에 노출됐다. 그런지 록, 헤비메탈을 들었으며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그는 주말이면 교회에 나가 흑인 친구들과 그때는 가스펠을 부르고 힙합을 들었다.

    다문화가 자연스럽게 그의 몸에 배어 있다. 제리 로렌조는 「피어오브갓」을 통해 자신을 말한다. 「피어오브갓」은 힙합이고 NBA 플레이어이며 아이버슨처럼 콘로우(여러 갈래로 땋은 머리)를 한 자신의 자화상이다. 체크 남방과 물 빠지고 찢어진 청바지 같은 록 음악도 될 수 있다. 그는 제일 중요한 것은 신에 대한 자신의 신앙심이라고 말한다.

    제리 로렌조는 스스로 디자이너이기를 거부한다. 스타일리스트로 일을 해 오던 그는 스스로 옷을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주말이면 빈티지 마켓으로 밀리터리 의류를 찾아 다녔고 그 옷들의 핏을 바꾸고 포켓의 위치를 바꾸고 지퍼를 더하고 하면서 자신의 입맛에 맞게 리폼했다. 그것이 계속 이어져 현재 「피어오브갓」의 모토가 됐다.







    스타일리스트 출신 제리 로렌조, 리폼에서 출발
    우리에게 익숙한 아이템이지만 소재와 부자재는 최고를 쓰며, 약간의 트릭을 주기도 한다. 셔츠 옆구리에 지퍼를 단다든지 소매길이를 변형한다든지, 또 레이어드를 이용한 스타일링으로 참신한 룩을 제시하기도 한다. 제리는 말한다. “이런 것은 이미 당신들에게 익숙한 것들이다. 플란넬 셔츠, 청바지, 밀리터리 재킷…. 나는 이런 것들에 문화를 담아 재해석해 낸다. 단순히 상품이 아닌 그 이상의 단계로 발전시키고 대중의 반응을 이끌어 낸다.” 그는 이제 트렌드세터이며, 나아가 문화 창조자다.

    실제로 제리는 록의 중심지 라스베이거스에 본거지를 두고 메탈과 록을 꾸준히 들어 온 리스너다. 그는 아이언 메이든, 슬레이어, 메탈리카 등의 티셔츠를 유행이 아닌 아이덴티티로 입어 왔다. 400장이 넘는 빈티지 밴드 티셔츠 콜렉션을 보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는 「피어오브갓」이 여타 스트리트 브랜드처럼 로고나 그래픽에 의존하지 않길 원했다.

    「피어오브갓」에 입힐 그래픽을 고민할 때는 새로운 것을 디자인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언제나 밴드 티셔츠의 그래픽을 사랑해 온 사람들에게 이것이 최고의 그래픽임을 보여 주고 싶었다. 「피어오브갓」의 버전으로 메탈리카 슬레이어 등이 그대로 적힌 메탈 티셔츠를 발매했고, 인기는 뜨거웠다. 이어서 저가 브랜드에서 메탈 티셔츠가 쏟아져 나왔다.

    힙합 아티스트 카니예 웨스트 7th 앨범 ‘이저스’
    이런 현상 뒤에는 또 하나의 동인이 있다. 바로 지난 2013년 미국 힙합 아티스트 카니예 웨스트가 앨범 ‘이저스’를 발표하면서 이와 함께 생산한 패션 상품들이 대히트한 것. 그는 이미 그래미 21회 수상 경력으로 뮤지션으로는 이미 정상에 올라선 뒤였고, 패션 또한 그가 하는 모든 것이 유행이 돼 버리는 신적 존재로 등극했다.

    이저스 앨범은 그 파격적인 이름(카니예의 예명 ‘YEEZY’ + 예수 ‘JESUS’의 합성어), 진보된 사운드, 사회와 인종차별에 대한 반항적 가사, 퍼포먼스 비주얼 등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이 이슈였다. 관련 상품까지 주목받고 뜨거운 인기를 얻은 것은 어찌 보면 사실 너무 당연한 일이다.

    디자인에는 아티스트 웨스 랭(wes lang)이 참여했고 그는 해골, 십자가, 장미, 어두운 색상, 고딕한 폰트와 로고 등 1980년대의 헤비메탈 밴드 티셔츠에 사용되던 것에서 디자인 영감을 얻었다. 빈티지와 모던, 록과 힙합 등 시간과 장르 내에서 두 가지의 것들을 교차시켜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아티스트 웨스 랭 참여, 해골 십자가 장미 등 차용
    카니예의 추종자들, 패션 트렌드세터, 에디터, 블로거, 너나 할 것 없이 이저스의 상품을 입었다. 온라인 숍도 생겼고 전 세계 주요 도시에 팝업 스토어를 열었다. 이들은 공연장에서만 투어 상품을 사던 과거와는 전혀 다른 플랫폼을 제시했다. 카니예의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DONA의 그래픽 디자이너는 “10년 뒤에 YEEZUS의 열풍을 돌이켜 보라. 힙합의 중심에 카니예가 있고 랩은 새로운 로큰롤이다”라고 말했다.

    ‘이저스’는 앨범 발매 직후뿐만 아니라 하나의 브랜드로 자립하고 후에도 몇 차례 새로운 상품을 내놓았다. 열풍은 계속 이어져 올해 8번째 앨범 ‘라이프 오브 파블로(Life of Pablo)’를 발표했으며 나온 새로운 투어 상품들은 두 배로 팬덤을 만들어 냈다. 마찬가지로 팝업 스토어들을 전 세계 주요 도시에 오픈했고, 거기에는 「슈프림」 매장 앞을 방불케 하는 인파의 긴 줄이 만들어졌다. 이베이나 그레일드 같은 유저 간에 거래하는 마켓에서는 몇 배나 뛴 가격에 거래되기도 했다.

    많은 뮤지션이 이런 흐름에 연이어 동참했다. 캐나다 출신 팝스타 저스틴 비버는 2016년 새 앨범 ‘퍼포즈(purpose)’를 발매했고, 실제 그의 성숙함과 음악적 성장을 결합한 완성도 높은 앨범이라는 평을 받았다. 저스틴 비버는 LA를 기반으로 한 브랜드 「피어오브갓」의 디자이너 제리 로렌조를 섭외했다.



    <8th 앨범 ‘LIFE OF PABLO’, 두 배로 팬덤 형성
    그뿐만 아니라 실제 1980년대 헤비메탈 밴드 아이언 메든과 주다스 프리스트의 그래픽을 맡은 일러스트레이터 마크 윌킨슨(Mark Wilkinson)도 섭외해 ‘퍼포즈’의 투어 상품 디자인을 맡겼다. ‘퍼포즈’는 자체 팝업 스토어 외에도 바니스뉴욕, 어번아웃피터스, 일본의 유나이티드애로즈, 밀라노의 슬램잼 등 유명 숍에 대거 입점했다. ‘퍼포즈’ 의류에도 헤비메탈의 미학이 많이 묻어 있다.

    최정상 스타들이 연이어 투어 상품 컬렉션 생산에 동참했다. 캐나다 출신 래퍼 드레이크는 2016년 자신의 4번째 앨범 ‘뷰(Views)’를 발매했다. ‘뷰’는 애플 뮤직 서비스 시작 이래 처음 10억회 이상 플레이된 앨범으로 등극했다. 드레이크는 또 트랩 힙합 부분 슈퍼스타 퓨처(Future)와도 합동 앨범을 발매했다. ‘Views’ 투어, 퓨처와 함께한 ‘서머 식스틴(summer sixteen)’ 투어 관련 상품도 생산했고 자신의 힙합 레이블 ‘OVO’라는 이름으로도 패션 상품을 만들었다.

    「슈프림」과 디자이너 브랜드들의 동참도 이어졌다. 일본의 두 컬트 브랜드 「언더커버」와 「더솔로이스트」(풀네임은 다카히로 미야시타 더 솔로이스트(TAKAHIROMIYASHITATHESoloist))가 손을 잡고 캡슐 컬렉션을 내놓았다. 록 밴드 ‘더 선 오브 마스터스(the son of masters)’의 1983년 ‘What Youth’ 투어 상품으로 내놓은 티셔츠와 스웻 셔츠다.

    드레이크, 퓨처, 비욘세, 리한나 등 줄줄이 동참
    사실 ‘더 선 오브 마스터스’는 실존하지 않는 상상의 밴드다. 「언더커버」 「더솔로이스트」의 만남도 대단하고 그 둘이 현재 트렌드에 반응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흥미롭기만 하다. 예측이나 한 것일까? 게다가 「슈프림」은  2016 F/W시즌에 실제로 헤비메탈 밴드 슬레이어과 콜래보레이션 제품을 내놓았다. 

    최근 ‘밴드 티셔츠’의 유행은 점점 확장돼 1990년대에 유행한 가수라면 누구나 티셔츠에 얼굴을 올릴 수 있다. 샤데이, 커트 코베인, 에미넴, 우탱 클랜, 퍼블릭 에네미…. 촌스럽기 그지없으나 「베트멍」 또한 래퍼 스눕독의 얼굴이 대문짝만 하게 박힌 티셔츠를 출시했다. 1990년대 TV 쇼 프로그램명이 프린트된 티셔츠, 구글마이크로소프트나 코카콜라 같은 기업의 로고가 박힌 티셔츠도 속속 등장했다.

    촌스러워 보이기만 하면 되는 걸까. 시대를 거꾸로 가며 옛 향수를 불러일으켜 이를 보고 있으면 재미있지만, 유행이라는 것이 남발되면 사람들은 싫증을 느끼고 곧 끝이 난다. 어찌 됐든 뮤지션의 공연 관련 상품이 패션에서 주요 아이템이 되고 메탈리카가 적힌 티셔츠가 50만원에 팔리고 하는 유행이 10년 뒤에 또 올지 모르겠다.





    **패션비즈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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