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用之用의 자세로 패션을

패션비즈 취재팀 (fashionbiz_report@fashionbiz.co.kr)
07.02.11 ∙ 조회수 7,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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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밀라노 두오모, 그 차가운 계단에 앉아 집시를 닮은 비둘기 떼를 바라보며 고민하던 시절, 우물 밖에서 본 우리나라의 패션기업들의 현실은 이러했다. 당시 한국에서 출장 온 사람들을 만나곤 했는데 ‘어떻게 하면 시간을 단축시켜 많은 것을 담아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눈치를 보며 사진을 찍던 그들을 잊을 수 없다. 숨쉴 시간조차 없는 그들의 출장 일정 속엔 안타깝게도 밀라노를 체험할 시간은 철저히 배제돼 있었다.

그로부터 5년 후 세계 패션의 리더들이 활동하는 파리로 옮겨 갔지만 우리 패션기업의 행태는 밀라노에서 의 경험과 다르지 않았다. ‘어떤 힘이 밀라노 파리를 세계 패션의 리더가 될 수 있도록 하였는가?’ ‘어떤 시스템의 오류로 인해 우리에게는 독특하면서도 보편성을 지닌 세계적 브랜드가 없는가?’ 10여년간 밀라노와 파리를 오가면서 이러한 생각을 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세계적 브랜드들은 결코 좋은 기술과 좋은 원단을 생산하는 것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이탈리아의 패션교육계는 오랜 문화적 전통과 역사를 바탕으로 특히 타 예술과의 교감을 통해 그들만의 이미지를 창출해 낼 수 있는 창의적인 교육을 한다. 기업은 실무만을 이슈로 삼지 않고 다른 장르의 예술을 이해하는 사람을 지원해 그들만의 독특한 감성을 지니면서도 보편성을 가진 디자이너를 오랜 시간을 두고 육성한다.

인재의 발굴육성은 패션기업의 중요한 자원이다. 그 사례를 파브리카(FABRICA) 연구센터를 통해 생각해 보자. 베네통 파브리카연구센터는 색채의 혁신을 일으킨 이탈리아의 의류 회사 베네통이 1994년에 설립한 커뮤니케이션 연구 센터로서 심사를 통해 세계 각국의 젊은 작가들을 초청해 이들의 창의성 개발을 지원하고 있다.

그곳에서 그들은 기존의 선입관에서 탈피해 영화 사진 디자인 뮤직비디오 잡지출판 인터랙티브 & 비주얼커뮤니케이션 등을 활용해 새로운 이슈와 시각 스타일을 생산한다. 작품을 상품과 광고에 연결시키기도 하고 매장의 일부 공간에 전시함으로써 예술과 디자인, 그리고 소비자가 상호 소통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이러한 기업의 사고가 그들만의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는 힘이 됐다.

세계 속에서 한국 패션교육과 기업의 위상은 과거와는 많은 부분에서 달라졌다. 국내 디자이너들이 세계 곳곳에서 인정받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으며, 특히 디자이너 이상봉은 작년 F/W 파리 프레타포르테컬렉션에서 한글을 모티브로 한 의상을 출품해 언론의 격찬을 받았다.

이제 우리에게는 시나리오도 있고 연출가도 있고 장비도 준비돼 있다. 이 시점에서 패션 교육계에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장자의 말을 인용해 본다. 장자(莊子)의 인간세편(人間世篇)에 보면 무용지용(無用之用)이라는 말이 있다 ‘언뜻 보기에 무용하다고 보이는 것이 실은 유용하다’는 뜻이다.

교육계는 당장에는 쓸모 없이 보이는 타 예술과의 소통을 통한 창의적 교육을, 기업은 실무만을 이슈로 삼지 말고 ‘패션은 창의성이 요구되는 작업이며 그 창의성은 패션산업을 고부가가치산업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힘이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 장자의 말을 실천에 옮길 때 우리의 패션계는 큰 희망 속에서 도약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profile

·1988년 이화여대 미술대학 장식미술학과 졸업
·1993년 이탈리아 마랑고니 패션연구소(INSTITUTO MARANGONI) 졸업
·1999년 파리1대학(UNIVERSITE PARIS 1) 예술사학과 DEA 졸업
·2001년 1월 2001 F/W 홍콩패션위크,
아시아 퍼시픽 패션디자이너쇼
·2001년 9월 2002 S/S 파리프레타포르테
·2002년 1월 2002 F/W 파리프레타포르테
·2002년 1월 2002 F/W 서울패션위크,
인터내셔널 패션디자이너 쇼
·2005년 6월 Fashion Art Exhibition 개인전
·2004년~현재 이화여대 조형예술대학 디자인학부 패션디자인전공 전임
·2006년~현재 한국니트디자인과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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