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패션, 사회참여? 마케팅?

minjae|18.11.19 ∙ 조회수 1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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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에서 「스트라디바리우스」까지 .. 사회참여 패션마케팅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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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스트라디바리우스 웹사이트 www.stradivarius.com>

패션 브랜드들의 최근 움직임이 진정한 사회참여인지 아니면 단순히 돈벌이를 위한 마케팅인지 갑론을박이 멈추지 않는다.


패션의 사회참여는 잠시의 트렌드일까? 불가피한 현대의 마케팅일까? 작년에 이어 올해 전 세계를 강타한 사회적 화두는 단연 ‘페미니즘’이다. 이를 증명하듯 미국의 권위 있는 온라인 사전인 메리엄-웹스터(Merriam-Webster)가 선정한 2017년 ‘올해의 단어’는 ‘페미니즘’이었다. AP통신은 메리엄-웹스터 총괄 편집인 피터 소콜로스키의 말을 빌려 ‘페미니즘’ 검색은 2016년에 비해 70%나 치솟았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해 말 할리우드에서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한 ‘미투(Mee too) 운동’은 페미니즘에 대한 관심을 폭발적으로 증가시켰다. 스페인도 예외는 아니다. 스페인의 미투운동은 소몰이 축제로 유명한 팜플로냐에서 발생한 집단 성폭행 사건에 대한 판결을 신호탄으로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스페인을 비롯해 여러 국가에서 양성평등을 주장하는 페미니즘 운동과 이를 ‘페미나치*’라고 폄하하는 양 집단이 좁혀지지 않는 전쟁을 하고 있다.

패션업계는 이에 발맞춰 페미니즘을 이용한 상품들을 쏟아냈다. 사실 이러한 패션계의 동향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이미 지난 2017 S/S시즌 오트쿠튀르에서 「디올」은 ‘We should all be feminist(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라는 슬로건이 적힌 티셔츠를 선보였다. 이 티셔츠는 「디올」 역사상 최초로 여성 디렉터로 임명된 마리아 그라치아의 런웨이 작품이라 더욱 큰 의미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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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스트라디바리우스 웹사이트 www.stradivarius.com / 인디텍스 웹사이트 www.inditex.com >

「디올」 페미니스트가 슬로건 티셔츠 시발점

이어 2017 F/W 뉴욕 패션위크에서 디자이너 프라발 구룽의 쇼에서도 페미니즘 메시지가 관심을 끌었다. 특히 마지막으로 등장한 디자이너가 직접 ‘This is what a feminist looks like(이게 바로 페미니스트의 모습이다)’라는 슬로건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등장해 더욱 화제가 됐다. 뒤이어 패스트패션 업계도 페미니즘을 내세운 제품을 출시하기 시작했다.

스페인 패션 브랜드 중 가장 적극적으로 ‘페미니즘 마케팅’을 선보인 브랜드는 「자라」의 모기업인 인디텍스 그룹의 영캐주얼 브랜드 「스트라디바리우스」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No es No(No는 No이다)’라는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티셔츠를 6유로(약 8000원)라는 저렴한 가격에 선보였다. 이 문구는 앞서 언급한 팜플로냐의 집단 성폭행 사건의 법원 판결에 대한 반발로 스페인 여성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을 때 내세운 슬로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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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인디텍스 웹사이트 www.inditex.com>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이전에도 이미 ‘Girls do not dress for boys(여성은 남성을 위해 옷을 입지 않는다)’ ‘Women will change the world(여성이 세상을 바꿀 것이다)’ ‘Women rule(여성이 지배한다)’ 등과 같은 페미니즘 문구를 새긴 제품을 판매했었다.

「스트라디바리우스」 ‘No es No’티셔츠 히트

그 어떤 문구보다도 스페인 여성 구매자들의 마음을 움직인 ‘No es No’ 티셔츠에 대한 반응도 다양하다. 스페인 엘르의 경우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브랜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품을 선보였다”고 언급하며 “모든 브랜드들이 「스트라디바리우스」 같기를!”이라고 극찬했다.

하퍼스 바자 스페인 역시 긍정적인 반응을 내놓았다. 이 매거진은 「스트라디바리우스」의 ‘여성은 남성을 위해 옷을 입지 않는다’는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예로 들며 아직까지 스페인 사회가 이 간단한 명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심각한 일이지만 드디어 변화가 시작된 것 같다며 긍정적으로 표현했다.

스페인에서 페미니즘 메시지를 담은 패션제품을 선보인 것은 비단 「스트라디바리우스」만은 아니다. 바르셀로나에 본사를 둔 또 다른 스페인 패스트패션 브랜드 「망고」 역시 지난 3월8일 국제 여성의 날을 기념해 ‘Empowered, determined, unstoppable woman(자율적이고 확고하며 막을 수 없는 여성)’과 ‘Fearless female(두려움 없는 여성)’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티셔츠를 약 13유로(약 1만7000원)에 출시한 바 있다.

패스트패션 「망고」 「꼼빠니아판타스티카」도

온라인을 기반으로 판매하며 전 세계 18개국에 1000여개의 판매 스팟을 둔 브랜드 「꼼빠니아판타스티카(Compania Fantastica)」 역시 이 즈음에 ‘March like a girl(여성처럼 행진하라!)’라는 문구를 담은 티셔츠를 선보였다. 빈티지하고 컬러풀한 디자인으로 충실한 고객을 확보하고 있는 브랜드 「돌로레스프로메사(Dolores Promesa)」 역시 ‘El futuro es nuestro(미래는 우리의 것)’이라는 티셔츠를 약 40유로(약 5만3000원)에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이런 페미니즘 메시지를 패션에 적용한 많은 브랜드에서 티셔츠 가격을 매우 저렴한 가격에 출시하거나 수익의 일부 혹은 전부를 NGO단체에 기부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디올」의 경우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 티셔츠 판매로 얻은 수익의 일부를 개발도상국의 교육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클라라 리오넬 재단에 기부했다.

앞서 언급된 「꼼빠니아판타스티카」 역시 페미니즘 티셔츠 판매 수익의 전부를 성폭력과 가정폭력의 여성 생존자들을 돕는 안나벨야 재단에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브랜드의 모습은 페미니즘을 브랜드 이익에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여성을 위한 사회공헌의 철학을 갖고 일련의 행동을 했다고 믿게 한다.

수익금 일부 NGO단체 기부 사회공헌 주목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페미니즘 운동가들은 이러한 패션 브랜드의 움직임을 그다지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패션 브랜드들이 지극히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최근의 페미니즘 운동을 단순히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스페인의 한 여성단체는 ‘이러한 메시지를 담은 티셔츠는 아무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거리로 나와 소리치는 것이다’라는 의견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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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 아니라 이런 메시지들이 오히려 패션에 가볍게 소비됨으로써 그 메시지의 무게가 가벼워 진다는 우려도 드러냈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엇갈린다. 특히 ‘No es No’ 티셔츠가 여름 대바겐세일 기간에 맞추어 출시됐기 때문에 그 반향이 더욱 컸다.

메리라는 이름의 여성 소비자는 트위터를 통해 “「스트라디바리우스」 같은 인디텍스 그룹 브랜드들은 여성들을 착취해 옷을 만들더니 이제는 여성운동을 착취한다”라고 맹비난했다. 또 다른 여성 소비자 누리아 크리스토발 역시 “이건 페미니즘이 아니라 「스트라디바리우스」의 경제적 이익에 도움을 줄 뿐이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바겐세일 맞춰 출시, 일각에서 ‘돈벌이’ 비난도

그럼에도 최근 스페인의 거리에서 이러한 페미니즘 메시지를 담은 티셔츠를 입은 여성을 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회적 이슈에 발 빠르게 움직인 덕분일까. 인디텍스 그룹의 올 상반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 성장하며 또다시 신기록을 경신했다. 처음으로 상반기 매출 120억유로(약 16조원)의 벽을 뛰어넘었으며 순이익 역시 14억유로(약 1조9000억 원)를 넘어섰다. 특히 전 세계 모든 시장에서 매출이 성장했다는 데 그 의미가 더욱 크다.

패션의 주요 고객이 여성이기 때문에 지금의 페미니즘 운동이 패션 소비자와 업계에 끼치는 영향은 클 수밖에 없다. 미투 운동에 이어 최근에는 일명 ‘탈 코르셋 운동’도 활발히 전개된다. 코르셋이 여성의 몸매를 아름답게 보이게 하기 위해 건강을 극단적으로 포기하고 사용된다는 점에서 유래된 것이다. 한마디로 코르셋을 벗어 던지자는 의미다.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여성이 다이어트를 하거나 메이크업과 패션 아이템으로 몸을 치장하는 행위 자체를 ‘꾸밈노동’으로 평가하며 사회적으로 강제된 노동으로 여긴다. 이런 관점을 가진 사람들의 눈에서는 최근 패션 브랜드들이 페미니즘을 활용한 패션을 내놓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미투운동 이슈 이어 ‘탈코르셋 운동’도 활발해

반대로 생각해 보면 패션은 언제나 페미니즘을 드러내는 수단 중 하나였다. 지금은 너무 흔한 아이템이지만, 여성에게 단아하고 보수적인 옷차림을 강조하던 시대의 미니스커트는 여성해방의 상징이었다. 이 미니스커트가 최근에는 남자에게 잘 보이기 위한 꾸밈노동으로 평가받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패션은 때로는 여성을 억압하는 것으로 또 때로는 페미니즘을 주장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돼 왔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언제나 시대와 생각을 반영하는 역할을 멈추지 않았다. 패션 디자이너 지아니 베르사체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누구인지 당신의 옷 입는 방식과 살아가는 방식으로 무엇을 표현하고 싶은지 스스로 결정하라.”

패션 브랜드들의 최근 움직임이 진정한 사회참여인지 아니면 단순히 돈벌이를 위한 마케팅인지 여전히 갑론을박이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페미니즘이 패션과 일상에 그 어느 때보다 깊숙이 침투한 지금, 앞으로 패션업계가 페미니즘을 어떤 형태로 패션에 녹아낼지 또 그게 우리 사회를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켜 나갈지 관심을 모은다.


■ TIP : 스페인의 미투운동은 소몰이 축제로 유명한 팜플로냐에서 시작됐다. 팜플로냐 축제 기간 중 18세의 한 여성이 5명의 남성에 의해 집단 강간을 당했다고 신고한 것이다. 특히 용의자 중 한 명이 민간의 치안을 담당하는 현직 시민경찰이라는 점은 스페인 사회에 더욱 큰 충격을 안겼다.

그러나 여성의 신고 내용과 달리 남성 측은 합의에 의한 성관계임을 주장했고, 법원은 이들의 의견을 수렴해 구속 상태로 수사 중이던 용의자들을 보석 석방하면서 사회 갈등이 커졌다. 지난 6월 이 사건에 분노한 스페인 여성들이 이들의 구속과 강력 처벌을 주장하며 거리로 뛰쳐나오기 시작했다. 스페인의 본격적인 미투운동과 페미니즘 운동의 신호탄이다.

■ 스페인의 양성평등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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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단 스페인만의 현실은 아니지만 스페인의 양성평등 지표는 아직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이는 가장 기본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급여 차이에서도 살펴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남성과 여성이 모두 싱글이었을 때의 급여 차이는 0.9%로 거의 비슷한 수준이지만 똑같이 부양하는 자식이 있는 경우에는 그 차이가 37.5%로 확 달라진다. 특히 사회적인 인식 속에서 남성이 부양할 자식이 있는 경우 그 남성은 더 높은 월급과 더 나은 대우를 회사에 요구할 수 있지만 여성의 경우 차별적인 대우를 감내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스페인은 자녀의 수와 상관없이 가장 어린 자녀가 만 12세가 될 때까지 최대 50%의 단축근무를 법적으로 회사에 요
청할 수 있다. 물론 급여도 이와 비례해서 차감된다. 부양하는 자식이 있는 경우 부부 중 어느 쪽도 이 권리를 주장
할 수 있지만 육아 단축근무를 신청하는 쪽은 여성 근로자가 압도적으로 많다. 부양하는 자식이 있는 경우 급여차이
가 크게 달라지는 점이 이러한 정책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육아 단축근무를 신청하는 쪽이 거의 여성이라는 것은 여성의 역할을 바라보는 스페인 사회의 인식을 짐작하게 한다.

한편 오스트리아나 독일처럼 양성평등이 더 실현됐다고 짐작되는 유럽 국가에서 ‘부양하는 자녀가 있는 남녀의 임금 차이’가 100%를 넘는다. 이 수치만 본다면 마치 스페인 사회가 이들 국가보다 더 양성평등이 이루어진 사회 같지만, 실상은 다르다. 스페인의 경우 자녀를 양육하는 여성이 부당한 조건이나 낮은 질의 일자리를 감수하고서라도 경제활동을 지속해야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가정 내 전통적인 여성의 역할을 강요하는 한편 경제활동이라는 새로운 역할까지 요구하는 것이다.

또한 가정폭력을 비롯한 젠더 폭력 역시 스페인 사회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이슈다. 특히 남편이나 연인에 의한 여
성 살해는 스페인 사회의 문제 중 하나다. 희생자 수를 집계하기 시작한 2003년 1월 1일 이래 총 957명의 스페인 거
주 여성이 남성 파트너에 의해 살해당했으며 올해도 그 수치가 9월 현재 벌써 33명에 달한다. 다만 이중 일부는 중남
미나 동유럽 출신의 이민자들 사이에서 벌어졌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스페인 정부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Hay salida(벗어날 수 있습니다)’라는 슬로건을 적극적으로 홍보하며 가정
폭력 신고 전화와 웹사이트를 운영한다. 이 웹사이트는 다른 정부 웹사이트와 달리 창 한쪽에 크게 ‘즉시 종료’라는 버튼이 보인다. 혹시 이 사이트를 보고 있는 것을 잠재적 가해자에게 들켰을 때 재빠르게 대처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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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비즈 2018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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